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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104화 (104/559)

104화. 그냥 하늘이 예뻐서

어둑어둑 해가 저무는 가운데, 아스터와 일행은 야영을 결정했다.

“야영이라……. 하면, 쓸 만한 일꾼이 있느니라.”

대공녀는 쓱 일어나 어디론가로 사라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그녀는 레일리와 함께였다.

“주, 주군! 데스트로우를 처단하신 겁니까? 역시나! 이 오른팔 레일리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 컥!”

“죄인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이렷다?”

대공녀에게 얻어맞은 레일리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분위기를 살폈다.

폐허가 된 대지. 이곳이 하메른 대수림 한복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온 사방이 황무지가 되어 버렸다.

바닥은 꺼멓게 죽어 밟는 것만으로도 조심스러울 지경이었는데, 썩은 대지보다 더 우중충한 것은 오베른의 얼굴인지라.

‘어딘지, 마법사님도 영…… 아!’

자연스레 아스터의 기색도 살피던 레일리는 곧 일행 중에 빈자리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이봐, 떠벌이. 입 안 닥쳐?

자신을 떠벌이라 부르며, 걸걸한 입담을 자랑하던 데스나이트.

아스터 못지않게 지랄 맞고 그러면서도 어딘지 어수룩했던 작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그럼 저는……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레일리는 주섬주섬 아스터가 넘겨줬던 아공간에서 야영에 필요한 물품들을 꺼내 놓았다.

내리깔리는 어둠과 함께 찾아온 적막.

달그락, 달그락.

레일리가 야영을 준비하는 소리만이 나직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일행들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

오베른은 샤인의 상실을 털어 내지 못한 것인지, 퀭한 눈동자로 타들어 가는 모닥불만을 멍하니 눈에 담았고.

“…….”

질겅질겅.

대공녀는 턱이 아플 정도로 질긴 육포를 짓씹으며 아스터를 살폈다.

사실, 묻고 싶은 것이 한가득이다.

삭월(朔月)의 증표. 어떤 경로로 스승이 그것을 저 사제에게 내어 준 것인지.

데스트로우와는 어찌 맞섰던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에 보았던 그 커다란 불기둥. 그 마법은 무엇이었는지.

아니, 그보다는 사형을 보고도 한마디 인사도 안 하는 건방진 사제를 혼쭐 내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하지만, 대공녀는 공감 능력이 떨어질지언정 경우가 없는 자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손아랫사람을 핍박하는 것도 윗사람의 도리가 아니라지.’

학습된 처세랄까.

대공녀쯤 되는 신분이면 처세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겠지만은, 대공녀쯤 되는 공감 능력이면 신분이 무색한 일도 생기는 법이었다.

신분이 모든 실수를 무마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영 이해하지 못할 심정도 아닌 것이다.’

전우(戰友). 이를 잃은 슬픔의 크기는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쉬이 짐작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대공녀 역시 전우를 잃어 본 적이 있었기에.

- 명령이니라……! 죽지, 죽지 말지어다. 감히, 네깟 것이 이 몸을 두고……!

꼴사납게 눈물을 흘리던 그 날을,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았기에.

‘그래도…… 영 싹수가 노란 놈은 아니렷다?’

전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안 직후.

- ……썩을.

단 한마디뿐이었지만, 잃어 본 자는 안다. 그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지. 또한, 차마 담지 못한 감정이 그 밖에도 얼마나 많은지.

그렇게.

타닥, 탁.

한 소년은 상실에 허덕이고.

질겅질겅.

달그락, 달칵.

그 심정을 공감하는 여인은 기다림을 곱씹었다. 그리고 한 사내가 그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

아스터는 밤하늘에 떠오른 별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말없이, 묵묵히. 그저 가만히, 마치 저 무수한 별 무리를 헤아리기라도 할 것처럼.

밤이 새도록.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하염없이 밤하늘을 눈에 담았다.

