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48화 (48/559)

48화. 혈마법

“이게…… 대체.”

난 사그라드는 발광구를 멍하니 바라봤다.

지속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고작 해 봐야 1, 2초 남짓한 시간일까.

발광구의 크기를 생각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는데, 사실 그 위력은 크게 고려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이건 상식을 벗어난다.’

마법의 작용 방식.

술자가 마력을 뿜어내어, 자연 상태의 마나를 자극해 현상을 발현해 낸다.

마법의 종류에 따라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기본적인 틀은 이러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술자.’

마법의 모든 행위가 술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한데, 좀 전에는 어떠했나.

발광구.

마법을 피워 올린 것은 내 의지였지만, 그 기준은 술자인 내가 아니었으니.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나는 일.

“가만…… 그렇다면?”

난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몇 가지 실험에 착수했다.

실험을 위해서 핏방울을 내어야 한다는 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지만,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고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우물우물.

몇 가지 실험이 끝난 후, 난 아공간에 미리 챙겨 온 빵을 씹으며 배를 채웠다.

우선.

‘……이건 혈마법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혈마법.

이름만 들으면 금지된 마법 뺨을 칠 만큼 사특한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나 혼자 부르는 이름이니 그리 문제될 것은 없겠지.

어쨌든.

실험의 결과만 말하자면, 혈마법은 뭐라 해야 할까.

‘꽤나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마법의 중심이 술자가 아니다. 이 사실은 전투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사각에서 마법을 발현시켜 적의 허를 찌르거나, 여러 수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바.

하지만.

츠즈즈……!

수련실 벽면으로부터 발광구가 솟아올랐다.

실험 도중 익숙해진 혈마법의 발현.

하지만, 처음과 비교했을 때 그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발현 속도만 조금 빨라졌을 뿐.

‘출력이…… 애매하군.’

혈액량을 늘리면 해결이 될 일이기는 하나,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나 할까.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증식의 술식.’

치유계 마법에 쓰이는 술식으로 피와 살의 재생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체내의 혈액량을 증가시키는 데에 필시 큰 도움을 줄 터.

하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보자…….’

난 한 방울 떨어진 혈액에 증식의 술식을 발휘했다.

츠즈즈…….

곧 제 스스로 몸집을 불리는 혈액.

그래 봐야 고작 두어 배 확장되는 게 고작이었지만, 꽤나 유의미한 변화였다.

이는 증식의 술식이 체내의 혈액뿐만 아니라 체외의 혈액에도 영향을 준다는 증거.

다만…….

‘제대로 활용하려면 어지간한 증식의 술식으로는 안 되겠는데?’

난 팔짱을 낀 채 부피를 키운 핏방울을 바라봤다.

선홍빛 반구체가 영롱한 빛을 띠는 가운데, 곧 헨지로부터 전해 받은 치유의 빛 비전서가 떠올랐다.

만약 치유의 빛 비전서에서 ‘증식의 술식’만을 추출해 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고민도 잠시.

‘쉽지 않을 거야.’

난 고개를 저었다.

술식들을 조합해 마법을 만드는 것보다, 이미 조합된 마법으로부터 술식을 뽑아내는 과정이 몇 배는 더 어렵다.

해당 마법에 정통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

가장 좋은 건 블란도가로부터 증식의 술식을 받아 내는 것이었는데.

‘최고 수준의 술식까지는 필요가 없어.’

혈족이 아닌 가솔들에게 제공되는 수준만 해도 충분했다.

그 정도 증식의 술식은 마학 교류 차원에서 종종 오가기도 하는 수준이니까.

“헨지를 통하면 흔쾌히 내어 줄 것 같기는 한데…….”

아니, 어쩌면 최고 수준의 증식의 술식까지 내어 줄 수도.

하나, 난 곧 고개를 저었다.

‘미친놈과는 되도록 안 엮이는 게 상책이지. 그러고 보니, 란시가 복귀 전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한번 말이나 꺼내 보는 것도 좋으리라.

