스로에게 말해 보았다 그리고 그호텔에 묵으며 고혼다와 함께 술을 마셔야
했을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 나와 고혼다 사이에는 네 가지의 공통점이 있
다. 우선 과학 실험 시간에 함께 공부했다. 그리고 둘 다 이혼을 하여 독신
으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둘 다 키키를 데리고 잔 적이 있다. 그리고 둘다
같이 잔 적이 있는 메이는 죽어 버렸다. 아주 완전히. 술을 함께 마실 만한
가치는 있다. 같이 어울려도 괜찮았던 것이다. 나는 어차피 한가하고, 특히
내일 무슨 일을 하려는 예정도 없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와 함께 술
을 마시지 못하도록 만들었을까? 아마 그게 영화의 장면처럼 보이는 게 싫
었으리라는 결론에 나는 도달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가엾은 사나이다.
너무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는 아마 그의 탓이 아니리라.
시부야의 아파트로 돌아온, 나는 블라인들의 틈새로 고속도로를 바라보
면서 위스키를 마셨다. 네 시 가까이 되어 졸음이 와서 잠자리에 들었다.
1주일이 지나갔다. 봄이 발판을 굳히며 확실하게 전진하여 가는 1주일이
었다. 봄은 한번도 뒷걸음치지 않았다. 3월과는 전혀 다르다. 벚꽃이 피고,
또 밤비가 그 꽃잎들을 흩날려 버렸다. 선거는 겨우 끝나고, 학교의 새 학
기가 시작되었다. 도쿄 디즈니 랜드가 개관하였다. 비에른 보르크가 은퇴하
였다. 라디오의 톱텐의 1위는 죽 마이클 잭슨이었다. 죽은 자는 죽 죽은 자
인 채로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게 두서없는 1주일이었다.
어디로 가려는 목표도 없는 나날의 나열이었다. 나는 지난 주에 두 차례
풀을 찾아가 수영을 하였다. 그리고 이발소에 갔다. 이따금 신문을 사서 읽
어 보았지만, 메이에 관한 기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아마 아직 신원이 밝
혀지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언제나 시부야 역의 매점에서 신문을 사고, 던
킨 도너츠에서 그것을 읽고, 다 읽은 다음에는 휴지통에 버렸다. 특별한 기
사는 없었다.
지난 주에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유키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식사를 했
다. 그리고 지난 주의 첫날인 월요일에는 음악을 들으면서 자동차를 몰고
멀리 드라이브를 했다. 그녀와 만나는 일이 즐거웠다.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가한 점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직 귀국하고 있지 않았다. 나와 만나
지 않을 때는 일요일 이외에는 낮에 거의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
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있으면 선도를 받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 다음에 디즈니랜드에 가 보지 않겠어?" 하고 나는 물었다.
"그런 데는 가고 싶지 않아요." 하고 그녀는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건 싫어요."
"그처럼 부드럽고, 어설프고, 부자연스럽고, 어린애 취향이며, 상업주의적
이고, 미키마우스적인 곳은 싫단 말이지?"
"그래요." 하고 그녀는 간단히 대답했다.
"하지만 집에 가만히 있으면 몸에 좋지 않아." 하고 나는 말했다.
"하와이에 가지 않겠어요?" 하고 유키는 말했다.
"하와이?" 하고 나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는데, 내게 잠시 하와이에 와 있으라는 거예요. 그
사람, 지금 하와이에 있어요. 하와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어요. 나를 내팽개
쳐 두었기 ㄸ문에 갑자기 걱정이 된 거죠. 그래서 전화를 걸어왔어요. 엄마
는 아직 얼마 동안은 일본에 돌아올 수 없고, 어차피 나도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으니까. 하와이는 나쁘지 않잖아요. 그래서 만일 내가 올 수 있다
면, 내 몫의 돈도 마련해 주겠다는 거예요."
나는 웃었다. "디즈니랜드와 하와이의 차이는 어디에 있지?"
"하와이에는 선도원은 없어요, 적어도."
"나쁜 생각은 아니군." 하고 나는 인정했다.
"그럼 함께 갈 거예요?"
