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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113화 (113/559)

113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치졸한 샤인의 노림수였을까. 다행히 교장 선배가 검을 뽑는 일은 없었다.

내가 볼 때 가장 큰 이유는 검이 없기 때문이었다.

“……미안하다.”

의외로 교장 선배는 순순히 고개를 조아렸다.

응? 진짜로 고개를 조아렸다.

대역죄를 지은 죄인처럼 푹 숙인 것은 아니었지만, 정중한 사과였다.

“아니, 거. 뭐…….”

나로서는 제법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언젠가 한 번은 있을 일이었거든.

애초에 교장 선배가 내 존재를 묵인해 준 것도, 사람이 정상과는 거리가 먼 광인(狂人)이라 그랬던 거고.

대수림에서의 내 활약은 그런 광인의 기준에서도 이상하다 할 만한 것이었으니까.

내가 멋쩍게 있자, 교장 선배는 자신의 의심 동기를 소상히 풀어 주었다.

“변명을 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옛 생각이 났다. 그저 그뿐이었어.”

말하자면 이런 거였다.

제국과 왕국들 사이에 있었던 옛 전쟁.

겉으로 보이는 국지전만 해도 참혹할 지경인데, 그 물밑 공작은 더 치열했다더라.

이쪽에서 첩자를 하나 보내면, 저쪽에서는 둘을 보내고. 다시 넷을 보내면, 저쪽은 또 여덟을 보낸다.

우리 부대 에이스가 알고 보니 적의 첩자였다? 따위의 일은 예사였다고.

“…….”

난 그 말을 가만히 경청하다가 교장 선배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서 ‘이해’라는 것은 행동 원리를 이해했다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교장 선배의 마음.

전쟁 후 트라우마.

주로 퇴역 군인들에게 자주 보이는 증상으로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에도 계속적으로 그 충격에 시달리는 현상이었다.

굳건하다 생각했던 교장 선배. 그 마음 한편에는 옛 전쟁이 할퀴고 간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습관적으로 기척을 지우고, 존재감을 축소하고, 새로운 사람을 맞닥뜨리면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가 아닌 죽일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했다.

종이처럼 가벼운 내 마음에도 트러블슈터 시절의 짙은 얼룩이 묻어 있는 것이다.

여하튼,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 역시도 진지하게 선배를 마주했다.

“선배.”

“말해라.”

“선배의 심정은 십분 공감합니다. 예, 이해할 수 없겠죠. 태생은 흑백 지대 부랑아. 그나마 특별한 점이라고는 블란도가(家)와의 인연뿐.”

“…….”

“그 배경이 내 경지를 설명할 수 있느냐 하면…… 차라리 개 짖는 소리를 듣겠습니다. 그만큼 말이 안 되는 소리일 테니까. ……하지만.”

아지트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산들바람.

난 우묵한 눈동자로 선배를 바라본 채,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난, 건네 드릴 답이 없습니다.”

“…….”

“믿기 힘들겠지만, 진실만을 말했고. 거짓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믿음을 얻지 못했다면, 여기서 어떤 말이 더 필요합니까? 그저…… 이것이 저입니다.”

그래, 그냥 그게 나이다.

물론, 내 존재를 설명하자면 못 할 것은 없었다.

나의 경지는 전생으로 설명 가능한 일이고, 회귀는 화인(火印)의 존재를 밝히면 가능했다.

하지만, 이는…… 평생 들고 가야 할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이 밝힐 수 있는 사안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툭 떨어진 존재.

사실, 이는 비단 선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블란도가(家), 오베른, 리하임 선배는 물론이고, 첸비와 기타 등등. 어쩌면 데미안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라도 선배와 같은 상황이라면, 뿌리가 없는 내 본질을 의심하겠지.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인 것이다.

이 고독은 현생의 내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나 다름없었다.

딱히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땅히 감내할 마음가짐도 준비됐다.

다만…….

“거짓을 꾸며 믿음을 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저 그뿐으로 믿어 주면 안 되겠습니까?”

이는 내 작은 욕심.

큰 기대는 없었다.

나라면 못 할 테니까.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믿는다는 건, 말로는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데미안을 믿고, 첸비를 믿고, 샤인을 믿고, 교장 선배를 믿었던 것 역시, 그 사람 자체가 아닌 상황과 배경. 이해관계를 믿었던 것에 불과하니까.

