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하늘은 푸르다 아니, 붉다
과연 하메른 대수림은 지랄 맞았다.
키에에엑……!
캭!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 그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여 차마 셀 수도 없다.
개중 가장 많은 것은 역시나 고블린이었는데, 과연 이것이 고블린이 맞을까.
‘뭔 덩치가…….’
모름지기 고블린이라 하면 1.5미터 남짓한 짧은 신장에 어린아이처럼 가냘픈 체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밀조밀 뭉쳐 있는 마른 근육이 상징이거늘.
퍼벙, 펑!
난 홍옥을 이용해 고블린들의 머리를 정확히 터트린 후, 바닥에 널브러진 놈들을 내려다봤다.
2미터 남짓한 크기.
웬만큼 건장한 성인 남성보다도 크다.
그 근육은 또 어떠한가.
‘좋은 거 많이 처먹었나 보네.’
무투 명가 돌란페의 차남 힉스터. 딱 그놈이 떠오르는 몸뚱어리랄까?
“으, 으음……. 마법사님, 제가 잠시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난 가만히 고블린을 바라보다가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레일리는 한 보따리 싸매고 있는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는데, 무겁지도 않은 듯 성큼성큼 다가와 자세를 낮춰 고블린들을 살펴보았다.
배신자의 관상인 것과는 다르게, 막상 하메른 대수림에 들어서자 레일리는 제법 본분에 충실했다.
지금도 보라.
“으음, 역시. 이놈들 제2 베이스캠프 쪽에 부락을 이룬 놈들 같습니다. 저희끼리는 켄티 고블린이라 부르는 놈들인데…….”
“켄티?”
“왜, 그 있잖습니까. 귀족들 식탁에 자주 올라가는…… 집중력을 고조시켜 주는 열매.”
듣고 보니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블란도가에서 아카데미행을 결정 짓기 전에.
본래도 풍족하던 식사가 하루아침에 그 양과 질을 높여 대령되었지.
그때 먹었던 게 아마…….
‘그래, 라칸 산맥 외뿔 산양 등심에 켄티 열매 샐러드.’
매 식사를 기억하는 건 아니었지만, 두 재료는 언제나 식탁에 올라왔기에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왜 켄티 고블린이지? 풀떼기를 먹을 것 같은 놈들은 아닌데.”
“아, 이놈들 부락 근처에 켄티 나무 자생지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켄티 열매도 곧잘 먹습니다. 고블린이 그…… 잡식이지 않습니까.”
“뭐, 그렇지.”
“저, 계속 살펴봐도 괜찮겠습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일리는 다시금 켄티 고블린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주로 살피는 건, 놈들의 손톱. 그리고 발바닥을 비롯한 발톱이었는데…….
잠시간 켄티 고블린을 살피던 레일리가 고개를 들었다.
“으음, 역시.”
“왜, 뭔데?”
레일리는 대꾸하지 않고 고블린들이 튀어나온 수풀을 헤집고 들어가, 그 바닥을 뚫어지게 살펴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경로를 좀 수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 생각대로면, 제2 베이스캠프 쪽의 생태계가 외곽까지 밀려났는데. 사실 제2 베이스캠프 인근에서도 켄티 고블린이 도망을 칠 만한 몬스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개체로서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지만, 무리 사냥을 기본으로 하기에 생태계 상단에 위치한다고.
하지만.
“여기 손톱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흙이나 나무껍질이 많이 보이는군요. 발바닥도 보면 상처가 가득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로부터 도망친 게 분명합니다.”
나름대로 추론의 근거를 설명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결론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경로를 수정하자?”
“으음, 예. 그러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마법사님들을 얕잡아 보는 게 아닙니다. 다만, 확인되지 않은 변수는 최대한 피해 가는 게 어떨지…….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양손을 비비는 레일리.
거대한 덩치에 험상궂은 인상임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걸 보면, 손바닥을 한두 번 비벼 본 솜씨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래, 그럼. 넌 괜찮지?”
“……음, 네.”
내가 동의하자 오베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확인되지 않은 변수는 피해 가자.
이 말은 나도 익히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저 앞에 있는 몬스터가 어떤 놈이든, 뚫어 낼 자신이 있었지만 하메른 대수림을 하루 이틀 가로지를 것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확인되지 않은 위험만큼 치명적인 건 없지.’
코끼리를 죽이는 건 용맹한 사자가 아니다. 독니를 감추고 있는 독사지.
어쨌든, 하메른 대수림에 도착하고 이틀.
일정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몬스터가 나오면 깨부수고, 깨부순 몬스터를 토대로 레일리가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레일리의 패스파인딩은 꽤나 정교했다.
지금도 봐라.