나는 이 문제를 약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하와
이에 가 보아도 좋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도쿄 거리를 떠나 전혀
다른 환경 속으로 옮아가 보고 싶었다. 나는 이 도쿄 거리에서 정신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것
이다. 생각의 실은 끊어진 채로 있었고, 새로운 실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무슨 일을 하
든 제대로 몸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틀린 것을 계속 먹고, 틀린 것을 계속
사들이고 있는 듯한 음울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죽은 자는 아주 완전히 죽
어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나는 약간 피로해 있었다. 경찰에서 곤욕을
당한 그 사흘 동안의 피로가 아직 말끔히 가셔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 나는 하와이에 하루 동안을 체재한 적이 있었다. 일이 있어 로스
엔젤레스로 가다가 도중에 비행기의 엔진에 이상이 있어서 하와이에서 발
이 묶여지는 바람에, 호놀룰루에서 1박했던 것이다. 나는 항공회사가 준비
해준 호텔의 매점에서 선글라스와 수영복을 산 다음, 해변에서 뒹굴며 하
루를 보냈었다. 멋있는 하루였다. 하와이-나쁘지 않다.
거기서 1주일 동안 한가로이 지내면서 실컷 수영을 하고, 피나 코라다를
마시고 돌아온다. 피로도 가시고, 행복한 기분도 된다. 햇볕에 그을은 몸으
로, 새롭게 시점을 바꾸어 사물을 다시 보고 생각을 고쳐 본다. 그리고 아
마도 이렇게 생각하리라. "그렇다, 이러한 사고 양식이 있었다." 하고 나쁘
지 않다.
"나쁘지 않아."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럼 결정됐어요. 표를 사러 가요."
그 전에 나는 그녀에게 전화 번호를 물어 마키무라 히라쿠의 집에 전화
를 걸었다. 비서인 프라이데이가 전화를 받았다. 내 이름을 대자 그는 상냥
하게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나는 그에게 사정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하와이엘 다녀와
도 괜찮겠느가고 물어보았다. 정말 좋은 일이라고, 바라는 바라고 그는 말
했다.
"자네도 잠시 외국에 나가 한가로이 지내다 오는 게 좋아." 하고 그는
말했다. 제설 작업을 하는 노동자에게도 휴가는 필요해요. 경찰이 괴롭히지
도 않을 테고, 그 사건은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지? 그 자들이 또 자네를
찾아갈 거야, 틀림없이."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 내키는 대로 가 있도록 하게." 하
고 그는 말했다. 이 사나이와 이야기를 하면 결국 언제난 돈 이야기가 되
어 버린다. 현실적인 것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지만 곤란합니다. 겨우 1주일 정도일 겁니다." 하
고 나는 말했다. "제게도 여러 가지로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좋아. 자네가 좋을 대로 하면 돼." 하고 그는 말했다. "그래 언
제 갈텐가? 빠른 편이 좋을 거야. 여행이란 건 그런거야. 생각이 떠오르면
이내 가는 거야. 그게 요령이지. 별다른 준비물도 필요없어. 시베리아에 가
는 것도 아니잖아. 모자라면 저쪽에서 사면 돼. 저쪽에서 무엇이든 팔고 있
으니까. 그렇군, 모레 비행기표는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겠나?"
"괜찮지만, 제 표 몫은 제가 지불하겠습니다. 그러니..."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게. 나는 이러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비행
기표쯤은 굉장히 싼 값으로 살 수 있다구. 금방 좋은 자리를 구할 수 있어.
이건 내게 맡겨두면 돼. 사람에겐 각기 나름대로의 능력이라는 게 있는 거
야.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 시스템이 어떻다는 따위의 말은 하지
말게. 호텔도 내가 잡아 두겠어. 방 두 개로-자네와 유키의 몫이야. 어떻겠
나? 부엌이 딸린 게 좋을까?"
"네 자취를 할 수 있으면, 저는 그편이 더 좋겠습니다만-."
"좋은 데를 알고 있어. 해변에 가깝고, 조용하고 깨끗해. 전에 묵은 적이
있지. 우선 그곳을 2주일 동안 잡아 두겠어. 마음 내키는 대로 있으면 돼."
"하지만요-."
"쓸데없는 일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게. 모두 내게 맡겨 괜찮아. 유키
엄마에게는 내가 연락해 두겠어. 자네는 호놀룰루로 가서, 유키와 함께 해
변에서 뒹굴며 식사를 하고 있으면 돼. 유키 엄마는 어차피 일 ㄸ문에 뛰
어다니고 있으니까. 일을 하고 있으면 돼, 딸이든 무엇이든 안중에 없지.
그러니까 자네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한가로이 지내면 되는 거
야, 유키가 제때 식사를 하도록 해주면 된다구. 긴장을 푸는 거야. 몸의 힘
을 빼는 거야. 그뿐이야. 아, 그래, 비자는 갖고 있겠지?"