내 말이 끝나자 아지트로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아침 식사 1호도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눈만 멀뚱멀뚱 뜬 채 교장 선배와 날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치졸한 샤인은 여전히 교장 선배를 쏘아봤고, 교장 선배는 우묵한 눈으로 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샤인이었다.

“난 믿는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

“네놈은 간악한 쓰레기이지만, 믿느니라.”

믿는 새끼가 여기까지 따라와? ……말이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내리눌렀다.

그런 한편, 뭐라 해야 할까.

‘…….’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교장 선배의 입이 열렸을 때.

“나도…… 믿겠다.”

난 나도 모르게 짊어지고 있었던 짐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툭.

나쁘지 않은 밤이었다.

해가 중천이지만.

* * *

한차례 푸닥거리를 한 덕일까? 이후 교장 선배와의 대화는 순조로웠다.

“큼, 흠흠.”

“흠흠.”

원래 나이를 들면 속내를 표현하기가 참으로 멋쩍은 일. 대화 중간중간 어색한 헛기침이 난무했다.

“한데, 이쪽은…….”

“이 몸은 샤인 폰 르…… 읍읍!”

“아까 말했던, 주운 놈과 낚은 놈 중에 주운 놈입니다.”

“샤인 폰 르망이니, 뱀파이어니 하던데……?”

난 선배의 미심쩍은 눈초리에 욕지거리를 씹어 삼켰다.

이 성질머리 더러운 것이 스토킹도 모자라 고새를 못 참고 정체를 죄 까발려 놨다.

제국 한복판. 그것도 친황실 기관인 제니온 아카데미에서 대역죄인의 이름을 올려? 아니, 그뿐이 아니었다.

‘뱀파이어는 개뿔…….’

이쪽이 본명보다 더 셌다.

모름지기 뱀파이어라 하면, 응? 동화고 신화고 나발이고, 대중적인 인식으로는 전설상의 마족. 혹은 그에 비견되는 인류의 역적이거늘!

한데,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일까?

“……뭐, 정신이 이상한 친구인가 보구나.”

“예, 뭐. 그렇죠.”

아니다. 저 눈빛은 결코 ‘정신이 이상한 친구’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다.

새빨간 눈동자. 날카로운 송곳니.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 누가 봐도 ‘뱀파이어’ 그 자체인데.

그 와중에 그림자 아래서 불쑥 튀어 올라? 거기에 뭐? 제 입으로 뱀파이어라고, 그것도 로드라고 지껄이기까지!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데, 왜일까.

선배는 구태여 캐묻지 않았다.

다만.

“그…… 사람 무는 개는 주인이 잘못이라던데.”

“제가 키우는 개는 안 물 겁니다. 개를 키워 본 적은 없지만.”

“다들 그렇게 말은 한다만……. 그래, 믿으마.”

대화를 못 따라가는 건 샤인뿐이었다.

‘개? 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하면서 나와 선배를 미치광이처럼 바라보는데, 그만 못 참고 쥐어박을 뻔.

이후에도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 참고로 내 경지에 관해서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아마 앞으로도 웬만하면 화젯거리로 올라오지 않을 주제였다.

다만, 걱정인 건 리하임 선배. 그나마 내 경지를 훤히 꿰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뭐, 괜찮겠지.’

함부로 말을 옮길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다.

아마, 리하임 선배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교장 선배가 날 더 잘 알고 있다고 여길 테니. 굳이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내뱉지도 않을 테고.

대공녀가 화제로 올랐을 때는, 대화의 맥이 한차례 꺾였다.

“참, 셋째는 다음 주쯤에 도착한다더구나. 어찌 얼굴이나 한번 볼 테냐?”

“미쳤습니까? 미친년도 보통 미친년이 아니던데.”

“……음.”

뭐지, 저 눈빛은?

마치 ‘네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데.’ 하는, 새삼스러운 적막.

교장 선배는 잠시간 날 바라보다가, 첫 만남에서 대공녀가 저질렀던 무례를 대신 사과했다.

이쯤 되니, 나도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삭월의 증표가 대체 뭐기에 그럽니까?”

“못 들었느냐?”

