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피죽도 못 먹어서 그렇다
결국, 난 아공간에서 큼지막한 로브를 하나 꺼내 데스나이트에게 내밀었다.
‘칼라헨의 수집증이 도움이 될 때가 다 있군.’
전리품으로 모은 잡동사니 안에는, 데스나이트의 체구에 맞는 로브도 있는 터라.
안 버리고 있기를 잘했다.
여하튼.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어느 가문의 누구요? 마스터 나이트쯤 되면, 뭐 어디 짱짱한 가문이었을 거 같은데.”
[생각이 짧구만. 짱짱한 가문이었으면, 이렇게 무덤이 파헤쳐져서 언데드가 될 일이 있었겠나?]
“망했을 수도 있지.”
[망하긴 했다. 내가 살아 있을 때 말이야. 때는 바야흐로 제국력 137년이었지.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
“아, 됐고.”
갑자기 역사 시간이 될 것 같아 황급히 잘라 낸 말.
한데, 왜일까.
왠지 모르게 데스나이트의 하나뿐인 불빛이 맹렬히 타오르는 듯하다.
마치…… 그래.
꼭 싸가지 없는 어린것을 때리기 직전, 벼르는 눈빛인 것처럼.
“흠흠. 제국력 137년?”
[그렇다.]
“꽤나 옛날에 사셨구만.”
[지금이 몇 년인데?]
“제국력 374년이오.”
[……허어.]
세월의 무상함 탓일까.
데스나이트는 나직한 숨결을 토해 냈다.
아니 실제로 숨결을 토할 수는 없으니, 소리만 냈다 해야 할 노릇이겠지.
죽은 자가 산 자처럼 행동하는 걸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
[하면, 로르텔은?]
“남아 있소.”
로르텔은 검술 명가다.
마법에는 데큘란이 있다면, 검술에는 로르텔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물론, 더럽고 추잡한 짓거리를 저지르는 데큘란에 비해 그 세가 좀 약하지만.
어쨌든.
[그러면…… 샤미드는 가주가 되었나? 그러니까, 13대 가주의 이름이 무엇이냐 이 말이야.]
“그거야 로르텔가에 가서 물어보고.”
[하면, 돌란페가는?]
“멀쩡하…… 아니, 이보쇼, 깡통 양반.”
[……양반?]
난 그 맹렬한 불길이 참 따스해, 말투도 따듯하게 바꾸었다.
“깡통 선생?”
[……깡통?]
“후, X발.”
이 데스나이트는 뭔가 선배보다 더하다.
선배는 그래도 마법사라고, 논리에서 말리면 은근히 힘을 못 쓰던데.
‘누가 무식한 칼잡이 아니랄까 봐, 눈깔을…….’
눈을 착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마음이 넓은 나는 충동을 억눌렀다.
“뭐, 존함이라도 여쭤봅시다. 존함이 어찌 됩니까?”
[그래, 그렇게 물어봐야지. 한데, 요즘 것들 싸가지는 다 네놈 같더냐?]
“나 정도면 평균이지. 더한 놈들도 많고.”
[……음. 역시, 시간이 갈수록 싸가지는 더 없어지나 보군. 내심 궁금했는데, 호기심을 풀었어.]
뭔가, 대단한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고개를 주억거리는 데스나이트.
난 그 모습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놈과 눈이 마주쳤다.
[음, 눈빛이 착하구나.]
“내가 착한 눈을 좋아하거든.”
[든?]
“……요. 아니, 그래서.”
난 참다 참다 못 참겠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서? 서? 지금 말 꼬라지가…….]
“말 꼬라지고 자시고, 뉘시냐니까.”
난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사내.
까마득한 조상의 조상 뻘에, 마스터 나이트라 해도 기세는 죽지 않는다.
다만…….
[허어. 근처에 쓸 만한 몽둥이들이 참 많구나.]
“선배님의 존함을 들어야, 제가 받들어 모시지 않겠습니까? 충성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양해해 주시길.”
폭력에 굴복할 뿐.
[그런 기특한 마음이었다고?]
“예, 그러니 제가 오죽 답답했겠습니까. 한시 빨리 존함을 알고 싶은데.”
X발.
교장이라는 명찰을 버리고, 아카데미라는 감옥에서 탈출한 선배가 이러할까?
참으로 지랄 맞다.
지랄 맞은데…….
[좋아, 그러면 알려 주마. 아직까지 내 이름이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만족스러운 듯, 불길을 일렁이는 데스나이트.
한데.
[나의 이름은…….]
그 이름은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아니 꽤가 아니라, 매우. 상당히, 듣고도 믿기 힘든 이름이라 해야 할까.
[어떠냐. 아느냐?]
알다마다.
……몇백 년 전.
제국에는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있었다.
