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목소리가 이상한 것 같아요"
"긴장하고 있어" 하고 나는 설명했다. "직접 너를 만나 이야기하기 전에는 잘
말할 수 없어. 죽 긴장해 있었기 때문에, 전화로 말하면 그 긴장이 풀리지 않아."
"내일 밤에는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요" 하고 그녀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아마 안경 테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리라고 나는 상상했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바닥에 주저앉아 벽에 기대었다.
"이봐, 내일은 늦을 것 같아. 오늘 지금 당장 만나고 싶어"
그녀는 부정적인 소리를 냈다. 목소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목소리였지만, 그
부정적인 공기는 제대로 전달되어 왔다. "지금은 아주 피곤해요. 녹초가 되었어
요. 방금 돌아왔다고 말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만나기는 곤란해요. 내일은
아침부터 출근해야 하고, 지금은 그저 잠을 자고 싶어요. 내일 퇴근 후에 만나
요. 그러면 되죠? 아니면, 내일은 여기에 있지 않을 건가요?"
"아니, 나는 얼마 동안 죽 여기에 있을 거야. 네가 피곤한 것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어쩐지 걱정이 돼. 내일이 되면, 네가 이미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싶어서 말야."
"사라져요?"
"이 세계로부터 사라질까 봐, 소멸될까 봐."
유미요시는 웃었다. "그렇게 간단히 사라지는 않아요. 괜찮아요. 안심해요"
"이봐, 그렇지 않아. 너는 알지 못하고 있어. 우리는 자꾸 이동해 가고 있어.
그리고 이동해감에 따라 여러 가지가, 우리 주위에 있는 여러 가지가 사라져 간
다구.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무엇 하나 머물러 있지 않아. 의식 속에는 머
물러 있지. 하지만 이 현실의 세계로부터 사라져 가는 거야. 나는 그게 걱정이
야. 유미요시, 나는 너를 구하고 있어. 내가 무엇을 이토록 구하는 건 없었던 일
이야. 그러니까 네게 사라지기를 원치 않아."
유미요시는 내가 한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우스운 사람이군요" 하
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약속해요. 사라지지 않아요. 그리고 내일 당신을 만날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줘요."
"알았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체념했다. 체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녀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게 된 것만 해도 좋았다고 나는 자신있게 타
일렀다.
"잘 자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잠시 바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26층의 바로 가서, 보드카 소다
를 마셨다. 내가 처음으로 유키를 만난 곳이다. 바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두 명의 젊은 여자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둘 다 멋진 옷을 입고 있
었다. 한 명은 다리가 예뼜다. 나는 테이블 앞의 좟겅에 앉아, 그녀들을 아무런
의미도 없이 바라보면서 보드카 소다를 마셨다. 그리고 야경도 바라보았다. 나는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대어 보았다. 별로 아프지 않다. 그리고 나는 손가락으로
두 개골의 모양을 더듬어 갔다. 내 두 개골, 천천히 한참 동안 내 두 개골의 모
야을 확인하고 나서, 이번에는 카운터에 앉아 있는 여자들의 뼈의 모양을 상상
해 보았다. 두 개골과, 척추, 늑골, 골반, 팔과 다리, 관절, 아주 예쁜 다리 속의
예쁜 백골, 눈처럼 새하얗고 청결하며 무표정한 뼈, 다리가 예쁜 쪽의 여자가 나
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마 내 시선을 느꼈나 보다. 나는 그녀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다. 나는 네 몸을 바라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뼈의 모양을 상상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물론 말하지 않았
다. 나는 보트카 소다 석 잔을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유미요
시의 존재를 확인한 때문인지, 깊이 잠들 수 있었다.
새벽 세 시에 유미요시가 왔다. 새벽 세 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침대 사
이들의 작은 불을 켜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실내복을 입고, 아무 생각도
없이 문을 열었다. 몹시 졸려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냥 일어나 걸어가
서 문을 열었을 뿐이었다. 문을 열자 거기에 유미요시가 서 있었다. 그녀는 연한
청색의 제복인 블레이저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문틈으로 슬쩍
방에 들어왔다. 나는 문을 닫았다.
그녀는 방의 한가운데 서서 커다랗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블레이저 코트를
소리도 없이 벗고, 구겨지지 않도록 그것을 반듯이 의자의 등받이에 걸쳤다. 언
제나 그랬던 것처럼.
"어때요, 사라지지 않았죠?" 하고 그녀는 말했다.
"사라지지 않았어." 하고 나는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아직 잘 파악할 수 없었다. 나는 놀랄 수도 없었다.
"그처럼 간단히 사람이 사라지지는 않아요" 하고 유미요시는 잘 알아듣게 하
려는 듯이 말했다.
"너는 알지 못하고 있어. 이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무슨 일
이든."
"하지만 아무튼 나는 여기 있어요.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건 인정하죠?"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심호흡을 한 다음, 유미요시의 눈을 바라보았다. 현실이
었다. "인정한다" 고 나는 말했다. "너는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아. 하지만 밤중의
세 시에 왜 네가 내 방에 왔을까?"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곧 잠이 들었지만,
한 시가 지나 깨어버리고는 통 잘 수가 없었어요. 당신이 한 말에 신경이 쓰였
어요. 어쩌면 이대로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하고 말예요. 그래서 택시를 타고 이
리로 오기로 했어요."
"하지만 밤중의 세 시에 네가 출근을 하면,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까?"
"괜찮아요.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이 시간에는 모두 자고 있어요. 24시간 풀
서비스라고는 하지만, 한밤의 세 시인 걸요. 특별히 할 일도 없어요. 제대로 일
어나 대기하고 있는 건 프런트와 룸서비스 담당자들뿐이에요. 지하의 주차장으
로부터 종업원용 문을 통해 올라오면 알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발견돼도
여기는 종업원이 많으므로 근무중인지 비번인지 일일이 알 수 없고, 알고 있다
해도 휴게실에 잠을 자러 왔다고 말하면 전혀 문제 없어요. 이러한 일은 전에도
몇 번 한 적이 있거든요."
