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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23화 (23/559)

23화. 대체로 친구가 없었다

이른 아침.

난 새벽같이 일어나 언제나처럼 천원공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폴라는 황실 기사단의 심문이 끝나지 않은 것인지, 방으로 돌아오지 못한 상황.

난 비어 있는 침상을 뒤로하고는 어제 있었던 칼라헨과의 전투를 복기했다.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파룬 교수와 칼라헨이 짝짜꿍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전생에 원수를 진 놈들처럼 날을 세우고 마법을 휘갈겨 댔지.

내가 칼라헨을 손쉽게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파룬 교수의 공이 굉장히 컸다.

만약 파룬 교수가 조금이라도 못난 마법사였다면, 혹은 훨씬 더 뛰어난 마법사였다면, 칼라헨의 대응 역시 많이 달라졌을 테니까.

어쨌든, 상황은 상황이고.

‘역시 상품의 영약으로는 부족한가.’

무려 7할의 마력량이다.

한데도, 난 어제 칼라헨과 마주하면서 마력의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칼라헨이 조금 더 온전한 정신으로 전투를 길게 이끌어 갔다면? 만약 파룬 교수가 빌어먹을 놈이라 저 살겠다고 내빼 버렸다면?

그때는 그 마력량이 확연히 느껴졌겠지.

‘하지만…… 이것도 그리 급하지는 않아. 비교 대상이 파룬 교수와 칼라헨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디까지나 문제점은 인식만 하고 있으면 된다.

다만, 내가 진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

난 거울 앞으로 다가가 앞섶을 살짝 풀어 헤쳐 봤다.

제법 살이 오른 몸뚱어리 위로 마도서의 화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형태는 처음 깨어났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아니, 좀 진해졌나?’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는 하도 익숙해진 터라 의식하지를 않았으니.

어쨌든 칼라헨과의 전투 도중에 마도서의 화인이 반응한 걸 생각하면, 그 어떤 변화가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겠지.

그런데.

‘그때 분명…….’

명확하게 느꼈다.

칼라헨의 폭렬 마법이 내 몸에 짓쳐 드는, 그러니까 내 몸을 두르고 있는 역장으로 마법의 불길이 치미는 그 순간.

츠즈즈―

화인으로부터 흘러나온 기운이 역장에 덧대어졌다.

그러자 본래라면 위태롭게 흔들렸어야 할 역장이 더 견고해졌지.

‘아니, 그걸 견고해졌다고 할 수 있나?’

그보다는 뭐랄까…….

‘아, 그래.’

마치 내가 사용한 마법인 것처럼, 마법의 피해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대상에서 배제된 것처럼.’

그래, 배제 현상이었다.

배제 현상이란 쉽게 말해 이런 거였다.

원소계 마법을 쓰는 마법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제 스스로의 마법에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 적용한 기술.

제아무리 타오르는 불꽃이라 하더라도, 술자 본인이 타격을 받지 않는 건 이런 이유였다.

뭐, 배제 현상도 만능은 아니었다. 대체로 원소 계열 마법에 쓰이지만, 술식이 몇 개 추가되는 터라 항상 쓰진 못하지.

어쨌거나 배제 현상이라 할 수 있었는데…….

“모르겠군.”

왜 하필 그때 반응이 있었던 건지, 그리고 발동 조건은 무엇인지.

마도서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이 다르고, 그 능력을 활용하기 위한 트리거 역시 제각각이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는 마도서에 대한 정보로도 유추할 수 없는 부분.

‘그래도 알아볼 필요는 있겠어.’

동부 대륙 최대 규모의 도서관, 라피테르.

아마 그곳에 가면 마도서에 관한 정보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하다못해 실마리 정도는 찾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이제 슬슬…….’

난 어느새 밝아진 창밖을 바라봤다.

슬슬 등교 시간이었다.

* * *

난 등교를 할 채비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데미안을 픽업했다.

“……졸려.”

아침잠이 많은 데미안은 여태 잠이 깨지 않은 상태.

데미안은 대체로 아침잠이 많았다.

