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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91화 (91/559)

91화. 아니, 나도 잡혔다

히이잉―!

하메른 대수림으로 때아닌 말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산하게 내리깔리는 귀곡성. 솔리온은 유령마를 탄 채 대수림을 가로질렀다.

‘이, 이 개 같은……!’

벌겋게 충혈된 두 눈동자. 안색은 파리하다. 잠깐 사이에 이리 변할 수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엉망이 된 몰골!

그 속은 그 못지않게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다 됐단 말이다! 다, 다 되었는데……!’

데스트로우, 그 도래가 머지않았다.

무스펠룬? 그가 구상한 전략은 꿰뚫어 봤다.

소수의 별동대를 가정하여 저주를 준비하고, 거기에 평생을 다해 모아 온 사령들을 갈아 넣기까지!

하나, 전혀 아쉽지 않았다.

왜 아쉬울까!

데스트로우

이 고대의 흉물(凶物)이 도래하는 순간, 자신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터인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살바티움의 간부직에 앉고, 뭇 금마사들의 우러름을 받았겠지. 그뿐이냐? 장로회에서 내려오는 보상으로 두 번째 탈각(脫却)을 꿈꿔 볼 수도 있었다.

이는 솔리온에게 있어 평생의 숙원과도 같은 것이었다.

간부직, 더 나아가 장로회에 들어가 영생(永生)에 가까운 삶을 누리는 것!

한데.

‘저 빌어먹을 것 때문에……!’

솔리온은 앞서가는 두 기의 데스나이트. 그 너머를 눈에 담았다.

넝마가 된 로브를 흩날리며 꽁지 빠져라 도망치는 놈.

볼품없다.

고대의 망령들을 상대하랴, 데스나이트와 언데드들을 상대하랴.

갑옷은 이곳저곳 긁히고 패었으며, 그 왼팔은 이미 땅에 떨어져 산화한 지 오래!

하나 그런 보잘것없는 외형과는 별개로, 저것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

‘어째서, 네놈이? 어떻게 네놈이……!’

속삭이는 절규는 정체불명의 가면인이 걸렸어야 할 함정이었다.

무스펠룬의 전략? 가면인이 그 함정에 발을 딛는 순간 알 바가 아니다.

자신이 해야 할 것은 달콤한 과실, 그것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다가 그저 손에 쥐는 것뿐!

한데, 저 빌어먹을 것이 나타난 순간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어그러진 상황!

“네놈이…… 네놈이 그러고도 샤인 폰 르망! 희대의 반역자란 말이냐! 네놈이 그러고도 기사란 말이냐!”

솔리온은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다.

딱히 속을 긁기 위함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속이 타는 것이다.

‘장로회. 빌어먹을 장로회……!’

금마사들이 입버릇처럼 지껄이는 말.

- 죽어서도 편치 못할 것이다.

이 말은 거짓이 아니다.

당장 자신만 해도, 영혼을 사로잡아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선사할 수 있으니.

이는, 죽음이 탈출구인 고문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탈출 따위는 없는 지극한 고통!

한계가 있는 육신의 고통과는 달리, 영혼의 고통은 매 순간 끔찍하고 매 순간 새로울 따름이니.

‘안 된다. 안 돼. 제발, 그것만은…….’

솔리온은 절박한 심정으로 박차를 가했다.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성이 마비된 데스나이트들은 그저 묵묵히 고삐를 쥔 채 내달릴 뿐.

‘시간이…… 시간이 얼마 없단 말이다!’

어느새 하늘 위로 드리운 푸른 장막.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고대의 망령들은 육체를 잃고 영혼이 되었다.

무스펠룬의 작전이 시작하고야 만 것.

그런 와중에도 솔리온은 희망의 고삐를 놓지 못했다. 아니, 놓을 수 없었다.

“네놈만…… 네놈만 손아귀에 넣는다면…… 막을 수 있단 말이다!”

확신한다.

이성을 되찾은 샤인 폰 르망. 그는 그 어떤 데스나이트보다도 완벽한 존재니.

거기에…….

망령군주(亡靈君主)

처음 만들 때에 새겨 넣었던 ‘망령군주’로 샤인이 자신의 언데드 군단을 통솔하기만 한다면……!

그런 솔리온의 바람이 통한 것일까?

[이, 옘병할 것이……!]

갑작스러운 외마디 비명.

샤인의 몸놀림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유령마를 타고도 따라잡기 버겁던 놈의 속도가 급작스레 줄어들었다.

마치, 물속을 거니는 것처럼.

어째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녀석을 잡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잡아라, 잡아! 저 새끼를 잡으라고……!”

솔리온의 윽박에 두 기의 데스나이트가 펄쩍 허공을 날았다.

아니, 난 것은 아니다. 그저, 유령마의 도약이 그만큼 높디높았을 뿐.

“팔다리를 끊고 무릎 꿇려라!”

[어딜 감히……!]

저항을 하려는 것인가?

맹렬한 기세로 검을 휘두르는 샤인.

