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칼받이를 칼받이라 부르지
다음 날.
제1 베이스캠프는 꽤나 소란스러웠다.
전날 기감으로 느꼈을 때에는 스무 명 남짓한 인원들이 있었을 뿐인데, 오늘은 어디서 나타난 건지 쉰 명에 가까운 사내들이 캠프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봐! 그쪽 천막은 묻어야 돼! 기름 먹인 천을 가져와!”
“가구는 태운다! 나중에 또 만들면 그만이야!”
험상궂은 용병들이 한 몸이 된 듯 움직이는 모습은 꽤나 장관이었다.
아스터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저, 마법사님.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레일리였다.
놈은 눈동자를 데룩데룩 굴리며 제1 베이스캠프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는데, 그 눈 밑으로는 다크서클이 만연했다.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느닷없이 새벽 무렵에 아비오트 용병 놈이 들이닥치는데…….”
그야말로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올 것이 왔구나 싶더라.
전날, 치프의 심기를 그리도 건드려 놨으니.
제1 베이스캠프를 수없이 드나들며 픽셔를 몇 번이고 마주해 온 레일리였지만, 그가 그처럼 분노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아비오트쯤 되는 용병대가 설마 치프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파묻을 리는 없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
베이스캠프에서 캠프지기 용병대는, 그리고 치프가 갖는 권한은 절대적이니까.
한데, 그게 아니더라.
- 사례는 충분히 지급하겠다. 이곳까지 오면서 보고 들은 정보를 공유해 다오. 지도를 보여 주면 더욱 좋고.
대뜸 대수림 바깥으로 나가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간부.
그 경황없는 상황 속에서, 잠도 덜 깬 채 한참을 시달리던 레일리였다.
그러니, 당황하지 않고 배길까.
“저, 정말 파묻히는 줄 알았습니다.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인지…….”
“무슨 일이긴. 쓸 만한 칼받이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
“……히익, 마법사님?”
직설적인 아스터의 표현에 레일리는 기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 카, 칼받이라뇨! 그런 말씀하시면, 쥐도 새도 모르게 칼침 맞습니다.”
용병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무엇인가.
바로 ‘칼받이’라는 멸칭이었다.
본인들이야 자신들의 처지를 자조하며 흔히들 쓰는 표현이지만, 제3자가 그리 부르는 건 경우가 달랐다.
돈에 자존심도 파는 용병들이라지만, 그들에게도 건드려선 안 되는 역린이 있는 법이니.
하나, 아스터는 그런 레일리의 반응에 픽 웃음을 터트렸다.
“칼받이를 칼받이라 부르지, 뭐라 하나? 안 그래?”
“아니, 마법사님……!”
레일리가 대경하며 그 입을 틀어막으려는데, 목소리가 끼어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불쾌하긴 하지만, 그깟 명칭이 무슨 상관이겠나.”
익숙한 목소리.
“……!”
그 목소리는 지금 상황에서는 결코 들려서는 안 되는 자의 것이었다.
“하, 하하…… 서, 설마.”
레일리는 제 머리 바로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끼기긱― 하고, 기름칠이 덜 된 관절 인형의 그것처럼 그 고개가 돌아갔을 때.
레일리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어 버렸다.
“흐, 흐하. 하하하.”
설마 했던 이가 그곳에 서 있었으니까.
제1 베이스캠프의 치프.
아비오트의 용병대장.
픽셔였다.
“치, 치프, 이 발언은 제 입장과는 무관한, 마법사님의 개인적인 발언일 뿐이며…….”
제 한 목숨이라도 건지겠다는 것인가.
재빠르게 선을 긋는 레일리.
픽셔는 그를 가소롭다는 듯 내려다보다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휘휘 손을 저었다.
“네놈 따위랑 노닥거릴 시간 없으니, 어서 꺼져라.”
“아, 하하! 예! 생각해 보니, 논의할 사항이 아직 좀 남아 있었군요! 그럼, 저는 이만…….”
창백해진 얼굴로 자리를 뜨는 레일리.
아스터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금 베이스캠프로 시선을 돌렸다.
“저런 놈이 용케도 살아 있단 말이지.”
“저놈만 한 패스파인더는 찾기 힘드니까 말이야. 아니, 하메른 대수림 제일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뭐…… 그래.”
확실히.
대수림의 다른 패스파인더를 본 적이 없어, 비교하기는 어려웠지만 레일리의 패스파인딩은 과연 수준급이었다.