"전에도 있어?"
"응, 잠이 오지 않으면 몰래 밤중에 호텔로 나와요. 그리고 혼자 어슬렁거려요.
그러면 마음이 가라앉아요. 우스워요? 하지만 그런게 좋아요. 호텔 안에 있으면
무척 마음이 놓여요. 한 번도 발견된 적은 없어요. 그러니까 안심해요. 발견되지
않고, 발견돼됴 어떻게든 발뺌을 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이 방에 들어와 있는
걸 알게 되면 그건 좀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괜찮아요. 여기에 아침까
지 있다가, 출근 시간이 되면 살며시 나가겠어요. 괜찮죠?"
"난 괜찮아. 출근 시간은 몇 시야?"
"여덟 시"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다섯 시간
남았어요"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손목의 시계를 끌러, 툭 하고 작은 소리가 나도록 테이
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스커트 자락을 당겨 죽 펴고고개를 들
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 앉아 조금씩 의식을 되찾고 있
었다. "그래" 하고 유미요시는 말했다. "당신은 나를 갈구하고 있는 거군요?"
"아주 격렬히" 하고 나는 말했다. "모든 게 한 바퀴 빙그르르 회전을 했어. 그
리고 나는 너를 갈구하고 있어."
"격렬히"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스커트 자락을 또 당겼다.
"그래, 아주 격렬히"
"한 바퀴 돌아 어디로 돌아왔어요?"
"현실로" 하고 나는 말했다. "꽤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현실로 돌아왔어. 여러
가지의 기묘한 것들 속을 통과해 왔어. 여러 사람들이 죽었어. 여러 가지가 상실
되었어. 굉장히 혼란되어 있었는데, 그 혼란이 해소된 건 아냐. 아마 혼란은 혼
란스러운 대로 존속되어 가리라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느껴. 나는 이로써 한 바
퀴 돌았다는 걸. 그리고 여기는 현실이야. 나는 한 바퀴 도는 동안 기진맥진하여
녹초가 되어 있었어. 하지만 어떻게든 계속 춤을 추었지. 제대로 스텝을 밟았어.
그래서 이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거야."
그녀는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밀한 걸 지금은 도저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하지만 나를 신용해
주었으면 좋겠어. 나는 너를 갈구하고 있고, 이는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야.
그리고 네게도 중요한 일이야. 거짓말이 아니야."
"그럼 나는 어떡하면 좋죠?" 하고 유미요시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말했다. "감
동하여 당신과 자면 돼요? 멋있어, 그토록 구해지고 있다니 최고야! 하는 식으
로"
"틀려, 그렇지 않아"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적당한 말을 찾았다. 하지만 적
당한 말 따위는 물론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건 정해져 있는 일이야.
나는 한 번도 그것을 의심해본 적이 없어. 너는 나하고 자는 거야, 처음부터 그
렇게 생각하고 있엇어. 하지만 처음에는 그럴 수 없었어. 그러는 게 부적당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 때까지 기다렸지. 한 바퀴 돌았어. 지금
은 부적당하지 않아."
"그러니까 지금 나는 당신과 자야 한다는 말이에요?"
"논리적으로는 확실히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해. 설득의 방법으로서는 가장 나
쁘리라고 생각해. 그건 인정해. 하지만 정직히 말하려면 이렇게 되어 버린다고,
그렇게 표현하는 수밖에 없어. 이봐, 나도 보통의 상황이면 제대로 순서를 밟아
너를 설득해. 나도 그 정도의 방식은 알고 있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
의 여부를 떠나, 방법적으로는 남들 만큼 제대로 설득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건
그렇지 않아. 이는 더 단순한 일이야. 그러니까 이는 이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
어. 능숙하게 해내느냐의 여부의 문제가 아냐. 너하고 나는 자는 거야. 정해져
있어. 정해져 있는 것을 나는 이러쿵저러쿵 따지고 싶지 않아. 그러한 짓을 하
면, 거기에 있는 중요한 게 깨져 버리기 때문이야. 정말이야. 거짓말이 아냐."
유미요시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자신의 시계를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별
로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군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고 블라우
스의 단추를 끄르기 시작했다.
"보지 말아"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자의 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에는 다른 세계가 있
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녀는 천천히 옷을 벗어
갔다. 옷 스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그녀는 옷 하나를 벗으면,
그것을 어디에 제대로 개어 두고 있는 듯했다. 안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소
리도 들렸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아주 섹시한 소리였다. 그리고 그녀가 다가왔
다. 그녀는 머리맡의 조명을 끄고, 내 침대 속으로 들어왔다. 아주 조용히 그녀
는 내 옆으로 슬쩍 기어들어왔다. 방문의 틈사이로 이 방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
지로 그렇게.
나는 손을 뻗쳐 그녀의 몸을 껴안았아. 그녀의 살과 내 살이 닿았다. 아주 매
끄럽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뭔가 무게가 있었다. 현실이다. 메이
와는 다르다. 그녀는 몸은 꿈처럼 멋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환상 속에 있었던 것
이다. 그녀 자신의 환상과, 그녀를 포용하고 있는 환상 속의 환상, 이중의 환상
속에. 멋지다. 하지만 유미요시의 몸은 현실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따스
함이나 무게나 떨림은 정말로 현실의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키키를 애무하는 고혼다의 손가락도 환상 속에 존재하고 있었
다. 그것은 연기이고, 화면 위의 빛의 이동이며, 한 세계로부터의 또 하나의 세
계로 빠져나가는 그림자였다. 하지만 이는 다르다. 이는 현실이다. 멋지다. 내 현
실의 손가락이 유미요시의 현실의 살갗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다" 하고 나는 말했다.