밑져야 본전이고.

혈마법은 밑진다 해도 충분히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니까.

* * *

란시가 데미안을 찾은 것은 피스티니케제가 막을 내린 다음 날 아침.

“몸조심하고, 응?”

“교수님들 말 잘 듣고, 이제 곧 중간 평가잖니? 듣기로는 시험 일정이 좀 밀렸다는데, 그렇다고 너무 여유 부리지 말고.”

임시 숙소의 카페테리아는 피해 학생을 보러 온 학부모들로 붐비고 있었다.

‘다음 주부터 정상 수업이 재개된다고 했나.’

정상 수업이 재개되면 학부모 면담도 지금처럼 자유롭지 못하니, 돌아가기 전에 작별을 나누는 것.

하나, 이런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적막한 테이블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테이블이었다.

‘…….’

난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면서 눈동자만을 굴려 면면을 살펴봤다.

우선, 맞은 편에 앉은 란시.

평소처럼 무뚝뚝하다.

표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에 살포시 아래를 바라보는 눈동자.

그야말로 평온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난 힐끗 옆을 바라봤다.

“…….”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데미안.

심술보라고 해야 하나. 볼이 왠지 뚱하게 부풀어 있는 가운데, 그 눈동자엔 분함 반 억울함 반이 고르게 섞여 있었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바로 란시.

사연인즉 이러했다.

- 데미안 도련님, 가문으로 돌아가기 전에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 그래, 잘 가! 빨리 가! 얼른 가!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데미안은 참 해맑았다.

요 근래 저처럼 해맑게 웃는 걸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는데, 아무래도 란시의 존재가 꽤나 신경 쓰였던 듯.

‘그럴 만도 하지.’

어찌 보면 가모 비앙카보다도 데미안을 잘 잡는 게 저 무뚝뚝하고 눈치 없는 사용인이라 할 수 있었으니.

하나, 그 해맑은 표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 참, 가모님께서 전달하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축제가 끝난 뒤에 전달하라 하셨죠.

- 응, 뭔데?

- 이번 블란도 행렬이 왔을 때 제안하신 ‘블란도가 부지 내 호수 조성 및 조각상 건축 제안’ 말입니다.

호수란 피땀 눈물 1호.

조각상은 2호를 말한다.

아무래도, 이번에 시련의 관 사태 관련으로 아카데미를 찾아온 블란도의 행렬에 제안서를 건네준 것 같은데.

- 응! 어때? 멋지지! 괜찮지!

- 누구의 도움을 받으셨는지는 몰라도, 제법 양식을 잘 갖춰서 주셨더군요. 제안서만큼은 제법 괜찮았습니다.

데미안은 뜻밖의 칭찬에 화색을 띠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가모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이 내려왔다 여길 만했으니까.

하지만.

- 가모님의 전언은…….

- 전언은?

- 불가.

- …….

그 저간의 사정은 보지 않아도 빤했다.

‘누군가 곧장 가모한테 달려가서 읍소했겠지.’

워프 게이트를 열면 블란도가까지 하루, 이틀이면 당도하니까.

곧장 달려가서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을 거다.

이건 안 되는 거라고. 제발, 소가주의 청을 반려해 달라고.

가모 비앙카로부터 이처럼 빠른 대답이 내려온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거다.

나로서는 적잖이 아쉬운 일이었다.

‘쳇.’

솔직히, 호수를 조성하고 조각상을 세우는 데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호수가 다 호수고, 조각상이 다 똑같은 조각상이지.

멋져 봐야 얼마나 멋지겠는가.

하나, 내가 느끼고 싶은 건 호수와 조각상을 세우느라 들어간 블란도가 가솔들의 피땀 눈물이라.

그야말로,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한 일이었달까.

뭐, 그 뒤로는 제법 시끄러운 시간이었다.

- 란시, 맞아? 정말 그랬어? 왜? 왜 안 되는 거지? 이렇게 멋진데!

