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아, 그건 좀
나는 샤인을 뒤로하고 훈련생들의 상태를 살폈다.
총원은 열넷.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인지 한 명, 한 명 상태가 위중했는데, 살펴보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 있지?”
“그게 무슨 말이냐.”
“외상이 없는 놈들은 그렇다 쳐도, 어디 한군데 절단된 놈들은 살려 둘 이유가 없다는 말이야. 트러블슈터로서 가치가 사라졌으니까.”
“그런 이유였나.”
샤인은 아이들을 발견했을 때의 상황을 설명했는데, 외딴 창고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담담하게 설명하고 있었으나, 샤인은 데큘란의 행태에 분노한 듯했다.
죽음에 이르게 할 거라면 차라리 고통 없이 보내 주는 게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냐며.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왜냐.
어쨌든, 이 아이들은 살아 있음으로 인해서 우리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 훈련생 27호, 죽여라.
- …….
- 어차피 뒈질 놈이다. 경험을 쌓기에는 적당하지.
훈련생들의 살인 경험을 위한 도구로 쓰이지 않은 게 어디인가.
‘그러고 보니, 그 새끼도 이번에 뒈졌으려나?’
나는 나를 손수 끼고 가르쳤던 교관을 생각하며 잠시 이를 갈았다.
평범한 교관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교육 내내 복면을 쓰고 있으니, 그 정체를 알 턱이 있나.
“그래서, 상태가 어떻더냐.”
“상태는…… 흐음.”
난 열네 명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내가 의사가 아니라 자세한 상태는 알 수 없지만, 치유의 빛으로 치료가 가능하냐, 하지 않느냐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이러했다.
“사지가 절단된 놈들은 살릴 수 있어. 상처를 너무 오래 방치해 놔서 위험한 상황이지만, 그래서 외상을 회복하고 포션을 먹이면 머지않아 회복하겠지. 다만, 문제는…….”
난 외상이 없는 두 아이를 바라봤다.
여자아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부상이라기보다는 병에 걸린 듯했다.
그리고 남자아이는…….
‘마력 회로가 꼬였어.’
즉, 역류 상태를 방치해 상태가 악화된 것인데, 어찌나 오래됐는지 나조차도 손 쓰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런 사실을 샤인에게 전달하니, 샤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 둘은 내 마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대로 된 의사를 불러와야 되는데…….”
두 아이 다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꺼져 가는 기력을 보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나는 거기까지 말한 후 샤인을 눈에 담았다.
“그래서, 어쩌게?”
“고민 중이다.”
“쉽지 않지?”
“쉬울 수가 없지. 인외(人外)가 되는 일이다. 당장 살기 위해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게 인간이라지만, 그 이후의 삶은 본인이 온전히 감당해야 돼.”
결국, 샤인이 여태껏 권속을 만들지 않은 건 그런 이유였다.
뱀파이어, 언뜻 들으면 매력적인 종족이라지만 인간의 탈을 벗어 낸다는 건 말처럼 가벼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문득 샤인을 가만히 바라봤다.
여태껏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놈은 어떤 고뇌를 해 왔을까.
‘데스나이트에서 뱀파이어.’
존재의 근간이 두 번이나 바뀌어 버렸다.
제아무리 초월에 이른 고강한 정신이라지만, 정체성의 혼란이 없을 수가 없는 일.
그런 내 시선을 느낀 것일까.
“이 몸은 아무렇지도 않다, 간악한 것아. 존재가 어찌 바뀐다 한들, 이 몸은 샤인 폰 르망.”
“그래, 그렇겠지.”
난 반박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한마디를 뱉기까지, 적지 않은 고뇌를 해 왔을 테니까.
여하튼.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정할 거면 빨리 정해야 돼. 그런데, 그 전에 내가 한마디 해도 될까?”
“해 보아라.”
난 샤인에게 향하던 시선을 아이들에게 돌렸다.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에 신음하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앞으로 내가 할 이야기는 조금 잔인한 이야기였다.
“사지가 절단된 아이들은 살릴 수 있다. 그러니, 권속으로 삼는 건 추천하지 않아. 그건…… 그들이 감당해야 할 무게고.”
“음.”
샤인은 동의를 한다는 듯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른 두 아이는…… 네 말대로 인연이 닿은 아이들이다. 하지만, 망설임이 있다면 행하지 마.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거기에 예외는 없다. 솔직한 말로, 너는 눈앞에 죽어 가는 모든 병자들을 불쌍하다는 이유로 네 권속으로 만들 거냐? 알량한 동정심 때문이라면, 그들이 그들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하는 게 오히려 나을 것이다.”
저 두 아이들이 뱀파이어로서의 삶을 만족할지, 후회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만족한다 해도 여기서 중요한 건 샤인의 각오였다.
샤인은 뱀파이어 로드로서 영생(永生)을 사는 존재.
그 긴 시간,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가는 건…… 동료인 나로서는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후회할 것 같으면 행하지 말고, 행할 거라면 후회하지 말아라.”
여기까지가 내가 하고픈 말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샤인은 아이들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나를 담았다.
“의외로구나.”
“뭐가?”
“네놈이라면 당연히 권속으로 삼으라 할 줄 알았거늘.”
“넌 내가 아니니까.”
난 후회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런가.”
샤인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다시 아이들을 바라봤다.
“좋다. 덕분에 머리가 한결 개운해졌느니라. 저 두 아이를 내 최초의 권속으로 삼을 것이다. 다만…….”
“다만?”
“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뱀파이어 일족의 부흥을 위해. 그렇게 생각하겠다.”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죄책감을 덜기보다는, 스스로의 행동이 불러오는 결과를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그날.
이름 모를 산골짜기에서 최초의 뱀파이어 권속이 탄생했다.
