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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259화 (259/559)

259화. 친구, 위험. 안 된다, 앉으면

당황도 잠시.

위기감을 느끼자 머리는 도리어 차가워졌다.

‘기척은 최소 세븐 메이지.’

그렇다면 후보는 둘이다.

혹한의 폭풍 카드린, 그리고…… 새로이 세븐 메이지에 올랐다던 홀렌드.

그중 단연 최악은 홀렌드인데, 데큘란이 십검을 염두에 둔 판이라는 사실이 확실시된 지금, 사실 둘 중 어느 쪽이든 상황이 절망적이기는 매한가지겠지.

하면, 어찌해야 할까.

‘……튀어?’

이 많은 인원을 데리고?

말도 안 된다.

상대는 머지않아 이곳에 도착할 것이고, 이 좁은 동굴에서 전투를 벌이기에는 여의치 않다.

그러니…….

‘기회는 단 한 번.’

일격에 심장을 꿰뚫는다.

의지가 서자 사고가 팽창했다. 개방된 초월 속, 자연 상태의 마나를 그러모았다. 맹렬히 회전하며 공명하는 세 개의 서클로부터 마력을 뽑아 왼손에 둘렀다.

오른손에는 마나.

왼손에는 마력.

양손을 포개 두 기운을 합쳤을 때…….

파직, 파지직―

손아귀로 피어오르는 섬뜩한 뇌전.

“……탑주?”

이상함을 눈치챈 엑스트가 설명을 요구하듯 불러 왔지만, 나는 대꾸하는 대신 손아귀에 생성된 폭멸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 어느 때보다 파괴적으로 일렁이는 폭멸.

하면, 이 정도면 충분할까?

‘……아니, 아직.’

전쟁에 참전하는 마법사는 온갖 무장(武裝)을 두루 갖춘다.

내가 꿰뚫어야 하는 것이 역장뿐만이 아닌 것이다.

상대가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아티팩트가 만들어 내는 방호 따위야 신경 쓸 가치도 없었겠지만, 상대는 세븐 메이지.

……보다 파괴적이고.

‘더 날카롭게.’

의지에 화답한 폭멸이 서서히 형태를 갖췄다.

그것은 한 줄기 벼락이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뇌전의 창.

이제는 상대가 홀렌드인지, 카드린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 누가 되었든, 이 동굴에 한 발짝 걸음을 내딛는 순간, 심장이 꿰뚫린 주검이 될 테니까.

그렇게 준비를 끝마쳤을 때.

훅 하고 엄습해 오는 열기.

콰아아아아아아―

동굴로 들이닥치는 시뻘건 화염에 나는 뇌전을 흩어 내며 욕지거리를 씹어 삼켰다. 동시에, 역장을 피워 올려 동굴의 인원들을 화마(火魔)로부터 보호했다.

‘……X발.’

이 미친 새끼가.

다짜고짜 마법을 갈겨?

다 죽이려고?

허무하리만치 쉽게 수포로 돌아간 기습에 대한 실망감은 들지 않았다. 다만, 정말이지 엿 같은 심정이었다.

왜냐.

이 따위로 과감하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거든.

하나, 진짜 엿 같은 건 따로 있었다.

모든 불길이 멎었을 때, 동굴 안쪽으로 들어서는 불청객. 하지만, 그 숫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둘.

난 눈살을 찌푸리며 두 명의 불청객을 눈에 담았다.

‘……저놈들은.’

당연히, 전쟁에 참전했다 알려진 홀렌드와 카드린을 예상했다. 한데, 둘 모두 뜻밖의 얼굴이었다.

하나는…….

“흘흘, 이 사람아. 다짜고짜 퍼부으면 어쩌나? 인질들이 상하면 어쩌려고.”

대지의 지배자 자이포.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차피 십검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쓸모없는 건 다 치우는 게 좋아.”

바람과 불의 마력을 다루는 ‘더블 마스터’ 콕센.

‘어째서 저 둘이?’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자리에 세븐 메이지가 둘이 모였다는 것.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설마, 기세를 흩뿌리던 게 다른 한 명의 존재감을 감추기 위함이었나?

최악을 가정했건만, 상황은 그보다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 * *

두 세븐 메이지의 등장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단장 엑스트였다.

