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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310화 (310/559)

310화. 심지는 타고 있었다

연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벨로즈는 측근들로부터 귀족들의 여론을 듣는 한편, 차분히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이제 시작이야.’

권력은 그 자체로 부와 명예, 무력을 불러오지만, 때로는 부와 명예, 무력이 권력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72인회와 아스터는 벨로즈에게 권력을 가져다줄 충분한 무력이었으니.

이제 그것을 어찌 활용할지는 온전히 벨로즈에게 달린 일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남은 건 내일 다시 이야기해 보죠.”

“예, 저하.”

벨로즈는 연회실에 비치된 방을 나서며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널따란 복도를 가로질러 그녀가 향한 곳은, 아까 전 그녀가 잠시 자리를 피했던 별실이었다.

연회는 마무리됐지만,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남았기 때문.

“왔어?”

아스터는 아까 모습 그대로 소파에 기대앉아 땅콩을 아그작 씹어 먹고 있었는데, 벨로즈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맞은편에 앉아 독서 중인 노인을 눈에 담았다.

“마이셀른 경, 오랜만입니다.”

“음…… 알아보셨습니까?”

“예. 여기…….”

벨로즈가 제 손등을 가리키자, 마이셀른의 시선이 자신의 손등에 닿았다.

마이셀른의 손등에는 반달 모양의 흉터가 있었다.

“허허, 참…… 신경을 좀 썼어야 하는데. 선황제 폐하가 돌아가신 후 처음 뵙는 것이죠? 진즉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소인이 미욱한 탓입니다.”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나마 도움을 주셔서 감사한걸요.”

“도움이라…….”

마이셀른은 쓰게 웃어 보였다. 사실, 그가 이곳에 온 건 아스터의 꾐에 넘어갔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리고 연회가 삼황녀의 행사라는 걸 안 이후에도, 특별히 나설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러니, 감사를 받는 것이 어색할 수밖…….

“선배는 내가 모시고 온 거니까, 나한테 감사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짧은 침묵.

“그간 격조하셨는지요?”

“예, 마이셀른 경은 어찌…….”

벨로즈와 마이셀른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아스터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재회의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았다.

사실, 벨로즈에게는 이제부터가 진짜 어려운 자리였다.

어째서이냐.

72인회.

그 힘을 빌려 쓰는 대가를 논하는 자리였으니까.

하지만, 먼저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벨로즈는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아스터, 솔직히 대답해 줄 수 있겠니?”

“……?”

“72인회, 나는 네가 급조한 단체인 줄 알았어. 정확히는 위장 단체쯤으로 생각했지. 근데…….”

벨로즈의 시선이 마이셀른에게 가닿았다. 그 시선에 마이셀른은 아무런 기색도 내비치지 않은 채 찻물을 홀짝였다. 답은 아스터에게 들으라는 무언의 신호였는데, 벨로즈는 그 뜻을 알아듣고 다시금 말을 이었다.

“72인회, 실존하는 단체니? 실존한다면 그 규모는…… 아니, 회주가 존재하는 거야?”

이건 벨로즈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였다.

정말, 72인회가 존재하고 아스터가 그곳의 서열 4위라면, 그 위로 아스터와 비슷하거나 그를 능가하는 존재가 셋이나 더 있다는 이야기니까.

아니, 아스터뿐만이 아니었다. ‘삭풍의 정령사’가 72인회의 8위라면 다른 인물들은 또 어떻다는 말인가!

어쩌면…… 그래.

삭월.

베어 먹힌 달.

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강의 마법사단에 버금가는 집단을 등에 업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 이름을 빌릴 뿐이라 하더라도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훨씬 넓어질 수 있었다.

때문에, 벨로즈는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72인회는 존재하지 않는 단체야.”

“……아.”

“마이셀른 선배도 어쩌다 합류한 거고. 사실 72인회는 나랑…… 식충이 한 마리, 그리고 마법사 하나가 전부인 단체라고 할 수 있겠지.”

