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3화 (3/559)

3화. 난 만족하는데?

쨍쨍한 햇살 아래, 강물은 도도히 흘러갔다.

다리 위에는 마차가 지나다니고, 행인들이 분주히 거니는 가운데 나는 강가를 찾았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꼬.”

슬쩍 강물에 얼굴을 비추어 봤다.

수면이 맑지는 않았다.

흑백 지대 강물은 똥물과 민물 그 언저리라, 색 자체가 탁한 것이 특징.

하나, 내 얼굴을 비추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분명 난데.”

분명 나다.

잘생긴 얼굴은 어렸을 때도 잘생긴 법.

꾸정꾸정한 강물조차 밝게 보일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그리 흔치 않았다.

당연히 내 얼굴이다.

“근데, 어려졌단 말이지.”

왜일까?

모르겠다.

다만, 짚이는 부분은 있었다.

“화인(火印).”

왼쪽 가슴팍에 선명히 자리 잡은 괴문자 하나.

정신을 잃기 직전, 마도서의 잿더미가 파고들어 만들어 낸 모양과 동일했다.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왔는데, 이것만 그대로이니 의심을 하기엔 충분하겠지.

“뭔진 몰라도 마도서가 작용한 건 분명한데…….”

마도서가 이런 일도 가능한 물건이었나? 잠깐 고민해 봤지만, 알 도리가 없었다.

마도서는 유수의 명가(名家)들이 탐을 낼 정도로 초월적인 기물.

‘그 엉덩이 무거운 데큘란 가주 놈이 직접 온 것만 봐도 그 취급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 수 있는 부분이지.’

그 취급만큼이나 알려진 정보도 많지 않았다. 온갖 명가를 다 들쑤시고 다닌 나조차도 마도서에 대한 정보는 접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니.

끄응.

“도통 모르겠구나.”

꿈을 꾸는 건가 싶다가도, 이처럼 생생한 꿈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나는 ‘왜?’를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아무렴 어때.”

좋은 일이다.

음, 좋은 일이고말고.

깊은숨을 들이마시자, 세일 강의 구리구리한 냄새가 폐부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보라, 이 광경을.

비록 똥물과 민물, 그 어딘가에 걸친 더럽디더러운 세일 강이지만, 이 모든 것도 살아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다.

“살아만 있느냐?”

비쩍 마른 손.

비록 너무 작아 고블린 모가지 하나 따지 못할 것 같았지만, 그 자체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할 수 있겠다.

“힘세고 강한 아침.”

젊음!

산전수전, 공중전만 빼고 다 겪은 백전 맹장의 노련함에 젊음의 기회가 추가됐다?

이건 뭘 해도 크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니, 무조건 크게 돼야지.

하면, 크게 된다는 게 무엇이냐.

하늘을 올려다봤다.

꾸정꾸정한 세일 강과는 달리,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청명했다.

물론, 와이번 따위는 날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 그날의 하늘은 저 위가 아닌, 이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으니.

“꿈이 있었지.”

그래, 꿈이 있었다.

죽기 전엔 와이번으로라도 태어나 자유로이 살면서 데큘란 놈들을 하나씩 빼다 괴롭혀 주려 했지만, 본래는 계획이 있었다.

이는 내 동료들의 꿈과도 연관이 있는 것이었다.

본래, 내가 은퇴를 결심했던 이유.

- 1호, 우리는 본디 흑백 지대 부랑아라 있는 거 없다. 못 입고, 못 먹고, 못 배웠지. 너는 이 중 가장 서러운 게 뭐라 생각하냐.

그때 나는 대답했다.

- 못 먹은 거.

근데, 동료 놈 생각은 조금 다르더라.

- 못 먹기만 했으면 우리가 이곳에 있을 일은 없었겠지. 입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인생이 이 시궁창으로 빠진 이유가 무어라 생각하냐.

- 난 만족하는데?

- ……우리 인생이 시궁창으로 빠진 이유는…….

- 난 만족한다고.

- 이 X발이.

