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281화 (281/559)

281화. 질량 대비 효율

황급히 저택을 나선 파룬이 향한 곳은 아카데미였다.

“여기서부터는 네가 안내해라.”

“내가?”

“드나드는 통로가 있을 것 아니냐.”

정문을 통하지 않고 굳이 뒷길로 들어가려는 파룬.

의아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주 드나드는 담장으로 파룬을 안내했다.

“연구실로?”

“그래.”

아카데미 교수와 아카데미 잠행이라니.

퍽 신선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는데, 감상을 음미하기에는 파룬의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어쨌든, 시선을 피해 도착한 파룬의 개인 연구실.

“기다려 봐라.”

파룬은 급한 걸음으로 연구실 이곳저곳을 움직이며 자료를 챙겼다.

난 잠시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에 기감을 곤두세웠다.

집무실 너머, 공동 연구실로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파룬 휘하 조교들인 모양인데 주말에도 출근하는 걸 보니 학구열이 여간 뜨거운 게 아니었다.

‘나중엔 마탑도 저렇게 돼야 할 텐데.’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됐다. 이제 가자.”

우리는 왔던 길을 통해서 저택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도대체 뭐지?’

파룬의 행동은 하나하나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아카데미에 숨어드는 것 정도야 내부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파룬으로서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한데, 파룬은…….

- 여기서부터는 네가 안내해라.

내게 길 안내를 요청할 만큼 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고.

자료를 챙기는 모습은 꼭 남의 연구실에서 도둑질이라도 하는 양 여간 섬세한 것이 아니었다.

‘혹시 진짜 횡령인가?’

그럴 수도 있었다.

원래 횡령범들은 사소한 위험에도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법이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

파룬은 집무실에 들어온 이후에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긴장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는데, 이쯤 되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횡령인가?”

“또 개소리인가?”

“또라니?”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도대체 뭔 일인데 그래?”

파룬의 반응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교장 선배가 연행된 것은 황족들의 후계 다툼 때문이고, 삼황녀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정치와는 연관된 게 없는 파룬이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사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히 뭔가를 알고 있는 반응이었지.’

그렇지 않고서야 소식을 접하고 그렇게 신속하게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파룬은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내가 궁금한 건 바로 그것이었다.

뭔지를 제대로 알아야 교장 선배 건에서 신경을 끄든 말든 할 테니까.

파룬의 입이 열린 건 내가 질문을 던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으음, 그래. 네놈도 알 필요가 있겠지. 영 관련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

“관련?”

무스펠룬 대공…… 아니, 그냥 선배라고 칭하자. 사람은 언제나 한결같아야 하는 법이고, 그건 대공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리하임일 때도 내 선배였으면, 대공일 때도 내 선배를 해 주셔야지. 암, 그렇고말고.

어쨌든, 나는 ‘관련’이라는 게 무스펠룬 선배 때문인 건가 싶었다.

무스펠룬 선배가 마탑을 위해서 나섰다는 건 파룬에게도 말을 했었으니까.

한데, 그건 아닌 듯했다.

……연관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주된 이유가 아니라 해야겠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보자. 황실 측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이 일을 끝낼 것 같나? 황실 측에서 감사를 파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최악을 가정하는 거다. 하면, 감사가 파견되면 어찌 될까. 나라면 아카데미 교수들의 연구실까지 압수 수색을 펼칠 것 같군.”

“근데?”

“근데는 뭐 근데냐. 황실의 감사관들이 연구실의 자료만 털 것 같나? 자료는 물론이고 아공간까지 싹 다 털어 가는 거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설명이 더 필요한가?”

설명이 더 필요……하지는 않았다.

‘아공간’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파룬이 말하는 게 뭔지를 깨달았으니까.

“신천원공, 그리고 인피니트 체인.”

“그래, 그거다.”

그러니까, 자칫하면 여태껏 꽁꽁 싸매고 있던 비전과 아티팩트를 홀랑 황실에 넘겨줄 뻔한 것이다.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는데, 거기까지 들으니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면 연구실의 자료는?”

“신천원공과 인피니트 체인에 대한 계산식이다.”