솔리온은 그 기세에 잠시 움찔했는데, 평정을 찾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으, 하하! 으하하! 제법 오래 버틴다 했다!”

쩌렁쩌렁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죽어 가는 사람처럼 핏기 하나 없던 얼굴로 더없이 환한 미소가 번진다.

유쾌하다. 아니, 유쾌할 수밖에 없다.

챙, 휘리리릭.

콱!

힘이 빠진 것인지, 그 칼은 공방 한 번에 힘없이 날아가 나무에 박히고.

콰득! 텅그렁, 텅.

데스나이트의 두 번째 창질은 그 팔을 끊는다. 이어서 세 번째, 네 번째.

텅텅, 텅.

힘없이 스러지는 샤인의 몸뚱어리.

“드디어, 드디어…… 잡았구나!”

솔리온은 그 모습에 환히 미소 지었다.

영락없이 지옥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민 줄 알았는데, 한 줄기 희망은 있었던 것.

그러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웃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 * *

샤인은 무기력하게 널브러진 채, 푸른 장막으로 휩싸인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 개 같은 것이……! 마력을 끊어?’

격렬한 추격전.

상비용으로 비축했던 마력이 고갈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령마, 과연 좋더라.

자신이 전속력으로 달리는데도 느긋하게, 유유자적 뒤를 쫓아오니.

그뿐이냐? 언데드들은 또 어찌나 거센지.

한차례 포위되었는데, 그 포위망을 뚫는 데에만 절반의 마력이 소모됐으니!

하여, 간신히 공급받는 마력으로 연명을 했는데…….

- 툭.

돌연, 마력 공급이 뚝 하고 끊어지더라.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상황이었다.

[머리에 검은 털 난 짐승은 믿는 것이 아니라더니……!]

놈의 머리칼은 회색이지만, 검은색이나 회색이나 도긴개긴이었다.

그렇게, 샤인이 아스터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고 있는 와중. 그 투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바로 그때였다.

“분한가? 샤인 폰 르망? 흐흐, 네 주인에게 버려졌나 보지?”

[재수 없는 낯짝 집어치워라. 두 눈깔이 충혈된 게 여간 역한 것이 아니니.]

“으하하,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또 처음이란 말이지. 제법 신선한 기분이구나.”

[네 눈깔은 썩어 빠졌고 말이지, 응?]

날 선 목소리. 그 기세는 칼날과 같다.

하지만, 그런 샤인을 내려다보는 솔리온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팔다리가 끊긴 데스나이트거늘 무엇이 두려울까.

그저 가소로울 뿐.

“그래, 얼마든 지껄여 봐라. 이 몸에게 그리 건방 떨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이니.”

솔리온은 그리 말하고는 휙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보자……. 분명, 네놈은 종속의 팔찌로 엮여 있는 것이렷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안 봐도 빤했다.

네크로맨서도 아닌 이가 어떻게 언데드를 다룰까. 종속의 팔찌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

‘하면…….’

솔리온은 가만히 머리를 굴렸다.

종속의 팔찌로 맺은 권속 계약. 이는 강력하다.

쓰기에 따라, 이미 술자가 있는 언데드조차 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벨로크에게 종속의 팔찌를 내어 준 것이 누구인가. 바로 솔리온 자신이었다.

‘내가 그 머저리 같은 벨로크에게 종속의 팔찌를 건네주면서, 파훼책 하나 마련해 놓지 않았을까 봐?’

종속의 팔찌로 맺은 권속 계약. 그에 대한 파훼법은 이미 연구가 끝난바.

솔리온은 느긋하게 샤인의 흉갑 위로 손을 얹었다.

“……. ……. ………….”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입술. 새어 나오는 목소리. 그 손아귀로는 흑마력이 흘러나와 흉갑으로 스며들어 간다.

샤인이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어어……! 야, 야! 뭐 하는 짓거리냐! 이렇게 바로 한다고?]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간신히 정의의 사도를 물리친 악당. 악당은 그 앞에서 있는 폼 없는 폼을 다 잡으며 승리를 만끽한다.

네놈이 이래서 진 거고, 저래서 진 거고. 만약에 네놈이 이랬으면, 그 자리에 누워 있는 건 내가 됐을 거고.

시키지도 않은 전투 복기를 알아서 하고, 덩달아 향후 자신들의 계획까지 주저리주저리 입 밖에 뱉는다.

한데, 이처럼 바로 본론이라니?

[이런 상도덕도 없는 새끼를 보았나……!]

분명, 회색 머리 그놈과 같은 종자다.

물론, 싸가지 없고 인간 말종인 걸로 따지면 회색 머리 놈이 몇 수는 더 위였지만, 그 결로 따지자면 같은 맥락이랄까?

‘이 썩을…… 다시 이깟 놈의 권속이 된다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저기 보아라.

말 위에 탄 채, 창을 축 늘어트리고는 전방을 응시하는 두 기의 데스나이트.

