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딴생각하지?
땅 위로 뇌전을 잔뜩 머금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아니, 자세히 보면 먹구름이 아니다.
펑……! 퍼벙!
연달아 울려 퍼지는 폭음. 무지막지한 폭발. 그를 버티지 못한 온갖 흙먼지가 두둥실 떠올라 무리를 이뤘다.
하면, 뇌전은 무엇인가.
파지직―!
흙먼지를 뚫고 사방으로 번져 나가는 스파크. 하나,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뇌전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짙푸르렀으니까.
“이게 얼마 만이야?”
아스터는 폭멸(爆滅)을 거듭 터트리며 데스트로우를 압박해 들어갔다.
정교하진 않았다.
마치, 맞든 맞지 않든 상관없다는 듯. 적당한 눈대중으로 겨냥할 뿐.
그 탓에 몇몇 폭멸은 데스트로우에게 충격파만을 던지고 사라졌지만, 그깟 디테일은 아무렴 좋았다.
어차피, 신중을 기해 겨냥한다 해도 데스트로우의 역장이 오죽 견고한가?
쩌엉―!
불순물 하나 없이 정련된 쇳덩이끼리 부딪치는 것처럼, 맑게 울려 퍼지는 타격음.
오직 그것만을 남기고 허무하게 사라진다.
한데, 심력을 소모할 필요가 무에 있을까!
‘그냥 줘 때리면 되지.’
그런 아스터의 전투 앞에서 데스트로우는 적잖은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이, 무슨……!>
쉴 새 없이 역장을 때리는 충격파. 난잡하다. 아니, 난잡한 것을 넘어서 숫제 어린아이들의 장난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 까다로운 것이다.
차라리 형식을 갖춘 정형화된 공격이라면, 예측이라도 하겠건만, 이건 도통 어디로 튀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뿐이냐?
펑! 퍼버버벙―!
수십 개의 폭멸이 쏘아져 내릴 때, 황제는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1초. 아니, 그 반의반. 혹은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라도 괜찮다.
단 한 순간이나마 시간을 벌기 위함!
하나, 어찌나 날쌘지 득달같이 달려드는 상대.
<…….>
황제는 굳은 얼굴로 속도를 높였다. 아니, 종래에는 아예 아스터를 등지고 달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어딜?”
층, 층층, 층츠츠츠츠츠층!
경로상으로 피어오르는 푸른 빛무리. 이내 파지직, 마찰음을 토해 내더니 온 사방을 밝힌다.
잇따르는 충격파!
<……이!>
황제는 결국 역장을 펼치기 위해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버러지 같은 것이……!’
상대의 경지가 자신보다 높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오히려 하수다.
물론, 데스트로우와 인간. 고대의 마법사와 현대의 마법사. 둘 사이에 동일한 기준의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판에 오른 당사자들은 안다.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
상대를 짓뭉갤 수 있을지, 짓뭉개려면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지.
그런 의미에서 아스터는 자신에 비해 명백한 하수다.
츠즈즈―
빌어먹을 역천이 끝없이 압박을 가해 오지만, 또 녀석이 역천의 도움으로 해괴하게 변화했다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
황제가 위고, 아스터는 어디까지나 아래였다.
‘한데, 대체 왜?’
<……큭!>
빡! 하는 소리와 함께 휙 돌아가는 시야. 아스터의 주먹이 턱주가리를 갈겼다.
마법사라고는 믿기 힘든 일격이었다. 아무래도 주먹을 두르고 있는 기묘한 마력의 파장 때문인 듯.
쾅!
“……!”
더 이상 거리를 벌리기를 포기한 것일까? 아스터의 면상을 이마로 들이박는 황제.
아스터는 두어 걸음 물러서더니, 핏물 가득한 치아를 보이며 웃어 보였다.
“주먹다짐하자고? 난 그것도 잘하는데.”
<…….>
둘 사이로 느닷없는 난투가 시작됐다.
뻑! 뻐어억―!
가죽 북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때마다 누군가의 몸이 크게 들썩인다.
그러는 와중에도 황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이 해괴한!’
온 세상을 발아래에 두기까지, 무수한 정복 전쟁을 펼쳐 온 황제이다.
가장 뛰어나다는 기사부터 마법사. 그리고 곳곳에 숨어 있는, 온갖 해괴한 술수를 쓰는 강자들을 다 만났다.
그중에는 정석으로 정점에 오른 천재는 물론이고, 지독한 둔재이지만 끝없는 노력으로 길을 개척한 노력가도 있었다.
때로는 정통하지 않은 편법으로, 황제의 목숨을 앗아 갈 뻔한 강자도 있었다.
