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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6화 (6/559)

6화. 전혀 감사하지 않았다

“수고했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우렁찬 외침.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만신창이가 된 부랑아들은 기합이 바짝 든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뿌듯하구나.’

뿌듯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열댓 명.

하나같이 백 대를 넘게 맞아야 하는 놈들이었다.

합치면 이천 대가 넘는데, 도대체 어느 세월에 이놈들을 다 때릴 수 있을까.

‘그뿐이냐? 아니지.’

이놈들이 날 엿먹이려는 건지 계속해서 숫자를 까먹었다.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때린 숫자까지 헤아리면, 이천 대는 훌쩍 넘을 거다.

하나, 해냈다.

‘훌륭히 해냈지.’

처음 계획했던 숫자를 한 치의 부족함도 없이 모두 채워 냈다.

전날 앞잡이에게 처맞았던 쉰일곱 대까지, 통 크게 열 배로 불려 대갚음해 줬다.

이는 산전수전, 공중전 빼고 다 겪은 백전의 트러블슈터인 나로서도 새로운 도전.

“저, 저기…….”

날 부르는 목소리에 상념을 정리했다.

“뭐.”

앞잡이였다.

“저희, 그, 이제 가 봐도 되겠습니까요? 맞을 만큼은 다 맞은 것 같은데…….”

“그래, 가 봐.”

한데 어쩐지 어물쩍거리는 앞잡이.

“뭐 해? 안 가고.”

“저, 그게…….”

“……?”

앞잡이가 곤란하다는 듯 공터 한편을 바라본 건 그때였다.

난 곧 앞잡이가 하려는 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뜻이다.

“여기가 저희 집인데…….”

“우리 보고 가라?”

“…….”

입을 꾹 다무는 놈.

난 부랑아들을 바라봤다.

해도 지고 갈 곳도 없겠지. 아무리 부랑아라지만, 길거리에서 자기는 싫은 법이다.

하지만.

“그건 좀 곤란한데.”

좀 힘들겠다.

“저, 그…… 아무래도 그러시겠죠? 그러면, 저희가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건 원한이 아니다.

‘정말 곤란한 거야.’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지내고 있는 집까지 뺏을 정도로 못 돼먹은 놈은 아니다.

그저…….

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물러나는 앞잡이를 뒤로하고 공터 너머를 바라봤다.

“…….”

어둠에 물들어 가는 공터.

전생보다 정순해진 마력 덕일까. 경지는 한참 낮아졌건만, 감각은 예리했다.

그리고 그 감각이 말한다.

저 너머.

‘누군가 있다.’

극도로 정제된 기운.

시시각각으로 가까워진다. 그야말로 맹렬한 속도. 하지만 그럼에도 낌새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은밀하다는 의미.

즉, 트러블슈터와 같이 음지에서 움직이는 자들, 그 특유의 기척이었다.

‘아마…….’

나는 데미안을 바라봤다.

떠나가는 부랑아들을 향해 천진난만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녀석. 한 손은 여전히 입에 물고 있었는데, 그 어떤 낌새도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하나, 분명하다.

‘추격자군.’

데미안을 쫓고 있는 자들.

‘쯧.’

입맛이 썼다.

나름 조심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찾은 걸까. 설마, 블란도가보다 먼저 찾아올 줄이야.

‘좋지 않군.’

그래도, 뭐. 상관없다. 사람 일이란 게 언제나 생각처럼 흘러가는 건 아니니까.

체내의 마력량을 가늠하고 수단을 강구했다.

‘이 정도 마나량이면…….’

마법 하나 발현시키지 못한다.

육탄전도 통하지 않겠지.

하지만, 내가 누군가. 전직 트러블슈터. 자랑은 아니지만 마력이 풍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이런 상황도 마냥 낯설지는 않았다.

‘기회는 한 번인가.’

손끝에 피어오르는 푸른색 아지랑이.

워낙 미약해 제대로 보이지도 않지만, 난 마력의 아지랑이를 응축시켰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새끼손톱만 한 마력탄.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압축, 압축, 압축. 그렇게 정확히 여덟 번 압축했을 진행했을 때.

마력탄의 최종적인 크기는 밀알만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어차피 기회는 단 한 번.

급소를 정확히 뚫을 수 있다면 크기는 중요치 않다.

탓!

수풀 밖으로 추격자가 튀어나온 건 바로 그때였다.

한데, 왜일까.

“……?”

갑자기 무릎을 꿇는 추격자.

추격자의 정체는 머리가 벗겨진 노년의 사내였는데, 그는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무릎을 꿇더니 바닥을 미끄러져 돌진해 왔다.

촤아아악―!

그렇게 바닥을 쓸며 데미안의 앞으로 도달했을 때.

돌연 고개를 조아리며 하는 말.

“아이고, 도련니임―!”

데미안은 깜짝 놀랐다.

“아, 알프레도!”