"갖고 있습니다. 다만-."
"모레야. 알겟지. 수영복과 선글라스와 패스포트만 갖고 가면 돼. 나머지
는 사면 돼. 간단해. 시베리아에 가는 게 아니니까. 시베리아에 갔을 때는
정말 애먹지. 거긴 지독해. 아프가니스탄에 갔을 때도 힘들었고. 하와이는
디즈니랜드 같은 곳이야. 잠깐이야, 멍하니 누워 있으면 돼. 그런데 자네
영어 할 줄 알지?"
"일상의 이야기 정도면-"
"좋아." 하고 그는 말했다. "충분해. 완벽해. 더 얘기할 건 없어. 나카무라
가 내일 비행기표를 그쪽으로 가져가도록 하겠네. 가기 전에 전화하겠어."
"나카무라?"
"아르바이트 학생이야, 지난 번에 만났잖은가. 내일을 돕기 위해 입주해
있는 젊은이."
충실한 하인인 프라이데이.
"뭐 질문할 게 있나?" 하고 마키무라 하라쿠가 불었다. 질문할 게 많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하나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특별
히 물어볼 건 없다고 나는 말했다.
"좋아." 하고 그는 말했다. "이해가 빨라.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야. 아, 그
리고 내가 자네에게 보낼 또 하나의 선물 있네. 이것도 받아 주게. 그게 무
엇인가는 저쪽에 가면 알 수 있어. 리본을 끄르고 뚜꺼을 열어 보는 즐거
움을 맛보도록. 하와이- 좋은 곳이야. 유원지야. 여유. 일할 필요가 없어.
냄새가 좋아. 즐기구 오라구. 또 다음에 만나세."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과소비한 심한 작가.
나는 레스토랑으로 돌아와, 모레 출발하게 될 것 같다고 유키에게 말했
다. "잘 됐군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혼자 준비할 수 있어? 짐이나 백, 수영복 따위 말야." 하고 나는 물어보
았다.
"하지만 하와이잖아요?" 하고 그녀는 의아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긴 해변에 나가는 거나 별 차이가 없어요. 카트만두에 가는 게 아니
잖아요?"
"그렇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게 말했지만, 우선 여행하기 전에 해둘 일들이 더러 있었다. 나는 이
튿날 은행에 가서 예금을 찾아, 여행자 수표를 취결하였다. 예금은 아직 꽤
많이 있었다. 지난 달 몫의 원고료가 들어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불어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서점에 가서 몇 권의 책을 샀다. 세탁소에 들러 셔
츠를 가져왔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의 식품을 정리하였다. 집에 돌아와 냉
장고의 식품을 정리하였다. 세 시에 프라이데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
금 마루노우치에 있는데, 지금부터 그쪽으로 비행기 표를 갖고 가도 되겠
는가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미리 시간을 정하여, 팔코의 커피 룸에서 만났
다. 그는 내게 두터운 봉투를 건네주었다. 속에는 삿포로부터 도쿄까지의
유키의 비행기 요금과 항공회사의 퍼스트 클라스 오픈 티켓 2인분 및 아멕
스의 여행자 수표책 2권이 들어 있었다. 그밖에 호눌룰루의 아파트먼트 호
텔의 지도가 들어 있었다. "거기에 가서 당신의 이름만 알려주면 되게 되
어 있습니다." 하고 프라이데이는 말했다.
"2주일 간으로 예약해 두었지만, 더 짧게든 길게든 변경시킬 수 있습니
다. 그리고 수표에는 당신의 사인을 해 두세요. 마음대로 사용해 주세요.
어차피 경비로 처리되니까 사양할 건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뭐든 경비로 처리되는군." 하고 말했다.
"전부는 무리겠지만, 되도록 이면 영수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영수증을
받아두어 주세요. 나중에 내가 처리하게 되는데, 그러면 도움이 됩니다."
하고 프라이데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결코 불쾌감을 주는 웃음은 아니었다.
그러겠다고 나는 말했다.
"주의하여 좋은 여행을 하십시오." 하고 그는 말했다.
"고맙네."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하와이니까요." 하고 프라이데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짐바브웨어 가는 건 아니니까."
여러 가지 말솜씨가 있다.
해가 진 다음에 나는 냉장고 속의 재료들을 그러모아 저녁 반찬을 만들
었다. 야채 샐러드와 오믈렛과 된장국이 마련되었다. 내일부터 하와이에 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게 있어서는 이것은
내일부터 짐바브웨에 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기
분이었다. 이는 아마 내가 짐바브웨에 가본 적이 없기 ㄸ문이리라.