스스스―
한계까지 넓힌 기감.
대수림의 무수한 생명체들의 존재감이 피부에 낱낱이 와 닿는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
유난히 또렷하고 선명한 존재감 하나.
‘……흠.’
난 거기까지 파악한 후 기감을 거둬들였다.
공간 안에 워낙 빽빽한 존재감이 몰려 있기 때문일까. 평소의 몇 배는 되는 피로감이 일시에 몰려왔다.
‘확실히…….’
난 앞서 걸어가는 레일리를 눈에 담았다.
녀석은 눈동자를 쉴 새 없이 대굴대굴 굴리면서 주변을 살폈는데, 그 모습만 보면 흑백 지대 부랑아 시절 ‘얍삽이’라 불렸던 이유를 익히 짐작할 만했다.
하나, 그런 모습과는 별개로.
‘유능하긴 해.’
생명체들이 극도로 밀집된 하메른 대수림.
기감을 극대화하여 길을 잡자면 못 잡을 것도 없겠지만, 그러자면 육체가 아닌 정신력이 먼저 지쳐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레일리는 훌륭한 패스파인더.
그렇게, 대수림의 수풀을 얼마나 헤집고 걸었을까.
수풀에서 튀어나오는 오크 몇 마리와 고블린 몇 마리.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짐승형 몬스터들을 몇 차례 잡았을 때 즈음.
“음, 거의 다 왔군요.”
어느샌가 앞서 걷던 레일리가 멈춰 섰다.
수풀을 헤집고 그 옆으로 다가서자, 곧 탁 트인 풍경이 우리를 마주했다.
울창한 거목(巨木).
빽빽하게 자라나 있는 이름 모를 수풀들.
그 공간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는 습지(濕地) 하나.
늪이라 하기엔 맑고 호수라 하기에는 탁한 웅덩이가 강처럼 드넓게 펼쳐져 있는 가운데.
레일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이 습지만 통과하면 제1 베이스캠프입니다.”
제1 베이스캠프가 머지않은 것이다.
* * *
습지에 도착한 후.
레일리는 휴식을 선언하고는 곧장 자리를 잡았다.
하나, 쉬는 건 나와 오베른뿐. 레일리는 곧장 자리만 만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법사님들, 편히 쉬고 계십시오. 전 습지를 건너기 전에 주변 좀 살피고 오겠습니다. 원래는 별달리 주의할 게 없는 구간입니다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난 적당한 나무둥치에 걸터앉아, 대꾸 없이 손을 휘휘 저어 줬다.
레일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 후 물러갔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
‘건너려면 빨리 건너야 할 텐데.’
야간 이동은 여러모로 부담스럽다.
레일리의 말에 의하면, 하메른 대수림의 낮과 밤은 또 다르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같은 공간에 다른 생태계가 펼쳐진다 해야 하나?
하나, 정말로 마음이 급한 건 내가 아니었다.
“…….”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땅을 바라보고 있는 오베른.
유약한 인상이지만, 그 눈동자에 깃든 빛만큼은 단단하기 그지없다.
하나 그 고요한 수면은 왠지 모를 불안으로 일렁이고 있었는데, 난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마음이 조급할 만도 하지.’
우리의 목적지는 제4 베이스캠프.
그린타운 근방의 하메른 대수림.
네 개의 베이스캠프 중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곳으로, 제4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앞선 1, 2, 3 베이스캠프를 거쳐야 했다.
거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방법은 있었지만, 뭐라 했더라.
- 패스파인더라고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 근방의 생태계는 그쪽 베이스캠프가 가장 잘 알아요. 특히 이럴 때는 반드시 들러서 정보를 수집해야 합니다.
이게 조금 느리지만, 보다 확실하게 도착하는 방법이라고.
어쨌든.
‘벌써 이틀이라…….’
통상적인 일정보다 하루가 더 걸렸단다.
제1 베이스캠프는 그리 깊은 곳에 위치하지 않아서, 통상적으로 하루에서 하루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어쩌면 오늘도 도착이 힘들 수도 있겠군.’
습지의 탁 트인 하늘 위.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해를 보니, 조금만 늦어지면 꼼짝없이 발이 묶일 상황.
그렇게 가만히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 나가는데, 옆에서 상념을 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
난 의아함에 오베른을 바라봤다.
하메른 대수림에 진입한 지 이틀째.
그 시간 동안, 오베른이 먼저 말을 걸어 온 건 단 한 차례도 없었으니까.
한데.
“몬스터 웨이브는…… 아마 금방이겠죠?”
“……?”
난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웬 몬스터 웨이브?
