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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256화 (256/559)

256화. 더더욱 아니고

폴라가 진정된 후.

나는 폴라를 이끌고 아카데미를 나섰다.

“저…… 어디로 향하시는 겁니까?”

“일단, 따라와 봐.”

우리가 도달한 곳은 제2 흑백 지대.

시급을 다투는 이 상황에서 갑자기 왜 흑백 지대냐, 하면 좀 전에 파룬과 나눴던 대화 때문이었다.

- 왔나? 결국 하기로 했나 보군.

- 그렇게 됐어. 그래서 말인데, 이것 좀 분석해 줘.

- 이건…….

내가 파룬에게 분석을 부탁한 건, 폴라가 가진 용병대장의 생존 여부를 보여 주는 아티팩트였다.

이런 종류의 아티팩트는 추적에 취약하기 마련이라, 어찌 활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

한데, 파룬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나름대로 조사를 했더라.

- 실물은 나도 처음이라 긴가민가했는데, 라이프 젬(Life Gem)이더군.

- 라이프 젬이라면…….

- 모르나? 옛 전쟁 시대 때 꽤 유명했다. 귀족가의 여식들이 정인의 무사 생환을 기리며 선물하던 아티팩트였지.

그렇게 들으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라이프 젬.

다른 이름으로는 데스 사인(Death Sign).

한데, 어째서 데스 사인, ‘죽음의 표식’이라는 살벌한 이름이 붙었느냐, 하면 다 사연이 있었다.

‘옛 전쟁 때 추적 방법이 알려져서 악용됐다지?’

즉, 소중한 이의 생환을 기리던 생명의 증표가 적군으로 하여금 추적의 빌미를 제공한 셈.

전쟁에 나가는 이에게 보석을 선물하는 행위가 금기시된 것도 라이프 젬 사건 때문이란다.

퍽 안타까운 사연이 아닐 수 없었는데, 우리로서는 나쁘지 않은 소식이었다.

왜냐.

갑갑하기만 하던 칼리아 용병대장의 추적에 실마리가 생긴 거니까.

하지만.

‘쯧,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지.’

문제가 있었다.

- 지금에 와서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당시 추적 방법을 알아내 악용했던 게 제국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관련 자료를 다 폐기했다더군.

그나마 이 정도 정보라도 접근할 수 있었던 건 파룬이 친(親)제국인 제니온 아카데미에 속한 교수였기에 가능했던 것.

어쨌든,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추적은 가능한데…….’

방법은 폐기됐다.

파룬 말로는 자료를 찾자면 어떻게든 찾을 수 있기는 한데, 시일이 제법 걸릴 거라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아티팩트를 분석하자니, 그것도 또 시간이 걸린다지?’

하면, 어찌할까.

이대로 발로 뛰어?

‘안 될 말이지.’

내가 제2 흑백 지대를 찾은 것은 ‘라이프 젬’의 추적 방법을 알 만한 사람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누구냐.

난 며칠 전 완공된 고아원의 원장실 문을 거세게 열어젖혔다.

“리하임 선배, 기체후 일향만강하셨습니까?”

독서 중이었던 건가?

내 방문에 리하임 선배는 돋보기를 내려 둔 후 눈을 끔뻑이며 입을 열었다.

“……탑주인가?”

“예, 접니다.”

“갑자기 어쩐 일인가? 이 시간에. 뒤에…… 손님까지 달고.”

난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냈다.

“혹시 라이프 젬이라고 아십니까?”

“라이프 젬?”

“예, 데스 사인 말입니다. 옛 전쟁 때 유행하던 아티팩트라는데, 여쭐 게 있어서 말입니다.”

내 생각은 이러했다.

정말로, 라이프 젬을 악용한 것이 제국이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리하임 선배는 그 정보를 알고 있지 않을까?

물론, 교장 선배도 알 법하기는 했지만…….

‘이런 건 리하임 선배지.’

당시 무스펠룬 대공으로서 제국 마법의 중추였던 리하임 선배라면 보고 들은 게 있을 터였다.