나는 벽장에서 별로 크지 않은 여행용 비닐 가방을 꺼낸 다음, 거기에
세면 도구가 담겨진 백과 책, 갈아 입을 내의, 양말 따위를 집어넣었다. 그
리고 수영복과 선글라스와 햇볕에 탄 피부용 크림을 집어넣었다. T셔츠 두
개와 폴로 셔츠, 반바지, 스위스 아미 나이프 등을 넣었다. 마드라스 체크
무늬의 여름 윗도리를 반듯이 접어 제일 위에 넣었다. 그리고 가방의 파스
너를 잠그고, 패스 포트와 여행자 수표, 면허증, 비행기의 티켓, 크레디트카
드 따위를 확인하였다. 그밖에 또 가져 갈 만한 게 있을까?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와이에 가기란 아주 간단한 일이다. 확실히 가까운 해변에 나가는 것
이나 별 차이가 없다. 훗가이도로 갈 ㄸ은 짐이 훨씬 더 많았다.
나는 의복 등이 담겨진 가방을 바닥에 놓아두고, 입고 갈 옷을 준비 하
였다. 블루진과 T셔츠, 요트 파커, 엷은 윈드 블레이커 등을 개어 쌓아두었
다. 이만큼의 일을 하고 나니, 할 일이 없어 따분해져 버렸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 할 수 없이 목욕을 하고, 맥주를 마시고, TV뉴스를 보았다.
특별한 뉴스는 없었다. 날씨가 내일부터 나빠지리라고 아나운서는 예보하
고 있었다. 좋아- 하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내일부터는 이미 호놀룰루에
가 있을 테니까. 나는 TV를 끄고, 침대 위에서 뒹굴며 맥주를 마셨다. 그
리고 또 메이에 관해 생각했다. 아주 완전하게 죽어 있는 메이, 그녀는 지
금 몹시 차가운 곳에 있다. 신원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인수할 사람도 없
다. 다이어 스트레이트나 밥 딜런도 이미 들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내일
부터 하와이로 가려하고 있다. 그것도 타인의 경비로-이게 세상의 올바르
고 바람직한 상태일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메이의 이미지를 머리 속에서 몰아내었다. 또 언젠
가 생각해 보자. 지금으로선 너무 딱딱한 화제다. 너무 딱딱하고 너무 뜨겁
다.
나는 삿포로에 있는 돌핀 호텔의 아가씨를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안경
을 낀 프런트의 아가씨.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그녀의 꿈까지 꾸었
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나로선 알 수 없었다. 뭐라고 말하며
전화를 걸어야 하나? 안경을 낀 프런트의 아가씨와 이야기 하고 싶은데요,
하고 말하면 될까? 안 돼. 그런 식으로 하면 잘 될 턱이 없어. 아마 상대해
주지도 않으리라. 호텔이란 매우 진지한 직장인 것이다.
나는 이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틀림없이 뭔가 좋은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의지가 있는 데서는 방법이 생겨나는 법이다. 잘 될
것이냐의 여부를 떠나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
나는 유키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리고 내일 할 일을 상의하였다. 아
침 아홉 시 반에 택시를 잡아 맞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화를 건
김에 덧붙여 물어보는 거처럼, 그 아가씨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가고 물어
보았다. 너를 내게 맡겼던 호텔의 프런트에 있던 여자 말야. 안경을 낀 사
람.
"음,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꽤 이상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일기에 적어 두었어요. 지금은 생각해낼 수 없지만, 일기를 보면 알 수 있
을 거예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지금 TV를 보고 있거든요. 나중에도 좋죠?"
"미안하지만, 급하다구 굉장히."
그녀는 불평을 했지만, 그래도 일기를 펼쳐보고 이름을 알려주었다.
"유미요시에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유미요시?" 하고 나는 말했다. "대
체 무슨 글자지?"
"몰라요. 그래서 꽤 이상한 이름이라고 말했잖아요. 무슨 글자인지는 몰
라요. 혹시 오키나와 사람이 아닐까요. 그러한 느낌을 주는 이름이잖아요?"
"아니, 오키나와에도 그런 이름은 없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불러요. 유미요시라구요." 하고 유키는 말했다.
"이제 됐어요?TV를 보고 있어요."
"무엇을 보고 있지?"
그녀는 이에는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도쿄의 전화 명부를 모조리 뒤적이며 유미요시라는 이름을 찾아보
았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도쿄에는 2명의 유미요시가 있었다. 세상에
는 가지 각색의 이름들이 있다.
