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350화 (350/559)

350화. 구름 낀 하늘 너머

이른 아침.

아스터는 잠에서 깨 호흡법을 전개했다.

들숨과 날숨.

호흡에 따라 자연 상태의 마나가 맥동한다.

어느새 다섯 개가 된 서클은 호흡법이 전개됨에 따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그 회전은 때로는 인력(引力)이, 때로는 척력(斥力)이 되어 마나를 밀고 당긴다.

그렇게 얼마간.

“……후.”

아스터는 깊은숨을 내쉬며 두 눈을 반개했다.

그렇게, 내쉬고 내쉬어 폐 속 깊은 곳에 남은 숨까지 모두 내쉬었을 때, 아스터는 다시 호흡을 들이마셨다.

아라푸르긴 산맥에서 내려온 공기는 과연 청명했다.

하메른 대수림 이후, 이처럼 마나를 짙게 머금은 공기는 접해 본 적이 없을 정도.

‘확실히, 위치가 좋아.’

단순히 공기가 좋아서 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대기 중에 마나가 풍부하다는 것은 곧 마력과 에테르를 쌓기에 적합하다는 소리다.

즉, 향후 마탑을 세웠을 때 마탑의 마법사들이 수련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라는 이야기.

마탑이 제대로 자리를 잡는 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한번 자리를 잡고 나면 이 환경은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

그나저나…….

“흠.”

아스터는 시선을 돌려, 침상 한구석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와이번’이 잠들어 있었다.

아라푸르긴 산맥에서 내려오는 와이번 말고, 이름이 ‘와이번’일 뿐인 그 ‘와이번’이.

‘언제까지 자는 거지.’

체내에서 맥동하는 마나를 보면, 깰 날이 머지않은 것 같기는 했다.

자세히는 몰라도, 마나의 맥동 패턴이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듯하달까.

내재되어 있던 마나가 사방으로 번져 나오는 걸 보면, 확실했다.

궁금한 건…….

‘……잠들어 있는 이유가 뭐냐는 건데.’

가장 유력한 가설은 바로 ‘성장’이었다.

만약 와이번이 제 주장에 따라 정말 ‘드래곤’이 맞다면, 그리고 라피테르 도서관에서 본 ‘환상 동물 사전’이라는 책에 적힌 내용이 맞다면…….

‘……지금의 와이번은 해츨링이라고 하나?’

사람으로 치자면 유아기이다.

그리고 유아기의 드래곤은 탈피를 할 때에 수면기를 갖는다고.

물론,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드래곤은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환상의 동물이고, 설령 존재했다 해도 머나먼 고대였을 테니까.

비교적 근대에 쓰인 책에 드래곤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적혀 있을 리 만무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령이 드래곤이 돼?’

이 무슨 우습지도 않은 소리인지.

물론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뱀파이어가 사실은 실존함을 알고 있는 아스터였지만, 뱀파이어와 드래곤은 경우가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뱀파이어는 그냥 식성이 특이한 인종이라 생각해도 무방하지만, 드래곤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만약 정말 ‘와이번’이 탈피를 하고 성장을 한다 해도, 그건 우연의 일치일 거라 생각하는 아스터였다.

전설 속의 드래곤은 용언(龍言)이라는 권능으로 모든 마법을 자아낸다는데, 초월에 이른 지금은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알고 있었다.

일찍이 하메른 대수림에서 ‘용언’을 다뤄 본 적 있는 아스터였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전설 속의 용언은 아니었다.

진정한 용언은…….

그 어떤 훈련이나 심상 구축도 없이, ‘의지’만으로 마법을 자아내며 심상을 담아내는 것이니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이것이 아스터가 드래곤이 존재하지 않음을 믿는 이유였고, 와이번이 드래곤이 아님을 확신하는 이유였다.

물론, 전설이 과장된 걸 수도 있다.

그러면…… 와이번이 제 주장처럼 드래곤일 수도 있겠지. 다만, ‘용언’은 사용하지 못하는.

뭐, 용언도 사용하지 못하는 드래곤을 드래곤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지마는.

어쨌든.

“보자, 아침 월광석을…… 흠.”

아스터는 아공간에서 월광석 세 개를 꺼내 와이번의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멈칫했다.

꼭…… 세 개를 다 넣어야 될까?

참고로, 와이번은 두 자릿수 이상의 숫자를 셀 때는 버벅거린다. 그리고 와이번의 아공간 속에 있는 월광석은 세자릿수가 넘은 지 오래고.

……고민은 길지 않았다.

툭, 툭.

한쪽 아공간에 월광석이 두 개.

툭.

다른 한쪽 아공간에 월광석 하나.

“짜식, 잘 자라.”

아스터는 잠들어 있는 와이번을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방을 나섰다.

어느 쪽 아공간에 두 개가 들어갔는지는, 오직 아스터만이 아는 일이었다.

* * *

방을 나선 지 얼마 안 됐을 때,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아스터 군. 잠깐 시간 괜찮아요?”

“괜찮기는 한데.”

아스터는 빤한 시선으로 이벨린을 바라봤다.

두 눈 밑으로 내려앉은 다크서클.

필시 밤을 새운 게 틀림없었는데, 고작 하룻밤을 새운 것치고는 피로한 모습이었다.

“요즘 수련 안 하지?”

“……졸업했으니까요.”

“건강 챙겨. 아프지 말아야지.”

이벨린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스터를 바라봤다. 아스터답지 않게 사려 깊은 모습 때문이었는데, 피곤해서인가?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왜, 그런 거 있잖은가.

