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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279화 (279/559)

279화. 정의는…… 살아 있다?

다음 날.

아카데미 일과가 끝난 후, 나는 교장 선배의 호출을 받아 아지트로 향했다.

‘그래, 걱정을 해 봐야 무엇 할까.’

요 근래 사건이 너무 많아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어차피 세상 모든 일은 무계획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첸비와의 일도 그렇다.

이런저런 걱정을 했던 것과는 달리, 첸비와는 잘 풀고 넘어갔다.

결석 사유에 대해서 마땅한 해명을 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 납득을 시킬 문제도 아니었던 것이다.

필요했던 건 하나.

담백한 사과뿐.

그건 그렇고.

‘왜 죄다 내가 뭔 말만 하면 미친놈처럼 보는 거야?’

샤인도 그렇고 이벨린도 그러했다.

사람이 살면서 고맙다, 미안하다, 솔직하게 말할 수도 있는 거지, 왜 꼭 당장 내일 죽을 사람을 보듯이 경악을 하는지, 쯧.

어쨌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교장 선배의 아지트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아지트는 전과 달리 많은 게 바뀌어 있었다.

“뭔…….”

“왔느냐?”

“예, 뭐. 근데…….”

난 아지트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요즘 뭐, 횡령하십니까?”

“뭬야?”

“아니, 그도 그럴 게…….”

아지트가 너무 많이 바뀌어 있어서 그렇다.

소파며 못 보던 책상, 그리고 티 세트를 비롯한 사소한 집기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고급품이면 뭐라 말을 안 하겠는데, 웬만해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후,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앉기나 해라.”

난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 교장 선배를 잠시 바라보다가 소파에 앉았다.

나와 교장 선배의 목소리가 겹친 건 바로 그때였다.

“일단…….”

“우선…….”

말을 하려던 우리는 서로 입을 꾹 다물었다.

잠깐의 침묵.

“먼저 말씀하세요.”

“네가 먼저 말해라.”

“아니에요, 먼저 말하세요.”

“흐음.”

교장 선배는 짧은 침음성을 흘리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그 입이 열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우선, 미안하구나. 삼황녀님을 대신해서 사과를 건네마.”

“음.”

“삼황녀님도 호위의 손속이 너무 강경했음을 인정하셨다. 도리어, 네게 감사함을 표하셨어.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고.”

“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로…… 미안하다.”

“음.”

모든 대답은 ‘음’으로 통일했다.

일단, 교장 선배의 사과 점수는 만점에 가까웠다. 이런저런 변명도 없고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으니까.

그리고 가만히 듣다 보니, 상황이 더럽게 꼬인 것도 있었다.

“지금 황실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너도 알다시피 리하임…… 아니, 무스펠룬 대공께서 복귀를 선언하셨지. 그 때문에 1황자와 2황자의 파벌이 어수선해.”

무스펠룬 대공의 복귀에 애먼 1, 2황자가 왜 동요를 하느냐.

말인즉 이런 거였다.

‘그러니까…… 무스펠룬 대공이 현 후계 판도를 뒤흔들 수도 있다고?’

오래전에 죽었다 알려진 양반이었지만, 아직까지 그 영향력은 적지 않단다. 당시 그와 함께 전장에 섰던 인물들이 다 한자리씩 꿰차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죽음 이후에 그 일대기를 제국에서 거의 신화적으로 포장을 한 터라, 그 이후 세대에서 무스펠룬 대공을 흠모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당장이야, 무스펠룬 대공의 의중을 알아보기 위해 숨죽이고 있다지만, 자칫하면 피바람이 불 수도 있는 일이다. 어제 호위가 과민했던 건…….”

“뭐 그런저런 일 때문이다?”

“그렇지.”

“흐음…….”

난 교장 선배를 빤히 바라봤다.

‘뭔가 뒷배경이 더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의도적으로 말을 아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근데, 가만.’

혹시 이것도 나 때문인가?