유미요시는 내 목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코끝의 감촉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나는 그녀의 몸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확인하여 갔다. 어깨로부터
팔꿈치, 손목, 손바닥, 그리고 열 개의 손가락 끝까지. 나는 아주 세밀한 부분도
빠뜨리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거기에 봉인하는 것처럼 입
을 맞추었다. 그리고 젖가슴과 배, 옆구리, 등, 다리 등의 모양을 하나한 확인하
고, 그리고 봉인을 했다. 그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음모를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거기에도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성기에까지도.
현실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그저
조용히 호흡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나를 갈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
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이에 맞추
어 미묘하게 자세를 바꾸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모두 확인한 다음에는, 한 번
더 그녀를 팔로 꼭 껴 안았다. 그녀의 팔도 내 몸을 껴안고 있엇다. 그녀가 내쉬
는 숨결은 따스하고 촉촉함이 있었다. 그것은 말이 될 수 없는 말을 공중에 띄
워 올리고 있었다. 그때에 나는 그녀 속으로 들어갔다. 내 페니스는 아주 딱딱해
졌고 몹시 뜨거웠다. 그만큼 격렬하게 나는 그녀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독하게 목이 말라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미요시는 내 팔을 피가 나리만큼 세게 물었다. 하지만 상관 없
다. 이게 현실이다. 아픔과 피, 나는 그녀의 허리를 껴안으며 천천히 사정하였다.
순번을 확인하는 것처럼.
"굉장해요" 하고 조금 후에 유미요시가 말했다.
"그러니까 정해져 있었던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유미요시는 그대로 내 팔 속에서 잠들었다. 아주 조용한 잠이었다. 나는 잠들
지 않았다. 통 잠이 오지 않았고, 잠들어 있는 그녀를 껴안고 있는 게 멋있었다.
이윽고 날이 밝아지면서, 아침 햇빛이 방안에 조금씩 희미하게 비쳐들기 시작하
였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의 손목 시계와 안경이 놓여 있었다. 나는 안경을 벗은
유미요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안경을 벗은 그녀도 멋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마
에 가벼이 입을 맞추었다. 나는 다시 딱딱하게 발기해 있었다. 한 번 더 그녀의
저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녀가 아주 기분 좋은 듯이 푹 잠들어
있기 때문에 차마 그 잠을 깨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껴안은
채, 빛의 영역이 방의 구석구석까지 퍼져가며 어둠이 후퇴하여 사라져 가는 모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자 위에는 그녀의 개어둔 옷이 놓여 있었다. 스커트와 블라우스와 스타킹과
속옷, 그리고 의자 밑에는 검은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일곱 시에 나는 그녀를 깨웠다.
"유미요시, 일어날 시간이야"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목에 또 코를 가져왔다. "굉장
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물고기처럼 침대를 쑥 나가 벌거벗은 채로
아침 햇빛 속에 서 있었다. 마치 충전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베개에 한
쪽 팔을 괴고, 그녀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몇 시간 전에 확인하고 봉인
한 그 몸을.
유미요시는 샤워를 하고, 내 헤어 브러쉬로 머리를 빗고 간결하고 깔끔하게
이를 닦았다. 그리고 꼼꼼히 옷을 입었다. 나는 그녀가 옷을 입는 걸 바라보았
다. 그녀는 흰 블라우스의 버튼을 주의깊게 하나하나 잠그고, 블레이저 코트를
입고는, 온 몸이 비치는 거울 앞에 나가 구겨지지도 않고 먼지도 묻어 있지 않
음을 확인했다. 유미요시는 그러한 일을 하는 데는 아주 진지했다. 그러한 그녀
의 몸짓을 바라보고 있는 게 즐거웠다. 아침이라는 느낌이 전달되어 왔다. "화장
도구는 휴게실의 사물함에 넣어 두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대로도 예뻐" 하고 나는 말했다.
"고마워요. 하지만 화장을 하지 않으면 야단 맞아요. 화장을 하는 것도 근무하
는 일의 일부예요."
나는 선 채로 방의 한가운데에서 유미요시를 한 번 더 껴안았다. 연한 청색의
제복을 입고 안경을 끼고 있는 유미요시를 껴안는 것도 멋있는 일이었다.
"날이 밝았는데도 아직 나를 원하고 있어요?" 하고 그녀는 물었다. "굉장히"
하고 나는 말했다.
"어제보다 더 격렬히."
"이봐요. 이렇게 격렬히 원함을 받긴 처음 있는 일이에요." 하고 유미요시는
말했다. "그러한 건 분명히 느껴져요. 그런 걸 처음부터 느꼈어요"
"지금까지 아무도 너를 원하지 않았어?"
"당신처럼은요, 아무도."
"원하여지면 어떤 느낌이 들어?"
"굉장히 느슨해지는 느낌이에요" 하고 유미요시는 말했다. "이렇게 느슨한 여
유를 가질 수 있었던 건 실로 오랜만의 일이에요. 마치 따스하고 쾌적한 방에
있는 듯한 기분이에요."
"죽 거기에 있으면 돼" 하고 나는 말했다. "아무도 나가지 않고, 아무도 들어
오지 않아. 나는 너밖에 없어"
"거기에 머무는 거에요?"
"그래, 머무는 거야"
유미요시는 약간 얼굴을 뒤로 젖히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이봐요, 오늘 밤에
도 또 이리로 묵으러 와도 괜찮을까요?"
"이리로 네가 묵으러 오는 건 내게는 괜찮아 하지만 네게는 위험이 너무 크지
않을까? 탄로 나면 너는 해고당할지도 몰라. 그보다는 네 아파트나, 아니면 다른
호텔에 묵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 편이 마음이 편할 거야."
