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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138화 (138/559)

138화. 와이번과 파헤른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호구를 잡혀 애통한 것도 잠시.

나와 소가주는 본격적으로 협상에 나섰다.

아니, 이걸 협상이라고 해야 할까. 소가주와의 거래는 제법 호쾌한 면이 있었다.

“우선, 거래 방식은 무엇을 원하지? 대여? 양도?”

“당연히, 양도.”

로르텔이 인피니트 체인을 가지고 있는 이상, 데큘란은 포기하지 않을 터였다.

하니, 원흉을 제거하려면 당연히 우리 쪽에서 인피니트 체인을 가질 수밖에.

이런저런 사족 없이 거래 방식을 논하고. 또한…….

“참고로, 운철 10kg만큼의 대가를 바라지는 않네. 데큘란의 치부를 알려 줬으니, 그만큼의 값을 쳐 주지.”

간을 재지 않고 호쾌하게 바라는 정도를 말한다.

이는 썩 드문 경험이었다.

속이 배배 꼬인 것들은 뭐 하나 더 뜯어먹을 것이 없나 눈치를 살피는데, 이처럼 속 시원한 요구 사항이라니!

그뿐이냐?

“만약,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얼마간의 시일을 기다려 주지. 물론, 그리 오래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야.”

선뜻 나서서 이쪽의 사정을 봐준다.

이쯤에서, 소가주를 바라보는 내 눈빛에 생경한 빛이 맺힐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를 꽤나 혐오한다고 들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본데?”

“마법사는 혐오스럽지.”

하나, 그런 것치고는 너무도 호의적……까지 생각했을 때.

난 힐끗 파룬을 일별한 소가주의 눈동자에서 짙은 혐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음. 맞구나.’

누가 봐도 혐오하는 눈빛이었다.

그러니까, 먹던 빵에서 반동강이 난 벌레의 잔해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시선이랄까.

한데, 나는 왜?

내 시선을 느낀 것일까. 소가주는 제법 시원한 미소로 답했다.

“그대를 마법사로 보지 않을 뿐이지. 미친놈은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법이야.”

“…….”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만, 퍽 억울했다.

아마, 천원공을 빼돌린 게 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천원공을 빼돌린 미친놈들은 내가 아닌 헨지와 파룬이었으니까.

여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는 구태여 소가주의 오해를 정정하지 않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편히 말해 보게. 적어도 한 달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으니까.”

“한 달이라…….”

마음은 고맙다.

고맙지만, 딱히 필요한 호의는 아니었다.

이쪽도 대가는 단단히 준비해 놓았는지라.

‘정말이지…… 머리가 빠개질 뻔했지.’

왜 아닐까.

데큘란이 이번 일에 무엇을 제시했을지, 도통 감이 잡히지를 않더라.

아무리 소가주를 통한다 해도, 최소한 데큘란이 제시한 것보다 더 큰 대가를 준비해야 거래가 수월할 텐데.

그래서, 전생의 기억을 있는 대로 끄집어냈다.

‘정보면 정보. 기물이면 기물.’

로르텔이 혹할 만한 것들은 모조리.

그렇게 해서 준비한 카드는 총 두 개.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내가 준비한 카드만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다만, 고민이 있다면…….

‘몇 번째 카드를 내미느냐인데.’

둘 중 하나인데.

생각을 정리하기를 잠시. 나는 곧 바닥에 두었던 시선을 들어 올렸다.

내 결정은 이거였다.

“소가주, 내가 제시할 카드는 두 개다.”

두 개의 카드. 전부를 사용한다.

“두 개라?”

“본래는 하나만 있어도 충분할 테지만, 소가주의 호의를 보니 두 개를 전부 넘겨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군.”

“……아닌 것 같은데? 눈빛이 악하다.”

“그런가? 이상하군. 왜 그렇게 보이는 거지? 뭐, 여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난 찔리는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평온한 신색으로 말을 이었다.

우선 첫째.

“혹시 마갑(魔鉀) 칼리움이라고 들어 보셨나?”

“마갑 칼리움이라면…… 기억이 나는군. 기록에 따르면 마스터 나이트의 에테르도 막아 낼 수 있다는 기물 아닌가.”

“뭐, 기록에 따르면 그렇지.”

하나, 어디까지나 기록일 뿐이었다.

실제 위력은…… 뭐, 나도 직접 본 적이 없어서는 모르겠지만, 마스터 나이트의 에테르를 막을 정도는 아니겠지.

설령 막을 수 있다 해도, 갑옷이 버틸 수나 있을까? 뭐, 어쨌든.

“한데, 칼리움은 왜? ……설마?”