“제2 베이스캠프의 생태계가 외곽까지 밀려났습니다. 지금이야, 몬스터들이 본능적으로 하메른 대수림에 남는다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뭐, 밖으로 터져 나가겠지.”
“얼마나 죽을까요.”
“글쎄.”
나로서는 별로 흥미가 없는 주제였다.
그린타운은 이미 대피 준비로 한창이고, 하메른 대수림 바깥으로는 드넓은 드므르 평원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아무리 많은 몬스터들이 뛰쳐 나가도, 인근 영지나 도시에까지 영향을 미칠까?
‘그건 또 모르는 일이지.’
눈앞에서 볼 때야 많아 보이겠지만, 그 몬스터들이 군대처럼 떼거리로 뭉쳐서 진군하는 것도 아닐 테고.
결국 살기 위해 뛰쳐나온 놈들이니, 적당한 산간에 숨어 자리를 잡을 거다.
하지만, 오베른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역시……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데스트로우를 빠르게 찾아 제거해야 했습니다.”
“…….”
“제 생각이 짧았어요. 데스트로우만 문제가 아니었는데…….”
무언가 분하다는 듯 이를 앙다무는 녀석.
난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물어봤다.
“그게 걱정이었냐?”
“네?”
“하메른 대수림에 들어와서, 표정이 계속 어둡던 게 그것 때문이었냐고.”
“……아, 네. 부끄럽지만, 사실 오크 라이더를 보고는 저도 순간 몸이 얼었습니다. 마법을 익힌 저조차도 그럴진대, 평범한 이들은 어떨까. 그걸 생각하다 보니 그만…….”
묻지도 않았는데, 구구절절 제 심정을 토로하는 녀석.
“……음, 그래.”
난 잠시 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무어라 해야 할까.
‘맑군.’
맑아도 너무 맑다.
나랑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느낌이랄까?
그래, 맨처음 헨지를 만났을 때. 놈이 가면 쓴 얼굴을 보았을 때 든 감상과 비슷했다.
그러니까…….
상극.
설마 이 상황에 제 스승이 아닌, 생판 모르는 남을. 그것도 일어날지 확실치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니!
“끄응.”
난 삽시간에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되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레일리가 언제 오는지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는데, 오베른의 개소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 탓입니다. 제가 부족한 탓에, 스승님의 발목을 잡아 버렸어요.”
“음…… 그래.”
“제가 조금만 더 정진했다면, 데스트로우의 유적을 찾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벌써 그 존재를 멸하였을 텐데…….”
“그래, 그렇구나.”
하늘은 푸르다.
아니, 붉다.
해가 져 가고 있으니까, 붉은 게 당연하지.
하지만 습지의 혼탁한 물은 붉어져 가는 노을을 담고도 붉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오베른과 같은 놈을 앞에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이란, 이런 따위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녀석은 이틀 동안 어찌 참았는지 쉴 새 없이 말을 내뱉었는데, 이는 실로 참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게 괴로운 시간이 지나갈 무렵.
부스럭.
수풀이 흔들렸다.
“…….”
그 너머에서 얼굴을 비춘 것은, 역시나 훌륭한 노예…… 아니, 패스파인더 레일리였다.
한데, 왜일까.
“……?”
잔뜩 굳어 있는 레일리의 얼굴.
“그래서 저는 반드시 데스트로우를, 더 나아가 세상에……?”
쉴 새 없이 지껄이던 오베론 역시,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 정적이 내려앉았을 때.
레일리의 입이 열렸다.
“도, 도망…… 도망가야 합니다. 마, 마법사님들. 당장, 당장……!”
다급한 와중에도 목소리를 키우지 않는 녀석.
하나 그 움직임만큼은 신속했는데, 어찌나 마음이 급한지 아예 나와 오베른을 끌고 가다시피 이끌었다.
그러면서도 무어라 중얼거리는데.
“대, 대체 놈이 왜 여기에……. 분명, 영역은 한참……. 아니, 이런 적이 없었는데.”
도통 알 수 없는 소리.
나는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녀석을 보며 잠자코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 순간.
그오오오오―
수풀 너머.
습지로부터 거대한 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만으로도 주변의 산천초목을 떨어 울리고, 나조차도 그 소리에 경계심을 절로 피워 올렸으니.
우뚝.
레일리의 손에 이끌려 가던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춰 선 채,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당황한 것일까.
패닉에 빠진 레일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 느, 늪의 지배자입니다. 어서, 어서 도망가야 해요. 물에 발을 딛지 않았으니까 살 수 있어. 살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서……!”
“늪의 지배자?”
하메른 대수림 이틀 차.
늪의 지배자.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대수림의 위험.
세월을 거듭하며 숱한 모험가들과 용병들을 먹어 치운 첫 번째 괴물과의 조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