그 계산식을 너무 무방비하게 방치한 건 아닌가 싶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건 아닌 듯했다.

워낙 가닥가닥 끊겨 있고 단편적인 정보만 담겨 있어서 천원공와 인피니트 체인을 연구한 마학자가 보더라도 연관 짓지 못할 거라고.

한데, 어째서 그리 급히 챙겼느냐.

그 해답은 간단했다.

‘대외적으로 진행하는 연구랑은 또 완전히 동떨어진 술식이라고?’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황실 감사관들에게는 훌륭한 빌미가 될 수 있단다.

황실 감사관들은 지독하기 짝이 없어서 자그마한 의혹도 납득이 갈 때까지 미친개처럼 물고 늘어진다고.

“근데, 너무 앞서 나간 거 아닌가? 확실한 것도 아니라며.”

“가능성은 매우 높고, 설령 가능성이 희박하다 해도 리스크를 생각해야지.”

“……음.”

맞는 말이었다.

어쨌든.

‘뭐, 대강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내 근본적인 의구심이 해소된 것은 또 아니었다.

내가 궁금한 건 교장 선배가 연행되게 된 뒷배경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넌지시 물었는데, 파룬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설명해 줬다.

‘내 추측과 크게 다르지는 않군.’

1황자, 2황자. 둘 중 어느 쪽인지는 모르지만, 교장 선배를 연행한 건 삼황녀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그 이유는 내가 짐작했다시피 교장 선배가 베어 먹힌 달의 일원이기 때문.

‘말하자면, 교장 선배와의 인연으로 무스펠룬 선배가 삼황녀의 손을 들어주는 게 두려웠다는 건데…….’

파룬이 사견을 덧붙이기를 삼황녀뿐만 아니라 무스펠룬 선배를 견제하기 위함도 있을 거라고.

“삭월의 마법사가 아카데미의 교장이면, 황실 입장에서는 썩 달갑지 않을 테지. 가뜩이나 영향력이 하늘을 찌르는데, 아카데미의 인재들까지 무스펠룬 대공이 품는 셈이니까.”

“그게 그렇게 되나?”

“네놈은 모르겠지만, 황실의 인재들 중 상당수가 아카데미 출신이다.”

즉, 삼황녀 때문이 아니더라도 교장 선배를 쳐 내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소리.

‘……선배가 죽음을 염두에 뒀던 건 그런 이유인가?’

무스펠룬 선배야 후계 구도나 권력 따위에 관심이 없다지만, 주변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을 테니까.

거기까지 들은 나는 무심한 듯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 교장은 죽겠네?”

“그건 아니다. 죽이려면 이렇게 요란을 떨 필요가 없지. 그리고 무스펠룬 대공과 ‘베어 먹힌 달’은 황실로서도 부담스러운 존재야.”

일개 마법사단 하나이지만, 그들을 흠모하는 이들이 하나둘이 아니란다.

……그리고 개중에는 교장 선배처럼 신분을 숨긴 채 한자리를 차지한 이들도 제법 있었고.

즉, 과거에는 ‘전투’ 하나만을 잘하는 집단이었지만, 이제는 영향력까지 갖추게 된 셈.

‘그러니까, 일단 교장 선배는 안전하다는 건데.’

마음이 썩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하나, 여기까지 들으니 또 다른 의문이 일었다.

“무스펠룬 대공의 심기를 거스르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무스펠룬 대공이 이번 일로 기분이 상해서 진짜 삼황녀의 손을 들어 주면 어쩌려고?”

“그건…….”

내가 모르는 뭔가가 또 있나 싶어서 물었는데, 파룬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파룬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답을 찾지 못한 듯했다.

뭐, 이 부분은 석연치 않기는 한데…….

‘……딱히 상관은 없겠지, 뭐.’

“참, 그런데. 감사가 올 확률이 그렇게 높은가?”

“리스크만 따져도 결코 과한 대응은 아니라고 했을 텐데? 그리고 대가리…… 아니, 머리가 있으면 생각해 봐라. 황실 측에서 가장 부담 없이 빼 들 수 있는 칼이 뭔지.”