난 소가주의 물음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가 맞을 거야. 내가 제시할 첫 번째 카드가 칼리움이니까. 아, 지금 가지고 있는 건 아니야. 기왕이면 가져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한 터라.”

“하면…….”

“마갑 칼리움이 숨겨져 있는 장소를 알려 드리지.”

“……허!”

내 말에 소가주는 탄식을 토해 냈다.

그 눈동자에 옅은 탐욕이 어린 것도 그즈음이었다.

‘역시, 무인은 무인인가?’

마갑 칼리움이라 하면, 마검이나 마도서처럼 초월적 기물은 아니지만, 등급으로 치자면 당당히 그 밑에 자리하는 최고 등급의 기물이었다.

운철 10kg? 솔직히 말하자면, 마갑 칼리움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세상에 유일무이한 물건이었으니까.

물론…….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원래는 인피니트 체인에 더해서 몇 가지 보상을 더 뜯어내려고 했던 거지만…….’

이렇게 된 마당에야 무엇을 아까워할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정말로 전혀.

‘어차피, 나는 못 쓸 물건이고…… 식충이도 마찬가지지.’

그야말로 애물단지랄까.

그도 그럴 것이, 마갑 칼리움은 기물 주제에 제 주인을 가리는 건방진 것이었다.

만약, 인정받지 못한 자가 착용한다면…… 펑!

경지에 상관없이 우수수 터져 나가지.

이래저래 연구해 본다면 방도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몸뚱어리 터질 위협을 무릅쓰고 싶지는 않은지라.

한데, 그때였다.

“……위험한 건 아닌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

“표정이 꺼림칙하다.”

“……착각이군.”

“진짜인가?”

“진짜다.”

난 찔끔한 속내를 감추고 진솔한 눈빛으로 답했다.

따지고 보면, 거짓말은 아니었다.

전생에 마갑 칼리움이 발견됐을 때, 숱한 기사들이 뒈진 후에야 비로소 칼리움의 인정을 받은 건 바로 소가주였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불현듯 엄습하는 불안감에 사족을 붙였다.

“아, 참고로 칼리움의 주인은 소가주여야 해.”

“……왜지?”

“신뢰의 증표라고 하지. 소가주도 알다시피…… 칼리움 정도면 인피니트 체인에 차고 넘치는 대가가 아닌가. 물건값만 생각했다면 결코 제시하지 않았을 기물이지.”

“그래서, 차고 넘치는 가치로 내 신뢰를 사겠다?”

“흠흠, 그런 거지.”

꿈보다는 해몽이라고, 기깔나는 해석에 나는 그만 무릎을 탁 칠 뻔했다.

소가주의 눈빛에 호의가 짙어지는 것은…… 아마 기분 탓만은 아니겠지.

여하튼, 난 소가주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슬쩍 피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건 그다음 카드인데.”

솔직히, 이 두 번째 카드는 마음을 먹은 지금에도 말하는 것이 옳은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것은 그러니까…….

‘데큘란의 악덕.’

이는 로르텔의 한 봉신가와 연관이 있었다.

“소가주, 혹시 임피르라는 가문을 기억하나?”

“기억하지 못할 리가.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본가의 최고 봉신가였지. 갑작스레 멸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야.”

지금으로써는 불과 십여 년 전인가?

뭐, 여튼 그 시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임피르의 몰락에 데큘란이 어떤 관여를 했는가.

“소가주는 그 멸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내 물음에 소가주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러고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임피르 가주의 병환, 그리고 소가주의 급사. 구심점을 잃고 급격히 세가 기울었다는 사실만 알 뿐.”

그래, 역시 아는 건 딱 거기까지인가.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데큘란이 임피르를 몰락시킬 때, 여간 공을 들인 게 아니었으니까.

로르텔의 세를 약화시키기 위해, 수 년에 걸쳐 천천히 이루어진 작업이었다.

그러니, 로르텔로서도 이렇다 할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했겠지.

“한데, 임피르는 왜?”

소가주는 내가 갑작스레 십여 년 전에 멸문한 가문을 언급하자 의아한 듯했다.

난 그런 소가주를 향해 담담히 입을 열었다.

“만약, 그 멸문에 데큘란이 관여했다면 어떻게 하겠소?”

내 말이 끝났을 때.

“…….”

싸아아―

소가주의 얼굴 위로 서늘한 한기가 맺혔다.

“그게 무슨 말이지?”

“무슨 말이긴. 말 그대로의 말이지.”

소가주는 두 눈을 빛내며 날 쏘아봤다. 그 입이 열린 건 얼마 후였다.

