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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167화 (167/559)

167화. 옷깃만 스쳐도

연회장 한구석.

아스터는 가장 편한 자세로 쪼그려 앉아 멍하니 바닥을 눈에 담고 있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했나? 옛말에 이르기를, 모든 일은 결국 올바르게 흘러간다는 이야기이다.

하면, 그 말을 이번 일에 대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아메라행(行)이 응당한 결과이다?’

그래, 아마 그렇게 되겠지.

“후우, 옘병.”

나직한 욕설 탓일까? 주변의 시선이 잠시 몰리는 듯했지만, 곧 못 볼 것을 본 듯 다들 시선을 돌렸다.

그런 가운데, 아스터의 생각은 계속됐다.

‘솔직히, 영 예상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어.’

아메라 지방 요정의 군무는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에 한 번씩 발생하는 마법적 현상이다.

파룬과 같은 펜대들이 아니더라도 마법사들이라면 놓치기 아쉬운 이벤트라는 말.

어찌 보면 데미안의 아메라행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썩 공교로울 것도 없는 상황이라는 말인데…….

아스터가 문득 시선을 느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뭐지?’

저 멀리 연회장 한복판에서, 웬 중년 남성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으로 사람이 모이는 것을 보아 한가락 하는 양반인 거 같은데, 그 눈빛은 어딘지 석연치 않았다.

꼭 해괴한 짐승을 보는 듯한 눈빛이랄까?

‘원래 삼 초 이상 눈 마주치면 그건 시비랬는데.’

그렇게, 속으로 셋, 둘…… 카운트를 하나 남겨 두고 있을 무렵 다가오는 인기척이 하나 있었다.

“도, 동생.”

“아, 형. 왔구나.”

파이진은 반색을 하며 웃는 아스터의 모습에 잠시 움찔하고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형, 왜 그래? 내가 쪽팔려?”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아닌 게 아니라 맞다.

자신이 다가서는 순간, 은연중에 아스터를 의식하던 이들의 눈동자가 한순간에 집중됐으니까.

“우리, 어디 앉아서 얘기하는 게 좀 낫지 않을까? 아…… 물론, 우리가 차를 마실 사이는 아니기는 하지만.”

시선이 부담되니까 자리 좀 피하자는 이야기였는데, 말을 하고도 조마조마한 파이진이었다.

한데, 웬일일까.

“그래. 앉지, 뭐.”

예상과는 달리 산뜻한 대답에 파이진이 반색을 표했다. 하나, 그런 것도 잠시.

“자, 여기 앉아.”

“……?”

“앉자며?”

파이진은 앉은걸음으로 옆으로 비켜서는 아스터를 가만히 눈에 담았다.

“안 앉아?”

“으, 응…… 앉을게.”

파이진은 어쩔 수 없이 아스터의 옆에 쭈그려 자리 잡았다.

한층 더 집중되는 주변의 이목에 얼굴이 화끈화끈했지만, 파이진은 이를 악물고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아스터가 입을 연 건 그때였다.

“가모님이랑 대화는 잘됐고?”

“잘됐지.”

“뭐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냥, 내가 생각해 보니 잘못했다고…… 너를 벌하지는 말아 달라고 말씀드렸어. 아, 가모님이 너한테는 따로 연락을 하실 거 같은데.”

“흐음, 그래.”

거기까지 말한 후 두 사람 사이로는 적막이 흘렀다.

파이진은 뭔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아스터를 바라보다가, 음료를 들고 지나가는 사용인에게 손을 들었다.

사용인에게서 음료 두 잔을 받은 파이진은 아스터의 몫을 바닥에 내려 둔 후, 홀짝이며 입술을 축였다.

기왕 철판을 깔기로 했으니 제대로 깔자는 마음이었다. 이런 기행은 또 처음이지만, 제법 적성에 맞는 듯도 했고.

그렇게, 침묵이 얼마나 흘렀을까.

“형, 들어 봐. 내가 고민이 있는데 말이야.”

“……고민?”

파이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아스터를 눈에 담았다. ‘우리가 고민을 나눌 사이는 아니지 않나?’ 하는 말이 턱 끝까지 치솟았지만, 제법 진지한 눈빛에 일단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고민인즉 이런 거였다.

“내가 어디를 가야 돼. 근데, 가면 뭔가 사고가 터질 것 같다는 말이지? 그러면 형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그러면…… 안 가면 되지 않을까? 꼭 가야 되는 거야?”

“꼭 가야 되냐고?”

“아니, 강제로 가야 되는 거면 어쩔 수 없는데, 그게 아니면 굳이 안 가도 되지 않나 싶어서.”

