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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257화 (257/559)

257화. 나 안 난다

항간에서 평하길 로르텔과 데큘란의 전쟁은 미적지근한 국지전만 반복되는 지루한 양상의 연속이라 했다.

하지만, 직접 로르텔의 본대에서 보자니, 난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제법 치열한가 보군.’

비교적 후방에 위치한 본대이건만, 병영으로는 비릿한 피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걸었을까.

“들어오게.”

앞장서서 걷던 소가주 시온이 나를 안내한 곳은 영주 성에 딸린 어느 회의실이었다.

“잘 지냈나?”

“그럭저럭.”

“그나저나 의외로군. 갑작스러운 참전이라니. 그래, 칼리아 용병대의 대장을 구출하는 게 목적이라고?”

“뭐, 그렇기는 한데.”

난 소가주 시온의 물음에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로르텔 입장에서는 좀 그렇지 않나?’

명색이 로르텔의 우방인데, 로르텔을 위해서가 아니라 웬 용병대의 대장을 구하기 위해서 참전한 거니까.

그래도 나 혼자 변명하자면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었다.

‘……원래는 참전할 계획 자체가 없었어.’

만약, 로르텔이 참전을 권유했다면 기꺼이 참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르텔은 참전을 권하지 않았고, 나 역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비록 마탑이 최우방이라고는 하나 로르텔이 앞세운 ‘임피르가(家) 피의 복수’라는 명분에 함께 칼을 빼 들기에는 어색한 감이 없잖아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참전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 부탁,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건 아니지.’

내가 참전을 결심한 건 마탑을 쌓아 올릴 땅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언제까지고 탑 없는 탑의 주인일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상황을 로르텔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마탑이 로르텔보다 칼리아 용병대를 우선시한다 여길 수도 있는 일이지.’

한데, 왜일까.

소가주는 언짢은 기색 하나 없었다.

그저, 내 참전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듯한 분위기.

도둑이 제 발 저린다 하던가?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그…… 아무렇지도 않나?”

“무엇이?”

“아무래도, 그 뭐냐. 로르텔 입장에서는 좀 그렇지 않나 싶어서 말이야.”

“……? 아, 혹시 참전 이유를 말하는 건가? 흐하, 생각보다 소심한 면이 있군. 아무렇지도 않네. 애초에, 마탑이 이런 이유로라도 참전을 한다면 우리로서는 기쁜 일이지.”

“……그런가?”

그럼 내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었다는 건가?

“제아무리 최우방이라고는 하나, 이건 로르텔의 전쟁이네.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이지. 한데 말이지…….”

소가주가 물음을 던진 건 바로 그때였다.

“혹, 칼리아 용병대와는 어떤 관계인지 물어도 되겠나?”

안 될 건 없었다.

“친구의 양어머니가 칼리아 용병대장이지.”

“차라리 알려 주기 싫다 말하게. 칼리아 용병대장의 양아들이면 아카데미생이던데.”

그래, 안 믿을 줄 알았다.

한데.

시온이 일개 용병대장의 신상 명세를 원래부터 알았을 리는 만무하고. 벌써 조사를 끝낸 건가? 고작 몇 시간 만에?

그런 의문을 갖고 바라보는데, 난 곧 그게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데 말이지…… 혹시 단장 엑스트 경을 기억하나?”

“엑스트? 그게 누구…….”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시온도 고개를 갸웃했다.

“엑스트 경 말로는, 자네와 적잖은 교분을 나누었다던데? 대(對)마법 전술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주고받았다고…….”

“대마법 전술?”

“그럼, 이렇게 말하면 알겠나? 그 왜 있잖나. 자네가 본가에 쳐들어왔을 때 자네에게 칼을 휘두른 기사단장이 하나 있었지?”

“나한테 칼을……?”

그렇게 생각하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 덩어리?”

“……덩어리? 아, 엑스트 경이 덩치가 유달리 크기는 하지.”