죄명은 반역. 오랜 세월 동안 굳건한 위상을 유지한 황좌에 대한 도전.
가담자는 오직…… 한 명.
샤인 폰 르망
따지고 보면, 반역이 아니라 황제 시해 사건이라 칭하는 게 마땅한 상황이었다.
수백 년이 지나 회자될 일도 없어야 하고.
하나.
샤인 폰 르망은 단신으로 황실에 쳐들어가, 황제의 목 앞에 칼을 겨누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며 선언했다.
- 이제는 내가 황제다.
광오한 발언.
- 툭. 데구르르.
바닥에 굴러떨어지는, 동부 대륙에서 가장 존귀한 이의 모가지.
물론 샤인 폰 르망이 황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그 자신 역시, 황좌에 앉아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쓸쓸히 죽었으니까.
그러니까…….
“댁이 그 미친놈?”
[뭬?]
“……옘병.”
그러니까, 이런 거다.
“뭐, 존함이라도 여쭤봅시다. 존함이 어찌 됩니까?”
[그래, 그렇게 물어봐야지. 한데, 요즘 것들 싸가지는 다 네놈 같더냐?]
“나 정도면 평균이지. 더한 놈들도 많고.”
[……음. 역시, 시간이 갈수록 싸가지는 더 없어지나 보군. 내심 궁금했는데, 호기심을 풀었어.]
뭔가, 대단한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고개를 주억거리는 데스나이트.
난 그 모습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놈과 눈이 마주쳤다.
[음, 눈빛이 착하구나.]
“내가 착한 눈을 좋아하거든.”
[든?]
“……요. 아니, 그래서.”
난 참다 참다 못 참겠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서? 서? 지금 말 꼬라지가…….]
“말 꼬라지고 자시고, 뉘시냐니까.”
난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사내.
까마득한 조상의 조상 뻘에, 마스터 나이트라 해도 기세는 죽지 않는다.
다만…….
[허어. 근처에 쓸 만한 몽둥이들이 참 많구나.]
“선배님의 존함을 들어야, 제가 받들어 모시지 않겠습니까? 충성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양해해 주시길.”
폭력에 굴복할 뿐.
[그런 기특한 마음이었다고?]
“예, 그러니 제가 오죽 답답했겠습니까. 한시 빨리 존함을 알고 싶은데.”
X발.
교장이라는 명찰을 버리고, 아카데미라는 감옥에서 탈출한 선배가 이러할까?
참으로 지랄 맞다.
지랄 맞은데…….
[좋아, 그러면 알려 주마. 아직까지 내 이름이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만족스러운 듯, 불길을 일렁이는 데스나이트.
한데.
[나의 이름은…….]
그 이름은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아니 꽤가 아니라, 매우. 상당히, 듣고도 믿기 힘든 이름이라 해야 할까.
[어떠냐. 아느냐?]
알다마다.
……몇백 년 전.
제국에는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있었다.
죄명은 반역. 오랜 세월 동안 굳건한 위상을 유지한 황좌에 대한 도전.
가담자는 오직…… 한 명.
샤인 폰 르망
따지고 보면, 반역이 아니라 황제 시해 사건이라 칭하는 게 마땅한 상황이었다.
수백 년이 지나 회자될 일도 없어야 하고.
하나.
샤인 폰 르망은 단신으로 황실에 쳐들어가, 황제의 목 앞에 칼을 겨누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며 선언했다.
- 이제는 내가 황제다.
광오한 발언.
- 툭. 데구르르.
바닥에 굴러떨어지는, 동부 대륙에서 가장 존귀한 이의 모가지.
물론 샤인 폰 르망이 황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그 자신 역시, 황좌에 앉아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쓸쓸히 죽었으니까.
그러니까…….
“댁이 그 미친놈?”
[뭬?]
“……옘병.”
그러니까, 이런 거다.
‘역사에 다시없을 미친놈이 지금 내 앞에 있다고?’
정말이지, 오늘 하루는…….
아니, 말을 말자.
아직 정오도 되지 않은 오전이었다.
* * *
어쨌든.
“……댁이 정말 샤인 폰 르망 그 미친놈이라고?”
[미친놈? 흐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한데, 내 이름이 여즉 내려오기는 하나 보구나.]
“내려오다마다.”
내 긍정에 샤인……이었던 것은 짙은 흥미를 느끼는 듯 육중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래, 어떻게 내려오지? 궁금하구나.]
“어떻게냐라…….”
말했다시피, 샤인 폰 르망은 역사에 다시없을 반역자로 기록되었다.
다른 말로는…….
‘킹 슬레이어(King Slayer)’
정확히 말하자면, 황제 시해자라 엠페러(Emperor) 슬레이어겠지만 그렇게 내려온다.