“뭐, 듣기는 했는데. 대충 ‘베어 먹힌 달’의 유니폼 같은 거 아닙니까?”

“그것도 맞지. 추억 아닌 추억이랄까.”

선배는 그 시절을 떠올리는 듯, 아련한 눈빛으로 테이블 위 삭월의 증표를 들여다봤다.

그러기를 잠시.

“셋째가 증표를 노리는 건, 나와 동료들끼리 증표에 건 약속 때문일 거다.”

“약속 말입니까?”

“그래. 소원권이라 해야 할까? 증표의 후계한테는, 소원 하나를 들어주기로 했지.”

“……아.”

이렇게 들으니, 대공녀가 삭월의 증표에 보였던 탐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거 잘하면 베어 먹힌 달을 다시 모을 수도 있는 일 아니야?’

아마, 대공녀의 비원은 ‘마도 명가(名家)의 몰락’.

그러니, 베어 먹힌 달이 절실할 수밖에.

비록 몇 세대 전의 인물들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교장 선배만 해도 봐라. 웬만한 현역 못지않게 팔팔하지 않나.

그런 내 눈빛을 알아차린 걸까? 교장 선배가 익살맞게 웃어 보였다.

“왜, 탐나느냐?”

“아뇨.”

이번엔 진심이었다.

“그래? 네놈이라면 눈이 뒤집힐 줄 알았는데.”

“딱히요.”

베어 먹힌 달이고 뭐고, 내 관심 밖이다. 뭐, 한 명, 한 명 찾아가 책이라도 한 권씩 받을 수 있으면 모르겠다만, 그것 자체도 보통 일이 아니고.

“그래, 잘 생각했다. 그리고 말이 ‘소원권’이지, 절대적인 약속도 아니야. 어차피 내키는 대로 행할 놈들이니까. 동료가 몇 명인데, 어찌 그 모든 후계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말이냐. 차라리, 오는 족족 죽이려 할걸?”

“예, 뭐. 끼리끼리 논다 하니까.”

“……?”

언뜻 눈가에 비치는 살기. 확실히 진심이었다.

여기서 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건 베어 먹힌 달의 일원들이 교장 선배 못지않게 미친 작자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참, 그런데 리하임 선배는 왜 부르려 하셨던 겁니까?”

“결계를 좀 치려고. 살바티움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방비하려면 그 친구 도움이 절실하더구나. 너도 봤으니까 알 텐데?”

하긴.

난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즉석에서 고대의 망령들만 솎아 내는 결계식을 만들 정도인데, 확실히 그만하면 살바티움도 어쩔 수 없겠지.

“참, 그 친구는 방학 때쯤 오기로 했다. 어떻게, 한번 볼 테냐?”

“아뇨, 딱히.”

난 이번에도 고개를 살래 저었다.

리하임 선배쯤 되면 얼굴을 몰라도 딱 마주하는 순간 알아채겠지. ‘아, 그놈이 저놈이구나.’하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교장 선배와의 패턴이 반복될 수도 있는 터라.

여하튼, 난 교장 선배에게 몇 가지 부탁을 마지막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참, 신분증 하나 구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신분증?”

“예, 이 친구가 쓸 게 필요한데.”

내가 가리킨 건 샤인이었다.

오늘 보니까 적당히 숨어다닐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이래저래 움직이려면 신분 하나쯤은 필요하니까.

“참, 그리고 일자리도 하나 알아봐 주십쇼.”

“일자리?”

“예, 식충이 하나가 더 딸려 와서. 패스파인더 하던 친구인데, 적당히 아카데미 경비 자리 정도면 될 겁니다.”

“그래. 두 개 다 알아 보마.”

오늘의 교장 선배는 꽤나 얌전했다. 하긴, 지은 죄가 있으니까 광증도 억눌러야겠지.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일어나려는데.

“후배야.”

“예, 선배.”

“미안하다.”

그 진중한 목소리에 난 픽 웃어 보였다.

“……별, 다 끝난 얘기 아닙니까.”

“……그래.”

서로 간에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다만.

“선배, 근데 정말 미안하십니까?”

“……?”

“아니, 그 왜. 말로만 미안하신지, 진심으로 미안하신지. 이게 또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잖습니까?”

자그마한 성의 표시.

지금 필요한 것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는 어떤 물질적인 대가가 아닐까?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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