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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246화 (246/559)

246화. 악인들의 악인

아스터의 명령을 받은 보스들은 각자의 아지트로 돌아가 급히 장부를 챙겼다.

딱히 제한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보스들은 시간에 쫓기듯 부하들을 닦달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대회의실에 도착한 이는 티무르였다.

“여기 있네.”

“음.”

“근데, 그 ‘음’은 좀 안 하면 안 되나? 아무리 봐도 어색해서 말이네.”

티무르가 두툼한 장부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한마디 하자, 아스터는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분부대로.”

“그 존댓말도 이제는 그만하게. 놀아나는 것 같아 영 기분이 그렇군.”

“그러지, 뭐.”

아무래도, 티무르는 자신과 이벨린의 상하 관계가 대외적인 역할 놀음이라는 걸 알아챈 듯했다.

하긴, 그간 그렇게 부대꼈으니 모르는 것도 이상하겠지.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텐가? 대부께서는 뭐라시고.”

티무르는 대부가 앉았던 자리를 보며 물음을 던졌다.

대부 역시 장부를 가지러 가겠다며 자리를 비운 상태였는데, 대부와 아스터가 세운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한 듯했다.

“어쩌긴 뭘 어째. 아까 한 말이 다지.”

“그래, 그건 알겠네. 카르텔의 주머니를 털어서 제2 흑백 지대를 부양한다. 내가 묻는 건 그 방법이라네.”

“방법?”

“그래, 방법. 카르텔들이 비축한 재화가 적은 양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시 하나를 먹여 살릴 정도는 아니니 말이야.”

그건 맞는 말이었다.

돈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고, 카르텔의 보스들이 비축한 재화는 한 개인이 보기에는 상당한 것이었지만 도시 전체를 두고 보자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 사실을 어찌 아느냐.

이는 티무르가 흑백 지대에서 가장 부유한 축에 속하는 카르텔의 보스이기에 그러했다.

때문에 아스터는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고민 끝에 나온 답은 이러했다.

“나야 모르지.”

“……뭐?”

“내가 그것까지 생각해야 하나? 보스 티무르, 이 일에 있어서 나는 엄밀히 말하자면 칼이지 머리가 아니야. 머리는 따로 있지.”

“머리라면…….”

“새삼스레 뭘 물어? 당연히 듀크지.”

이게 무슨 말이냐.

다시 또 이벨린을 부려 먹겠다는 이야기였다.

“자네는 정말…….”

“알아. 나 마음 넓고 선량한 거.”

“…….”

티무르는 아스터의 뻔뻔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아는 것이다.

이번 경매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듀크가 어떤 고생을 해 왔는지.

스베틀라나의 도움이 적지는 않았지만, 크고 작은 대소사에 듀크의 입김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일반인으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업무량이었는데…… 한데, 그 경매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또 듀크를?

“후우, 한 대 피워도 되겠나?”

“얼마든.”

티무르는 어질어질한 기분에 연초를 물었는데, 곧 희뿌연 연기가 대회의실로 스멀스멀 번져 나갔다.

아스터의 입이 열린 건 바로 그때였다.

“근데, 억울하지 않나?”

“무엇이 말인가?”

“아니, 그 뭐야. 그래도 우리는 나름…… 가깝다? 뭐 그런 사이인데. 지금은 영락없이…….”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주머니까지 털린 모양새지. 알기는 아는구만?”

티무르는 연초를 끼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웃어 보였다.

말과는 달리 딱히 불쾌한 기색이 없는 얼굴이었는데, 그 모습에 아스터가 무어라 물으려는 찰나 티무르의 입이 먼저 열렸다.

“난 도리어 속이 시원하네.”

“시원하다고?”

“그래. 아, 자네는 모르나? 듀크에게는 말을 했는데. 사실, 자네가 오늘 한 일은 내가 오랫동안 꿈꿔 오던 일이야.”

티무르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재떨이에 재를 톡톡 털고 다시 입을 열었다.

“친동생이 있었지. 흔치 않은 일이었어. 피붙이 형제가 나란히 흑백 지대에 버려지는 건 말이야. 동생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난 꽤 좋았네. 알잖나? 이 흑백 지대에 피붙이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렇지.”

“확실히, 큰 힘이 되기는 하더군. 또래끼리의 싸움도 우리는 일대일로 붙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다구리를 놨다는 말이다.

티무르는 그 뒤로, 동생과 함께했던 시절을 이야기했는데, 꽤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둘이니까, 당연히 뭐든 쉬웠다.