평범한 이들에겐 오금이 저릴 만한 풍경이었다.

딱 저기에 넝마가 되기 직전의 거무튀튀한 로브를 씌우고 큼지막한 낫을 들게 하면 사신(死神) 그 자체였으니.

하지만.

저 얼마나 병신 같은 모습인가!

고장 난 인형처럼, 명령이 없으면 우두커니 서서 주인의 부름만 기다리는, 더할 나위 없이 한심한 처지!

- 이 빌어먹을 놈아! 마력! 마력을 내놔라! 팔다리만 수복하면, 당장 이 빌어먹을 네크로맨서를……!

샤인은 다급하게 심령을 보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씹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라 욕했지만, 막상 위기가 닥치니 믿을 것은 그놈 하나뿐이라.

하나 답은 없었다.

- 내가 누군지 아느냐?! 샤인 폰 르망이다! 샤인 폰 르망! 한데, 네놈이 나를 이렇게 팽해? 엉? 팽한다고?

가슴속 깊숙이 치미는 울분.

분하다.

‘그때…… 그때 그냥 떠났어야 하는 것을!’

척 보니까, 제법 재밌어 보이는 놈 같길래 들러붙었더니.

정작 재미를 보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가면을 뒤집어쓴 그놈이었고.

자신은 다시금 흑마법사의 노예가 될 팔자!

한데, 문득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 하나.

‘노비나 노예나 거기서 거기가 아닌…… 옘병할!’

샤인은 찾아온 깨달음을 애써 부정했다. 아니,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인정했다.

- 주인 놈아, 빨리 와라! 데스나이트 뒈진다!

툭 놓아 버린 한 푼의 자존심.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까지는 쉬웠다.

- 제발, 와서 좀! 주인 놈아, 부탁…….

절로 나오는 주인 소리!

샤인으로서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재수 없는 놈의 노비로 살아가는 것보다, 흑마법사의 노예가 되는 것이 더 끔찍했으니까.

한데, 그런 간절한 바람이 통한 것일까?

- 주인 놈?

뇌리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 왔구나!

- 아니, 아직인데? 그런데 주인 놈?

‘이 옘병할 것이……!’

그 태연자약한 목소리에 열통이 터지는 것도 잠시, 샤인은 마음을 가다듬은 후 차분히 호칭을 정정했다.

아니, 정정하려 했다.

- 주인…… 주인…… 주인…… 님프만도 못한 잡것아! 마력은 대체 왜 끊어서!

한 줄기 남은 자존심. ‘님’ 자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이 꼬라지가 된 데에는 그놈의 잘못이 십 중 십일 할이었으니까.

- 도대체 어디냐! 앙?

다급한 목소리. 느껴지는 것이다.

츠즈즈―

“……. ……………….”

흑마법사의 주문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무언가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기분. 더럽고 음습한 기분이 점점 차올랐으니.

자신은 곧 흑마법사 놈의 노예가 되리라. 저 비루먹은 데스나이트들처럼!

-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이야!

답이 들려온 것은 그 직후였다.

- 3.

- 3……? 그게 무슨 개소…….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

- 2.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 옘병, 다 끝났다!

샤인은 느낄 수 있었다.

이 빌어먹을 흑마법사의 술수가 끝나 간다.

지금도 보라. 저 빌어먹을 회색 머리에 대한 원망과 증오보다는, 흑마법사를 향한 충성심이 차오르지 않나!

하나, 그때.

- 1.

퍽―

머리 위에서 거친 둔탁음이 들려온 건 그 직후였다.

“……. ……. …………카악!”

주문을 외우던 흑마법사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쏘아 보낸 활처럼 날아간다.

그러고는 이내.

퍼억!

거목에 부딪친 후 힘없이 쓰러져 내리는 몸뚱어리.

[뭔…….]

샤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시야에서는 그저, 흑마법사가 휙 하고 날아가 버렸을 뿐이니까.

그 얼굴로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바로 그때였다.

“주인 뭐? 호칭 제대로 안 하지?”

[너……!]

재수 없는 면상. 하나, 역겹지는 않다. 왜냐하면 가면을 뒤집어썼으니까.

[드디어 구하러 왔구나!]

샤인은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를 높이는데, 아스터는 살래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도 잡혔다.”

[……?]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일렁이는 샤인의 불빛.

아스터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픽 웃어 보였다.

“농담이다. 그냥, 한번 해 보고 싶은 말이었어. 여하튼…….”

휙 돌아가는 눈동자.

아스터는 거목에 부딪혀 버르적거리는 금마사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이 몸 등장.”

데스나이트와 금마사.

악당 vs 악당.

그 전투를 끝맺을 정의의 사도의 등장이었다.

제법 있어 보인다면 있어 보이는 멘트. 고통스러운 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웁, 우웨에에엑……!”

“…….”

느닷없는 토악질 소리.

아스터는 물론이고 샤인 역시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눈에 담았다.

“죄, 죄송…… 멀미가…… 우웁!”

오베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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