이는 블란도에서도 마찬가지.

그를 깨울 사람은 무뚝뚝하고 눈치 없는 사용인 란시 정도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홀로 눈을 뜬 것만 해도 괄목할 만한 성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학생 식당.

‘나쁘지 않군.’

미리 챙겨 온 식권을 내고 들어서자, 수십 종류의 음식들이 우리를 반겼다.

뷔페식.

야채면 야채, 빵이면 빵. 고기면 고기.

비록 스테이크와 같은 고급 음식들은 없었지만,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고루 섭취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 훌륭한 구성이었다.

‘잘 먹어야 잘 크지.’

몸뚱어리야 많이 좋아졌다지만, 이 나이 때는 아무리 먹어도 부족하다.

난 데미안을 이끌고 탄단지가 풍부한 식단을 마련해 자리로 돌아왔다.

잠이 덜 깼지만 그래도 먹어야 산다는 걸 아는지 그릇에 담긴 음식들을 섭취하는 데미안.

난 식사를 마치고 어제 미리 봐 둔 M3반의 교실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M3반 교실.

아직은 첫 수업이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은 상황.

학생들은 총 세 부류였다.

“…….”

아침잠이 부족한지 벌써부터 책상에 퍼질러 자고 있는 놈들과.

“그래서, 어제…….”

“이번에 듣기로는 무투계 수석 입학생이 글쎄 용병대 출신이라는 소문이…….”

삼삼오오 모여서 아카데미의 사건, 사고를 떠들고 있는 녀석들.

그리고 한구석에는 말없이 앉아 책을 들여다보는 모범생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 잘래.”

신기하게도 첫 번째 놈들은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삼삼오오 엎드려 있었는데, 데미안은 홀린 듯 그곳으로 찾아가 잠을 청했다.

책은 내 옆에 두고 간 걸 보아, 저곳이 잠자는 자리라 인식한 듯.

그렇게, 막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안녕. 네가 아스터지?”

“그런데?”

“난 첸비야. 너 유명하더라. 돌란페가 차남을 무릎 꿇렸다면서?”

첸비는 대륙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갈색 머리칼의 소유자였는데, 그 얼굴에 송송히 피어난 주근깨가 인상적인 소년이었다.

그리고 같은 M3반 학생이니만큼 마법계 학생이겠지.

참고로 아카데미의 반 배정은 마법계 M1~M3, 무투계 E1~E5까지. 총 여덟 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녀석은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 그러니까 데미안의 책이 놓인 반대편 자리에 앉았는데, 난 녀석을 빤히 눈에 담았다.

내 시선이 하도 빤했던 걸까.

어색하게 웃는 녀석.

“아, 다름이 아니라. 같이 좀 앉고 싶어서. 난 아직 친해진 애들이 없거든. 다른 데에 끼기는 좀…… 너도 알잖아.”

뭘 안다는 건지.

‘뭐, 대강은 알겠다만.’

이런 거였다.

제니온 아카데미는 신분을 불문하고 입학이 가능하고, 내부 규정상 입학생들에게 신분의 고하 없는 평등한 대우를 약속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카데미의 입장이었다.

‘학생들은 다르단 거지.’

지금도 주변에 모여 있는 학생들을 보면, 끼리끼리 모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있는 집 녀석들은 저들끼리 모이고, 그보다 좀 떨어지는 녀석들은 또 자기들끼리 뭉치고.

간혹 섞여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정상적인 교우 관계로 보이지는 않았다. 마치, 머저리와 그 똘마니들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명가 놈들은…….

‘세상 고고하구만.’

어디를 가든 명가 놈들을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기 저런 놈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잠자코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따위는 모두가 하찮다는 듯. 아니, 하찮고 말고 할 감정도 들지 않는,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뭐, 어쨌든 별 상관은 없는 제안인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든가.”

“휴, 다행이다. 솔직히 불안했거든. 아무래도 다들 모여 있는데 혼자 있으면, 응? 좀 뻘쭘하잖아.”

“뭐, 그럴 수도 있지.”