대판 싸웠지. 그날 정말 둘 중 하나가 죽기 직전까지 치고받고 드잡이했다.

물론, 내가 이겼다.

“1호니까.”

한데 뭐가 그리 서러운 걸까. 펑펑 울더라. 아주 하늘이 무너져라 처우는데,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해 결국 말을 들어 볼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그러더라.

- 배우지 못한 게 가장 큰 서러움이다. 우리가 배우고 익혔다면, 저 명가(名家) 놈들에게 잡혀 이리 살지는 않았겠지.

본디 트러블슈터들에게 은퇴란 없다. 하지만, 녀석은 은퇴를 한다면 꼭 하고 싶은 꿈이 있다 말했었다.

“도서관을 짓고 싶다 했지.”

출생, 신분, 성별, 국가, 소속을 떠나서 누구나 자유로이 찾아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장소.

책을 보는 데에 동전 한 푼 받지 않고, 모두에게 배움을 제공할 거라 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갈 거다.

“탑을 쌓는 거야. 이유는 필요 없지. 그냥 높은 게 좋으니까, 높이 쌓을 거야.”

장소 역시 상관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흑백 지대에 있는 터라, 눈앞에 그 그림을 상상했다.

흑백 지대 정중앙, 하늘을 뚫을 듯 거대하고 높은 탑이 우뚝 솟아올랐다.

누구든 찾아올 수 있는 탑.

“그 안에는 책을 채워 넣겠지. 종류는 상관이 없어. 책이면 뭐든 다 돼.”

나도 한두 권 써서 채워 넣을 거다. 그냥 일기일 수도 있고, 트러블슈터로서 알게 된 데큘란의 치부가 빽빽이 적힌 책일 수도 있다.

“여기서 빠져선 안 되는 게 있지.”

그게 무어냐.

“데큘란의 비전!”

흐흐.

위치는 1층 입구 바로 앞.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비치할 거다.

탑에 들어오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책장을 보게 되겠지. 관심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계속 눈에 밟히면 손이 가는 법이니까.

한번 상상해 보라.

“흑백 지대 부랑아도, 웬 귀족가의 서자도, 푸줏간의 백정들도 책을 한 권씩 끼고 있는 거야.”

상상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 책의 표지에는 ‘데큘란’의 문양이 자리하고, 그 속에는 놈들이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비전이 들어 있겠지.”

흐흐.

“흐흐흐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동네 꼬마들도, 너도나도 한 번씩 데큘란의 비전서를 탐독하고, 옆 동네, 옆 옆 동네 처자들도 데큘란의 비전을 익히는 거야.”

본디, 데큘란과 싸워서 이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내가 다시 태어났다 해도 마찬가지. 한 백 번쯤 다시 태어나면 가능할 테지만 백 번씩이나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나, 이렇게 데큘란의 비전을 널리 퍼트린다면 어떨까.

‘좋아 죽겠지.’

그때는 놈들도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거다.

왜냐. 데큘란의 비전을 계속 보고 싶은 놈들이 내 탑을 지켜 줄 테니까. 아니, 꼭 지켜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쯤 되면 데큘란의 비전이 널리 퍼졌을 거야.’

하나, 문제가 있었다.

‘비전을 어떻게 구하냐는 건데…….’

난 잠시 고민을 하다가 생각을 접었다.

방법이야 어떻게든 생길 거다. 트러블슈터로서의 장기를 살릴 수도 있는 노릇이고.

어쨌든, 그 문제는 오늘의 내가 아닌 미래의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

“현자의 복수는 백 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 법. 나는 현자가 아니지만 상관없겠지.”

음.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현자가 아닐 이유가 있나? 없었다.

탑을 짓고 거기에 책을 채워서 모든 사람이 보게 하는데, 그게 현자가 아니면 무엇일까.

“따지고 보면 그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내 제자나 마찬가지인 것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만인의 스승이군. 현자로 부족하다. 그래, 대현자쯤은 되어야 구색이 맞겠군.”

후후.

이름하여 대현자 아스터.

“그것이 바로…….”

바로 그때.

빡!