어떻게든 란시를 설득하려는 데미안과…….

- 재정 낭비와 다름이 없다는 가모님의 말씀이십니다.

앵무새처럼 가모 비앙카의 전언을 읊는 란시.

그야말로 절대 꿰뚫지 못하는 창과 뚫을 수 없는 방패의 대결이 따로 없었다.

그 뒤로.

“…….”

“…….”

쭉 불편한 침묵이 지속되고 있었으니.

“저…… 저는 이만 일어나 봐도 될까요?”

침묵을 견디지 못한 첸비가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들었다.

하지만, 란시가 고개를 살래 저었다.

“죄송하지만, 잠시만 더 앉아 계셔 주십시오. 첸비 군.”

“……아, 네.”

금세 쭈그리가 되어 자리에 주저앉는 첸비.

꼭 ‘난 왜…….’하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첸비를 신경 쓰지 않았다.

란시야 워낙 무뚝뚝하고 눈치가 없는 사람이고, 데미안은 분을 삭이기 바빴으니까.

그리고 나도…….

‘흐음.’

현 분위기를 바꿀 방법을 찾느라 머리가 팽팽 돌고 있었으니.

‘이러면 곤란한데.’

피땀 눈물에 관련한 거절 사안.

겉보기로는 데미안만의 문제인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란시가 제안서 관련해서 ‘누구의 도움을 받으셨는지’ 대목을 읊을 때.

그 시선은 분명히 날 향하고 있었으니까.

‘……들켰나.’

나는 박학다식한 트러블슈터.

피땀 눈물 구축을 위해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 보고서 작성을 도와주었다.

남의 불행이 곧 내 행복이니, 능력을 가감 없이 펼쳐 보였는데 무뚝뚝하고 눈치 없는 사용인이 그 낌새를 눈치챈 모양.

흑백 지대 부랑아라는 무식한 이미지가 방패가 되어 줄 줄 알았는데,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

‘증식의 술식을 얘기하라고?’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블란도가 입장에서는 내가 어떻게 보이겠는가.

순진하지 않은 소가주를 꼬드겨서 본래도 살짝 기울어진 길을 가는 이를 더 삐뚤게 인도했다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나쁜 친구.

‘그게…… 나겠지.’

그런 연유였다.

‘끄응.’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느낌.

‘하메른 대수림에 가기 전까지는 그래도 혈마법 연구를 끝내고 싶었는데.’

시간도 충분했다.

하메른 대수림행은 방학 때로 정해졌고, 방학까지는 세 달 남짓한 시간이 남아 있었으니까.

하면, 어찌해야 하나.

‘선배?’

선배라면 증식의 술식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내어 줄 수 있을 터였다.

블란도가의 술식이 최고기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실험해 보는 것이니 효율은 그리 상관없었다.

하지만.

- 날강도 같은 놈.

- 꾸루룩! 꾹꾹!

‘너무 많이 뜯어냈어.’

눈깔을 부라리는 아침 식사 1호와 그보다 더 매섭게 눈을 치뜬 선배.

지금 가까이 가 봐야 좋은 꼴은 못 본다.

죽이기야 하겠냐마는, 몇 대 쥐어 터질 수도 있는 노릇.

‘펠리나 교수는…….’

아직은 어색한 사이.

‘파룬은…….’

그리 좋지 않았다.

비록 데큘란이 시련의 관 이후 한발 물러섰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겉보기.

그 감시의 시선을 떼지 않았을 것이다.

‘라피테르에도 술식 정도는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마침, 라피테르의 입장권도 선배에게 받아 냈다.

하지만, 입장권도 쓸 수 있는 기한이 정해져 있더라.

때문에, 라피테르 입장은 빨라 봐야 방학 직전. 즉, 대수림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후우.’

나는 반쯤 낙심한 채 바닥을 드러낸 커피잔을 멍하니 눈에 담았다.