유미요시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여기가 좋아요. 나는 이 장소가 좋아요. 여
기는 당신의 장소인 동시에 내 장소이기도 하거든요. 나는 여기서 당신에게 껴
안기고 싶어요. 당신만 좋다면."
"나는 어디든 상관없어. 네가 좋아하는 대로 하면 돼."
"그럼 오늘 저녁에 만나요, 여기서"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문을 약간 열
고, 바깥 분위기를 살펴보고는 몸을 구부리듯이 하며 쓱 사라져 버렸다.
나는 면도와 샤워를 하고 밖에 나가 아침의 거리를 산책하고 그리고 던킨 도
너치에 들어가 도너츠를 먹고, 커피를 두 잔 마셨다.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나도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키가 공부를 시작한 것처럼, 나도 일을 시작해야 한다. 현실적
으로 되는 것이다. 삿포로에서 일을 발견하게 될 것인가?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 거의 3년동안 계속 눈치
우는 작업, 곧 생업에 종사해온 끝에, 나는 뭔가 사진을 위한 글을 쓰고 싶은 생
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그것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문장. 시나 소설이나 자선전, 편지 따위도 아닌, 자신을 위한 단순한
문장.
나쁘지 않다.
그리고 나는 유미요시의 몸을 생각해 내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확인하고 봉인한 것이다. 나는 행복스런 기분으로
초여름의 거리를 거닐고,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신 후 호텔의 로비
에 있는 화분의 큰 나무 밑에 앉아, 프런트에서 유미요시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유미요시는 해질녘의 여섯 시 반에 찾아왔다. 그녀는 여전히 제복차림이었지
만, 다른 모양의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갈아 입을 옷
이나 세면 도구, 화장품 따위가 담겨진 작은 비닐백을 손에 들고 있었다.
"언제가 탄로나" 하고 나는 말했다.
"괜찮아요. 나는 빈틈이 없는걸요" 하고 유미요시는 말하고, 싱긋 웃으며 블레
이저 코트를 벗어 의자의 등받이에 걸쳤다. 그리고 우리는 소파 위에서 서로 껴
안았다.
"이봐요, 오늘은 죽 당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매일 낮에는 이 호텔에서 일하고, 밤이 되면 이렇게 당
신의 방에 몰래 찾아와 둘이서 서로 껴안고 잠을 자고, 그리고 아침이 되면 또
그래도 일하러 나갈 수 있었으면 멋있겠다고 말예요."
"직장과 주거지가 가까워지게" 하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도 내게는 언제까지나 여기에계속 묵을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없고, 또 그러한
일을 매일 하고 있으면 아무리 빈틈이 없어도 언젠가는 탄로나게 돼."
유미요시는 불만스러운 듯이 무릎 위의 손가락을 튕겨 몇 번이고 소리를 냈
다. "세상 일이 잘 되어가지 않는군요."
"정말"
"하지만 앞으로 며칠 동안은 여기에 묵고 있을 거죠?"
"그래. 아마 그렇게 될 거야."
"그럼 그 며칠만으로 족해요. 둘이서 이 호텔 안에서 지내요."
그리고 그녀는 옷을 벗고, 또 하나하나 제대로 개었다. 버릇이다. 손목시계를
끄르고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약 한 시간 동안에
걸쳐 사랑을 나누었다. 나와 그녀는 녹초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건 아주 상쾌한
피로감이었다.
"굉장해요" 하고 유미요시는 감탄스러이 말했다. 그리고 또 내 팔 속에서 꾸벅
꾸벅 잠들어 버렸다. 최대로 긴장을 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샤워를 하고 냉장고
에서 맥주를 꺼내어 혼자 마셨다. 그리고 의장에 앉아 유미요시가 잠들어 있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상쾌한 듯이 잠을 자고 있었다.
여덟 시 가까이 되어 그녀는 자에서 깨어나 시장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룸 서
비스의 메뉴를 점검하여, 마카로니 그라탕과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그녀는 옷과
구두를 침대 시트 밑에 감추고, 보이가 문을 노크하면 재빨리 욕실로 피하곤 하
였다. 보이가 테이블 위에 요리를 차려놓고 나가면, 나는 욕실의 문을 살며시 노
크했다.
우리는 그라탕과 샌드위치를 절반씩 먹고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앞으로의 이
야기를 했다. 나는 도쿄로부터 삿포로로 옮겨오겠다고 말했다.
"도코에 있어도 별 수 없어. 이제 있을 의미도 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오늘
낮에는 죽 그걸 생각하고 있었지. 여기에 자리 잡기로 하겠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어. 여기에 있으면 너를 만날 수 있으니까."
"머무르는 거예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 머무르는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이사할 짐은 별로 많지 않으리라.
레코드와 책과 부엌 용품 정도다. 스바루에 실어 페리 편으로 운반할 수 있으리
라. 큰 것은 팔거나 버리고 다시 사면 된다. 침대나 냉장고도 이제 새 것으로 갈
아도 될 무렵이었다. 대체로 나는 물거늘 오랫동안 너무 소중히 사용한다.
"삿포로에서 아파트 셋방을 얻겠어. 그리고 새 생활을 시작하는 거야. 너는 오
고 싶을 때에 거기에 와서 묵고 가면 돼. 얼마 동안 그러한 식으로 지내보자구.
우리는 아마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는 현실을 되찾고, 너는 편안해지는 거야.
그리고 둘이서 거기에 머무는 거야."
유미요시는 미소지으며 내게 입을 맞추었다. "멋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 다음 일은 나도 알 수 없어. 하지만 좋은 예감이 들어" 하고 나는 말했다.
"앞일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척 멋있
어요. 아주 최고로 멋있어요."