2인 1조로 행인들의 지갑을 털고, 한 명이 시선을 끄는 사이 다른 한 명이 부랑아들의 구걸 통을 훔치고.

티무르는 드물게도 웃고 있었는데, 그 얼굴에 드리운 미소가 쓴웃음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근데, 이게…… 참, 뭐라 해야 할까. 그때 처음 알았네.”

“……?”

“둘이라서 좋을 때도 있지만…… 지킬 게 있어서 약해질 때도 있다는 사실을.”

원래도 시궁창 같던 제2 흑백 지대였지만, 카르텔의 횡포가 심해지고 식량난이 찾아오자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졌다.

이 식량난은 늙은 보스들이 겪었던 옛 전쟁의 식량난과는 다른 것이었다.

“도시는 나날이 흉흉해지고, 그나마 있던 상인들이나 행인들마저도 더 이상 제2 흑백 지대를 찾지 않았지. 그러면 구걸은 누구한테 하고, 지갑은 누구 걸 터나?”

털 수 없었을 것이다.

“빵집을 털려 해도, 마찬가지였지. 돈이 돌지를 않으니, 상인들이라고 해서 뭐 뾰족한 수가 있나? 그런데도, 카르텔은 나날이 부유해져 갔어. 왠지 아나?”

평범한 이가 들었다면 고개를 갸웃했을 일이었다.

도시 자체가 말라비틀어져 가는 상황에서, 카르텔들만이 부유해진다니? 주민들을 등쳐 먹으려 해도, 등쳐 먹을 게 있어야 갈취를 하는 법인데.

하지만, 아스터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마약이군.”

“그렇지.”

“인신매매도 했겠고.”

“맞네. 그들에겐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부랑아들이 전부 돈이었네. 상상이 가나? 나는 한번 상상해 봤네. 저 카르텔 놈들의 눈에는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썩 유쾌하지 않은 상상이었지만, 그들의 눈으로 보니 이 지옥 같은 흑백 지대가 참으로 밝아 보였다.

생각해 봐라.

길거리에 허덕이는 부랑아들이 전부 돈이다.

“저놈은 1골드, 저놈은 10실버, 저놈은 꽤 반반하니 취향 독특한 귀족한테 팔면 10골드는 나오겠고.”

“…….”

“근데, 전부 다 굶주렸다는 말이지. 이게 무슨 말이겠나. 1골드, 10실버, 10골드…… 돈 덩어리들이, 빵 한 조각 준다 하면 알아서 찾아와. 쥐새끼를 잡는 것보다 손쉬운 일이었지. 부랑아들은 쥐새끼처럼 날래지도 않고, 말도 통하니 꼬드기기도 쉬워.”

“……그래서, 동생이 팔려 갔나?”

“아니네.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바다는 본 적 있고?”

“…….”

순간, 티무르의 눈빛이 차게 식었다.

아스터 역시 흠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그래서?”

“……자네는 힘이 센 게 다행이군. 어쨌든, 우리는 버텼네. 그런데, 이게 참…… 어떻게든 혼자 먹을 식량은 구할 수 있겠는데, 둘이 먹을 식량은 구하지 못하겠더란 말이지.”

“…….”

아마 그랬을 것이다.

흑백 지대의 사정이 나을 때에야 둘이라는 게 이점이었겠지만, 먹을 게 줄어들었을 때 머릿수는 짐이었으니까.

“동생은 나랑은 다르게 그리 약삭빠르지 않았다네. 그래도 나보다는 힘이 센 편이었는데, 못 먹은 게 문제였지. 어느 순간부터는 나 혼자 먹을 걸 구하러 돌아다녀야 했네.”

그 뒤는 듣지 않아도 뻔했다.

“평원에 난 풀뿌리를 잘못 먹은 게 화근이었지. 나야 체질이 맞았는지, 복통과 설사로 그쳤는데 동생은 달랐어. 사실 생각해 보면 그리 큰 병도 아니었네. 깨끗한 물 몇 모금, 든든한 식사 몇 끼면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는 정도였지. 그런데…… 그게 없었어.”

“…….”

“동생은 하루하루 말라 갔네. 나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사방팔방으로 알아봤지만 방법이 없었지. 제2 흑백 지대를 떠나기에는 너무 늦었어. 가는 길을 버틸 수가 없었지. 그래서 결국…… 바닷물을 마시기로 했네.”

동생을 위해서, 카르텔에 자신을 팔기로 결심한 것이다.

“꽤…… 우애가 돈독했나 보군.”

“피붙이니까.”

티무르가 옅게 웃었지만, 그건 웃음이 아니었다. 너무 많이 울어, 가뭄이 든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놈이 버티지를 못하더군.”