뒤통수에 불이 튀었다.

내 머리에서 났다고는 믿기지 않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눈앞이 번쩍하며 별이 날아다녔다.

욕설은 그다음이었다.

“이 새끼가, 한참 찾았잖아! 자리를 지키고 있으랬더니 이런 데에 짱박혀 있어? 엉?”

뻑! 뻑!

“어억!”

변성기가 막 지난 듯, 듣기 싫은 목소리와 함께 무자비한 발길질이 이어졌다.

나는 너무 갑작스러워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녀석이 기습의 묘리를 너무도 잘 살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산전수전, 공중전만 빼고 다 겪어 본 백전의 트러블슈터.’

나는 몸을 둥글게 말아 얼굴과 복부를 보호한 후, 가만히 때를 기다렸다.

그러기를 잠시.

턱!

“어, 어쭈! 막아?!”

내 옆구리를 찍어 들어오는 녀석의 발을 잡아채고는, 그 얼굴을 올려다봤다.

유난히 얍삽하게 생긴 부랑아 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너…….”

“뭐, 뭐 인마!”

“네놈이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오늘 하는 꼴을 보면 나를 때린 게 하루 이틀은 아니겠지.”

눈깔에 힘을 빡 주며 말하자, 부랑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본디 나는 대범한 사람이라 사소한 원한은 가슴에 새기지 않고 지나친다.

“너 방금 일곱 대 때렸다. 딱 그 열 배만 맞자.”

“무, 뭐…….”

“죽을 줄 알아라.”

나는 자리를 박차고 녀석의 턱주가리에 주먹을 뻗었다.

아래에서 곧게 올라가는 주먹, 맞기만 해도 골이 진탕되며 정신이 혼미해지겠지.

녀석은 그 상태에서 제 삶을 후회할 거다. 한 대만 덜 때릴걸, 뭐 그런 생각을…….

틱!

“응……?”

“……?”

우리는 눈을 마주했다.

하나, 나는 녀석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황하는 녀석의 상판을 담고, 그다음에는 뻗어 냈던 내 주먹을 바라봤다.

“이게 왜…….”

꺾이지?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꺾여 버린 손목. 고통은 서서히 엄습해 왔다.

눈앞에 별이 번쩍인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뻐억!

“이 씹새가! 때려? 때려? 형님을 때려? 막내 주제에 형님을 때린다고오?!”

“어억! 억!”

나는 몸을 웅크렸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하지만, 연신 두들겨 맞는 육체보다 더 아픈 건 마음이라.

그리고 그 구타는, 나를 때리던 녀석이 자빠지기 전까지 계속됐다.

나를 어찌나 열심히 때리던지, 제 발밑의 돌부리도 보지 못하더라. 결국, 놈은 균형을 잃고 휘청이다 그만 강물에 빠져 버렸다.

첨벙!

“막내, 이 새끼가!”

저 혼자 빠진 녀석은 뭐가 그리 억울한지 인상을 와락 구기는 녀석.

그 꼴이 꼭 물에 빠진 시궁쥐 같았는데, 난 그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차분히 망막에 새겼다 하는 게 옳으리라.

그러기를 잠시.

“얼굴 기억했다.”

나는 녀석을 일별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도망치는 건 아니었다.

작전상 후퇴.

‘총 쉰일곱 대다.’

녀석이 나를 때린 횟수다. 가슴에 달아 뒀다.

본디 나는 대범한 사람인지라 사소한 원한은 넘어가는 편이지만, 사람을 쉰일곱 대나 때린 건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거다.

……아마도.

* * *

나는 부랑아를 따돌린 후, 흑백 지대의 어느 이름 모를 골목에 들어섰다.

“심각한걸.”

바닥에 앉아 내 몸뚱어리를 내려다봤다.

피골이 상접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너무도 가느다란 팔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펜대만 굴리던 샌님도 아니고, 때리다가 손목을 접질리다니.”

차라리 그랬다면 이 상황을 이해해 보기라도 했으리라.