나는 한 번 더 룸 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아이스펠 한 잔분의 얼음을 주문하
였다. 그녀는 또 욕실에 숨었다. 얼음이 오자, 나는 낮에 거리에서 사가지고 온
보드카와 토마토 주스를 꺼내어 브라디 마리 두 개를 만들었다. 우리는 그것으
로 가벼이 건배하였다. 배경 음악이 필요했으므로, 머리맡의 유선 방송 스위치를
넣어, 채널을 '대중 음악' 에 맞추었다. 만토바니 오케스트라가 "매혹의 저녁" 을
멋진 선율로 연주하고 있었다. 분위기로는 말할 나위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당신은 눈치가 빠르군요" 하고 유미요시가 감탄하여 말했다.
"실은 아까부터 브라디 마리를 마셨으면 좋겠다고 죽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떻
게 제대로 알아내죠?"
"귀를 기울이면 구하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뚫어지게 바라보면 구하여
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여."
"표어 같아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표어가 아냐. 살아가는 자세를 언어로 나타냈을 뿐이야." 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은 표어를 만드는 전문가가 되면 좋을 거예요" 하고 킥킥거리면서 유미
요시는 말했다.
우리는 브라디 마리를 석 잔씩 미시고, 그리고 또 벌거벗고 서로 껴안고 부드
럽게 서로의 몸을 나눴다. 우리는 아주 충족해 있었다. 그녀를 껴안고 있을 때에
한 번, 돌핀 호텔의 구식 엘리베이터가 덜걱거리는 소리가 들린 듯한 느낌이 들
었다. 그렇다. 여기가 내 연결 지점이다. 괜찮아, 나는 이제 아무 데도 가지 않는
다. 나는 확고히 이어져 있다. 나는 이음매를 회복하고, 그리고 현실과 이어져
있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구하고, 양사나이가 그것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열두
시가 되어 우리는 잠이 들었다.
유미요시가 내 몸을 흔들어 일으켰다. "이봐요, 일어나요" 하고 그녀는 내 귓
전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 틈에 단정히 제복을 입고 있었다. 주위
는 아직 어둡고, 내 머리의 절반은 아직 따스한 진흙 같은 무의식의 영역에 머
물러 있었다. 침실 옆 조명이 켜져 있었다. 머리맡의 시계는 세 시가 조금 지난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뭔가 난처한 일이 일어난 모양이라고 나는 우선 생각
했다. 아마 그녀가 여기에 와 있는게 상사에게 탄로난 모양이라고, 유미요시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내 어깨를 잡아 깨우고 있고, 시게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떻게하면 좋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거기서 앞으로 더 나
가지 않았다.
"일어나요. 제발 일어나요" 하고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났어" 하고 나는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괜찮으니까 빨리 일어나 옷을 입어요."
나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재빨리 옷을 입었다. 머리 위로 T셔츠를 입고,
블루진과 스니커를 입고, 윈드브레이커를 입고 지퍼를 목 위까지 끌어올렸다. 1
분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옷을 다 입고 나자 유미요시는 내 손을 이끌고 문 앞
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작은 틈이 생기도록 문을 열었다. 겨우 2센티미터나
3센티미터쯤. "봐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그 틈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다.
복도는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젤리처럼 진하고 차가운 어둠이다.
손을 내밀면 그대로 흡수되어 버릴 것처럼 여겨질 만큼 어둠은 깊고 진했다. 그
리고 으레 수반되는 그 냄새가 났다. 곰팡내 나는 낡은 종이의 냄새. 낡은 시간
의 심연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
"또 그 어둠이 왔어요" 하고 그녀는 내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그녀의 허리로 손을 돌려 살며시 끌어당겼다. "괜찮아. 두려워할 것 없어.
여기는 나를 위한 세계야.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아. 처음에 네가 나에게 이 어
둠의 이야기를 했지. 그래서 우리는 알게 되었어" 하지만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두려웠다. 이는 어떤 이유도 통하지 않는 근원적인
공포였다. 이는 내 유전자에 새겨지고, 태고의 시대로부터 면면히 전달되어 온
공포였다. 어둠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역시 두렵고 혐오
스러운 것이다. 이는 사람을 몽땅 삼켜 버리거나, 그 존재를 일그러뜨리고 파괴
하거나, 소멸시켜 버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대체 누가 완전한 어둠 속에서 확신
을 가질 수 있겠는가? 어둠의 존재 이유. 대체 누가 그러한 것을 믿겠는가? 어
둠 속에서는 모든 게 용이하게 일그러뜨려지고, 전환되며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
다. 그리고 어둠의 논리인 허무가 모든 걸 뒤덮어 버리는 것이다.
"괜찮아. 하나도 두려워할 것 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이는 자신에게
타이르기 위한 말이었다.
"어떡하죠?" 하고 유미요시가 말했다.
"둘이서 앞으로 나가 보자구"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두 인물을 만날 목적으
로 이 호텔에 돌아온 거야. 한 명은 너이고, 또 하나는 그 상대야. 그는 이 어둠
속 깊은 곳에 있어. 그리고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
"그 방에 있던 사람?"
"그래. 그 사람이야."
"하지만 무서워요. 정말 굉장히 무서워요.: 하고 유미요시는 말했다. 그녀의 목
소리는 떨리며 날카로워져 있었다. 할 수 없다, 나도 무서운 것이다.
나는 그녀의 눈거풀에 살며시 입술을 가져갔다. "무섭지 않아. 이번에는 내가
함께 있어. 서로 손을 잡고 있자구. 손을 떼지 않으면 괜찮아. 어떤 일이 있어도
손을 떼면 안 돼. 가만히 붙어 있는 거야."
나는 방 안으로 돌아와, 백 속에서 미리 준비해 둔 펜라이트와 비크라이터를
꺼내어, 윈드브레이커의 포켓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문을 열어 유미요시
의 손을 잡고 복도로 발을 내디뎠다.