나는 곧 돌핀 호텔로 전화를 걸어, 유미요시 씨 계십니까, 하고 물어보았
다. 바로 기대하고 있지도 않았는데, 상대는 그녀에게 제대로 전화를 바꿔
주었다.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일은 아니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중이에요." 하고 작은 목소리로 차갑고 간결하게 말
했다. "나중에 전화하겠어요."
"좋아요, 나중에 그럼." 하고 나는 말했다.
유미요시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나는 고혼다의 집
에 전화를 걸어, 내일부터 갑자기 얼마 동안 하와이에 가 있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녹음 전화에 녹음시켜 두었다.
고혼다는 집에 있었는지, 이내 전화를 걸어왔다.
"잘 됐군, 부러운데." 하고 그는 말했다. "기분 전환을 하는 데 아주 좋
아. 갈 수 있으면 나도 가고 싶군."
"자네도 갈 수 없는 건 아니잖아?" 하고 나는 말했다.
"아니, 그게 그처럼 간단치가 않아. 사무실에는 빚이 있어. 결혼, 이혼 등
의 복잡한 일을 치르느라 굉장히 돈을 많이 빌렸어. 그래서 내가 무일푼이
됐다는 얘기는 자네에게 분명히 했지? 그 빚을 갚기 위해 나느 뼈빠지게
일하고 있어. 나가고 싶지도 않은 광고에도 나가지. 정말 올 수 없어. 세상
이 나날이 까다로워져 가고 있어. 자신이 가난뱅이인지 부자인지조차 알
수 없다구. 물품은 풍부하게 있는데, 갖고 싶은게 없어. 돈은 얼마든지 사
용할 수 있는데, 정말로 사용하고 싶은게 없어. 돈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느데, 정말로 사용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는 사용할 수 없어, 예쁜 여자는
얼마든지 데리고 놀 수 있는데, 좋아하는 여자와는 잘 수가 없어. 이상한
인생이야."
"빚은 많은가?"
"상당한 액수야." 하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상당한 액수인 줄 알고 있
을 뿐이고, 무엇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당사자인 나 자신도 통 알 수 없
어. 이봐, 자만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웬만한 건 보통 내지는 보통 이상으
로 할 수 있어. 그런데 돈을 계산하는 일 따위는 아주 질색이야. 장부에 씌
어진 금액의 숫자를 보면 생리적으로 오싹 소름이 끼칠 것 같아 눈을 돌려
버려. 우리 집은 완고한 가정이어서 그런 식으로 가르침을 받았어. 숫자에
는 신경을 쓰지 말고, 열심히 일하여 분수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고 말야.
그건 하나의 사고 양식일 수는 있어. 적어도 당시에는 그랬어. 하지만 분수
에 맞도록 살아간다는 관념 그 자체가 사라져 버린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
러한 사고 양식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그래서 이야기는 까다롭게 됐지.
거시적이라는게 없어지고, 숫자에 약하다고 하느 셉누만이 남았어. 최악의
상태야. 무엇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나느 통 알 수가 없어. 사무실의 계리
사가 내게 자세히 설명해 주지. 하지만 까다로워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돈이 여기 저기로 이동하고 있고, 명목상의 빚이 있고, 명목상의 대출이 있
는가 하면, 경비로 처리된 부분이 있는 등 굉장히 복잡해.
좀더 명료했으면 좋겠다고 나는 말하지.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아무도 상
대해 주지 않아. 그럼 아무튼 결과만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지. 그러면 가르
쳐 줘. 이건 간단해. 아직 꽤 많은 빚이 있어. 상당히 줄었지만 아직 이러
이러한 것들이 남아 있다, 그러니까 일하라. 그 대신 경비는 얼마든지 사용
하라-그러한 얘기야. 지겨워. 일하는 건 좋아해, 나는 별로 싫어하지 않아.
그러나 구조를 이해할 수 없는 건 곤란한 일이야. 이따금 두려워질 때가
있어-. 아, 또 너무 지껄이고 있군 미안해. 자네하고 이야기를 하면 그만
너무 지껄이게 돼.
"괜찮아. 상관 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자네와는 관계없는 일이고, 이 다음에 또 만나 천천히 이야기할
수 있지." 하고 그는 말했다. "잘 다녀오게. 자네가 없으면 적적해. 틈이 나
면 만나서 함께 한 잔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죽."