“데큘란이 임피르의 몰락에 관여했다?”

“그렇지.”

“그대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고?”

그거야…… 솔직히 답하기 힘들었다.

내가 이 정보를 입수한 것은 전생, 로르텔 침투 임무를 받았을 때였다.

한데, 당시에 워낙 침투 경로를 찾을 수 없었던 터라…….

‘데큘란에서 던져 준 정보도 부실하고 말이지.’

그래서, 데큘란의 정보 창고를 몰래 뒤졌다.

당연히, 걸리면 뒤지는 행동이었지만, 이대로 로르텔에 쳐들어가도 뒤지는 건 매한가지라.

내통자와 임피르가(家)의 내막은 그때 알았다.

그때는 얼마나 열이 뻗치던지…….

‘내통자가 있는데, 지원을 안 해 줘?’

슬그머니 침투 경로만 알려 줘도 임무가 몇 배는 더 쉬워지는 것을!

뭐, 이해는 한다.

트러블슈터야 어차피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고, 내통자는 꾸준히 로르텔의 정보를 물어다 주는 정보책이었으니까.

이처럼 위험 부담이 큰일에 내통자를 소모성으로 쓰기에는 아까웠다는 거겠지.

뭐, 여하튼.

내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소가주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답할 수 없다는 거군.”

“이해해 줄 거라 믿는데.”

“……그래, 지금은 출처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지. 한데, 말뿐인 정보는 아니겠지?”

그러니까, 증거는 있냐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있을 리가. 데큘란 놈들이 그렇게 허술한 놈들도 아닌데.”

“한데, 그 말을 믿으라?”

“뭐, 당시에 내통자가 있다고는 하는데. 그 이름까지는 내가 기억이 안 나서. 믿고 안 믿고는 소가주의 자유겠지.”

“……하!”

내 태연스러운 태도가 우스웠던 건지, 소가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나, 그러기를 잠시.

“……가만, 내통자라 했느냐?”

“그런데?”

“혹, 이름이?”

“생각 안 난다니까?”

“아니, 내가 이름을 말한다면 떠올릴 수 있겠느냐?”

“그건…….”

난 갑작스러운 소가주의 태도에 의문을 표하는 것도 잠시,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봤다.

그때…… 이름이 뭐였더라?

‘지금 기억을 떠올리려니 좀 불길한 느낌의 이름이었는데.’

소가주의 말이 이어진 건 그때였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들었을 때, 난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와이바르 드 파헤란.”

“그래, 그거!”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넘겼는데, 불길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었다.

꼭 와이번과 파헤른의 이름을 합친 것만 같지 않나!

한데, 가만.

소가주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혹시, 내 기억을 뒤진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알지만,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소가주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난 내 추측이 맞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팔 장로……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거늘.”

증오가 가득 찬 소가주의 목소리.

문득, 난 하늘을 올려다봤다.

‘달님, 한 놈 더 갑니다.’

와이번인지 와이바르인지 하는 놈이 지금은 팔 장로인 것 같은데.

소가주의 눈빛을 보니, 오래 살기는 그른 것 같다. 하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왜냐.

‘증거가 없어서 말발로 털어야 했는데…… 이렇게 의심 가는 놈이 있으면, 일단 그놈 먼저 족치면 되거든.’

그러니까, 한결 쉬워진 상황이랄까.

하지만.

여기서 잠깐.

‘이건…… 이대로 넘어가기 좀 아쉬운데?’

원래 소가주가 반신반의할 때를 대비해서 내가 준비한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그냥 썩혀?

암, 그럴 수 없지.

난 목을 가다듬고는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가주, 솔직히 그 와이번인지 뭔지가 내통자라는 사실은 불확실한 거 아닌가?”

“이미 어느 정도의 심증은 있었다.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음.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는데.

하지만, 난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만약에, 와이번을 족쳤는데 임피르가(家)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그러면 어찌하려고?”

“그건…….”

말문이 막힌 소가주.

난 씨익 웃어 보였다.

솔직히, 나라면 그 와이번을 열심히 족칠 거다.

무고한 놈도 아니고, 죄가 있는 놈은 때리다 보면 알아서 증거를 만들어 주거든.

하지만.

난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한 묘책이 있는데…….”

“묘책?”

소가주의 눈이 흥미를 띠고 반짝이는 가운데,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임피르의 몰락에 데큘란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얻음과 더불어…… 증거 없이도 놈들을 골탕 먹여 줄 방법이지. 어떻게.”

난 잠시 호흡을 고른 후 말을 끝맺었다.

“한번 들어 보겠나?”

“…….”

사실, 물음이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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