"어디로 가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오른쪽이야." 하고 나는 말했다. "언제나 오른쪽이야. 정해져 있어." 나는 펜
라이트로 발밑을 비추면서 복도를 걸어갔다. 어둠 속에서 이전에 느꼈던 대로,
이는 돌핀 호텔의 복도는 아니었다. 훨씬 낡아빠진 건물의 복도였다. 붉은 카펫
이 닳아 떨어지고, 복도는 군데군데 움푹 패어져 있었다. 회반죽을 한 벽에는 노
인의 피부에 나는 검버섯과 같은 숙명적인 얼룩이 져 있었다. 돌핀 호텔이다 하
고 나는 생각했다.
정확히 그대로의 돌핀 호텔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는 돌핀 호텔 비슷한 무엇
이다. 돌핀 호텔적인 무엇이다. 한참 곧바로 나가자 복도는 지난 번과 마찬가지
로 역시 오른쪽으로 꺾어져 있었다. 나는 복도를 돌아갔다. 하지만 지난 번과는
무엇인가 달랐다.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멀리 있는 문의 틈새로부터 흘러나
오고 있던 그 촛불의 희미한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좀더 확인하기 위
해 라이트를 꺼 보았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거기에는 빛이 없었다. 완벽한 어
둠이 교활한 물처럼 소리도 없이 우리를 둘러쌌다.
유미요시는 내 손을 힘주어 꽉 쥐고 있었다. "빛이 보이지 않아" 하고 나는 말
했다. 내 목소리에는 기운이 없었다. 이는 전혀 내 목소리로 여겨지지 않았다.
"저쪽 문에서 빛이 보였었어, 지난 번에는."
"내가 겪을 때도 그랬어요. 저쪽에 보였어요."
나는 그 모퉁이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양사나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는 잠들어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그는 언제나 저기
에 불을 켜두고 있을 것이다. 등대처럼. 그게 그의 역할이다. 설령 잠들어 있다
해도, 빛은 언제나 거기에 있어야 한다.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언짢은 예감
이 들었다.
"이봐요. 이대로 돌아가요" 하고 유미요시가 말했다. "이건 너무 어두워요. 돌
아가서 다음 기회를 기다려요. 그 편이 낫겠어요. 무리를 하지 말고."
그녀는 조리에 닿는 말만 하고 있었다. 이건 너무 어둡다. 그리고 뭔가 난처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는 되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나는 걱정이 돼. 저리로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그는 어떤 이유로 나를 찾고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또 우리를 이 세계로 연결
시킨 거야." 나는 다시 펜라이트를 켰다. 가늘고 노란 빛 줄기가 어둠 속으로 휙
뻗어나갔다.
"가자구. 가만히 손을 잡고 있어요. 나는 너를 갈구하고 있어. 너는 나를 갈구
하고 있고. 걱정할 것 없어. 우리는 머물러 있는 거야. 어디에도 가지 않아. 분명
히 돌아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천천히 발밑을 확인하면서 한 발짝씩 앞으로 나갔다. 어둠 속에서 유
미요시의 헤어린스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냄새는 나의 날카로워
진 신경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녀의 손은 작고 따스하나 딱딱했다. 우리는 어
둠 속에서 이어져 있었다.
양사나이가 있던 방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거기만이 문이 열려 있고, 그 틈 사
이로 섬뜩하고 곰팡내 나는 공기가 흘러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문을
살며시 노크해 보았다. 그 소리는 처음으로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자연스러우
리만큼 크게 울렸다. 마치 귀 속의 거대한 증폭 기관을 두드린 것처럼. 나는 문
을 똑똑똑 세 번 두드리고, 그리고 기다렸다. 20초나 30초쯤 기다렸다.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양사나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는 어쩌면 죽어버린 것일까?
그러고 보니, 지난 번에 만났을 때, 그는 몹시 피로하고 늙어버린 것처럼 보였
다. 그대로 죽어버렸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굉장히
오래 살았다. 하지만 그 역시 늙어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 다른 모든 사
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만일 그가 죽어
버렸다면, 누가 이 세계와 나를 결부시켜 줄 것인가? 누가 나를 연결시켜줄 것
인가.
나는 문을 열어 그녀의 손을 잡고 살며시 방안으로 들어가, 펜라이트로 바닥
을 비춰 보았다. 방 안의 모양은 지난 번에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헌 책들
이 온 바닥에 잔뜩 쌓여져 있고, 작은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 촛대 대용으로 쓰
이는 볼품 없는 쟁반이 놓여져 있었다. 초를 5센티미터쯤 남겨두고 불이 꺼져
있었다. 나는 포켓에서 라이타를 꺼내어 거기에 불을 붙이고, 펜라이트를 끄고는
윈드브레이커의 포켓에 집어넣었다.
방 안의 어디에도 양사나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버렸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양사나이" 하고 나는 대답했다. "양사나이가 이 세계를 관리하고 있는 거야.
여기가 이어지는 곳인데, 그는 나를 위해 여러 가지를 이어 주고 있어. 전화의
배전대와 마찬가지로 말야. 그는 야의 모피를 입고 예전부터 살아오고 있어. 그
리고 여기에 자리잡고 있어. 숨어 있는 거야."
"무엇으로부터 숨어 있어요?"
"무엇으로부터일까? 전쟁으로부터, 문명으로부터, 법률로부터, 조직으로부터...
양사나이적이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
"하지만 그가 없어져 버린 거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벽 위의 확대된 그림자가 커다
랗게 흔들렸다. "그래, 없어져 버렸어. 어째서일까. 없어서는 안 되는데" 나는 세
계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대인이 생각한 세계의 가장자
리. 모든 게 폭포처럼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는 듯한 세계의 가장자리
다. 그 끝 부분에 우리는 서 있다. 단 둘이서, 우리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암
흑의 허무가 펼쳐져 있을 뿐이다. 방의 공기는 뼈에 스며드는 것처럼 차가웠다.