그래, 유달리 기억에 남는 이였다.

그 큰 덩치뿐만이 아니라, 하루아침에 나를 호의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꽤나 이질적이었지. 그리고 덩치에 맞지 않게 쉬지 않고 나불대는 주둥아리까지도.

“근데, 그자는 왜?”

“사실, 엑스트 경이 실종됐네.”

“……실종?”

“그래. 토레스 지방 전투, 자네도 알겠지? 칼리아 용병대장이 낙오된 것도 그 전투였으니까.”

데큘란의 급습으로 패배했다더니.

그 정도까지 손실을 입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소가주 시온이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로, 엑스트 경이 실종된 지 나흘째이네. 마지막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칼리아 용병대와 백색 방패 기사단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더군.”

칼리아 용병대장의 신상 명세를 알고 있는 건 그런 이유였나?

“그러면…….”

“가문의 차원으로도 이렇게 허무하게 잃기는 아까운 인재네. 그렇다고 그를 찾기 위해 병력을 빼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렇다면, 결국 십검 중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는 말인데, 그리되면 데큘란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겠지.”

십검은 강력한 카드이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함부로 휘두를 수 없는 카드.

즉, 중한 인재이기는 하나 전쟁이라는 환경 탓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내가 거기까지 파악했을 때.

소가주 시온이 입을 열었다.

“아까 미안하다 했지?”

……아니, 미안하다고는 안 했다.

그냥 로르텔의 입장에서는 좀 걸리지 않았을까 싶었던 거지.

하지만, 시온은 내가 입을 열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엑스트 경을 구해 주게. 어떤가. 이만하면 섭섭함은 충분히 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시온의 입가로 익살맞은 미소가 걸렸다.

마치, 월척을 낚은 낚시꾼의 그것과 같은 표정.

‘이거…… 된통 걸린 거 같은데.’

물론, 참전하기로 한 이상 홀랑 칼리아 용병대장만 구출하고 발을 뺄 생각은 아니었다.

적당한 수준의 도움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

그런데, 소가주 시온의 표정을 보니, 왠지 일이 ‘적당한 수준’으로는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자네가 합류한다는 소식에 급히 전략을 수립해 봤네.”

딱!

시온이 손가락을 튕기자, 문을 열고 우르르 들어오는 로르텔의 참모진.

그들은 커다란 지도며 서류, 온갖 짐을 한가득 품에 안고 있었는데, 회의가 준비되기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난 그 일사불란한 모습에 기가 질려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난 이제 출발…….”

“탑주, 앉으시게.”

좀 전과는 달리 냉엄한 목소리.

어느새 사령관의 눈빛을 한 시온이 날 직시했다.

“빠르다고 능사가 아니야. 로르텔과 합작을 펼치지. 자네의 목적에도 충분히 도움이 될 거야.”

……아니, 난 나침반이 있는데.

하나, 내가 반론을 제시하는 일은 없었다.

참모의 브리핑이 시작됐으니까.

“그럼, 마탑과 로르텔 합작 작전에 대해 브리핑하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음.”

그저, ‘음’.

단 한 마디.

* * *

회의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뭐, 빨리 끝났다 해 봐야 새벽녘에서야 간신히 끝을 맺었지만.

어쨌든, 이번 회의를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로르텔은 내게 정보를 제공하고 난 로르텔에 무력을 제공한다.’

로르텔이 내게 제공하는 정보는 이러했다.

토레스 지방의 상세 지도와 데큘란 측 장수들의 신상 명세, 그리고 구출에 필요한 병력까지.

‘뭐, 구출 병력이야 엑스트도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상세 지도와 적장의 신상 명세만 해도 큰 도움이지.’

로르텔의 병력은 구조 인원을 위한 것이었다.

구조 인원이 한두 명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나 혼자 모든 걸 떠안을 수 없을 테니까.