‘내가 불러온 업보로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때.

“정말 안 되는 거야?”

축 처진 데미안의 어깨.

분함과 억울함이 딱 절반씩 조화를 이루었던 얼굴에는 체념의 빛이 역력했다.

란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건 그때였다.

‘……?’

물론, 금세 사라져 버렸지만 똑똑히 보았다.

‘왜…… 웃지?’

무언가 노리는 게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던 차.

다시금 무표정해진 란시가 입을 열었으니.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정말?!”

“제가 열심히 가모님께 말씀드리면 될 것도 같은데…… 하지만, 그러려면 도련님도 하셔야 되는 게 있습니다.”

“뭔데? 뭔데?”

화색을 띤 데미안.

곧 란시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났을 때, 데미안의 얼굴에는 절망이 내려앉았다.

“이번 아카데미 중간 평가에서 전체 석차 16등 안에 들어가십시오.”

전체 석차 16등.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등수다.

아카데미 생활에 충실한 이라면 할 만한 등수였다.

하지만.

데미안에게는 까마득한 등수가 아닐 수 없었으니.

“1, 160등?”

“16등입니다, 도련님.”

“…….”

현실을 도피하는 데미안을 기어코 현실에 패대기치는 무뚝뚝한 란시.

절망에 빠진 데미안을 뒤로하고 그녀가 말했다.

“16등이라면 할 만하다 생각됩니다. 그래야, 저도 가모님께 부탁을 드리는 데에 할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

난 그때 깨달았다.

‘가모의 노림수구나!’

란시가 제법 총애받는 사용인이라고는 하나, 가모의 결정을 번복할 정도는 아니다.

한데도, 저렇게 호언장담하는 걸 보면 필시 데미안의 성적을 끌어 올리기 위한 가모의 안배인 것.

하나, 가모의 안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데미안 도련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변에 좋은 친구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분명, 친구분들께서 도련님을 잘 도와주실 겁니다.”

“……정말, 그럴까?”

데미안이 희망을 찾았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하나, 그 눈동자에 깃든 희망은 날 보고 짜게 식었다.

왜냐.

“…….”

나도 데미안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그나마 첸비에게 머물렀을 때는 희망의 빛이 돌아왔지만…….

“나, 난…… 사실 내 공부하기도 벅차서. 최대한 도와주긴 할 거지만 크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 같…….”

곧 첸비의 확인 사살로 불씨마저 꺼지는 희망.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었다.

‘첸비가 모범생이기는 해도…….’

남을 도와줄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최대한 도와준다는 건, 그만큼 첸비의 마음씨가 좋다는 의미였는데 딱 그 정도가 한계겠지.

하지만, 곧 이어지는 란시의 말.

그것은 첸비의 의욕에 불을 지폈다.

“첸비 군, 아스터 님. 만약 이번에 데미안 도련님을 도와주신다면 ‘블란도가’ 차원에서 섭섭지 않은 사례를 해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힘드실까요?”

일부러 ‘블란도’라는 이름을 강조하는 란시.

그 말에 첸비가 돌아가는 상황을 깨달았다.

그러니, 당연히 그 대답은…….

“사실, 제 성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친구가 더 중요하죠.”

수락.

삽시간에 바뀌는 그 태도에 어이가 없는 한편, 란시의 시선에 내게 향했다.

“아스터 님은……?”

“네, 뭐. 열심히 해 보죠.”

뭐, 내게도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증식의 술식을 얻어 내기에 알맞은 건수였으니.

어쨌든, 자본이 두텁게 만든 우정에 데미안이 감동한 눈빛으로 우릴 담았다.

“친구! 첸비!”

하지만.

“큼, 흠.”

첸비는 멋쩍게 시선을 돌렸고.

“우리는 좋은 친구다, 데미안. 그렇지?”

난 뻔뻔하게 손을 내밀었다.

중간 평가까지 약 한 달.

이른바…….

데미안 모범생 만들기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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