이런 내 짐작이 맞았음일까?

“……알지, 알다마다.”

나는 확신했다.

리하임 선배는 라이프 젬의 추적 방법을 알고 있다고.

그도 그럴 것이, 리하임 선배의 얼굴이 꼭 잊고 있던 악덕을 떠올린 죄인의 그것처럼 어두워졌으니까.

“한데, 라이프 젬은 왜 묻는가?”

난 구태여 사연을 캐묻지 않았다.

다만, 폴라의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했을 뿐.

자초지종을 모두 다 들었을 때.

“……이런 연유로, 라이프 젬의 추적 방법이 필요합니다.”

리하임 선배는 생각을 정리하는 듯 눈을 감았다. 그 입이 열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결국 돌고 도는 것인가?”

어딘지 회한이 서린 목소리.

리하임 선배가 말했다.

“추적 방법은…… 알고 있네. 어찌 모를까. 라이프 젬 연구를 주도했던 게 나였거늘.”

“그 말씀은…….”

폴라의 격앙된 목소리에 리하임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 주겠네.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는데, 당연히 알려 줘야지. 다만, 조치를 취하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하네.”

“어느 정도나 필요합니까?”

“동이 트기 전까지. 괜찮겠나?”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괜찮을 리가 있나.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 * *

그렇게 리하임 선배에게 라이프 젬을 맡긴 후, 나는 폴라와 함께 고아원의 접객실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탐색 문제는 해결됐고.’

이제는 리하임 선배의 조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곧장 추적에 나서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 전에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칼리아 용병대의 구조대는 어디쯤이라지?”

여기서 말하는 구조대란, 로.데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근거지에 잔류한 인원들을 말했다.

폴라에게 대장의 생존 사실을 확인한 후 급히 여정을 꾸려 출발했다는데…….

“호모루 영지에 도착했다고 들었습니다.”

“호모루 영지?”

“예, 접전 지역 인근의 워프 게이트를 모두 폐쇄해서, 그나마 가까운 워프 게이트로 이동했다고…….”

그게 호모루 영지인 듯.

“향후 계획은?”

“……일단, 로르텔 본대 쪽에 합류, 수색 허가를 받은 후 곧장 움직일 계획이라 합니다.”

말을 하는 폴라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왜냐.

언뜻 들으면 문제가 없는 듯 보이는 계획이었지만,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스스로도 모르지 않기 때문이겠지.

‘호모루에서 본대까지 합류하고, 이후 실종 위치까지 가려면 시일이 여간 걸리는 게 아니니까.’

아마, 구조대도 어떤 확신을 갖고 움직인 건 아닐 터였다. 그저, 움직여야 하기에 움직였을 뿐.

거기까지 생각한 후, 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우리 둘 사이로 옅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입을 열었다.

“폴라, 넌 추적에서 빠진다.”

“……예? 어, 어째서…….”

폴라는 당혹스러운 듯 말끝을 흐렸는데,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제2 흑백 지대까지 함께 온 건, 의뢰인으로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필요가 있어서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니지.”

왜냐.

이는 폴라가 어쩔 수 없는 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동에 방해가 되는 건 물론이고, 데큘란의 권역에 들어서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으니까.

“저도…… 저도 충분히 제 앞가림은…….”

“앞가림은 할 수 있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

폴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스스로도 아는 것이다.

억지를 부려 함께 따라나서 봐야 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놈은 그 사실이 여간 분한지 주먹을 움켜쥔 채 바르르 떨고 있었는데, 난 잠시 그 광경을 말없이 눈에 담았다.

그 심정은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파룬에게까지 찾아왔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겠지.

아카데미의 교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도움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말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마음이고.

“넌 빠지는 게 맞아.”

“…….”

내 한마디에 폴라가 고개를 푹 숙였다.

스스로의 무력함에 치를 떠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나는 그런 폴라를 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너는 할 만큼 했다.”

이는 진심이었다.

왜냐.