그야말로 만전(萬戰).
하나, 만승(萬勝)이라.
황제는 만 번 싸워 만 번을 승리하였다.
하나, 그런 황제가 보기에도 아스터의 전투 방식은, 아니. 아스터라는 사람 자체는 불가해한 것이다.
뻐억―!
“꺼억……!”
명치에 고스란히 꽂히는 주먹. 그 눈을 회까닥 까뒤집는다. 그대로 꼬꾸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타격이었다.
하지만.
<……컥!>
빠악!
마치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인지, 눈을 까뒤집은 채 내뻗는 주먹이 면상에 꽂혔다.
두려움이 없는 것인가? 아니, 조금 다르다.
혹 전투를 즐기는 것인가? 투왕(鬪王). 마지막까지 황제를 애먹였던 전투광처럼. 고통에서 희열을 느끼나?
아니, 그도 아니다.
빠각! 빡! 뻐억!
서로 주고받는 타격. 한 대를 내주면, 반드시 한 대를 갚아 준다.
황제와 아스터의 전투는 마법사와 마법사의 전투라기보다는 기사의 난투에 가까웠다. 아니, 기사의 난투라기보다는 순수한 폭력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황제의 머릿속으로는 옛 상대들이 주르륵 스쳐 지나갔다.
‘어찌, 이런 자가 있는가!’
저 눈빛을 보라.
“……흐흐.”
뭇 괴수들 위에 군림하던 야왕(野王)보다 거친 야성이 번들거린다.
그 호전성은 투왕을 아득히 능가하며, 그 살기는 만 번의 전장 속에서 가장 많은 살육을 저지른 병사보다 짙고 또 짙다.
“딴생각하지?”
와락!
쾅! 쾅! 쾅! 쾅!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어깨를 붙든 채 이어지는 무식한 박치기.
놈은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피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연신 몸을 움직였다.
마치, 제 피를 내주어도 털끝 하나 건드리면 된다는 것처럼, 제 살을 내주어도 피 한 방울 취하겠다는 것처럼.
상식과는 다르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것이 전사가 가져야 할 당연한 마음가짐이거늘.
<크읏―!>
그쯤 생각했을 때.
황제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노옴……!>
황제가 노호성을 터트린 것은 그때였다.
“허어……?”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낀 것인가. 망설임 없이 뒤로 휙 물러서는 놈.
파아앙―!
황제의 몸뚱어리로부터 무지막지한 기파가 흘러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인정하마.>
파스슥―
기파가 번짐에 따라 까맣게 죽어 가는 대지. 자연이 썩어 들어간다.
고대의 망령.
충성스러운 수하들이 웬 방해자 따위에게 묶여 있는 지금. 웬만하면 데스트로우의 힘은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적당히 해서는 안 되겠구나.>
세월의 차이인가? 자신이 잠들어 있는 사이, 마법과 무(武)에 발전이 있었을 수도 있다. 전투의 풍조가 달라지고 옛것들이 파훼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 그도 아니면 그저 놈이 특출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인간의 방식으로는 네놈을 잡기 쉽지 않겠구나.>
곧 사방으로 짙은 사기가 넘실거렸다.
황제의 육신으로 번지는 보랏빛 기운.
황제가 마법사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데스트로우로서 힘을 꺼내 보인 순간이었다.
압도적인 공포.
하나, 아스터는 그 모습에 위축되지 않았다.
“어쩐지, 쉽다 했다.”
익숙했으니까.
“그러면 나도…….”
파지직, 파직.
몸 전신으로 번져 나가는 푸른 스파크.
마치, 뇌전을 두른 것처럼. 아스터의 주변으로 마력의 스파크가 일렁거렸다.
곧―
콰앙―!
충돌하는 섬광과 뇌전. 주변이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들어 갔다.
* * *
하늘 위로 이는 불길한 기운.
먼발치에서 데스트로우의 도래를 목도한 샤인과 오베른은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받은 영약을 다 털어 넣으며 달려온 고대의 유적지.
[이, 무슨…….]
샤인은 망연히 서서 전방을 눈에 담았다.
번쩍―
우르릉…… 쾅!
마치 하늘의 뇌운이 지상에 도래한 것처럼, 지면 위로 거센 벼락이 내리친다.
아니, 내리친다기보다는 땅으로부터 솟구친다 하는 표현이 옳을 터였다.
그 모습은 마치…… 그래.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천상의 신들이 땅으로 추락한 것 같다.
샤인마저도 압도될 만한 흉흉한 기세.
[그 간악한 놈이…… 저 정도였단 말이냐?]