우리는 서로의 손바다긍ㄹ 통해 겨우 따스함을 나누어 갖고 있었다.
"그는 이미 죽어버렸는지도 몰라" 하고 나는 말했다.
"어두운 데서 나쁜 일을 생각하면 안 돼요. 더 밝게 생각해요" 하고 유미요시
는 말했다. "어디로 물건을 사러 나갔을 뿐인지도 모르잖아요? 초가 다 떨어져
서 사러 갔는지도 몰라요" 하고 유미요시는 말했다.
"혹은 소득세를 되돌려 받으려고 나갔는지도 몰라"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라이트로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그녀의 입언저리가 약간 미소짓고 있었다.
나는 라이트를 끄고, 어두컴컴한 불빛 속에서 그녀의 몸을 끌어당겼다. "이봐, 휴
일에는 둘이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자."
"물론이에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내 스바루를 가져오겠어. 중고품이고 구식이지만 좋은 차야. 마음에 들어. 나
는 마세라티도 타보았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내 스바루가 훨씬 낫다구."
"물론."
"에어컨이나 카스테레오도 설치되어 있어."
"말할 것까지는 없어요."
"말할 것까지는 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그것을 타고 여러 곳에 가 보자구.
그리고 둘이서 많은 걸 구경하고 싶군."
"당연한 생각이에요."
우리는 한참을 껴안고 있다가 몸을 떼고, 나는 또 라이트를 켰다. 그녀는 허리
를 구부려 바닥 위의 얇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요크셔 종 양의 품
종 개량 연구" 라는 팸플릿이었다. 표지는 갈색으로 변색되고, 그 위에 흰 먼지
가 우유의 지방이 굳어져 생긴막처럼 쌓여 있었다.
"거기에 있는 건 모두 양에 대한 책들이야." 하고 나는 말했다.
"예전의 돌핀 호텔의 일부는 양에 관한 자료실로 되어 있었어. 지배인의 아버
지가 양의 연구가였거든. 그게 여기에 모여져 있어. 양사나이가 그 뒤를 이어받
아 관리하고 있었지. 이제 아무 쓸모도 없어. 아무도 이러한 걸 새삼스레 읽지
않아. 하지만 양사나이는 맡아둔 거야. 아마 그게 이 장소에는 중요한 것이었을
거야."
유미요시는 내 라이트를 가져가 그 팸플릿을 펴고, 벽에 개대어 그것을 읽었
다. 나는 벽 위의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멍하니 양사나이에 관해 생각하
고 있었다.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하고. 그리고 갑자기 몹시 언짢은
예감이 들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다. 뭔가 좋
지 않은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 무엇에 의식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퍼뜩 생각이 들었다. 안 된다. 안
돼,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와 유미요시는 어느 틈엔지 손을 떼고 있다. 손을 떼
면 안 된다. 절대로. 순간적으로 몸안의 모공으로부터 땀이 솟아났다. 나는 급히
손을 뻗어 유미요시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내가 손
을 뻗치는 순간에, 그녀의 몸은 벽에 흡수되어 버렸다. 키키가 그 죽음의 방 벽
에 흡수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유미요시의 몸은 마치 물에 밀리어 흐르는 모
래에 삼켜지듯이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펜라이트
의 불빛도 꺼졌다.
"유미요시!" 하고 나는 큰 소리로 불렀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과 냉기가 한데 어우러져 방을 지배하고 있었다.
어둠이 한층 더 깊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유미요시!" 하고 나는 한 번 더 외쳤다.
"이봐요, 간단해요" 하고 벽 너머에서 유미요시의 흐린 목소리가 들렸다. "정
말 간단해요. 벽을 빠져 나오면 금방 이쪽으로 올 수 있어요."
"틀려!" 하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간단한 것처럼 보여. 하지만 그 쪽으로 가
버리면 이미 돌아올 수 없어. 너는 그걸 알지 못하고 있어. 거기는 틀려. 거기는
현실이 아니라구. 그건 그쪽의 세계야. 이쪽의 세계와는 다른 곳이라구."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또 깊은 침묵이 방에 가득 찼다. 마치 바다 속에
있는 것처럼 침묵이 내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유미요시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무리 손을 뻗쳐도 그녀에게는 미치지 않는다. 나와 그녀 사이에는 저 벽이 가
로놓여 있는 것이다. 너무 가혹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무력감, 너무 가혹하다. 나
와 유미요시는 이쪽에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그걸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왔다. 나는 그걸 위해 복잡한 스텝을 밟으면서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꾸물거리고 있을 틈이 없다. 나는 유미
요시는 좇아 벽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유미요시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키키가 흡수되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벽을 빠
져나갈 수 있었다.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불투명한 공기의 층. 매끄럽고 딱딱한
감촉. 물과도 같은 차가움. 시간이 흔들리고, 연속성이 일그러뜨려지고, 중력이
뒤흔들렸다. 태고의 기억이 시간의 심연 속에서 증기처럼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
이 들었다. 그것은 내 유전자다. 나는 자신의 육체 속에서 진화가 고양되고 있음
을 느꼈다. 나는 복잡하게 뒤얽힌 그 거대한 자기 자신의 DNA를 초월하였다.
지구가 팽창하고, 그리고 냉각되어 오므라들었다. 동굴 속에 양이 숨어 있었다.
바다는 거대한 사념인데, 그 표면에 소리도 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얼굴이 없
는 사람들이 파도가 밀어닥치는 물가에 서서 앞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끝이
없는 시간이 거대한 실덩어리가 되어 하늘에 떠 있는 게 보였다. 허무가 사람들
을 삼키고, 보다 거대한 허무가 그 허무를 삼켰다. 사람들의 살이 녹아 백골이
나타나고, 그것도 티끌이 되어 바람에 날려가 버렸다. 아주 완전하게 죽어 있다
고 누군가가 말했다. 멋지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내 살은 분해되어 날려가고, 그
리고 또 하나로 응결되었다.