지형 역시 아는 것과 모르는 건 큰 차이가 있었다. 주의해야 할 데큘란 측의 신상 명세 역시도.

그리고 로르텔은…….

‘구출 작전이 끝나고 토레스 지방의 산간 지역만 뚫을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고?’

산간 지역에 막혀서 로르텔의 기사단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단다. 기마 돌격이 불가능하다나.

그 때문에 토레스 지방의 전선이 고착화되고 덩달아 다른 전선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밑지는 장사 같기는 하다.

그래도, 어찌할까.

‘……빚진 게 있으니까 갚는 셈 치지 뭐.’

트러블슈터 건으로 도움을 받은 게 적지는 않았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텅 빈 회의실.

“바로 출발할 건가?”

“그래야지.”

난 시온의 물음에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토레스 지방까지 반나절. 그러면, 정오를 기점으로 언제든 출격할 수 있게 주둔지에 연락을 넣겠네.”

“그래, 그러면 되겠다.”

난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시온을 눈에 담았다.

퀭한 눈동자, 반면 형형한 안광. 얼굴은 마지막 만났을 때보다 수척해 있었는데, 그 때문일까?

평소에는 안 하던 물음을 던졌다.

“근데, 괜찮나?”

“……? 괜찮냐니? 무엇이?”

“그…… 아니다, 됐다.”

내가 괜찮냐 물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로르텔과 데큘란의 전쟁.

그것을 진두지휘하는 것이 소가주였으니까.

그러니까, 전쟁의 모든 핏값을 짊어지는 위치라는 말이다.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건 아닌가 우려되어 던진 질문이었는데, 딱히 힘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난 이만 출발하지.”

그렇게, 회의실을 나서려는데.

“혹 부담감을 느끼냐 묻는 거라면, 이 몸은 괜찮네. 책임감은 여실히 느끼지만, 부담은 아니지.”

“……그래?”

생각보다 단단한 시온의 목소리에 난 눈을 끔뻑였다.

역으로 시온의 질문이 들어왔다.

“하면, 자네는 어떤가.”

“……나?”

“사람은 타인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법이지. 사실, 내게 건넨 질문은 자네 스스로에게 한 질문인 셈이야.”

이게 무슨 말일까.

고개를 갸웃하자 시온이 픽 웃어 보였다.

“아니네, 아무것도. 다만, 힘들지 않다는 건 진심이네. 아니, 힘들어서는 안 되는 자리라 해야겠지. 지켜야 할 게 있으면, 없던 힘도 나는 법이야.”

“……어, 그래.”

뭐, 어쨌든 괜찮다는 말 같았다.

대화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이젠 진짜 간다.”

“무운을 비네.”

“소가주도.”

난 짧은 작별 인사를 남긴 후 회의실을 나섰다.

한데, 왜일까.

‘사람은 타인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법이라고?’

왠지 모르게 뇌리에 맴도는 시온의 한마디.

- 하면, 자네는 어떤가.

내가 괜찮지 않을 게 있나?

시온이 내게 질문을 한 이유가 심히 궁금했다.

하지만, 구태여 발길을 돌리지는 않았다.

……다만.

‘뭐지?’

어째서일까.

제 무력함에 치를 떨며 눈물을 흘리는 폴라와 막중한 책임감을 이고서도 맑게 웃는 소가주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 내게 건넨 질문은 자네 스스로에게 한 질문인 셈이야.

이 한마디가 어딘지 깨달음이 담긴 구절처럼 마음을 간질였다.

뭔가,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찝찝한 기분.

“에잉, 쯧.”

난 고개를 휘휘 저어 상념을 털어 내고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와이번, 날아.’

[나, 안 난다. 받는다, 월광석.]

씁. 싱숭생숭할 땐 와이번인데. 뭔 놈의 정령이 이렇게 물질을 밝히는지…….

내가 더러워서 안 준다, 더러워서.

어쨌든.

‘앞으로 반나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아라푸르긴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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