그게 감사라는 건가?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이참에 아카데미 교수진을 제 사람들로 채울 수도 있겠지. 그도 아니면 새로 부임하는 교장이 활개 치기 편하게 기를 꺾어 놓으려는 요량일 수도 있고.”

아하, 그런 거구만.

난 그제야 고개를 주억거렸다. 납득했다는 제스처였는데…….

“질량 대비 효율은 영…….”

“뭐, 새꺄?”

“시끄럽고, 알아들었으면 이거나 맡아 놔라.”

파룬은 능숙하게 말을 돌리며 아공간에서 자료들을 꺼냈다. 아까 연구실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것도 가져가라.”

비밀 금고에서 서류 뭉치 또 하나.

거기다가…….

“이것도.”

“…….”

어느새 테이블 위로는 서류가 한가득 쌓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피니트 체인이 든 목함을 건네받았을 때, 분하지만 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질량 대비 효율…….’

이게 바로 패배감이라는 건가.

“아공간에 다 들어가나?”

“……들어는 갈 거 같은데.”

“그래, 그럼 어서 가 봐라. 그리고 당분간은 찾아오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내가 추후에 따로 연락하지.”

“…….”

난 대꾸하지 않고 서류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누가 그랬던가. 밀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그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질량 대비 효율인 것이다.

* * *

의기소침한 마음도 잠시.

난 파룬의 저택을 나선 후 곧장 아카데미로 급한 걸음을 옮겼다.

‘일단, 굉장히 높은 확률로 감사가 뜬다는 말이지?’

어디까지나 파룬의 추측일 뿐이었지만, 나는 감사가 뜬다는 가정하에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펠리나 교수.’

그녀에게 맡겼던 프리젠의 아티팩트를 회수해야만 했다.

그렇게, 도착한 펠리나 교수의 개인 연구실.

난 텅 빈 연구실을 보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뭔…… 맨날 없어, 이 양반은.”

수업은 꼬박꼬박 진행하는 걸 보면 아카데미를 나오는 건 확실한데, 연구실을 찾아와 보면 항상 없었다.

언제나, 개인 연구실 너머 공용 연구실의 조교들만 바글거릴 뿐.

‘씁, 그럼 어쩌지?’

난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질량 대비 효율이 안 나오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 봤다.

프리젠의 아티팩트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펠리나 교수를 믿고 맡겨?

‘……그건 좀 그렇지.’

프리젠의 아티팩트는 추후 마탑의 방호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수도 있는 중차대한 물건이었다.

생각해 봐라.

시련의 관 사태 때 교수들이 온 힘을 다해도 뚫지 못하던 게 프리젠 아티팩트의 공간 단절인데…… 만약 그게 탑 전역에 적용된다면?

“매우 좋겠지.”

그러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프리젠의 아티팩트를 챙겨야 한다는 것인데.

“가지고 다니려나? 그러면 차라리 다행인데…… 가만.”

난 펠리나 교수의 연구실을 쭈욱 훑어보다가 문득 책장에 시선이 닿았다.

책장은 평범했다.

여느 교수들의 책장과 다를 바 없이 마학 서적과 자료 뭉치로 빼곡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책장의 구조였다.

‘저런 구조면…….’

이쯤일 거 같은데?

난 정의로운 트러블슈터의 경험을 되살려 책장에 꽂힌 책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더듬어 봤다.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그렇게 몇 권이나 되는 책을 뽑았다가 꽂았을까.

딸칵!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마찰음.

스르르륵―

책장의 한 면이 쭉 밀리며 벽면이 드러나고 있다.

그렇게 책장의 움직임이 멈췄을 때, 나는 벽면에 박힌 금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보자…… 다이얼식인데.”

비싸게 주고 맞춘 금고인지 제법 복잡한 구조였지만, 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런 작업은 골백번도 더 해 봤으니까.

그렇게.

끼리릭, 차락!

기분 좋은 마찰음과 함께 금고의 문이 열렸을 때.

나는 생각했다.

“……운이 좋군.”

금고 안에 놓여 있는 장갑 하나. 프리젠의 아티팩트가 분명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