하나 나는 산전, 수전, 공중전만 빼고 다 겪어 온 백전의 트러블슈터.

본질은 마법사이지만 주먹질도 제법 잘했다. 한데 손목이 접질릴 지경이면 그만큼 지금의 몸이 약골이라는 소리였다.

“탑이고 자시고 이 몸뚱어리 먼저 어떻게 해야 쓰겠는데…….”

씁.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와중,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륵.

뱃속에서 밥을 달라고 내지르는 비명이다.

워낙 경황이 없어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미 뱃가죽은 등에 달라붙기 직전.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배고파?”

“…….”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꼬맹이 하나.

나는 녀석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나 아냐?”

“모르는데.”

그래, 모를 것 같았다.

‘딱 봐도 부랑아가 아니거든.’

며칠을 못 씻었는지 꾀죄죄한 몰골. 옷도 잔뜩 더러워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예사 원단으로 짠 옷이 아니다.

부랑아 따위는 평생 가도 만질 수 없는 고급품.

‘뭐, 가끔 몰락한 명가(名家) 자제들이 흑백 지대에 흘러들어 오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

‘아니, 상관이 없어야지.’

흑백 지대에 흘러든 명가의 자제들은 길어 봐야 한 해를 넘기지 못한다.

‘제 놈들이 괜히 몰락했겠어? 세력 다툼 하겠다고 드잡이하다가 꼬꾸라졌지.’

그러면 무엇이 문제냐.

‘후환을 남기지 않겠답시고, 몇 년이 걸리든 꼭 찾아낸단 말이지. 그중 제일 먼저 뒤지는 게 흑백 지대고.’

다시 말해, 저 녀석은 폭탄 덩어리란 소리.

“꼬마야.”

“난 데미안이야.”

“어쨌건.”

“우리 엄마는 비앙카고.”

“…….”

녀석을 쫓아낼 심산으로 말하는데, 어째 알면 안 될 사실만 늘어 가는 느낌이었다.

“너, 혹시 어디 모자라냐?”

“엄마가 없어.”

“…….”

어딘지 슬픈 대답이다.

본디 흑백 지대 부랑아란 어머니만 없는 게 아니지만, 슬픈 건 매한가지.

나는 잠시 녀석을 흘겨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난 아빠도 없는데. 이건 내가 이겼구나. 그럼, 이제 갈 길 가자.”

그렇게 말하고 가려는데.

저벅.

저벅.

겹쳐 울리는 발소리.

“따라오지 말고.”

“여기가 내 갈 길이야.”

“……그래, 그럼 너 먼저 가고. 나는 여기 조금 더 있다가 가는 거로 하자.”

난 녀석이 먼저 움직이길 기다렸는데, 녀석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가라는 길은 안 가고 애꿎은 손가락만 쭉쭉 빨아 대는 녀석.

잠깐의 침묵이 일었다.

“안 가냐?”

“너랑 같이 갈 건데.”

“……X발.”

저걸 한 대 쥐어 팰까?

아니, 그랬다가는 더 귀찮아질 수도 있다.

그냥 저런 놈과는 되도록 안 엮이는 게 상책. 적당한 곳에서 따돌릴 생각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녀석이 다가왔다.

“근데, 너 안 아파?”

“…….”

“내가 고쳐 줄까?”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손을 뻗어 오는 데미안.

“내가 낫게 해 줄게.”

한데.

“……!”

그 손끝이 이상했다.

꾀죄죄한 손바닥에 빛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그 빛이 곧 내게로 스며들었다.

처음에는 손목이었다.

그 뒤로, 몸 구석구석을 훑으며 머리로 올라오는 빛무리.

“이건…….”

“약손.”

해맑은 데미안의 목소리에 경탄성을 내뱉었다.

부랑아 놈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만신창이가 된 몸뚱어리. 모든 것이 깨끗이 나았다.

그러니까, 저 빛이 내 몸을 치유한 건데…….

“……옘병.”

트러블슈터로서의 직감이 얘기한다.

지금, 무언가, 굉장히 더럽고 위험한 일에 엮인 것 같다고.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