샤인은 남자아이에게는 후회를 남기지 말라는 의미로, 내 이름에서 따 ‘아스타로트’라 이름 붙였고.
여자아이에게는 영생(永生) 동안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대어를 가져와 ‘레라지에’라 이름 붙였다.
한데, 왜일까.
‘……아스타로트?’
어째 앞날이 훤히 보이는 기분이었다.
왠지, 샤인에게 모진 구박과 수모를 당할 것만 같은 이름인 것이다.
* * *
그렇게, 권속화를 마친 샤인은 깨어난 두 아이에게 알려줄 것이 있다며 자리를 떠났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그 뒤를 따랐다.
난 자리에 남아서 부상당한 아이들을 치료했는데, 그렇게 치료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야영지는 꽤나 소란스러웠다.
“로르텔, 마탑…… 정령사?”
“정말, 우리가 바라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근데 마탑이 어디…….”
“다시 잡혀가서 똑같은 꼴을 당하는 거 아닐까?”
난 술렁이는 아이들을 지나쳐, 골짜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벽의 바위틈에 자리를 잡았다.
‘벌써 시작한 건가?’
아무래도, 내가 부상자를 치료하는 사이 아이들의 거취에 대해서 고지를 마친 듯.
한데, 데큘란에서의 악몽 때문일까?
아이들은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청력을 키워 이야기를 들어 보니 로르텔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았다.
‘자신들이 데큘란에 잡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으니, 로르텔에 들어가는 게 안전하다 생각한 거겠지.’
내가 봐도 좋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마이셀른 선배.
인연이 닿으면 정령술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몇몇 아이들이 그쪽을 택했다.
하면, 마탑은 어떻느냐.
“마법…….”
“싫어, 이제는 그런 거.”
아무래도, 마법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듯.
나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었다.
돈이 들어갈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심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아이들이 증오를 잊지 못하고 데큘란에 복수를 꿈꿀까 봐.
남은 평생을 복수를 위해 마법을 갈고닦으며, 부귀영화도 이루지 못하고, 사치와 향락의 즐거움도 깨닫지 못할까 봐.
‘뭐, 사실 복수야 로르텔이나 마이셀른 선배 밑에서도 꿈꿀 수 있다지만…….’
나는 믿었다.
로르텔과 마이셀른 선배라면, 복수심에 불타는 아이들을 잘 잡아 줄 수 있을 거라고.
한데, 난 왜 그러지 못하냐.
그건 나부터가 복수를 놓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러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문득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
처음에는 곰인 줄 알았다.
그 덩치가…….
한데, 가만히 보니 사람이었는데, 놈은 그 커다란 덩치로 골짜기의 벽면을 짚고 성큼성큼 올라오고 있었다.
‘……루시페르? 나한테 오는 건가?’
한데, 날 바라보는 눈빛이 뭔…….
어찌나 강렬한지, 꼭 불구대천의 원수를 바라보는 듯.
놈은 가파른 암벽을 용케 미끄러지지도 않고 잘도 올라왔는데, 내게 도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슬쩍 옆으로 움직여 공간을 만들어 주자,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내 옆에 앉는 루시페르.
“후욱, 후.”
“…….”
난 호흡을 가다듬는 놈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이 새끼…… 구라였구나.’
어릴 때는 그래도 반반했다고 큰소리를 뻥뻥 치더니, 그냥 수염 좀 덜 나고 흉터 좀 없는 게 다다.
하긴, 그러니까 내가 한눈에 알아봤겠지.
그렇게, 가만히 옛 생각에 잠겨 있는데, 루시페르가 입을 연 건 바로 그때였다.
“당신이 탑주입니까? 듣자니, 그렇다 하는 것 같던데.”
“그런데?”
“흐음…….”
루시페르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흑백 지대 부랑아였다더니…… 잘 먹지를 못했나. 역시, 가장 서러운 건 먹는 건가.”
“뭐, 이 시꺄?”
“아, 미안합니다. 키가 작아서. 그런데, 마법으로도 키는 어쩔 수 없는 겁니까?”
“…….”
맞다, 원래 이런 놈이었지.
나는 잊고 있던 루시페르의 성격을 떠올리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한번 대꾸를 해 주면 끝없는 물음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었는데, 역시나 내가 반응이 없자 루시페르 역시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의문을 멈췄다.
“근데, 왜 찾아왔어? 바쁜 몸이다. 본론만 말하고 썩 꺼져.”
“아, 별건 아니고. 궁금해서 말입니다. 흑백 지대 부랑아이고, 탑주처럼 뛰어난 분이라면 아마 대답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
루시페르는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볼을 긁적였다. 그러고는 곧 질문을 입에 올렸다.
한데, 왜일까.
루시페르의 말이 끝났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먼 과거…… 그러니까 전생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일었다.
“그…… 못 먹고, 못 입는 거. 그중에 제일 서러운 게 뭐라고 생각합니까? 꼭 두 개가 아니더라도, 탑주가 생각하는 정답을 말해 주시오.”
……그날도 딱 이런 그림이었다.
개 같은 임무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후.
우리는 높은 절벽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물었지.
무엇이 가장 서러운 거냐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금의 너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구나.’
그래서일까?
나는 결심했다.
전생에 내게 알려 준 답을, 이제는 내가 알려 주겠노라고.
“궁금하냐?”
“궁금합니다.”
“그러면, 따라와라. 내가 그 답을 찾게 해 주지.”
문득, 저물어 가는 노을빛이 아름다웠다.
겨울철의 쌀쌀한 바람도 더없이 상쾌하고, 앙상한 나뭇가지도 왠지 모르게 푸근해 보이는 기분…….
“아, 그건 좀.”
“……뭐?”
“저는 정령술을 배우고 싶은데.”
“…….”
이 새끼를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