"하와이야."하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상아 해안에 가는 것도 아냐. 1주
일이면 돌아올 거야."
"아, 그건 그래. 돌아오면 어쨌든 전화를 해주지 않겠자?"
"전화하겠네." 하고 나는 말했다.
"자네가 와이키키 해변에서 뒹굴고 있을 동안, 나는 치과 의사 흉내를
내면서 빚을 갚고 있을 거야."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인생이 있지." 하고 나는 말했다. "사람마다 각기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구."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하고 그는 손가락 끝을 튕겨 소리를 내면
서 말했다. 같은 세대의 인간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확실히 일종의 수고
를 덜게 된다.
유미요시는 열 시 가까이 되어 내게 전화를 걸어 주었다. 지금 직장에서
돌아와, 집에서 전화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계속 내리고 있는 눈 속
의 그녀의 아파트를 문득 생각해 내었다. 아주 심플한 아파트, 아주 심플한
계단. 아주 심플한 문. 그녀의 신경질적인 미소. 그러한 것들이 모두 그리
웠다. 나는 눈을 감고, 어둠 속에 조용히 눈이 흩날리고 있는 모양을 상상
하였다. 마치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어요?" 하고 우선 그녀는 물었다.
유키가 가르쳐 주었다고 나는 설명했다. "올바르지 않은 짓을 하진 않았
어. 매수하지도 않았어. 도청하거나 누군가를 때려 알아낸 것도 아냐. 그
아이에게 예의 바르게 물었더니 가르쳐 주더군."
그녀는 의심스러운 듯이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아이는 어ㄸ어
요? 제대로 무사히 데려다 주었나요?"
"무사해." 하고 나는 말했다. "제대로 데려다 주었고, 지금도 이따금 만나
고 있어. 건강해. 좀 별난 아이지만."
"당신과 어울려요." 하고 유미요시는 특별한 감정이 담겨지지 않은 목소
리로 말했다. 이는 온 세계의 사람들이 누구나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처럼
들렸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좋아한다든지, 사하라 사막에는 별로 비가 내리
지 않는다는 따위의 말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왜 내게 이름을 죽 감추고 있었지?" 하고 나는 물어보았다.
"그렇잖아요. 이 다음에 오면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잖아요? 감추고 있었
던 건 아녜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감추고 있는 게 아니라, 가르쳐 주기
가 귀찮았을 뿐예요. 무슨 글자냐, 그러한 이름이 흔한 거냐, 어느 곳 출신
이냐는 따위만을 묻기 때문에 대답하기가 귀찮아 남에게 이름을 가르쳐 주
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이는 당신이 생각하기보다는 훨씬 더 번거로운 일
이에요.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좋은 이름이야. 아까 찾아보았는데 도쿄에서 살고 있었다고 말했
죠. 그 정도는 벌써 알아보았어요. 별난 이름을 갖고 있으면, 옮아갈 때마
다 그곳의 전화 명부를 뒤적여 보는 버릇이 들어버려요. 어디엘 가든 우선
전화 명부를 뒤적여 보는 버릇이 들어버려요. 어디엘 가든 우선 전화 명부
를 뒤적여 보는 버릇이 들어버려요. 어디엘 가든 우선 전화 명부를 뒤적여
봐요. 유미요시를 찾아보는 거예요. 교토에도 한 명 있어요. 그래, 내게 무
슨 용무가 있어요?
"특별한 용무는 없어." 하고 나는 정직하게 말했다. "내일부터 얼마동안
여행을 떠나게 돼. 그래서 그 전에 네 목소리를 들어두고 싶었어. 그뿐이
야. 이따름 네 목소리를 들어두고 싶었어. 그뿐이야. 이따금 네 목소리가
몹시 듣고 싶어지거든.
그는 또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전화가 약간 혼선이 되어 있었다. 굉
장히 먼 곳에서 여자가 지껄이고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란 복도 끝에
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작고 메마른 소리가 묘하게 울려오고 있었
다. 내용까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무척 괴로운 듯한 목소리로 들렸다.
그 목소리는 괴로운 듯이 띄엄띄엄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지난 번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더니 칠흑같이 깜깜했었다는 이야기를
했죠?" 하고 유미요시는 말했다.
"응, 들었어." 하고 말했다.