기감도 미약한 놈이 마치 기감이 예민한 이처럼 앞을 꿰뚫어 본달까.
뭐…….
“어헛! 죄, 죄송……. 좀 지나가겠습니다!”
저 우락부락한 덩치로 굽실대는 꼴을 보면, 도무지 믿기 힘든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아스터는 아비오트의 용병과 부딪친 후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레일리를 힐끗 일별하고는 픽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보다 부지런한데?”
“준비는 빠를수록 좋은 게 아니겠나.”
“확인은 끝났고?”
“……음.”
픽셔는 나직이 침음성을 내뱉었다.
전날.
- 그래, 내 손으로 친히 올려 보내 줬지.
늪의 지배자.
그 고대종을 제 손으로 끝장을 냈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들은 픽셔였다.
물론, 말만으로는 믿기 쉽지 않았다.
- ……늪의 지배자를 토벌했다고? 일개 마법사 혼자서? 말도 안 되는 소리!
늪의 지배자가 어떤 고대종인가.
에테르 사용자에게도 치명적인 존재이지만, 그보다 마법사에겐 천적이라 할 만한 특징을 가진 생명체였다.
대기 중의 마나를 어지러트려, 마법을 봉쇄해 버리니.
그 어떤 마법사가 그를 당해 낼 수 있을까.
하지만.
‘……설마 사실이었을 줄이야.’
확인을 위해, 아비오트에서 가장 발이 빠른 간부를 습지로 보내 보았다.
그리고 해가 뜨기 전에 통신용 수정구를 통해 전달된 메시지 하나.
- ……치프, 마법사의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아니…… 사실입니다.
여기저기 훼손되어 있기는 하나, 습지에 떠 있는 사체는 분명 늪의 지배자가 확실했다고.
아비오트의 용병들이 제1 베이스캠프를 정리하고 있는 건 그런 연유였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픽셔는 발 빠른 간부가 기록해 온 영상을 떠올리며 물음을 던졌다.
습지에 볼품없이 떠다니는 고대종의 사체.
그에 남은 흔적은 사람이라기보다 거대한 몬스터에게 뜯어 먹힌 듯한 몰골이었으니.
하나, 픽셔의 복잡한 심경과는 다르게, 아스터의 대답은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뭐기는, 고용주지.”
“……음.”
“아, 설마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나? 캠프를 정리하길래, 마음의 결정을 내린 줄 알았는데. 어째, 시간 좀 더 줘?”
그 여상스러운 물음에 픽셔는 고개를 살래 저었다.
“결정은 끝났다.”
애초, 결정은 늪의 지배자가 토벌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끝난 터였다.
제1 베이스캠프를 정리한 것도 그 때문이고, 꼭두새벽부터 대수림으로 정찰을 나가 있던 이들을 불러들인 것도 그 때문이니까.
“다만, 한 가지만 다시 확실히 하자.”
“뭔데?”
“말했다시피, 제4 베이스캠프에 가는 것은 올드비들뿐이다. 저기, 젊은것들은…….”
“대수림 바깥으로 나간다 이거지?”
“……그래.”
애당초 오갔던 이야기였지만, 픽셔는 이 부분을 확실히 하고자 했다.
늪의 지배자.
그것을 토벌한 마법사라면, 자신들 전체를 억지로 끌고 간다 해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으니까.
힘의 우열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후의 발악이라도 할 수밖에.
그렇게 혹시 모를 상황에 픽셔가 나름의 각오를 다지는 와중에, 아스터가 답했다.
“그래, 그럼. 준비는 언제 끝나는데?”
“캠프 정리야 곧 끝날 테지만, 아직 복귀하지 못한 놈들이 몇 있다. 그래도 오전 중에는 전부 끝날 테지.”
“오전이라…….”
아스터는 가만히 시간을 셈해 보았다.
그 정도면, 기다리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중간한 놈들이라면 가치도 없었겠지만, 아비오트 용병대. 아니, 픽셔라는 예상 밖의 전력을 얻는 일인데 그깟 서너 시간이 대수일까.
“그럼, 정리나 빨리하자고.”
아스터는 그리 말하고는 손을 살래 털었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기려는데, 픽셔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원하는 게 뭐냐. 아니, 무엇을 원하십니까?”
“…….”
어느새, 말을 높이고 있는 픽셔.
하나, 비굴하지는 않았다.
뭐라 해야 할까.