애초에, 칼리아 용병대장을 구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전장 인근의 워프 게이트가 모두 폐쇄된 상황에서, 그 누가 있어 도시 하젠에서 접전지까지 찾아가 칼리아 용병대장을 구조할 수 있을까.

‘데큘란의 탐색이 그리 녹록지도 않거니와…….’

천운이 닿아서 데큘란의 탐색을 피해 간다 해도, 문제는 식량이었다.

전투에 나서는데 식량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지는 않았을 테고, 나름대로 아공간에 비축을 해 뒀다 해도 그것도 한계는 있겠지.

‘만약, 칼리아 용병대장 홀로 낙오된 거라면 어찌어찌 연명할 수 있겠다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황은 심각했다.

다 떨어져 가는 식량, 그런 상황에서 집단의 우두머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체력이 남아 있을 때, 모험을 하려 하겠지.

그러니, 사실 칼리아 용병대장을 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폴라가 파룬을 찾지 않았다면 말이지.’

마탑의 이름으로 참전을 희망한다면, 로르텔의 소가주는 기꺼이 통제권이 있는 워프 게이트를 열어 줄 테니까.

또한, 탐색 시간도 대폭 줄이지 않았나.

그러니.

이 말은 진심이었다.

“할 만큼 했으니까, 네놈은 여기 남아라.”

여전히, 상황은 희망적이지 않았지만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 이만큼 올라간 건 모두 폴라가 우리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알겠……습니다.”

폴라의 손등 위로 뚝뚝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난 그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최소한, 시체라도 찾아오마.”

최소한 넋은 기리도록 해 주겠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약속이었다.

* * *

동이 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하임 선배가 접객실을 찾았다.

“조치를 취해 놨네. 우선, 라이프 젬을 손에 쥐어 보게. 느껴지나?”

“예.”

라이프 젬을 움켜쥐자, 희미한 마력의 신호가 잡혔다.

“제대로 된 장비가 있다면 신호를 더 증폭시켜 정확한 위치도 특정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게 한계네. 그래도, 그만하면 충분하겠지?”

“예, 충분합니다.”

그 신호는 나로서도 기감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미약했지만, 칼리아 용병대장의 위치를 가리키는 나침반으로 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후, 리하임 선배는 라이프 젬에 대해서 내가 알아야 할 정보를 몇 가지 알려 줬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한데, 그건 그렇고…….”

리하임 선배가 폴라를 힐끗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같이 가나?”

아무래도, 리하임 선배 역시 폴라가 전쟁터에 따라나서는 게 걸렸던 모양.

“그럴 리가요.”

내가 답하자, 리하임 선배는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고는 폴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성격은 썩 좋지 않은 놈이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놈이니까.”

“……예, 감사합니다.”

나름대로 분위기를 풀어 보겠답시고 던진 농담 같은데, 폴라의 반응은 어색하기만 했다.

어쨌든, 그렇게 대화를 나눈 후.

“그럼, 전 이만 가겠습니다.”

“무운을 비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냐.”

난 리하임 선배와 폴라에게 인사를 나눈 후 고아원을 나섰다. 아니, 나서려는데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말라붙은 핏자국으로 범벅된 폴라의 손바닥.

어찌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그 굳은살 가득하던 손바닥이 깊게 패 피가 철철 흐른 모습이었다.

‘……쯧, 재수 없게.’

난 그 광경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다만, 생각했다.

최소한, 시체라도 찾아온다 했지만…….

‘……무조건 살려서 데려오자.’

왜냐.

그래야, 아라푸르긴의 땅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싸가지 없는 폴라가 눈에 밟혀서도 아니고, 전 룸메이트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인연이 닿아서는 더더욱 아니고.

이유는 그냥 딱 그게 다였다.

* * *

그날, 저녁.

로르텔이 주둔한 영지의 워프 게이트로 환한 빛무리가 일렁였다.

소가주 시온은 갑옷을 입은 채 워프 게이트를 넘어오는 인물을 웃으며 반겼다.

“탑주, 잘 지냈나?”

……로.데 전쟁.

마탑의 탑주가 참전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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