그 외의 샤인을 부르는 호칭은 꽤나 많았다.
- 시대에 다시없을 천재.
- 검을 주로 쓰지만, 검뿐만 아니라 만병(萬兵)에 능통한 타고난 무인.
마지막으로…….
- 르망이 몰락하며 미쳐 버린 비운의 천재.
그 재능은 대륙 역사상 짝을 찾기 힘들었다.
‘열여덟의 나이에 마스터 나이트에 올랐으니, 말 다 했지.’
마스터 나이트는 제국에서 공인하는 등급이 아니다.
말 그대로, 기사의 정점에 올랐다 하여 붙는 일종의 경지의 이름이랄까.
마법으로 치자면 대마법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지였는데…….
그래, 이렇게 비교하면 이해가 쉬웠다.
‘파헤른.’
역대 최강의 반열에 오른 지고한 마법사.
‘그 천재조차도 서른이 다 되어서야,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라섰으니까.’
세간에서 이르기를, 샤인 폰 르망이 노년까지 살아 있었다면 대륙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 거라고.
난 간략하게 추린 설명을 샤인에게 전달했다.
“……뭐, 대강 이렇게 알려져 있는데.”
[음, 너무 빈약한데? 정말 그것밖에 전해져 내려오는 게 없더냐?]
있긴 하다.
‘말하기 귀찮아서 그렇지.’
샤인 폰 르망이 수치를 준 명가가 몇 개인가.
돌란페가에는 무투로 붙어 그 가주를 꺾고, 창을 주로 쓰는 명가에는 창을 써서 그 무릎을 꿇렸다.
어떤 명가와 자웅을 겨루든, 주무기가 아닌 상대의 병장기를 쓰는 것으로 유명했으니.
‘그야말로 악취미지.’
한데.
“……가만.”
[호오, 왜. 뭐 더 떠오르는 게 있더냐?]
“너 이 새끼, 너 샤인 폰 르망 아니지.”
[허어…… 정신이 좀 오락가락하는 것 같더니만, 드디어 미쳐 버린 건가? 내가 샤인이 아니면 누가 샤인이란 말이냐.]
난 노티 나는 말투에 두 눈을 게슴츠레 뜬 후, 그를 빤히 바라봤다.
“샤인 폰 르망.”
[왜 부르냐.]
“전무후무한 무력으로 황실에 침입해, 황제의 목을 참수한 희대의 미친놈.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내가 황제다.’”
[그렇지.]
“그리고 희대의 미치광이가 사망한 나이는 방년…….”
역사에 기록되기를 샤인의 사망 나이는 이러하다.
[샤인 폰 르망]
- 18세. 마스터 나이트에 등극.
- 19세. 르망가(家) 몰락과 함께 행방불명.
- 20세. 다시 나타나 반란을 꾀했으며, 그 사망 나이는…….
“스무 살.”
[큼.]
“샤인은 스무 살에 뒈졌는데, 뭐? 네가 샤인이라고?”
딱 봐도, 그 말투만 따지자면 선배의 연배다.
목소리야 데스나이트인지라 나이를 추측하기 어렵지만, 그 행동거지는 그러하다.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바라보자, 데스나이트는 슬그머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땐 스무 살이면 원로 취급이었지.]
“지랄.”
[아니, 근데 이 새끼가……! 인마, 네놈은 몇 살인데? 내가 그래도 네놈보다는 나이가 많다. 딱 봐도 내 절반 조금 더 산 놈 같은데!]
내가 몇 살이냐.
물어본다면 대답해 주는 게 인지상정.
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후 샤인을 깔아 보며 지껄였다.
“스물두…… 아니, 세 살.”
[스물셋?]
“그렇다.”
[아니,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과연, 샤인이 맞는 것인가.
나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녀석.
난 그런 그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한껏 말아 올린 채 입을 열었다.
“네 말마따나 피죽도 못 먹어서 그렇다. 성장기인데, 못 먹었어. 그래서 못 컸지.”
[뭔…… 딱 보니까 마법사인데. 무슨 마법사가 피죽도 못 먹냐. 돈 많은 것들이나 배우는 게 마법이거늘.]
물론, 그렇다.
대체로 마법 명가가 다른 명가들보다 사업장이니 세력 확장에 힘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법을 익히려면 이런저런 부수적인 자금이 많이 필요하거든.
하지만.
“그건 편견이지. 이 시대의 마법사들은 가난하다.”
[……허.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개소리?”
[개, 개…… 흠.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네 조상뻘이야! 넌 애미, 애비도 없냐!]
난 발끈해 외치는 샤인을 향해 산뜻하게 말해 주었다.
“그래, 없다.”
[…….]
“얼굴도 보지 못했지.”