사실 난 잘 모르겠다.

어디를 가도 혼자라 생각했던 적이 없으니까. 그 이유는 너무 간단했는데, 대체로 누구랑 함께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함께인 적이 없는데 혼자라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물고기는 물을 모르는 법이지.’

항상 혼자였어서, 혼자인 줄도 몰랐던 거다.

흑백 지대 부랑아 시절, 다른 부랑아들은 대체로 날 뜯어먹지 못해 안달인 놈들이었고.

트러블슈터가 된 뒤에도 어디에 정을 붙이기보다는, 혼자서 살아남는 데 급급했으니까.

1호가 된 뒤에도 비슷했다.

그때에는 다들 나 같은 놈들이라 무리라는 인식 자체가 희박했다.

무리란 자고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인데, 트러블슈터 간의 관계는 공동체라기보다는 독립적인 개체들의 교류였으니.

어쨌든, 첸비는 꽤나 말이 많은 축이었다.

“와아, 너 정말로 마법사였구나?”

“응.”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싸워? 돌란페가가 순수 무투로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데. 근접전에서 밀리지 않았다면서?”

“아직은 에테르가 부족해서 그렇지. 나중엔 다를걸.”

대화를 보건대, 첸비는 명가 출신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고 있는 집안 자식도 아닌 것 같았고.

그러면서도 주눅이 든 기색 없이 꽤나 밝은 녀석이었는데, 그런 놈과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깨닫는 게 있었다.

‘이게 평범한 대화인가.’

이번 생에는 너무 미친놈들만 꼬였다.

데미안은 말할 것도 없고, 헨지를 비롯해…… 그래, 파룬 교수도 정상 축에 속하기는 하지만 이들에 비해서만 정상이었을 뿐이다.

기왕 회귀한 거, 이런 평범함도 꽤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창 대화, 그러니까 주로 첸비가 묻고 내가 답하는 형태의 문답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새 강의실이 꽉 차 있었다.

“잠깐만.”

난 늦지 않게 데미안을 깨워…… 보려 했지만, 일어나지 않는 녀석. 결국 데미안의 목덜미를 잡아서 내 옆에 앉혔다.

“참, 그거 알아?”

“뭘.”

“아까 너 오기 전에 애들 떠드는 거 들었는데, 우리 M3반 담임, 제이라 교수님이래. 그 제이라 교수님!”

“제이라?”

“설마, 제이라 교수님을 몰라? 우리 지역에서는 한창 유명했거든. 동부 전선 최고의 마법사! 단신으로 트롤 무리도 도살했다는데…….”

아, 이제 떠올랐다.

‘어제 단상에 섰던 그 교수네.’

붉은 머리칼의 마법사.

현역, 그러니까 지금도 나이가 많지는 않았지만, 필드에서 현역으로 활동할 때는 제법 유명한 마법사였던 듯했는데.

‘확실히…….’

마법사가 단신으로 트롤을, 그것도 한 개체가 아닌 무리를 지워 버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상성의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내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아! 오셨다!”

……라 말하며 자세를 고쳐 앉는 녀석.

과연, 앞문으로 들어서는 붉은 머리칼의 마법사와 한 명의 조교수가 보였다.

‘흐음.’

확실히 첸비의 말을 듣고 나니 그 기도가 범상치 않기는 했다.

아카데미 교수 중에서는 파룬 교수만큼 젊은 축에 속했는데, 그 걸음걸이며 은연중에 풍기는 기세며 전혀 밀리지 않는달까.

성격은 꽤 직설적인 듯했다.

“반갑다. 난 제이라다.”

자고 있는 놈들을 깨우지도 않는다. 그저 제 할 말을 할 뿐.

“첫 수업에 앞서 마력 측정을 할 테니, 조교수의 인솔하에 알아서 잘 따라오도록.”

제이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교실 문을 열고 나갔다.

“…….”

M3반의 학생들이 모두 얼이 빠져 있는 가운데, 첸비가 내게 속삭였다.

“쩔어.”

대체,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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