좀 전까지는 치프로서 베이스캠프의 방문자를 대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고용주를 대하는 용병이랄까?
아스터는 그 눈빛을 빤히 바라보다가 툭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어떤…….”
“칼받이. 목적지는…… 그래, 제4 베이스캠프까지로 하자. 그 뒤부터는 네들 마음대로 하는 거고. 네놈들은 우리가 제4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를 호위하는 거다. 의뢰 내용은 그렇게 하자고. 어때?”
“알겠습니다.”
‘칼받이’라는 적나라한 표현이 들어가 있었지만, 픽셔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사실, 말이 호위이지.
저 정도 되는 마법사가 과연 호위가 필요할까.
다만―
“제4 베이스캠프까지, 무사히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한 명의 용병으로서 의뢰인의 지시를 가슴에 새길 뿐.
“그리고 하나 더.”
“……?”
“말은 편하게 하자고. 내가 두 살 위라지만,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빡빡하게 굴 생각은 없으니까. 안 그래?”
그 말을 끝으로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는 가면의 마법사.
픽셔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는데, 그 얼굴에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웃음이 떠올랐다.
“저, 싸가지 없는…….”
끝까지 두 살을 고집한다.
딱 봐도 자신보다 한참 어린 놈이거늘.
‘아니, 그건 또 아닌가?’
드러난 피부나 목소리를 보면, 핏덩이 마법사와 같은 연배일 것 같은데.
늪의 지배자를 토벌한 걸 생각해 보면, 이제는 그것 또한 모를 일이었다.
그토록 어린 마법사가, 오랜 세월 하메른 대수림에서 공포로 군림해 온 늪의 지배자를 토벌하였다고?
‘차라리, 노마법사가 젊음의 비약을 처먹고 회춘했다는 게 더 말이 되겠군.’
물론, 그런 비약은 전설 속에만 존재하지만 말이다.
“치프님?”
“음, 그래.”
픽셔는 어느새 다가온 용병의 부름에 상념을 거둬들였다.
“정찰 나갔던 인원들이 모두 복귀했습니다. 캠프 정리도 얼추 끝이 보입니다.”
생각보다 준비가 빨리 끝난 듯.
픽셔는 젊은 용병을 바라보다가, 이내 걸음을 휙 하고 돌렸다.
“캠프 정리는 이쯤 하지.”
“하면…….”
“남은 건 전부 한데 모아 불태워라. 고블린 따위가 부락을 차리면 성가시니까.”
“예, 알겠습니다.”
젊은 용병은 반문 없이 명령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리가 끝나면 모두 집합시키도록. 의뢰인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 * *
휑해진 제1 베이스캠프.
한때는 용병과 모험가들, 몇몇 상인들로 붐비던 공간은 쉰 명 남짓한 용병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숨 막히는 적막 아래, 쉰 명의 아비오트 용병들은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한 채 전방을 바라보았다.
자유분방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 용병의 이미지와는 달리, 철저한 훈련을 받은 백전 강병의 모습이었다.
하나, 그 와중에 숨길 수 없는 야성이 깃들어 있었으니.
그야말로 날카로운 군기(軍氣).
그 군기 앞에 자리한 픽셔는 우뚝 솟은 태산처럼 굳건히 선 채, 아비오트의 용병들을 차례로 눈에 담았다.
‘…….’
그 얼굴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풋내기 시절부터 함께하며, 수십 년간 얼굴을 맞댄 노련한 용병들부터.
기껏 해 봐야 일 년 남짓 함께한 햇병아리들까지.
픽셔는 이들을 가만히 눈에 담다가,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떠날 때가 왔다.”
“…….”
“이중 절반은 대수림 깊은 곳으로, 남은 절반은 바깥으로 향하겠지.”
제1 베이스캠프를 이백 년 남짓 지켜 온 아비오트.
그들이 보금자리를 떠날 순간이 온 것이다.
“긴말하지 않겠다. 그 방향은 달라도, 우리가 품은 뜻은 결국 하나다. 그리고 그 뜻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왜 모를까.
아비오트의 용병들은 적 둘 곳이 없다.
제1 베이스캠프는 부모가 없고, 형제가 없으며, 스승조차 없는 떠돌이들의 안식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지만, 아비오트의 용병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형제며 부모, 자식이며, 스승이었다.
그러니, 지키려는 것이다. 제1 베이스캠프를.
아니, 아비오트라는 이름을.