그 혼란과 카오스의 공기층을 빠져 나가자, 나는 벌거벗은 채 침대 속에 있었
다. 주위는 캄캄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
았다. 나는 혼자였다. 손을 ㅃ쳤지만 옆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고독했다. 나
는 또 외돌토리가 되어 세계의 가장자리에 남겨진 것이다. "유미요시!" 하고 나
는 힘껏 외쳤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함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지친 숨이 새어나
왔을 뿐이었다. 나는 한 번 더 외치려 했는데, 그때 툭 하는 소리가 들리며 플로
어 스탠드가 켜졌다. 방이 이내 밝아졌다.
그리고 유미요시가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흰 블라우스와 스커트에 감은 구두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부드럽게 미소지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책상에 연
결된 의자의 등받이에는 연한 청색의 블레이저 코트가 그녀의 분신처럼 걸쳐져
있었다. 내 몸을 굳어지게 하고 있던 힘이, 나사가 풀리듯이 천천히 조금씩 그
힘을 이완시켜 갔다. 나는 내 자신이 오른손으로 시트를 꽉 붙잡고 있었음을 알
아챘다. 나는 시트로부터 손을 떼고 얼굴의 땀을 닦았다. 여기는 이쪽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 빛은 진짜 빛일까.
"이봐, 유미요시" 하고 나는 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요?"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지?"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렇게 간단히 사람이 사라지지는 않아요"
"꿈을 꾸고 있었어." 하고 나는 말했다.
"알고 있어요. 가만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당신이 자면서 꿈을 꾸며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걸 보고 있었어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이봐요. 무엇을 진
지하게 보려고 하면, 어둠 속에서도 제대로 보이는 거죠."
나는 시계를 보았다. 네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새벽녘의 짧은 시간. 생각이
깊어지며 굴곡되는 시간. 내 몸은 차가워지고, 다시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
건 정말로 꿈이었을까? 그 어둠 속에서 양사나이가 사라지고 그리고 유미요시도
사라졌다. 나는 그때의 갈 데 없는 절망적인 고독감을 또렷이 생각해낼 수 있었
다. 유미요시의 손의 감촉을 생각해낼 수도 있었다. 그것은 아직 내 속에 분명히
남아 있었다. 그것은 현실 이상으로 생생했다. 현실은 아직 충붙한 사실성을 되
찾고 있지 않았다.
"이봐, 유미요시" 하고 나는 말했다.
"왜요?"
"왜 옷을 입고 있어?"
"옷을 입고 당신을 바라보고 싶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어쩐지."
"한 번 더 벗어주지 않겠어?" 하고 나는 물었다. 나는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다. 그녀가 분명히 거기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게 이쪽 세계라는 것을.
"물론"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시계를 풀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구두를
벗어 바닥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씩 풀고, 스타킹을 벗
고, 스커트를 벗고, 그것을 제대로 개었다. 안경을 벗어 언제나처럼 툭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맨발로 소리도 없이 바닥을 가로질러,
모포를 살며시 쳐들고는 내 옆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녀는 꼭 끌어당겼다. 그녀
의 몸은 따스하고 매끄러웠다. 그리고 분명한 현실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사라지지 않았어" 하고 나는 말했다.
"물론" 하고 그녀는 말했다. "말했잖아요, 그렇게 간단히 사람이 사라지지는
않아요." 그럴까 하고 나는 그녀는 껴안으면서 생각했다. 아니, 어떤 일이든 일어
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세계는 취약하고 그리고 위태로운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간단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에 있던 백
골은 아직 하나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양사나이의 뼈였을까? 아니 어쩌면
그 백골이 나 자신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 멀고 어두컴컴한 방에서 내
죽음을 가만히 들었다. 마치 멀리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밤 기차의 소리처럼.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면서 올라가고, 그리고 멎었다. 누군가가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누군가가 방문을 닫았다. 돌핀 호텔이다. 나는 그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게 삐걱거리고, 모든 게 낡아빠진 소리를 냈다. 나는 거
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울 수
없는 것을 위해,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유미요시의 눈꺼풀에 입을 맞췄다.
유미요시는 내 팔 속에서 푹 잠이 들었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 몸
속에는 한 조각의 잠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말라붙은 샘처럼 나는 깨어 있었
다. 나는 그녀의 몸을 포옹하듯이 살며시 오래도록 껴안고 있었다. 이따금 소리
를 내지 않고 울었다. 나는 상실된 자를 위해 울고, 아직 상실되지 않은 자를 위
해 울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약간 울었을 뿐이었다. 유미요시의 몸은 부드럽고,
그리고 내 팔 속에서 따사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현실을 그려가고
있었다. 이윽고 조용히 날이 밝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머리맡의 자명종의 바늘
이 현실의 시간에 맞추어 천천히 회전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씩 조금씩 그것은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내 팔의 안쪽에 유미요시의 숨이 내쉬
어져, 그 부분만이 따스하게 젖어 있었다.
현실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여기에 머무는 것이다.
이윽고 시계 바늘이 일곱시를 가리키고, 여름의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비춰들
어 방바닥에 약간 일그러지고 네모진 도형을 그렸다. 유미요시는 푹 잠들어 있
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머리칼을 젖혀 귀가 드러나게 하고, 거기에 살며시 입
술을 가져갔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하고 나는 그대로 3분이나 4분쯤 생각하
고 있었다. 여러 가지의 말하는 방식이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고 표현이
있다. 목소리가 잘 나올까? 내 메시지가 현실의 공기를 잘 흔들 수 있을까? 몇
가지 문구를 나는 입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명료한
것을 골랐다.
"유미요시, 아침이야" 하고 나는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