"실은 그러한 일이 또 있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잠자코 있었
다. 그녀도 잠자코 있었다. 먼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상대는 이따금 맞장
구를 쳤는데, 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불안정한 목소리가 "아아.",
"응." 하고 - 아마 그렇게 말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짧게 대답할 뿐
이었다. 여자는 천천히 사닥다리라도 올라가는 것처럼, 괴로운 듯이 이야기
를 계속하고 있었다. 마치 죽은 자가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나는 문득 생
각했다. 기다란 복도의 끝에서 죽은 자가 이야기하고 있다.- 죽어 있다는
게 얼마난 괴로운 일인가에 대해.
"이봐요, 듣고 있어요?" 하고 유미요시가 말했다.
"듣고 있어." 하고 나는 말했다. "그 이야기를 해봐요."
"하지만 당신은 내가 그때 한 말을 정말 믿어 주었어요? 그저 적당히 이
야기를 들어준 것 아녜요?"
"믿고 있어." 하고 나는 말했다. "네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후에 나도
너와 똑같은 장소에 갔었어.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여 똑같은 어둠속으로 말
야. 그리고 너와 똑같은 체험을 했어. 그래서 네가 한 말을 모두 믿고 있
어."
"갔어요?"
"그건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하겠어. 지금은 아직 제대로 잘 말할 수 없
어. 여러 가지 일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으니까. 이 다음에 너를 만날 때에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설명하겠어. 그래서 나는 그 때문에 너를 한 번
더 만날 필요가 있어, 하지만 그건 그렇고 지금은 어쨌든 네 이야기를 들
려주지 않겠어? 이는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잠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혼선이 되어 들려오던 이야기 소리는, 이미 들
리지 않게 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전화에서만 있을 수 있는 침묵이 있을
뿐이었다.
"며칠 전에." 하고 유미요시는 말했다. "10여 일 전쯤일 거예요. 나는 엘
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에서 내리려 했어요. 밤 여덟 시쯤에. 그런데
또 그 장소로 나갔어요. 지난 번과 같은 곳 말예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거기에 있었어요. 이번은 한밤중도 아니고, 16층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똑같았어요. 캄캄하고, 곰팡이 냄새가 나고, 습기찬 곳
이었어요. 냄새나 어둠이나 습기가 똑같아요. 난 이번에는 아무 데로도 가
지 않았어요. 거기서 가만히 엘리베이터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죠.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 듯한 느낌이 들지만요.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되
돌아와, 그걸 타고 거기서 나왔어요. 그뿐이에요."
"그걸 누구에게 이야기했지?" 하고 나는 물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두 번째잖아
요?이번에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좋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좋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느 게 좋아."
"대체 어떡하면 좋죠? 요즘에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문이 열리면 그
어둠이 또 나타날까봐 두려워져요. 하지만 이처럼 큰 호텔에서 일하고 있
으면, 하루에 몇 번이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을 수가 없어요. 어떡하죠?
이 일에 관해서는 당신밖에는 상담할 상대도 없어요,내게는."
"유미요시." 하고 나는 말했다. "왜 좀더 일찍 전화를 걸어주지 않았지?
그러면 좀더 일찍 네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었는데."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어요." 하고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언제난 부재중이었어요."
"녹음 전화 장치가 되어 있잖아?"
"그건 싫어요. 무척 긴장하게 되니까."
"알았어. 그럼 지금 간단히 설명하겠어. 그 어둠운 사악한 게 아니며, 네
게 악의를 품고 있지도 않아. 그러니 두려워할 건 없어. 거기서 어떤 것이
살고는 있지만- 네가 그 발소리를 들었지- 이는 결코 너를 해치지는 않아.
이는 무엇에 상처를 입히는 건 아냐. 그러니까 너는 만일 또 어둠과 마주
치면, 가만히 눈을 감고, 거기서 엘리베이터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으
면 돼. 알았어?"
유미요시는 잠시 입을 다물고, 내가 한 말을 음미하고 있었다.
"정직한 감상을 말해도 좋겠어요?"
"물론."
"난 당신을 잘 알 수가 없어요." 하고 유미요시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이따금 당신 생각을 해요. 하지만 당신이라는 인간의 실체를 잘 알 수가
없어요."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겠어." 하고 나는 말했다."나는 서른
넷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연령에 비해 아직 해명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 너
무 많아. 유보 사항도 너무 많아. 지금 그것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는 참이
야. 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 그러므로 좀더 시간이 지나면, 여러 가지
를 네게 정확히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그렇게 되면 좋겠군요." 하고 그녀는 아주 제3자처럼 말했다. TV의 뉴
스 캐스터 같다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좋겠군요. 네, 그럼
다음의 뉴스."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럼 다음의 뉴스...