본디, 난 흑백 지대 부랑아라 태어나 혈육이라는 건 구경해 본 적도 없다.
전생에 결혼도 안 했으니, 후손도 보지 못했다.
내 말에 샤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미안……하, 하, 하, 하오.]
“그래, 존댓말은 하라 안 하마. 대신 말투에 공경은 갖추도록.”
[…….]
뭐, 서열 문제는 대강 해결이 되었고.
‘이놈이 샤인 폰 르망이라고……?’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이 많은 놈이 장땡이었다더니.
나이를 말하니까 깔끔하게 고개를 숙이는 녀석.
그럼 어째…….
‘이용해 먹을 수 있겠는데?’
금마사를 통해 저변의 사정을 알게 된 지금.
비단 우리의 적은 데스트로우뿐만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데스트로우를 깨우기 위해 준비하는 금마사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바.
‘전력 충원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샤인은 훌륭한 도구…… 아니, 조력자였다.
뭐, 그렇다고 내가 공짜로 부려 먹겠다는 건 아니고, 함께 좋자는 거다.
“어린것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난 잔뜩 쪼그라든 샤인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상체를 기울이며 웃어 보였다.
“너,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일?]
“널 안식에서 깨운 빌어먹을 흑마법사 놈. 복수하고 싶지 않냐?”
샤인의 기세가 달라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화아악―!
삽시간에 주변으로 번져 나가는 가공할 살기.
이성을 되찾으면서 생전의 경지를 어느 정도 회복한 걸까. 아니면, 그만큼 금마사에게 품은 적개심이 강한 것일까.
‘……저릿저릿하구만.’
나조차도 의식하지 않으면 어깨가 움츠러들 지경.
“적개심이 상당한데? 별생각 없어 보이더니 말이야.”
[이미 뒈졌다 생각했으니까.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린 것한테, 무슨 복수심을 느끼겠나. 해서…….]
샤인의 고개가 휙 돌아가, 저쪽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바라봤다.
[놈이 죽지 않았다고? 하면, 저것들은?]
여기서 난 잠깐 머리를 굴렸다.
“음, 쫄따구들이지.”
[쫄따구들?]
“아, 기억나지 않나 보군. 넌 도구였다. 그냥 길가에 굴러다니는 스켈레톤만도 못한 취급으로 부려 먹혔지.”
[……감히.]
점점 더 거세지는 기세.
내 미소도 짙어진다.
“뭐라나? 너무 허약해서 쓰잘데없다 했나? 뭐, 그렇다는 말은 들은 거 같은데.”
[쫄따구들한테 아무렇게나 맡길 정도로?]
“그렇지.”
내 말이 끝이 났을 때.
쾅!
샤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놈은 어디 있느냐.]
“왜?”
[왜냐니? 당연한 걸 묻느냐. 이 손으로 그놈을 찢어 죽여야 하거늘.]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샤인 폰 르망.
난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흐음, 찾기 쉽지가 않을 텐데…….”
[……꼭 네놈은 찾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뭐, 난 그렇지. 그런데, 맨입으로는 좀 그렇고. 응? 알잖아. 세상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거. 마침 나도 놈한테 볼일이 있거든.”
[…….]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것일까.
샤인 폰 르망은 잠시 기세를 누그러트리고는 나를 지긋이 내려다봤다.
“뭐, 싫으면 말고. 난 기회를 주려고 했던 건데, 네가 싫으면 뭐…….”
내 아쉬울 것 없다는 말투에, 샤인은 잠시간 생각을 가다듬더니 그 입…… 입은 없지만 어쨌든.
입을 열었다.
[……속는 것 같다만. 뭐, 좋다. 놈을 잡을 수 있다면, 네게 협력하도록 하지.]
“정말?”
[……그래. 안 그래도, 한동안은 네놈을 따라다니려 했으니까. 그래서, 그런 거다.]
“뭐, 어련하시겠어.”
훌륭한 자기합리화다.
이용당하는 것 같지만, 스스로가 이용당하는 게 아니라고 본인을 잘도 속인다.
뭐, 하나 마냥 이용당하는 건 아닐 터였다.
“그럼, 잘해 보자고. 샤인 폰 르망.”
[……거짓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아무렴.”
나는 손을 내밀었다.
철그럭.
내 손을 맞잡는 검은색 갑주.
‘든든하군.’
기사란 족속은 이렇듯 쉽다.
‘무식한 칼잡이들.’
어쨌거나.
“자, 이제 내 동료들에게 가 보자고.”
[……그러지.]
난 샤인을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저주를 해소할 때까지는, 그럭저럭 시간은 벌 수 있겠어.’
샤인은 금마사를 상대할 카드이자, 13인의 죄악이 해소될 때까지 나를 대체해 줄 훌륭한 스페어 카드.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