푸른 뇌전과 보랏빛 섬광이 번뜩여 아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샤인은 당연하게도 푸른 뇌전이 아스터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짙푸른 뇌전은 아스터가 지닌 마력의 기질과 매우 흡사한 것이었으니까.
“저, 저도…… 잘…….”
오베른은 반쯤 넋이 나간 채 장면을 눈에 담았다.
흐리멍덩한 눈동자. 초점이 흐리다. 어딘지 모르게 총명함이 흐려진 눈빛.
데스트로우의 사기 때문은 아니었다. 또한, 아스터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 부정함 때문에 정신이 나간 것 역시 아니었다.
데스트로우의 온 사기는 아스터에게 집중되어 있고, 주변으로 흩뿌리던 부정함마저도 아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갈무리되어 있었으니까.
다만, 오베른이 넋을 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
경이롭다.
흉흉한 보랏빛 섬광이 번뜩일 때마다, 내면 깊은 곳의 공포가 솟구쳤다. 하지만, 푸른 뇌전은 어떠한가.
황홀경.
흔히 말하길, 대가의 예술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혼을 빼놓는다 한다. 본능을 매료시키는 아름다움.
푸른 뇌전은 마법사에게 있어, 그 어떤 대가의 예술품보다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왜 안 그럴까.
극에 달한 마력 운용.
그것이 품은 심상(心想)과 원리를 떠나서, 그 존재 자체가 가장 순수한 마력. 그 파괴력을 이끌어 낸 것일진대.
한편, 샤인의 관점은 조금 달랐다.
[더럽게…… 잘 치는군.]
번뜩이는 섬광 탓에 손짓과 발짓은 보이지 않지만, 전투의 기세와 흐름은 도리어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는 추상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이던 흐름이 마력이라는 매개를 만나 구체화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
파지직― 쾅! 쿠구궁……!
뭉쳤다 흩어지고, 다시 또 서로에게 달려들어 격한 충돌을 반복하는 두 빛무리.
언뜻 대등해 보이지만, 마스터 나이트에 올랐던 샤인의 안목에는 여실히 보인다.
‘우세는…… 데스트로우.’
아스터는 그저 거칠게 날뛸 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매료된다.
거칠다. 난폭하다. 그악스럽다. 효율 따위는 일절 신경 쓰지 않은 채, 그 어떤 형식도 띠지 않는 흐름.
하나, 샤인은 그로부터 자유를 느꼈다.
아니, 자유가 아닌…….
―경외.
끼기긱―
샤인이 제 감정을 알아차린 것은, 저도 모르게 거세게 움켜쥔 손아귀에서 마찰음이 흘러나온 직후였다.
‘이 내가…… 경외를 느꼈단 말이냐?’
어째서?
그 움직임만 본다면, 생전의 자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형(形)과 식(式). 그것을 철저히 체화시켜 자유를 얻어 낸 기사들과는 달리, 그 어떤 기반도 없이 쌓아 올린 자유는 아득하게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한데, 왜?’
[이…… 썩을. 내가 저 간악한 놈한테?]
샤인, 제 스스로는 납득하지 못하지만,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때로는 그 완성도를 떠나서, 존재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것이 있으니.
마법사이지만, 스스로 체득한 무(武). 전생이라는 한 평생. 아스터가 쌓아 올린 무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래서야…… 끼어들 수도 없지 않겠느냐.]
단순히 그 격렬함 때문만은 아니다.
아득히 자유로우면서도…… 거칠게 상대의 흐름을 끊어 버리는 흉포함. 맹렬히 날뛰는 가운데에서도, 상대가 가진 전투의 맥을 끊어 전투를 조율한다.
이것이 바로 황제가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였다. 태생이 무(武)가 아닌 마법사인 황제로서는 어떻게 해도 깨달을 수 없는, 아스터의 전투 방식.
하지만.
샤인은 그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연민을 느꼈다.
고독(孤獨).
아스터의 전투에 아군이라는 개념은 없었으니까.
한 수, 한 수는 비효율적이지만, 전투 전체로 보자면 철저하게 효율적이다.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게 짜인 흐름.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이냐.’
아직은 조금 먼발치.
전투의 여파가 닿지 않는 곳에서, 샤인과 오베른은 아스터의 전투를 눈에 담았다.
누군가는 아득한 황홀경을, 누군가는 때아닌 연민을 느끼는 가운데.
<…….>
“…….”
쉴 새 없이 부딪치고 떨어지는 두 존재. 데스트로우 황제와 아스터.
흘러내리는 핏물마저도 마력의 뇌전에 금세 증발해 사라지는 가운데.
황제는 우묵한 두 눈으로 상대를 눈에 담았다.
“…….”
놈은 웃고 있었다.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