따지고 보면, 리하임 선배가 복귀를 한 빌미를 제공한 게 나였으니까…… 아니, 아니다.

‘나는 돌을 던졌을 뿐이고.’

그냥 우연히 그 자리에 개구리가 있었을 뿐이다.

잡생각을 떨쳐 내기 위해 고개를 휘휘 젓는데, 교장 선배가 입을 연 건 바로 그때였다.

“한데, 후배야.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느냐?”

“……부탁이요?”

“그래, 부탁.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

교장 선배는 말끝을 흐리며 날 바라봤는데, 나는 눈을 삐뚜로 뜬 채 마주 봤다.

이런 내 눈빛이 거슬렸던 것일까? 교장 선배가 물음을 던졌다.

“후배야, 눈을 왜 그렇게 뜨냐?”

“어제 저한테 왜 그랬어요.”

“너한테……?”

“욕했잖아요. 닥치라고.”

“…….”

솔직히…… 그래. 삼황녀는 그렇다 치자. 그 호위가 잘못을 하기는 했는데, 황족이 나서서 사과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한데, 교장 선배는 조금 충격이었다.

닥치라니?

여린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는데, 믿지도 않는 도끼에 대가리를 찍힌 듯 마음이 아려 오더라.

그런데, 뭐? 이제 와서 부탁이 있다고?

“미안하죠?”

“미안……하다.”

암, 그렇고말고. 미안해야지.

“진심으로 사과하세요.”

“진심으로…… 미안하다.”

교장 선배는 잘못을 뉘우친다는 듯 드물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데,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겠느냐?”

“부탁이요?”

“그래,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 봐라. 사과의 의미에 감사함까지 담아서, 내 톡톡히 보답하마.”

“흐음…….”

난 팔짱을 낀 채 다리를 꼬았다. 발끝을 까딱이며 턱을 치켜든 채 교장 선배를 바라봤다. 교장 선배의 이마로 핏줄이 불룩 솟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지금 이 상황의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는데.

“어디 한번, 들어나 볼까요?”

“그으래…… 한번, 들어 봐 주겠느냐?”

교장 선배의 얼굴로 화색이 돌았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한데, 이걸 어떻게 하지.

“제가 시간이 없어서.”

“…….”

“수업 들으러 갈 시간이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수업? 뭔 놈의 수…….”

난 교장 선배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렸다. 원래 기대와 대가리는 깨야 제맛인 법.

그리고, 뭐어?

‘사과의 의미에 감사함까지 담아서 보답한다고?’

이 몸이 누구냐.

‘탑의 주인.’

심지어, 황실의 후계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물 무스펠룬 대공과 선후배 관계이자, 그 제자와도 돈독한 자가 바로 나이다.

내가 아카데미 생활 동안 바라는 건 많지 않았다.

파룬을 부려서 학회를 설립하고, 이벨린을 움직여 돈을 벌면서, 최대한 조용히 아카데미 생활을 끝마친다.

부와 명예?

‘아, 있을 만큼 있다고.’

없는 거 없이 다 있다.

그리고 뭐, 딱히 심각한 부탁도 아닌 것 같고.

그건 그렇고.

‘……당분간 라피테르도 가지 말아야지.’

아카데미의 평화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 * *

아카데미의 생활은 평화로웠고 모든 일은 순조로웠다.

이벨린은 주말마다 제2 흑백 지대를 오가면서도 맡은 바 일을 잘 수행해 냈고, 파룬은 교수 퇴임을 시일을 두고 지켜보기로 한 후 학회 등록에 집중했다.

덕분에 나는 평범한 아카데미생들처럼 뇌를 빼고 살 수 있었는데, 난 와이번이 왜 그런 화법을 구사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스터, 밥…….”

“먹는다, 밥.”

“그 이상한 말투는 언제까지 할 거야?”

“모른다, 나.”

질문을 받았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정리 안 하고 내뱉으면 이렇게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

와이번은 대체로 뇌를 빼고 살고 있었다는 것.

한데, 가만.

‘혹시, 데미안도?’