“흐음.”

아스터는 바닥에 있는 음료로 입술을 축였다. 상큼한 석류 향이 입 안 가득 번지는 가운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안 가면 되지.’

맞는 말이다.

블란도에서 아메라행을 선택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목에 칼을 갖다 댄 건 아니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이거였다.

“이게, 흔치 않은 기회라 동행하는 쪽에서 호의로 자리를 마련해 준 거란 말이지? 근데, 내가 그걸 거절하면 상대가 기분이 상하지 않겠어?”

“그거야…….”

“형은 어떨 거 같은데.”

파이진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천장을 향해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나보다 윗사람이면 어쩔 수 없지.”

“아랫사람이면?”

“좋게 안 보일 거 같은데.”

“그렇지?”

“그렇지. 혹시 상대가 귀족이야? 귀족들은 그런 거 민감해. 성격 좋은 이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그래도 적당한 이유는 대야 좋을걸?”

“적당한 이유?”

“뭐, 몸이 안 좋다든가. 이래저래 많잖아. 가장 흔하게 쓰는 건 꾀병이기는 한데…….”

그렇게, 시작된 파이진의 강연.

- 어떻게 윗사람의 기분을 망치지 않고 잘 도망갈 것인가.

아스터는 가만히 그 말에 귀를 기울였는데, 역시 성실하게 싫은 자리를 꼬박꼬박 피해 다니던 놈이라 그런가.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영혼이 담겨 있었다.

“일단 아프다고 할 때는 주변 공증인이 있는 게 좋아. 가장 쉬운 예로는 대련을 하다가 다친다거나 승마를 하다가 낙마를 한다거나.”

“그게 먹혀?”

“웬만하면 먹히지. 참, 근데 블란도에서는 좀 힘들더라. 치유의 빛이 아니더라도, 회복 마법이 상당하니까.”

“써 봤구나?”

“가문으로 가기 싫어서 한 번.”

“음.”

그렇다면, 외상은 탈락.

“그러면 내상은?”

“내상은…… 거기까지는 내가 시도를 해 보지는 않았는데. 가능만 하다면 나쁘지 않을걸? 근데, 왜? 블란도에서 써 보게?”

“아, 아니. 그건 아니고.”

“그렇지? 참, 그리고 가장 간편한 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노하우가 흘러나왔다.

예를 들면, 아끼던 말이 죽어 버려서 심적 충격에 시름시름 앓는다든가, 상사병이 심해서 드러누웠다든가, 혹은 대련 패배의 충격으로 폐관에 든다든가 등등.

개중에는 혹할 만한 예시들도 나왔지만, 아스터는 이내 이어지는 파이진의 당부에 솔깃한 마음을 접어 버렸다.

“가장 중요한 건 디테일이야. 어떤 약속이 잡혔을 때, 최소한 2주에서 3주의 준비 기간을 갖고서 설계를 해야 돼.”

쯧, 뭔 놈의 디테일이 그렇게 중요한지.

아, 여기서 사소한 의문 하나.

“형, 혹시 죄 없는 말을 죽인 거야?”

경멸 어린 눈빛에 파이진은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뛰었다.

“아니, 미쳤어? 그건 진짜였어. 다섯 살 때부터 키우던 말이 죽어 버려서 진짜 아팠다고.”

“그렇지? 형이 죽인 거 아니지?”

“다, 당연하지.”

파이진은 진심으로 억울했다. 어디까지나 예시로 말한 것뿐인데, 졸지에 약속 하나 빼먹으려고 살생을 한 천하의 쓰레기가 돼 버렸으니까.

여하튼, 그렇게 파이진의 강연은 몇 개의 디테일과 마지막 명언을 남기며 끝을 맺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거야.”

“……?”

“상대를 속이기 전에, 너 스스로를 속여야 돼. 왜 그런 말이 있잖아? ‘모든 건 마음 먹기 달렸다.’ 네가 진짜라고 믿는 순간, 그건 사실이 되는 거야.”

“흐음.”

가슴을 울리는 명언에 아스터의 눈동자엔 이채가 서렸다.

“형은 나름대로 신념이 있구나?”

“그, 그럼.”

“멋져, 이건 진심이야.”

“하, 하하.”

파이진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이게 비꼬는 건지 진심인 건지 헷갈리기 때문.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스터는 한 톨의 꼬아 보는 마음도 없이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어떤 분야건 이 정도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는 드물었으니까. 그것이 비록 이런 하찮은 일이라도 말이다.

“그건 그렇고 도움은 좀 됐어?”

“도움은…… 좀 된 거 같네.”