제멋대로 뒈져 버린 놈 때문이 아니라, 갚을 수도 없는 빚을 지운 빚쟁이가 못마땅해서도 아니라, 그냥.

그냥…… 하늘이 예뻐서.

그 외에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단, 제4 베이스캠프로 향하겠노라. 죄인은 속히 길 안내를 하도록.”

“저, 그…… 예, 옙!”

대공녀의 명령에 레일리는 속히 짐을 챙기고는 금세 떠날 채비를 마쳤다.

그렇게, 일행이 모두 떠나갔을 때.

자리에는 전에 없던 큼지막한 돌덩이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약골, 여기 잠들다.

성의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삐뚤빼뚤한 글씨체. 누가 남겼는지 빤한 문구였다.

휘이이이이―

아스터 일행이 떠나간 자리. 모닥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야영지 위로 메마른 바람 한 줄기가 대지를 훑었다.

고요한 적막.

데스트로우로 인해 단 한 줌의 생명체도 남지 않은 대지는 고독하기 그지없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만이 손님이 되어 공간을 휩쓰는 가운데.

그극…….

미약하게 맥동하는 대지.

퉁― 하고, 멈췄던 심장이 초동을 시작하는 것처럼 옅은 맥박이 인다.

그렇게, 퉁, 퉁. 두어 차례 맥동했을까? 그 진동이 거세진 것은 그 직후였다.

그그그그그극―!

흡사 지진이라도 인 듯, 거세진 진동은 금세 사위를 떨어 울렸다.

데스트로우.

고대에 봉인된 흉물(凶物). 데스나이트 샤인의 검격에 소멸된 존재가 다시 되살아남일까?

아니다.

휘이이이잉―

대지는 진동하고, 대기 중으로 옅게 깔린 마나(Mana)가 한 점으로 몰려든다.

그 중심은 고대의 유적. 무너지고 폐허가 된 공동이었지만, 공동 안에 이는 기운은 사기(邪氣)라 보기에 어려운 것이었으니.

피처럼 붉은 기운.

혈마력

대기 중의 마나가 모종의 간섭으로 혈마력으로 변모한 것이다.

혈마력이 무엇인가.

이제는 기록으로밖에 남지 않은, 전설 속으로 사라진 종족의 전유물이다.

밤의 귀족. 달이 뜬 밤의 지배자. 한때, 흡혈귀(吸血鬼)라는 멸칭으로 사특한 취급을 받아 터부시되었지만, 그 존재는 고고하기 그지없는 존재들.

뱀파이어(Vampire)

* * *

혈마력이란 그들의 전유물이었으니.

한데, 어찌하여 혈마력이 이곳에?

이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였다.

황제가 역천(逆天)을 잃고, 사특한 술법에 취해 데스트로우라는 부정한 존재가 되었을 때.

모든 인간들이 두려움에 떨며 죽음만을 기다리던 그 시절.

황제를 막아선 것은 인간도, 다른 이종족도 아닌, 밤의 귀족 뱀파이어. 밤의 축복을 받은 이들이었으니.

이 유적은 고대에 밤의 귀족들이 만든 유배지이며, 데스트로우로 화한 황제를 잠재운 감옥이다.

그러니, 혈마력이 이는 것도 그리 이상치는 않았다.

하지만.

휘오오오오오―

고대의 유적 한복판에 뭉치는 혈마력.

그 혈마력이 만들어 낸 광경은 꽤나…… 아니, 일반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스멀스멀.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치면서도, 고요한 심장처럼 맥동하는 기류.

그 크기는 팽창하고 수축할 때마다 조금씩 크기를 줄인다. 그리고 그 크기가 최대한 줄어들었을 때.

파앗!

압축되고 압축되어 형상을 이루는 혈마력.

“…….”

혈마력이 빚어낸 형상은 웬 여인이었다.

키는 160cm 남짓 될까? 아니, 아슬아슬하게 못 미친다.

그 피부는 데스트로우의 그것처럼 무채색이지만, 색채가 없다기보다는 달빛처럼 창백할 뿐이니.