“식충이? 마법사?”

“있어, 그런 놈들이.”

“음.”

벨로즈는 잠시 아스터의 말을 곱씹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아스터. 네 경지는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거니.”

“내 경지로 말하자면…… 흠.”

잠시 고민했다.

에르진 백작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내보였지만, 그것을 본인이 인정하는 건 또 다른 얘기니까.

하지만.

- 열다섯에 초월에 이른 대마법사. 그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도 괜찮겠지.

샤인의 말을 떠올린 아스터는 담담히 사실을 털어놓았다.

“초월.”

“……초월?”

“올라선 지는 얼마 안 됐고, 아직은 미숙한 수준이지만 어쨌든 초월인 건 분명해.”

“아…….”

이번에는 좀 전과는 다른 의미의 탄성이었다.

아까 72인회가 거짓 단체였다는 걸 알았을 때는 실망의 의미가 컸다면, 지금은 기대감이 충족됐을 때 나오는 탄성이었다.

아스터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 건 바로 그때였다.

“근데, 괜찮겠어?”

“……?”

“72인회야 그렇다 치고, 내 경지를 확실히 알았잖아? 그러면, 처음이랑 계산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서 말이야.”

이게 무슨 말이냐.

몸값이 올랐다는 의미다.

그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벨로즈는 ‘아’하고 탄식을 토해 냈다.

솔직히, 각오는 했다.

아스터가 초월이라면 그 대가를 응당 치르겠다고. 실제로, 그 대가가 무엇이든 치를 용의가 있었다.

대마법사란 본래 대가를 쥐고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무엇이든 아깝지 않다.

하지만, 막상 대마법사라는 걸 알게 되니, 벨로즈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벨로즈가 엿본 아스터의 배경은 그 경지만큼이나 불가사의한 것이었으니까.

왜 아닐까.

일신의 무력은 이미 초월을 넘어서고, 명가(名家) 중 하나인 블란도의 소가주와 막역한 사이. 그리고 ‘삭풍의 정령사’와 연이 있었다. 그뿐이냐? 삭월의 마법사인 교장 슈베르츠와…… 짐작하기로는 무스펠룬 대공에 이르기까지.

그런 이가…… 바라는 거라면 대체 무엇일까.

“혹시…… 처음과 대가가 달라졌니?”

벨로즈는 긴장하며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안 달라질 수 없지 않을까?”

“그럼…… 뭔지 말해 줄 수 있겠니?”

“뭐, 그건 어렵지 않지.”

아스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두 가지를 입에 올렸다.

우선 첫째.

“2황자를 막아 줘. 애초에 널 돕겠다고 나선 건 취임식 때 2황자와 엮였기 때문이야. 네가 2황자를 막는 방파제가 돼 줬으면 해.”

“근데, 그건 무스펠룬 대공 전하의 힘을 빌리면…….”

“떠보는 거야?”

아스터는 픽 웃고는 선선히 대답했다. 벨로즈에게는 숨길 이유가 없었으니까.

“무스펠룬 선배는 다른 쪽에서 힘을 쓰시느라 여력이 안 돼. 제2 흑백 지대는 물론이고, 다른 곳을 막아 주고 계시거든. 어쨌든, 첫 번째 조건, 이해했어?”

“……응, 이해했단다.”

사실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아스터와 손을 잡은 이상 그녀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문제는 두 번째였다.

“두 번째는…… 흠.”

아스터는 말끝을 흐리며 생각에 잠겼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 입이 열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둘 중 하나를 골라.”

“둘 중 하나?”

“그래.”

사실 두 번째 조건 같은 경우는 생각해 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안건이었다.

‘솔직히…… 고민이 많았지.’

삼황녀는 2황자의 방파제 역할만 해 줘도 제 몫은 충분히 하는 것이다. 황족의 영향력을 빌리는 건 부가적인 소득이라고 봐야겠지.

