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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99화 (99/559)

99화. 새가 아니었다

가공할 사기(邪氣). 보랏빛 운무가 가득한 공간으로 빛이 터져 나왔다.

쩡, 쩌저정―!

음습한 보랏빛과 푸른 섬광의 충돌.

푸른 뇌전이 하늘로 솟구치는 가운데,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콰광! 쾅! 쾅!

<……큿!>

황제는 쉬지 않고 퍼부어지는 연격에 고통 어린 신음을 씹어 뱉었다.

뼈를 울리는 타격. 사기(邪氣)로 양팔을 겹겹이 감쌌지만, 그 충격은 뼈에 닿는다.

‘어찌…….’

데스트로우로서의 힘을 개방한 순간, 둘 사이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츠즈즈, 츄륵.

교차시킨 양팔. 팔뚝 위로 일렁이는 역천(逆天)의 속박. 이 빌어먹을 억압은 여전하지만, 그렇다 해도 저깟 필멸자를 못 당할 자신이 아니다.

‘한데 어째서!’

쾅!

연격의 호흡이 끊기는 타이밍. 황제는 아스터의 목덜미를 잡아다가 곧바로 대지에 내리꽂았다.

“……커헉!”

반동으로 솟구치는 몸뚱어리. 활처럼 꺾이는 몸. 쩍 벌어진 아가리로 한 움큼 선혈이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곧 푸른 뇌전에 증발돼 사라진다.

<이토록……! 연약한 몸뚱어리가 아니냐!>

쾅! 쾅! 쾅! 쾅!

황제는 분풀이를 하는 듯, 아스터를 마구 밟았다. 발길질 한 방, 한 방에 대지가 흔들린다.

마치 물을 잔뜩 먹인 스펀지를 쥐어짜는 것처럼 터져 나오는 각혈!

우드득!

아득한 통증에 황제가 비명을 내지른 것은 그때였다.

<……카악!>

기형적으로 꺾인 발목. 덜렁거린다. 곧이어 빡! 소리와 함께 눈앞이 번쩍였다.

곧장 몸을 일으킨 아스터가 그 턱주가리를 후려갈긴 것이다.

하나, 황제는 데스트로우.

우드득, 우득.

그 발목은 시간을 되돌린 듯 원상태로 돌아가고, 아득히 나갔던 정신은 오뚝이처럼 제자리를 찾는다.

다시금 돌아온 시야.

히죽 웃는 아스터의 면상이 황제의 시야를 가득 채운 가운데, 다시금…….

쩌엉!

<크읏!>

무지막지한 박치기에 황제는 두어 걸음 뒷걸음쳤다. 촤악! 피 대신 보랏빛 사기가 뿜어지는 가운데, 황제는 혼미한 정신을 바로잡았다.

<이 무식한 것이! 네놈은 긍지도 없는 것이냐!>

제아무리 버러지라 하지만, 상대는 당대 역천(逆天)의 주인이다.

마법이라는 위대한 여정. 그 끝에 당도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단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천재도 바라마지않는! 재능 한 푼 없는 둔재는 제 영혼을 팔아서라고 사고파 하는!

온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특권!

그것을 거머쥔 자가 어찌……!

“긍지? 그게 뭔데?”

<……!>

황제는 다급히 양손을 아래로 뻗었다. 사타구니를 향해 곧장 날아오는 정강이!

턱!

아스터의 발길질을 막아 낸 황제의 눈동자에 불꽃이 튀었다.

<이 개 같은 것이……!>

저 빌어먹을 것의 전투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뒷골목 왈패들조차도 수치스러워하는 수단을 망설임 없이 숨 쉬듯 퍼붓는다.

적이지만 경외할 만한 마력의 운용. 가공스러운 전투 감각과 야성을 지녔음에도,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그 수준이 한참 바닥을 친다.

그러니, 황제로서는 어찌 분노하지 않을까.

<우선, 그 다리 먼저 분질러 주마!>

황제는 정강이를 움켜쥔 양손에 사기(邪氣)를 담았다.

파지직, 파직!

몸뚱어리를 감싼 마력의 뇌전이 설핏 흐트러지고, 기형적으로 꺾이는 정강이.

“끄으……!”

으스러지는 뼈. 그에 스미는 사기(邪氣)에 아득한 고통이 뇌리를 침범하는 가운데, 아스터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황제는 제 어깨를 움켜쥐는 아스터의 손길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보통 이 뒤에 날아오는 것은 박치기. 나름대로 패턴을 학습한 것이다.

하나, 그런 것도 잠시. 곧 숙였던 황제의 고개가 휙 뒤로 꺾였다.

<끄아아아아악―!>

아랫배 깊은 곳으로부터 치미는 깊은 비명.

꾸드득!

쇄골이 으스러진다. 악력이 어찌나 센지 살을 짓이기며 뼈를 압착시킨다.

다급히 사기(邪氣)를 둘러 침범을 막으려 했지만 왜일까. 힘없이 흩어지는 사기(邪氣)!

파스슥, 팟!

푸른 뇌전이 몇 차례 튀는가 싶더니, 몰려든 사기를 깨끗이 흩었다.