아스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강의를 복습했다.

일단, 이런저런 디테일한 부분들은 뒤로하고 당장 쓸 수 있을 만한 것만 추린 후 머리에 골라 담았다.

그중 가장 끌리는 건 이거였다.

‘내상.’

이거라면 적당히 잘 얼버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진짜 내상을 만들 건 아니지만, 피 좀 토하고 마력 흐름 좀 헝클어트리는 건 일도 아니지.’

다만, 중요한 건 디테일이었는데…….

“저, 저기. 나 이제 아버님 입장하실 시간이라서 이만 가 봐야 되는데.”

아스터는 상념을 갈무리하고 파이진을 빤히 응시했다.

사뭇 부담스러운 눈빛에 파이진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엉거주춤 물러서는데, 아스터가 입을 열었다.

“형, 나 밀쳐 볼래?”

“……응?”

“한번 밀쳐 봐. 밀치기만 하면, 성의는 받지 않을게.”

“…….”

파이진은 멍한 눈동자로 아스터를 눈에 담았다.

“너 정말…… 쓰레기구나?”

처음으로 파이진의 눈동자에 경멸이 어리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날 보는 심정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지난 생이 심히 부끄러울 것 같았다. 연회장에 이렇게 쪼그려 앉는 것과는 비할 바 없이.

* * *

결국, 아스터는 성의 표시만 받고 파이진을 되돌려 보냈다.

“형, 착하게 살아.”

“……그러려고.”

“참, 시간 괜찮으면 책도 좀 쓰고. 좀 전에 말했던 거 괜찮더라. 다음에 볼 때 확인할 테니까 꼭 쓰고.”

“……그래.”

그렇게, 파이진이 떠나간 후.

아스터는 할 일 없이 연회장 곳곳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어쩐 일일까.

란시의 살벌한 경고와는 달리 연회장 내의 그 어떤 귀족들도 아스터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니, 다가오지 않는다 뿐일까?

일정 거리 이상 좁혀지면 도리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까지.

‘옷깃만 스쳐도 피를 토할 자신이 있는데…….’

어찌하여 아무도 간격을 주지 않는지.

이것이 귀족들의 텃세란 말인가!

결국, 연회장 곳곳을 어슬렁거리던 아스터는 처음의 그 자리로 돌아와 쪼그려 앉아 입맛을 다셨다.

‘씁, 하려면 데미안이 도착하기 전이 적격인데.’

아무래도, 연회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면 남의 생일 파티를 망치는 기분이라 영 찝찝할 터였다.

사소한 시비라면 소란에 묻혀 사라지겠지만, 자신은 극악무도한 귀족의 횡포에 피를 토하며 나뒹굴 운명이었으니까.

‘혹시 음료를 안 들고 있어서 그런가?’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가운데, 아스터가 다시금 시선을 느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뭐지?

조금 아까 자신을 응시하던 그 중년인이었다.

한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는 파이진 또래의 웬 여자가 서 있었는데, 닮은 것을 보아 아무래도 부녀지간인 듯.

그렇게 빤히 바라보는데, 아스터가 여자 쪽과 눈이 마주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여자는 주변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킬 만한 분위기의 소유자였는데, 그 시선에 아스터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뭘 꼬나보지?’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

그렇게, 셋, 둘, 하나……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끝났을 때.

중년인과 대화를 마친 여자는 아스터에게 다가와 살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아스터 군이죠? 저는 질록스가(家)의 장녀, 라나 폰 질록스라고 합니다.”

라나는 싱그러운 미소로 바닥에 쪼그려 앉은 아스터를 가만히 눈에 담았다.

한데, 왜일까.

대꾸하지 않는 아스터.

어딘지 넋이 나간 듯한 그 모습에 라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음을 던졌다.

“……아스터 군이 아닌가요?”

아스터가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잠시.”

라나에게 양해를 구한 아스터는 곧 사용인에게 다가가 음료 한 잔을 받은 후 되돌아왔다.

라나는 그 모습에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지만…….

“내 거다.”

“……아, 예.”

단 한마디에 거두어지는 뻘쭘한 손.

라나가 당혹감을 감추기 위해 멋쩍게 웃어 보이는데, 아스터의 입이 열린 것은 그즈음이었다.

“난 준비가 됐다.”

“……예?”

“하고자 하는 걸 마음껏 해 보도록.”

“…….”

라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무슨 소린지 몰랐으니까.

그저 멍하니 아스터를 바라보며 그 말뜻을 헤아리기 위해 머리를 굴릴 뿐.

……한편, 음료는 피처럼 붉은 진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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