“얼마나 찾았는지 모릅니다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계셨습니까아! 이 불쌍한 집사는 도련님 걱정에 한잠도 이루지 못했는데…… 크흑!”

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두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니까…….’

대머리의 사내는 사실 추격자가 아니었다. 그 기척은 분명 음지 특유의 성질을 띠고 있었지만, 대화를 보니 분명한 블란도의 일원.

‘……심지어 집사라고?’

난 집사 알프레도와 데미안의 눈물겨운 상봉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떨어져!”

“안 됩니다요! 다시 또 도망가시면 어찌합니까! 가문에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절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저를 죽이십쇼!”

“싫어, 안 가! 집으로는 절대 안 갈 거야!”

데미안이 도망친 건, 다른 누구에게서도 아니었다.

‘……가출이었군.’

맞다. 가출이었던 거다.

* * *

생각해 보니, 데미안은 이렇게 말했었다.

- 왜 혼자 있냐?

- 도망쳤어, 가문에서 날 데리러 올 거야.

어디서 도망쳤는지, 쫓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두워진 표정에 내가 지레짐작했을 뿐.

‘그게 설마 가문에서 도망쳤다는 말일 줄이야.’

어쨌든, 데미안은 가문으로 돌아갔다.

알프레도가 급히 공수해 온 마차를 타고 흑백 지대를 벗어나 달리고 있었다.

하나, 한 가지 의문인 건…….

“아이고, 도련님. 옷이 그게 뭡니까? 그런 옷은 도련님 격에 맞지 않습니다!”

“싫어, 불편해.”

여긴 누구고, 나는 어디인가.

나는 달리는 마차에 앉아, 집사 알프레도와 실랑이 중인 데미안을 바라봤다.

데미안은 심부름꾼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알프레도가 보기엔 못마땅한 모양.

하나, 데미안의 의지는 확고했다.

“싫어.”

아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홱 돌려 버리는 녀석.

알프레도는 그런 데미안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하나, 그러거나 말거나.

“…….”

나는 정신이 혼미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게 의문이었다.

본디, 의도는 데미안을 지켜 주고 블란도가와 연을 맺으려던 것이지만.

데미안의 도망은 사실 가출이었으니, 블란도가 입장에선 나를 부를 이유가 없었다.

나 역시 눈치껏 빠져 주려는데…….

나는 집사 알프레도를 빤히 바라봤다.

- 괜찮으시다면, 함께 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 …….

- 데미안 도련님께서 소년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대로 가시면 많이 아쉬워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허허.

‘속내를 알 수 없군.’

이건 명가의 방식이 아니었다.

대저 명가란, 더러운 것을 배척하고 신분 낮은 것을 꺼리는 게 기본이거늘.

‘뭐, 상관없지.’

식사나 한 끼 얻어먹고, 나는 갈 길 가면 그만이었다.

‘마침 블란도가면 도시 하젠으로 통하는 길목이지.’

도시 하젠에는 동부 대륙 제일이라 평가받은 제니온 아카데미가 있다. 또한 제니온 아카데미가 보유한 도서관 라피테르 역시 동부 제일.

‘언젠가 한 번은 들를 생각이었는데, 이참에 한번 들러 보는 것도 괜찮겠어.’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머릿속에서 어렴풋한 경로를 수정해 나갔다.

기왕지사, 탑을 세워 최고의 도서관을 만들기로 한 바에야, 동부 제일 도서관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 * *

블란도가 심처, 가주 부부가 머무는 본관으로 한 노인이 걸음을 옮겼다.

똑똑.

노인이 찾아간 곳은 블란도가의 안주인, 마녀 비앙카의 서재였다.

“들어와.”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노인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

끼릭, 탁.

문이 닫히자 책상에 닿아 있던 비앙카의 눈동자가 노인, 알프레도에게 향했다.

피처럼 붉은 눈동자였다.

“데미안은?”

“제7 흑백 지대에 계시더군요. 좀 전에 모셔 오는 길입니다.”

“…….”

비앙카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일 초, 이 초.

한 삼 초쯤 지났을까?

알프레도가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는 가운데, 무지막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쾅!

산산이 부서지는 탁자.

앤티크 가구가 흡사 싸라기눈이라도 된 것처럼 조각이 나, 이리저리 흩날렸다.

“제7 흑백 지대?!”

“예.”

“데미안은 괜찮나? 혹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겠지? 당장 말해라. 만약 데미안에게 터럭만큼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아닙니다.”

흑백 지대.

보통은 그 이름을 들으면 못 먹고, 못 사는 이들이 모인 빈민가를 떠올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흑백 지대의 무수한 단면 중 하나.

그 초라한 포장지를 한 꺼풀 벗기면, 때로는 상상도 못 할 세상이 존재했다.

비앙카가 격분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

“진정하시고 제 얘기를 들어 보시지요.”

“……어디 말해 봐라.”

알프레도는 마차에서 데미안에게 들은 가출기를 비앙카에게 전달했다.