한데, 그렇다고 그냥 거기서 만족하고 넘어가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고.

‘재화를 받기에는 너무 짜치지.’

그러다가, 생각해 냈다.

아무것도 받지 않고도 모든 걸 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하면, 그것이 무엇이냐.

이거였다.

“하나, 72인회에 가입한다.”

“72인회……?”

벨로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가짜 단체라지 않았나?

하지만, 아스터의 말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둘, 마탑에 가입한다.”

“마탑은…… 뭐니?”

아스터가 답했다.

“내가 세울 탑인데, 사실 72인회의 모체가 마탑이라 할 수 있지. 참, 이건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고 너만 알고 있어야 돼. 알겠어?”

“응, 알겠는데…….”

둘 중 하나에 가입하라고?

“근데, 일단 두 집단 다 아스터 네가 수장인 거 아니니?”

“맞지.”

“……아.”

벨로즈는 탄식을 토했다.

그리고 언젠가, 아카데미생들이 떠들던…… 더럽지만 고민할 수밖에 없는 밸런스 게임이 떠올랐다.

똥 맛 스튜냐, 스튜 맛 똥이냐.

“……뭐야, 그 눈빛은?”

“아니……란다.”

벨로즈는 무더위에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축 처진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어디 가입할 건데?”

“……마이셀른 경은 72인회 소속이 아닌 거지?”

아스터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는 답했다.

“오늘부터 72인회에 넣어 드리지, 뭐.”

“……후배야, 누구 맘대로?”

“그냥 이름만 올려 둬요, 이름만.”

마이셀른은 심히 못마땅했으나, 차마 삼황녀 앞이라 험한 소리를 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72인회가 낫겠구나.”

그 한마디에 마이셀른은 낭패스러운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벨로즈는 애초부터 다 죽어 가는 얼굴이었고,

다만, 오직 한 사람.

아스터만이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면, 마음에 드는 숫자 있으면 생각해 놔.”

“혹시 그게…….”

“응, 그게 네 서열이니까. 참고로 ‘4’ 이상의 숫자는 안 돼. 아, 1, 2, 3이 안 되는 거니까 이상이 아니라 이하인가? 어쨌든.”

벨로즈가 읊조렸다.

“X팔.”

“……응? 지금 너 욕한 거…….”

“아니, 18위가 좋을 것 같다고.”

“……그런 거지?”

“응, 그런 거란다.”

벨로즈의 대답에 아스터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삼황녀, 72인회, 포획.’

……성공적.

72인회가 황족을 품는 순간이었다.

* * *

다시 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카데미생들은 중간고사가 끝나기 무섭게 기말을 준비했는데, 점차 날씨도 서늘해졌다.

초록이 무성하던 나무들은 알록달록한 옷으로 갈아입고, 높던 하늘은 더 높고 푸르러졌다.

그렇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비단 변화하는 것은 계절뿐만이 아니었다.

- 자네, 그거 아나? 삼황녀 저하께서 말일세…….

- 72인회라고 들었나? 삼황녀 저하의 칼이라는데…… 대마법사가 고작 서열 4위에 그친다는군.

날이 갈수록 벨로즈의 위상은 높아졌다.

덩달아 그 세력도 전에 비할 바 없이 불어났고.

한편, 무스펠룬 대공의 공국령이 된 제2 흑백 지대도 황실의 지원을 받아 나날이 발전한 덕에, 더 이상 흑백 지대스러운 면모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짧은 시간임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변화.

한편, 데미안의 마법 실력은 날이 갈수록 상승했다. ……첸비와 이벨린은 여전히 시험으로 죽으려 했고.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 속.

누군가에게는 비보가 될 희보가 날아들었다.

- 로르텔과 데큘란의 전쟁이 끝을 맺는다.

차디찬 겨울에 시작했던 두 명가(名家)의 전쟁이 드디어 끝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소식이 제국 전역에 퍼졌을 때.

“…….”

아스터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평화 속에서도 심지는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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