간섭식(干涉式). 일전에 칼라헨의 역장을 흩어 낸 기술이었다. 마력의 파장을 맞춰, 상대 마력을 흩어 내는 마력 운용. 그것이 데스트로우의 사기(邪氣)에도 적용된 것이다.

우드득, 우득!

기묘한 대치. 서로가 서로의 뼈를 으스러트린다. 하나,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끄으으으으으으!>

황제는 고통에 눈을 까뒤집으면서도, 아스터의 정강이를 으스러트리려…… 아니, 뜯어내려 힘을 주었고.

“흐흐.”

아스터는 핏물로 범벅이 된 뻘건 치아를 내보이며 황제의 어깨를 힘주어 비틀었다.

아득한 통증.

‘정녕…….’

황제가 가까스로 떠 보인 눈동자로 아스터를 눈에 담았다.

이해할 수 없다.

멍청한 머저리가 아닌 이상, 이따위 소모전으로는 가망이 없다는 걸 모르지 않을 터였다.

아니, 머저리라 해도 알 만한 사실이었다.

뼈가 으스러져?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신은 사기(邪氣)가 충만한 이상 끝없이 수복하는, 불사(不死)에 한없이 가까운 몸.

‘한데, 이런 나와……!’

이따위 소모전을?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짓!

황제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역천을…… 믿, 는 것이…… 카아아악!>

투툭, 뜨드득!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화끈한 통증이 뒤따랐다. 아니, 숫제 누군가 골통을 열고 쇳물을 부은 것 같다.

곧…….

촤아아아아아악―!

사방으로 짙게 피어오르는 사기(邪氣). 보랏빛 운무가 악마의 날개처럼 부채꼴로 흩뿌려지는 가운데.

툭, 투둑.

대지 위로, 뜯겨 나간 황제의 양팔이 나뒹굴었다.

<끄으으, 끄윽……!>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고통이었다.

제아무리 만 번의 전장을 겪은 황제라지만, 산 채로 양팔이 뜯기는 고통 따위를 겪어 볼 일이 무에 있을까!

아니, 애초에 황제는 고통이란 것에 익숙지 않았다.

그만큼 압도적이었기에.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서, 모든 것을 아래로 깔아 보았기에.

하지만.

<끅, 끄으으으으으……!>

황제는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통증을 간신이 내리누르며, 핏발 선 눈동자로 전방을 눈에 담았다.

지독한 격통, 괴롭다. 미칠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있었으니.

우득, 우드득.

뒤로 물러서서, 태연히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제 다리를 매만지는 상대.

그러다가, 문득 눈이 마주치자…….

“…….”

히죽.

머금는 미소.

그래, 저것이다.

이 고통도, 이 뭣 같은 상황도. 뭐 하나 제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 전투도.

모든 것이 다 속에서 천불을 끓게 하지만, 저 미소가 가장 큰 고통이다. 아니, 저 미소가 후비는 자존심. 그것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이 가장 크다.

<역천, 역천을…… 믿는 것이냐?>

꾸드득, 꾸득.

황제는 양팔이 재생되는 것을 기다리며 아스터를 쏘아봤다.

하나, 대꾸는 없었다.

“…….”

그저, 우드득. 우득. 으스러진 뼈가 붙을 리도 없건만, 계속해서 으스러진 뼛조각을 어루만진다.

머금은 미소. 살짝 말려 올라간 입꼬리가 이따금 일그러지긴 했지만, 흡사 고통이 없는 듯. 섬뜩한 광경이었다.

그 입이 열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방금 그건 충돌식(衝突式). 그리고 이건…….”

<……!>

파지직!

눈앞에 일렁이는 빛무리. 황제는 그것을 파악하자마자 곧장 몸을 날렸다. 채 팔뚝이 재생되길 기다릴 틈도 없었다.

“……폭멸.”

<이 개 같은 것이!>

황제는 바닥을 구르다 멈추기 무섭게, 역장을 펼쳤다.

번쩍―! 꽈드드득―!

폭풍우처럼 역장을 두드리는 충격. 그 거센 파장 앞에서, 황제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이 나를……!’

농락해?

모든 전투를 제 입맛대로 끌고 간다.

강제로 짓쳐들어와 육탄전으로 끌고 가더니, 온 신경이 쏠려 있으면 이렇게 한 번씩 충격이 터져 나온다.

가뜩이나 들끓던 분노가 한도 끝도 없이 치솟았다.

하지만, 황제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승리……? 그따위는 처음부터 정해진 수순이었다.’

야수처럼 흉포한 기세. 꺾이지 않았다지만, 다만 그뿐이었다.

황제는 안다.

저놈은 지금도 죽어 가고 있다.

‘제아무리 역천(逆天)이 사기를 몰아내 준다 해도…… 완전한 면역은 불가능할 것이다.’

타격당한 상처 부위. 뼈 한 마디. 살 한 조각에 사기가 스며들 것이다. 조금씩 쌓이고, 쌓여 몸뚱어리를 내부에서부터 썩혀 나가겠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황제는 시종일관 아스터를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

피비빗. 콰드드드득!