‘추웠다’, ‘배고팠다’가 주를 이룬 데미안식 화법의 이야기였지만, 알프레도는 이미 데미안식 화법에 정통해 있는바.

능숙하게 그 말을 풀이했는데, 사견과 추측을 섞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흠, 그렇게 된 거군.”

비앙카는 평정을 되찾고는 자리에 앉았다.

의자는 부서지고 없었으나, 땅으로부터 나무가 솟아올라 의자를 만들었다.

“다행이군.”

“다행이지요.”

비앙카에게도 다행이고, 데미안을 상처 입혔을 사람에게도 다행인 일이었다.

비앙카.

한때 피의 마녀라 불리던 블란도가의 안주인은 제 아들 일이라면 정도가 없어지니.

그 종잡을 수 없는 분노가 어디까지 미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알프레도가 내심 안도를 하는 그때, 비앙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고생이 많았다.”

“별말씀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블란도가 소가주의 가출 사건. 사실, 이는 가문의 마법 전단 전부가 총동원되어도 결코 과하지 않은 중대 사태였다.

하나, 그렇게 되면 날파리가 꼬일 소지가 다분하기에.

집사장인 알프레도가 은밀히 데미안을 찾아 나선 건 바로 그런 이유였다.

그렇게 얼추 사태가 마무리되려는 찰나, 알프레도가 입을 열었다.

“한데, 특이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특이 사항?”

“이번에 사귀었다던 친구 말입니다.”

“아스터라고 했나? 그 친구가 왜?”

비앙카는 좀 전에 알프레도가 풀이해 준 데미안의 가출기를 떠올렸다. 가출기 막바지에 만난 흑백 지대 부랑아 태생의 친구.

이번에 함께 가문으로 들여왔다는데.

“그 친구가 조금 특이합니다.”

“특이하다?”

“예, 제 기척을 알아차리더군요.”

“흐음, 자네의 기척을?”

비앙카는 놀랍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자네가 착각한 건 아니고?”

“아닙니다.”

알프레도는 첫 만남을 떠올렸다.

‘분명…….’

데미안 도련님을 발견했다는 반가움에 맹렬히 돌진하던 그때.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깨닫지 못했지만, 돌이켜 보니 의아한 구석이 있었다.

자신이 수풀에서 튀어나오는 순간부터, 데미안 도련님께 닿기까지.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던 눈동자.

그리고 그 손에는…….

‘마력탄이었나.’

티끌만 해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지만, 알프레도의 기감도 보통은 아니다.

즉, 그 소년은 자신을 일찍이 발견해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소리.

비록 작정하고 숨긴 기척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흥미롭단 말이지.’

알프레도는 이런 자신의 생각을 비앙카에게 가감 없이 얘기해 주었다.

“확실히 놀라운 재능이긴 하군.”

“그래서 말입니다, 가모님. 혹 부탁 하나 드려도 괜찮으실는지요? 소년의 과거를 알아보고 싶습니다. 가주 직속 정보단을 움직여 주신다면, 확실할 것 같은데…….”

“흐음, 그 뒤에는?”

“만약 과거가 깨끗하다면, 제 뒤를 잇게 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비앙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뜻대로 하게.”

알프레도는 수십 년을 가문에 헌신한 인물. 후계로 삼고 싶은 이가 생겼다는데, 가주 직속 정보단 정도는 움직여 줄 수 있다.

그 마음에 알프레도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예, 감사합니다.”

아마, 며칠이면 데미안 도련님과 함께 온 소년의 과거를 낱낱이 알 수 있으리라.

그리고 며칠 후.

알프레도는 아스터가 머물고 있는 별관을 찾았다.

“소년, 제 후계가 되십시오.”

정보단의 보고서에 적힌 아스터의 과거는 깨끗했다.

흑백 지대 부랑아라 정확한 출생은 알 수 없지만, 어려서부터 흑백 지대를 벗어난 적이 없으니.

후계를 제안한 알프레도는 자신만만했다. 아스터가 거절할 거란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명가의 집사이니까.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소득에 심지어 명예까지. 가주를 최측근에서 보필하는지라, 그 위세도 만만치 않다.

한데, 누가 이 자리를 거절할까!

……라고 생각했는데.

“옘병.”

“……?”

알프레도는 제 귀를 의심했다.

하나,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옘병? 옘병? 옘병이 뭐지? 친구, 옘병이 뭐야?”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데미안 도련님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으니.

한데, 소년은 참 뻔뻔했다.

“옘병이라니? 난 모르는 소리다. 집사장님은 들으셨습니까? 물론 못 들으셨겠죠. 왜냐,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흠흠.”

……라고 지껄이더니, 세상 다시없을 공손한 자세로 자신을 바라보고는, 하는 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집사장님의 후계라니. 하지만 괜찮습니다. 너무 감사하지만 저는 지금 이대로가 더 좋은 것 같군요. 아, 다시 말하지만 정말 감사하긴 합니다.”

전혀 감사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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