실은 내일부터 하와이로 여행을 떠난다고 나는 말했다.
"네."하고 그녀는 무감동하게 말했다. 이로써 우리의 이야기는 끝났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위스키를 한 잔만 마시고,
전기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럼 다음의 뉴스. 나는 포토 데라시의 해변에서 뒹굴며, 높고 푸른 하늘
과 야자 나무 잎과 갈매기를 올려다보며 이 말을 입에 올려 보았다. 내 옆
에는 유키가 있었다. 나는 돗자리 위에 벌렁 드러누워 있고, 그녀는 엎드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놓인 거대한 산요 라디오 카세트로부터
에릭 크립톤의 신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키는 올리브 그린의 작은 비
키니를 입고 코코넛 오일을 발가락까지 잔뜩 바르고 있었다. 그녀는 몸집
이 작은 어린 돌고래처럼 매끈해 보였다. 젊은 사모안이 서프 보드를 껴안
고 앞을 가로질러 가고, 새까맣게 햇볕에 그을은 라이프 가드가 감시용 전
망대 위에 보이며, 쇠사슬의 펜던트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온 거리에 꽃
과 과일과 햇볕에 타는 걸막는 오일 따위의 냄새가 났다. 하와이.
그럼 다음의 뉴스.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여러 인물이 등장하며, 잇따라 장면이 전환
된다. 얼마 전까지는 눈이 계속 내리는 삿포로 거리를 목표도 없이 돌아다
니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호놀룰루의 해변에서 뒹굴며 하늘을 올려다보
고 있다. 되어가는 형편-점을 따라 선을 그어 갔더니, 이렇게 되었다. 음악
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는데 여기까지 와버렸다. 나는 능숙하게 춤을 추
고 있을까? 나는 머리 속으로 지금까지의 사태의 진행을 차례로 더듬어 보
고, 이에 대해 자신이 취힌 행동을 하나하나 체크해 보았다.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썩 좋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한 번 더 똑같은 입장에 놓인다할지라도, 나는 역시 마찬가지로 행동할 것
이다. 이게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일단 발은 움직이고 있다. 스텝을 계속
밟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호놀룰루에 있다. 휴식 시간이다.
휴식 시간 하고 나는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아주 작은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유키에게 들린 모양이다. 그녀는 몸을 돌려 나를 향하고는, 선글라
스를 벗고 의심스러운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하고 그녀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
다.
"대단찮은 거야. 이것 저것 자질구레한 일들." 하고 나는 말했다. "무엇이
든 상관 없지만, 옆에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지 말아요, 그런 말아고 싶으면
방안에 혼자 있을 때에나 중얼거려요."
"미안해. 이제 말하지 않겠어."
유키는 온화해 보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보 같아요, 그
건."
"응." 하고 나는 말했다.
"마치 고독하게 홀로 지내고 있는 노인 같애." 하고 유키는 말했다. 그리
고는 다시 저쪽으로 돌아누웠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호눌룰루의 아파트먼트 호텔로 가서, 방에 짐을
내려놓고 반바지와 T셔츠로 갈아 입고, 그리고 우선 제일 먼저 우리가 한
일은 부근의 쇼핑몰로 가서 대형 카세트 라디오를 사는 일이었다. 유키가
이를 요구했다.
"되도록 크고 소리가 우렁찬 것."이라고 유키는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부친이 준 수표를 사용하여 적당한 크기의 산요카세트 라디
오를 샀다. 그리고 몇 개의 테이프와 전지를 듬뿍 샀다. 그밖에 또 갖고 싶
은 게 없는가고 나는 그녀에게 물어 보았다. 의복이나 수영복 따위는 필요
없어?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해변에
나갈 때, 그녀는 반드시 그 카세트 라디오를 갖고 갔다. 물론 들고 가는 건
내 역할이었다. 내가 그것을 타잔 영화에 나오는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원
주민처럼 어깨에 둘러메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디스크 자키는 논스톱으로
팝송을 계속 흘려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해 봄에 유행하고 있던
곡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청결한 역병처럼 세계를
뒤덮고 있었다. 그보다는 약간 범용한 홀 앤드 오츠도 스스로의 길을 열어
나가려고 건투하고 있었다. 상상력이 결여된 듀란듀란, 어떤 광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보편화할 능력이 약간 부족한(부족하다고 내게는 생각
된다)조 잭슨,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장래성이 없는 프리텐더즈, 언재나 중
립적인 쓴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슈퍼 트럼프와 카즈... 따위의 많은 팝싱어
와 팝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