“……자이포, 콕센.”

작은 목소리였지만, 정적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온 탓에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이는 누구도 없었다.

공간으로는 숨 막힐 듯한 긴장이 내려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븐 메이지가 둘이나 한자리에 모였으니까.

백색 방패 기사단이 아무리 용맹하다고는 하나, 십검급의 강자 둘을 앞에 두고 의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 그들의 긴장이 무색하게, 자이포와 콕센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두 늙은 마법사는 동굴로 들어서서 좌중을 한차례 쓸어 보는가 싶더니, 이내 가면의 인물에게 시선을 옮겼다.

먼저 입을 연 건 콕센이었다.

“이보게, 자이포. 분명 십검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마법사가 십검에 오를 수 있었지?”

분명 십검이 걸려든 줄 알고 왔는데 웬 마법사가 자리하고 있으니, 의아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흘흘, 십검이라 확언한 적은 없네. 기척을 감추는 실력으로 미루어 보건대, 십검이 아닐까 한 거지.”

“그게 그거 아닌가.”

“늙은이의 변명이 듣고 싶나? 할 말은 많네만.”

“에잉, 쯧. 내 무슨 말을 할까.”

콕센은 자이포를 흘겨보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가면을 벗겨, 마법사의 정체를 확인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자이포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이보게, 잠시 물러나 보게.”

“아, 왜?”

“대화는 해 봐야지 않겠나. 다짜고짜 손을 쓰면 되겠나?”

“대화? 무슨 대화가…….”

콕센은 자이포의 만류에 짜증을 부리려다가 이내,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는지 픽 하고 웃어 보였다.

“아하, 그래. 대화? 대화를 하자는 거지? 그래, 대화 좋지.”

“흘흘, 그래. 혹시 아나? 운 없이 흘러들어 온 마법사일지. 그리고 보통 경지가 아니야. 대화로 풀 수 있으면 풀어야지.”

“그래, 그래. 내 생각이 짧았구만.”

콕센이 잠자코 물러서자, 자이포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보자…… 이 늙은이는 대화를 좀 하고 싶네만. 어찌, 가면을 쓴 마법사께서는 그럴 의사가 있으신가?”

“…….”

대꾸하지 않는 가면의 마법사.

그렇게 좌중으로 침묵이 내려앉으려 하는데, 가면의 마법사가 입을 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좋을 대로.”

그 대답에 자이포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래도, 대화가 좀 통하는 양반이구만. 하면, 보자…… 대화가 길어질 수도 있으니, 맨바닥에 앉아서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 그러면 되겠구만.”

곧 손가락을 튕기는 자이포.

파즈즈―

바닥의 돌이 튀어 올라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어 낸 건 그 직후였다.

자이포는 그 의자에 앉은 후, 가면의 마법사에게 손짓했다.

“앉게.”

한데, 왜일까.

가면의 마법사에게 자리를 권하는 자이포의 눈동자가 뱀처럼 번들거렸다.

그리고 가면의 마법사, 아스터가 그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는데, 와이번의 목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친구, 위험. 안 된다, 앉으면.]

그래도 대지의 정령이라고, 자이포가 만들어 낸 의자에 모종의 술수가 있음을 깨달은 모양.

하지만.

저벅, 저벅.

아스터는 그런 와이번의 우려를 뒤로하고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아니,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

자이포의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엑스트와 브리트라를 비롯한 이들을 눈에 담고 있었으니까.

“흘흘, 잘 생각했네. 그럼 이제 대화를 시작해 볼까?”

* * *

“그래, 자네는 누군가?”

첫 번째 질문에 아스터는 담담히 대꾸했다.

“마탑의 주인.”

“……허어, 자네가? 마탑의 주인이라고?”

예상치 못한 아스터의 정체에 자이포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설마, 인피니트 체인으로 데큘란을 물 먹인 범인을 이 자리에서 만날 줄은 몰랐으니까.

“이거 참, 우연히 흘러든 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구만. 흘흘, 한데 탑주께서는 어찌 이 자리에 계시나? 혹 이번 전쟁에 참전한 건가?”

“그런 셈이지.”