하여, 그 가슴에 품은 뜻은 결국 단 하나.
‘아비오트의 존속.’
몇몇 떠돌이들이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건 그런 이유였다.
제 형제의, 자식의, 제자의 안식처를, 발 디딜 곳을, 적 둘 곳을 지키기 위해!
떠나는 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나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가운데, 터질 듯 격앙된 음성 하나가 군중 사이로 튀어나왔다.
“……치프!”
목소리의 주인은 젊디젊은 용병이었다.
“저도…… 저도 가겠습니다!”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들만이 생(生)을 위해 빠져나간다는 것이, 도망친다는 것이!
불명예스럽지는 않다.
용병은 명예를 모르기에.
부끄럽지는 않다.
용병은 수치를 모르기에.
다만, 두려운 것이다.
동료를 보내고 홀로 존속하는 그 생, 그 기나긴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 기묘한 열기는 곧 사방으로 전염돼 갔다.
“……그, 그럼.”
“마, 만약 저놈이 되면 나도…….”
아니, 전염이 아니다.
젊은 용병들 모두,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으니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이 터져 나온 것뿐.
“치프! 제가 저 새끼보다 칼은 좀 더 잘 씁니다!”
“저는 칼은 좀 못 써도, 발은 좀 빠르지 않습니까?!”
군기(軍氣)는 무너지고, 감정은 격앙돼 갔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에, 억눌렸던 감정은 폭발하듯 주변을 쓸었다.
누군들, 동료를 사지로 보내고 살아남고 싶겠는가.
아비오트가 이백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제1 베이스캠프를 지킬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유대감 덕분이었다.
이에, 올드비들의 마음 역시 일렁였다.
‘……이 빌어먹을 것들이.’
‘썩을…….’
그들이라고 죽음이 두렵지 않을까?
아니다.
‘그럼, 나 대신 저놈들이…….’
살고 싶다.
차라리, 저놈들 중 하나를 대신 자신의 자리에 끼워 넣고, 자신은 하메른 대수림을 나가 살아남고 싶다.
하지만.
“이 새끼가……!”
올드비 중 하나가 악에 받친 음성을 터트렸다.
그는 대열을 흩트리며 가장 먼저 소리친 젊은 용병에게 다가가, 우악스러운 주먹으로 그 면상을 후려쳤다.
“……컥!”
갑작스러운 일격에 고꾸라지는 용병.
“어디, 새끼가! 선배들! 노는 물에! 끼려고! 엉?! 아주, 맞먹지? 이 X발 것들이!”
그는 넘어진 용병에게 무자비한 구타를 퍼부었다.
용병은 기절한 지 오래였지만, 올드비는 마치 죽이기라도 하려는 듯 독기 어린 눈빛으로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기강 한번 잡아 줘?! 엉? 편하냐? 우리가 편해? 새끼가! 어딜! 맞먹으려고!”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올드비들은 착잡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고, 젊은 용병들은 얼어붙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그만.”
나직한 픽셔의 목소리.
그 차분한 어조에, 잔뜩 흥분한 용병이 그 화를 가라앉힐까 싶었지만…….
“…….”
신기하게도 올드비는 곧장 행동을 멈췄다.
픽셔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는 흥분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어느 때보다 차갑기 그지없는 눈동자.
픽셔는 올드비와 한차례 시선을 교환하고는 젊은 용병들을 눈에 담았다.
“확실히, 기강이 해이해졌군. 반문은 받지 않겠다. 다들 꺼져라. 밖으로 나가서, 처분을 기다려라. 이 빌어먹을 것들아.”
그 말 한마디가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
“뭐 하나? 어서 안 꺼지고!”
그 성난 외침에 젊은 용병들이 다급히 움직였다.
픽셔 역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휙 하고 걸음을 돌렸다.
잘 지내라, 어째라 하는 등의 작별은 없었다.
올드비들은 대수림 깊은 곳으로, 젊은 용병들은 대수림 외곽 쪽으로.
다만…….
젊은 용병들이 움직일 수 있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 처분을 기다리도록.
지켜지지 못할 말이지만, 그 단 한마디.
그 한마디가 백 마디의 작별 인사보다, 그 걸음을 가볍게 하였기에.
제1 베이스캠프를 지켜 온 아비오트의 용병들.
올드비 23인, 제4 베이스캠프로.
고대에서 전해져 내려온 부정한 존재. 데스트로우를 막기 위한 미약한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