스륵.

여인은 감았던 눈을 뜨고는 시선을 내렸다. 홍옥처럼 붉은 눈동자에 비치는 창백한 손아귀.

“…….”

여인은 무어가 그리 신기한지 제 몸 이곳저곳을 바라봤는데, 그 모습은 마치 육신을 처음 얻은 사람과 같았다.

한데, 과연 밤의 귀족이라는 것인가?

어리둥절해하는 그 모습조차도 숨길 수 없는 기품이 묻어났으니.

다만, 그럼에도 마냥 고귀하다고만 볼 수 없는 것은, 그 육체 탓이리라.

몸을 이리저리 뒤틀 때마다 선명히 갈라지는 근육. 이두와 삼두. 광배와 기립근. 복근에서부터 둔근. 대퇴부에서 더 내려가 발가락 끝에 이르기까지.

신이 빚은 기사의 육체가 이러한 것일까?

이상적이다.

각고의 노력. 백련의 담금질이 필요하지만, 오직 담금질만으로는 빚어낼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 타고난 근골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오직 재능만으로는 빚어낼 수 없는.

극강의 육체.

이것이 여인을 마냥 고귀하게만 볼 수 없는 이유였다.

다만, 한 가지 흠결이 있다면 160cm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키랄까?

여인은 가장 가까운 벽. 벽을 빼곡히 채운 문자 하나를 기준으로 제 키를 대 보고는 와락 인상을 구겼다.

“……옘병.”

고귀함이 산산이 박살 나는 한마디.

하나,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는 욕지거리를 씹어 뱉었다.

“거, X발. 내 분명 2미터는 되어야 한다고 말했거늘.”

모름지기 기사라 함은 2미터에 달하는 거구. 큼지막한 대검을 이쑤시개처럼 휘두르는 게 로망이거늘.

다시금 160cm이 채 안 되는 키. 짜리몽땅한 단신의 육체를 얻었다.

사실, 여인에게 있어 키 따위는 그리 문제 될 것이 없는 부분이었다.

옛날, 여인이 인간이었을 때. 그녀는 이 부족한 신장을 가지고도 뭇 기사들의 정점이라는 마스터 나이트. 초월(超越)의 경지에 올랐으니까.

그뿐이냐? 황제의 목도 베었다. 물론, 그 전에 황제를 지키는 마스터 나이트들의 멱도 죄 따 버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

하나, 이는 필요성의 문제가 아니다.

평생의 로망이라. 단신으로 태어난 그녀가 생전에 평생을 바라마지 않던 이상이다.

한데.

“귀찮은 일을 맡겨 놓고는…… 이런 사소한 것 하나 처리를 못 한단 말이지?”

여인은 못마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데스트로우

그 빌어먹을 잡것을 일검에 베어 버린 후, 자신은 안식에 들 생각이었다.

솔직히, 조금 아쉽기는 했다.

데스나이트로서 겪는 영혼의 고통은 지극한 것이었지만, 두 번째 생…… 아니. 망자로서 만난 동료들과의 시간은 제법 나쁘지 않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일은 끝이 존재하는 법.

‘잘 있어라, 새끼들아.’

그렇게 생각하고 마지막 일검을 먹였는데…….

이게 웬걸?

- 반갑습니다, 기사여.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다.

의식이 픽 끊어졌다 돌아왔는데, 보이는 것은 온통 시뻘건 핏물이요, 눈앞에는 웬 여자가 앉아 있더라.

그런데, 지껄이는 말이.

- 전투를 모두 지켜봤습니다, 위대한 기사여. 저는 밤의 일족의 엘더. 부디 저의 부탁을 들어주세요.’

다짜고짜 부탁을 들어 달라고.

한데, 그 부탁이 무엇이냐.

- 밤의 일족을 부흥시켜 주십시오.

뱀파이어 일족을 부흥시켜 달란다.

물론, 그 이후에 이런저런 대화가 있기는 했다. 엘더의 사정이랄까.