쉴 새 없이 역장을 두들기는 마력의 파동.

번쩍!

황제는 이따금 내리치는 푸른 뇌전에 흔들리는 역장을 눈에 담았다.

저놈…… 비정상이다.

제아무리 용맹한 자라 해도, 진즉 마음이 꺾였어야 한다.

역량? 압도적이다. 아무리 잘 버티고 있다지만, 그 마력에는 한계가 있고 그마저도 ‘간신히’일 뿐이다.

수 싸움은? 성립하지 않는다. 제 놈은 뼈를 내주어야 간신히 살을 취할 수 있는데, 자신은 불사(不死)에 가깝다.

한데.

<한데…….>

저놈은 꺾이지 않는다. 마치, 자신이 이길 거라고 확신이라도 하듯이.

황제의 머릿속에 거대한 의문이 떠오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대체 네놈은…… 무어냔 말이다!>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내가 뭐냐고?”

<……?>

휘몰아치는 마력의 폭풍. 그 여파를 온몸에 받으며 놈이 다가왔다.

픽! 피비비빗!

촤작!

제 술수이건만, 막아 낼 힘도 없는 것인가? 그 여파에 머리칼이 산발이 되어 흩날리고, 몸이 이리저리 휘청이며 꺾인다.

쩌저적!

끝내는 살이 쩍 갈라지며 피 분수가 쏟아지기까지.

그런 와중에.

텁.

역장 위에 손을 얹는 놈.

<……!>

황제는 두 눈을 부릅떴다.

“아, 이건 간섭식. 이런 활용은 처음 보여 주지?”

놈의 손아귀를 중심으로 역장 전체로 번져 가는 기이한 파동. 곧…….

스륵.

역장이 힘없이 스러진다.

황제의 주변으로 사기가 휘몰아친 것은 그때였다.

<네놈…….>

휘이이이이―!

사기의 소용돌이가 난폭하게 주변을 긁어내는 가운데. 아스터는 그 소용돌이를 한 발짝, 한 발짝 거닐었다.

절뚝, 절뚝.

으스러진 뼈이건만, 어찌 두 발로 걷는지. 황제는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그저―

<……그만 죽어라.>

꽈악 그러쥐는 양손. 동시에 황제의 이마로 핏줄이 불룩 솟으며, 사기가 밀려드는 파도처럼 아스터를 덮쳤다.

힘을 채 되찾지 못한 상태에서, 사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려니 적잖은 심력이 소모된 것.

하지만.

절뚝.

아스터는 멈추지 않았다.

<끄, 으…….>

황제의 손아귀가 다시금 꽉 쥐어졌지만, 절뚝이는 걸음은 그저 더뎌졌을 뿐.

“……커헉!”

검게 물든 피를 토해 내면서도 그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한 발짝, 한 발짝 절뚝이며 서서히 다가올 뿐.

그리고 지척에 도달했을 때.

“난…….”

텁.

아스터가 허물어지듯 황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이마가 어깨에 기대졌다.

황제는 그 와중에도 미동하지 않았다. 그저,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 사기(邪氣)로 옭아맨 아스터를 그대로 터트리기 위해 심력을 쏟을 뿐.

그런 황제의 귓가로 쌕쌕거리는 목소리가 나직이 스쳤다.

“……난.”

난 무엇이냐.

아스터는 생각했다.

‘트러블슈터?’

아니다.

‘아카데미생?’

아니다.

‘흑백 지대 부랑아?’

아니다.

‘미래의 대현자?’

아니다.

그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다.

‘나는…….’

한때 트러블슈터. 데큘란가(家)의 개X끼이자, 이제는 제니온의 아카데미생. 태생은 흑백 지대 부랑아요, 미래에는 대현자로 거듭날 몸이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자신을 정의할 수는 없다.

하면…….

“나는…….”

무엇인가.

살짝 감긴 눈. 몽롱한 정신으로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어디고 난 누구인가. 아, 이곳은 사지(死地) 묫자리라. 내가 뒈질 곳이다. 하지만, 이 길은…….

그래.

응당한 자유로 도착한 길.

“나는…….”

꾸드드드득―

데스트로우의 압박이 거세졌다. 그런 가운데, 아스터의 입이 열렸다.

푸르른 창공. 심상의 하늘 위로 한 마리 새가 날았다.

……아니.

새가 아니었다.

“……와이번이다.”

그 순간이었다.

쩌어어어어어어억―!

뇌리로 스쳐 지나가는 거대한 파열음.

아스터의 심상 한편으로 거대한 균열이 번졌다. 작은 실금으로 시작해, 곧 전체로 번져 나가는 주체할 수 없는 어긋남!

“……아.”

꾸드득, 꾸득.

울컥, 울컥.

더욱 강해진 황제의 사기.

코와 입을 통해 꺼멓게 죽은 핏물이 흘러나오고, 장기가 내부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는 가운데.

아스터는 깨달았다.

“……비웠다.”

후둑, 후두둑.

심상 한편에 굳건히 자리한 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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