“하면, 단장을 구하러 왔나 보군? 로르텔과는 관계가 꽤나 돈독한 모양이야. 최우방이라 이건가?”

“그렇다 볼 수 있지.”

짧은 단답이었으나, 자이포는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중간중간 콕센이 쓸데없는 신변을 묻기도 했는데,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질문에 불과했다.

……겉보기로는 말이다.

‘……한 십 분이면 넉넉하겠지.’

그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대지의 주박.

그 마법이 탑주의 몸에 충분히 스며들기를.

대지의 주박은 그가 평생에 걸쳐 만들어 낸 마법으로, 앉은 대상의 마법을 캔슬시키는 금제였다.

기본적으로 앉는 즉시 효과가 발동되는데, 앉는 시간이 길어지면 의자에서 일어나도 그 효과가 유지된다.

그리고 그 효과는 앉아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오래 지속되는 것이 특징.

그렇게, 자이포가 때를 노리는데 탑주의 입이 열린 건 그때였다.

“쓸모없는 문답은 그만하고, 얼마면 되지?”

“무엇이 말인가? 설마, 이 몸을 돈으로…….”

“아니, 얼마나 앉아 있으면 되겠나 이 말이다.”

“그게 무슨……?”

시종일관 태연하던 자이포의 얼굴에 한 줄기 균열이 번져 나갔다. 그런 와중, 탑주는 의자를 툭툭 두드리며 웃어 보였다.

인식 저해 마법 탓에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그가 웃고 있음은 자이포 역시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웃으며 탑주가 입을 열어 보였다.

“얼마를 예상하나. 십 분? 이십 분? 내 기꺼이 앉아 주지. 다만, 조건이 있다.”

“……허!”

그 오만함에 자이포는 끝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알고 있었나? 알면서도 앉았다고?”

“뭐 대단한 마법이라고.”

“허허.”

자존심을 긁는 한마디에 자이포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흘흘, 이 사람아. 내 말하지 않았나. 대지의 주박인지 뭔지, 별 대단할 것도 없다고.”

“시끄럽네. 에잉, 쯧.”

콕센의 핀잔에 자이포는 그를 흘겨보고는 다시 탑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더 이상은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그래, 의도를 알고 있다면 에두를 필요가 없겠구만. 십 분, 십 분만 앉아 있게. 그리하면, 서로 피곤하지 않게 일을 끝낼 수 있으니 말이야.”

탑주가 대지의 주박을 알고 있다는 건 퍽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상황 자체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대지의 주박은 말 그대로, 쉬운 일을 한결 더 쉽게 해결하려는 수단일 뿐이었으니까.

한데, 그때였다.

“자이포.”

“흘흘, 말하게.”

“난 피곤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끝내 저항을 하시겠다? 지켜야 할 이들이 이토록 많은데?”

이쯤 되자 자이포 역시 여유를 유지할 수 없었다.

옆에 콕센이 있다고는 하나, 십검급으로 추정되는 강자와 손속을 나누는 건 피곤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전의를 다지는데 탑주는 고개를 살레 저었다.

“그건 그쪽이 하기 나름이겠지. 말하지 않았나? 조건이 있다고.”

“조건이라?”

“잔챙이들은 보내 주지. 그리고 네놈과 콕센, 나. 셋이서 대화를 하는 거다. 그리하면, 얼마가 되었든 이 자리에 앉아 주지.”

그러니까, 백색 방패 기사단을 보내 달란 말이었다.

자이포로서는 실소가 나오는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허허, 우리가 왜 그래야 하나?”

“왜 그래야 하냐고?”

공간으로 파열음이 울려 퍼진 건 바로 그때였다.

꽈드득…….

탑주의 손아귀에서 나온 마력이 대지의 주박을 붕괴시키는 가운데, 탑주의 목소리가 동굴로 울려 퍼졌다.

“그러지 않으면, 내 확실히 약속하지. 콕센은 몰라도…….”

힐끗 콕센을 일별한 탑주의 눈동자가 자이포에게 닿았다. 그리고 뿜어지는 어마어마한 살기.

탑주가 말했다.

“넌 내 손에 뒈져.”

그 살기는…… 자이포가 겪어 본 그 어떤 것보다 짙고 음습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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