와이번보다야 덜하지만, 데미안의 화법도 와이번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어쨌든, 일상 자체는 매우 평화로웠다.

키도 조금 자랐다.

“친구, 성장했구나.”

“…….”

이제는 쑥쑥 크는 데미안과 눈높이를 나란히 할 정도였는데, 밤마다 성장통으로 잠을 설칠 정도.

낮에는 데미안, 첸비, 이벨린과 함께 아카데미 공부를 하고, 밤에는 혼자서 내상을 치료하거나 얼간이 트리오와 외출권을 끊고 놀러 나갔다.

도시 하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디저트 가게를 들르거나 아카데미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음식점을 탐방했다.

지극한 일상이었다.

“뭐……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요.”

일에 미쳐 있는 이벨린조차도 이렇게 표현할 정도.

……하지만, 모든 일은 뜻대로 흘러갈 수 없는 것인가.

기말고사가 가까워져 오는 시기.

모처럼 주말에 휴식을 선언한 이벨린과 함께, 나와 첸비, 데미안 네 사람은 도시 하젠의 카지노를 찾았다.

현금 대신 경품을 걸고 하는 게임장이었는데, 요즘 아카데미생들 사이에서 유행이라고.

우리는 각자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게임을 진행했는데, 퍽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방비가…… 철저하네.”

첸비는 마법적 꼼수를 막아 놨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어차피 돈을 따려고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카드 게임은 데미안의 우세.

“데미안 군의 표정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어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생각도 안 해!”

무뇌의 승리였다.

그리고 카지노 쪽에서 만들었다는 땅따먹기식 주사위 보드게임은…….

“땅, 더 많은 땅…….”

왠지 모르지만 이벨린의 압도적 승리.

그 밖에 나와 첸비는 적당히 이기고 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길.

“재밌었어.”

데미안은 ‘내 돈’으로 산 마카롱을 처먹으면서 세상 행복하다는 듯 지껄였다. 이벨린은 지출된 금액을 장부에 적었고.

……아마, 내 개인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도 마탑의 자금으로 취급하는 모양.

“있잖아, 우리 이번 방학 때는 여행을 가는 거야.”

“여행이요?”

“여행?”

첸비와 이벨린의 물음에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2학기 때는 더 바쁘대. 그리고 3학년 때는 많이 힘들대. 그러니까 시간이 지금 밖에 없댔어.”

그러니까, 더 바빠지기 전에 놀러나 가자는 말이었다.

“근데 어디로요?”

“바다를 가는 거야. 아주 어릴 때 할아버지랑 같이 가던 곳 있어. 거기 바다가 예뻤어.”

“바다, 바다라…….”

첸비는 바다를 가 본 적이 없다며 눈을 빛내고, 이벨린도 혹하는지 고민을 하는 듯했다.

데미안이 날 바라본 건 바로 그때였다.

“친구, 어때? 바다 본 적 있어? 물이 엄청 많아.”

바다…… 본 적은 있다. 추억도 있었다. 밀입국자들과 두근두근 밀수 여행. 나쁘지 않았지.

당시의 추억을 회상하는데 데미안이 물음을 던졌다.

“어때? 갈래?”

“뭐, 나쁘지 않…….”

거기까지 대답하는데.

“……어?”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첸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선 역시 첸비가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 옮겨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도 첸비처럼 얼빠진 탄성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의 교문 앞.

황실의 인장이 박힌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가운데, 기사들이 한 노인을 연행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노인의 얼굴은 제법 익숙했다.

‘교장…… 선배?’

그 얼굴을 알아본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얼간이 트리오가 한마디씩 말을 뱉었다.

“교장 선생님, 범죄자?”

“……뭘까요.”

“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심각한 것 같은데…….”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기사들은 교장 선배를 마차에 태운 후 이동했다. 난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가며 멀어지는 마차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의는…… 살아 있다?’

거기까지 생각하는데.

삐이익! 삑!

저 하늘 위로,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침 식사 1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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