‘……뭐, 빤한 이야기지.’

시장통에서 흔히 볼 법한 이야기였다.

세계를 위협하는 대악당. 정의로운 일족은 대악당을 물리쳤지만, 그 여파로 끝내 멸족에 다다른다.

하지만, 일족의 지혜로운 이가 안배를 마련했으니…….

여기서 말하는 지혜로운 이란 바로 엘더(Elder). 그리고 그 안배란, 이 핏빛으로 붉은 공간이라.

- 약속만 해 주신다면…… 당신에게 두 번째 생명. 밤의 삶을 드리겠습니다.

즉, 뱀파이어로서 되살려 주겠다고.

솔직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뒈진 놈을 어떻게 되살릴까. 그게 됐으면 네크로맨서가 시체나 만지작거리겠나. 진즉에 사장되어 사라졌겠지.

한데…….

‘……뱀파이어 일족은 가능하다고.’

뭐…… 그렇단다.

하도 못 믿으니까, 고대의 유적 전반에 새겨진 마법의 원리와 뱀파이어 종족의 태생적 특징에 대해서 줄줄이 읊어 줬는데…….

솔직히 이해는 못 했다.

그냥, 된다니까 그러려니 했을 뿐.

뭐, 나쁘진 않은 이야기였다.

‘요 근래는 제법…… 재밌었으니까.’

다만, 일족의 부흥이 좀 귀찮기는 한데,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을까.

대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2미터. 어째서 2미터가 아닌 거지?”

누누이 말했다. 새로 만드는 육신은 꼭 2미터여야 된다고. 1.5미터에 달하는 거검(巨劍)을 이쑤시개처럼 휘두르는 괴력까지도!

한데.

“이래서야 생전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쯧.”

다를 바가 없는 게 아니라, 완전히 같았다.

아, 다른 게 있다면…….

삐죽.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예리한 송곳니랄까? 참, 그리고 이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도 있었지.

“끄응.”

여인은 못마땅한 듯 바닥을 툭툭 차다가, 이내 휙 하고 공동 밖으로 몸을 날렸다.

탁.

“뭐, 좋다. 일단, 살아났다는 게 중요하지.”

물론 인간이 아니라는 부분이 좀 걸리긴 하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데스나이트였고, 인간이었을 때도 개같이 살았으니까.

“으하하! 이 몸이 돌아왔다!”

너른 황야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

하나, 듣는 이는 없었다. 이미 아스터와 일행들은 제4 베이스캠프로 떠난 지 오래였으니까.

여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대수롭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사락. 삭.

채 세 걸음 걷기도 전에 여인의 몸을 감싸는 암흑의 장막. 밤하늘을 떼어다 만든 듯한 로브가 덧씌워졌다.

위풍당당한 걸음걸이. 하지만, 그 키 탓일까? 아무리 좋게 보아도, 위엄이라고는 도통 찾아볼 수 없으니.

데스나이트 샤인 폰 르망이 뒈진 후 꼬박 하루가 되는 시점이었다.

고대에 유적지에서 나와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그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

야영지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새카만 대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깨끗한 돌덩이 하나.

약골, 여기 잠들다.

“약골, 여기 잠…… 이 잡것이!”

샤인은 가늘게 뜬 눈으로 돌덩이를 바라보다가 한달음에 뛰어올라 주먹을 내질렀다.

쾅!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악!”

단말마 비명 한 줄기와…….

파각! 콰득!

겹쳐서 울리는 두 줄기의 파열음.

‘파각’은 바위가 쩍 쪼개지는 소리요, ‘콰득’은 샤인의 손목이 아작 나는 소리라.

“이, 익…… 옘병……!”

샤인은 기묘하게 꺾인 주먹을 움켜쥔 채, 뇌리에 떠오르는 모든 단어를 씹어 뱉었다.

그 대부분이 욕설인 것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사실.

……뱀파이어 샤인 폰 르망.

너무도 하찮은 시작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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