“…….”

대회의실로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스터는 무어라 할 말을 골랐지만, 이내 곧 어떤 말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상처는 위로로 덮을 수 있지만, 동생의 일은 이미 티무르에게 상처가 아니었다.

곪을 대로 곪고, 곪고, 곪다 못해 마음에서 떨어져 나간 무언가인 것이다. 동생의 존재감이 상실된 자리는 티무르의 마음에 깊은 공허로 자리해 있었다.

공허를 도대체 무엇으로 덮을 수 있을까

“그때, 생각했네.”

“무엇을?”

“……오늘 자네가 한 것과 같은 광경을.”

“…….”

“언젠가, 이런 날이 다가왔을 때. 모든 흑백 지대의 카르텔을 모아 놓고, 자네처럼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마음에 품고 살았네. 한데…….”

티무르는 쓰게 웃었다.

“쉽지 않더군.”

“…….”

“챙길 입이 늘어나니, 조심해야 할 것이 많아지고. 조심할 게 많아지니, 섣불리 목소리를 낼 수 없었네. ……물론, 변명이겠지.”

“아니, 이해해.”

수장이란 그런 것이다.

권리만큼, 아니. 권리 이상으로 책임이 막중한 자리.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이 집단의 뜻과 맞는지도 헤아려야 했다.

그리고 카르텔이라는 집단은 티무르의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너무도 거칠고 더러운 집단이었다.

그렇게, 티무르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가 ‘하하’ 웃어 보였다.

“아, 오해하지는 말게. 내가 그리 깨끗하지는 않아. 손에 피도 많이 묻히고, 오물도 많이 묻혔네. 자네가 말했듯…… 부랑아들과 주민들의 등골을 빨아먹은 쓰레기에 지나지 않아. 다만…….”

“다만?”

“아니, 아니네.”

티무르는 멋쩍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지만, 아스터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물이 진탕 묻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그 안에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뜻 하나는 품고 있음을.

다만, 그걸 제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건…… 그도 알기 때문이었다.

그 뜻을 떠나, 스스로가 악덕을 쌓아 올린 악인임을.

“어쨌든.”

“……?”

티무르의 눈동자가 아스터를 바라봤다.

그 망막에는 인식 저해 마법으로 흐트러진, 흐릿한 가면이 자리하고 있었다.

티무르는 그 얼굴을 보며,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쳤다.

“고맙네.”

“…….”

“그거 아나? 이번에 고아원을 세울 때도 내부 반발이 적지 않았네. 그래서, 사실 자네들의 이름을 좀 팔았어. 흐하, 아주 훌륭한 명분이었지. 울상을 짓고, 지원을 안 하면 깽판을 놓겠다 협박을 받았다고…… 신기하게도 그러니까 반발이 없어지더란 말이지?”

“그렇……군.”

“그래서, 고맙네. 내 등을 떠밀어 줘서.”

“…….”

아스터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아까 전 대부가 했던 말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스터 자신은…… 아니, ‘나이트’라는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티무르가 뜻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우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째서 대부가 티무르를 차기 대부로 점찍었는지까지.

그래서일까?

아스터는 자신이 이번 일에서…… 아니, 제2 흑백 지대에서 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악덕의 상자.’

티무르와 같은 이들이 뜻을 펼칠 수 있게, 모든 악덕을 끌어안는 것이다.

때로는 공포로 군림하고, 때로는 손에 피를 묻히며, 모든 불만의 화살촉을 스스로에게 돌린다.

언뜻 보면 가혹한 일이었지만…….

“나쁘지 않군.”

“……무엇이?”

“아냐, 아무것도.”

아스터는 결심했다.

악인(惡人)들의 악인(惡人).

그것이 되기로.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될 때 즈음.

“……나이트.”

뒤늦게 소식을 들은 이벨린이 대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옆으로는 메이지…… 그러니까, 샤인이 있었다.

샤인을 호위로 달고 오느라 더욱 늦은 듯한데.

“할 말 많은 건 알겠는데, 돌아가는 사정은 티무르한테 듣고.”

“어, 어? 나이트, 지금 말투가…….”

“티무르가 역할 놀음 하지 말래.”

“놀아나는 것 같아서 썩 기분이 좋지 않더구려. 적어도 우리끼리 있을 때는, 부탁하오.”

이벨린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어, 어’ 하고 있는데, 아스터는 그대로 이벨린을 지나쳐 대회의실을 나섰다.

“어, 어디 가요?!”

“잠깐 갈 데가 있어서.”

악인들의 악인이 되기로 했으니.

이제는 움직일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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