잘해 주던 놈은 한 번만 잘못해도 역적이 되지만, 쓰레기는 한 번만 잘해 줘도 천사처럼 보이는 거.

아스터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으니, 이벨린이 받는 감동은 적지 않…….

“아니면, 후임을 미리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후…….”

그럼 그렇지.

“따라오기나 해요.”

이벨린은 아랫배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짙은 빡침을 참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어느 방.

“무슨 일인데?”

“어제 일을 얘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어제?”

“네.”

어제 아스터가 한바탕 깽판을 치고 나간 후, 이벨린은 그 뒷수습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아니, 뒷수습이라 해야 할까.

사실, 뒷수습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았다.

아스터의 돌발 행동이 가져온 이득은 적지 않았으니까.

이벨린이 한 것은, 아스터가 깔아 놓은 판 위에서 입지를 다지고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뿐.

그리고 지금은 총관으로서 상황을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일단…….

“자작 쪽은 완전히 백기를 들었어요. 저희 쪽에서 원한다면, 언제든 마법사 충원을 요청하겠대요.”

“흠.”

“왜요?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요?”

“너무 쉽지 않나 싶어서.”

그래도 명색이 삼황녀에게 붙은 귀족인데, 이렇게 쉽게 꼬리를 마나 싶은 거다.

그 인성을 떠나서, 벨로즈가 아무나 보내지는 않았을 터인데.

“괴롭힐 빌미가 사라져서 아쉬운 건 아니고요?”

“뭐, 그것도 있고.”

“어쨌든, 자작 쪽은 해결됐어요. 점심 전에 인사하러 온다던데, 시간 비워 놔요. 식사나 같이할 생각인가 봐요.”

“식사…… 꼭 해야 돼?”

‘귀족들의 식사’가 얼마나 지루한지 알고 있는 아스터는 난색을 표했으나, 이벨린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작 나름대로의 사죄의 제스처예요. 이거 안 받아 주면, 나중에 더 귀찮아질 수도 있어요.”

“왜?”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이니까요.”

“흠.”

그러니까, 이 사죄를 안 받아 주면 아예 눈 밖에 났다고 생각하고는 제 살길을 도모할 거라는 이야기.

물론 그것도 높은 확률로 대가리가 터지는 일이었지만, 자작에게 있어서는 대가리가 터지나, 아스터의 눈 밖에 나서 프로젝트에 제외되고 삼황녀에게 버려지나 매한가지였다.

한쪽은 육체적 죽음이고, 다른 한쪽은 정치적 죽음이었으니까.

“그래, 뭐. 그럼 받아 줘야지.”

자작의 심정 따위는 알 바 아니었지만, 귀찮은 일은 피하고 싶은 아스터였다.

식사 한 번으로 귀찮은 일을 막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그리고?”

“로르텔 소가주의 기사한테는 앞으로 적극 협조하겠다는 약조를 받아 냈어요.”

“식사는?”

“식사는 모르겠고, 오후에 시간이 괜찮은지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괜찮다고 했어요.”

“당연히, 얘도 만나야 하고?”

“그렇죠.”

그래, 뭐. 만나자는데 못 만나 줄 것도 없었다.

‘아마, 소가주가 자체적으로 키운 그림자 기사 같은데…….’

그래도 로르텔의 녹을 받아먹고 있는 놈이다.

쓸 만한 전력이 되겠지.

아스터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저…… 아흐나르 경 말인데요.”

“삭월 선배?”

이벨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아흐나르 경은 본분을 다하신 거잖아요? 아마, 별다른 뜻은 없으셨을 거예요. 제가 없는 동안은, 아흐나르 경이 제 역할을 대신해 주고 계셨으니까…… 그래서 연락을 안 하신 게 아닐까 하는데…….”

이벨린답지 않게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진심으로 아흐나르를 변호하고 있는 것이다.

아스터는 그런 이벨린을 빤한 눈동자로 바라봤다.

“어제 이야기 끝냈어.”

“……예? 이야기를 끝내셨다고요?”

“응, 아흐나르 선배랑은 따로 얘기했다고.”

“언제…….”

“새벽에. 찝찝해서 그냥 넘어갈 수 있어야지.”

삭월의 마법사의 뜻은 무스펠룬 대공의 뜻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삭월의 마법사가 다른 뜻을 품었다는 건, 무스펠룬 대공이 다른 뜻을 품었다는 이야기.

물론, ‘다른 뜻’이라 해 봐야 심각한 건 아니었다.

그냥…….

‘……우호적인 관계에서, 아라푸르긴이라는 파이를 누가 얼마나 더 먹냐 아옹다옹하는 수준이겠지.’

다른 투자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연락 건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새벽에 따로 자리를 가졌는데…….

“잘 풀렸어.”

원인은 두 가지였다.

하나, 사태를 대하는 온도 차이.

둘, 입장 차이.

옛 전쟁을 겪고, 온갖 아수라장을 헤쳐 온 옛 전쟁 마법사에게 몬스터는 사자나 호랑이와 같이 유해한 짐승에 불과했고, 또한 이벨린이 없는 동안 개발지의 책임자는 아흐나르 본인이었으니 연락을 취할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때문에, 아스터는 아흐나르에게 정중히 사과를 했고, 아흐나르 역시 아스터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물론, 아흐나르가 습격 첫날 대공에게 연락을 취해 지원 병력을 요청하는 등, 본분을 다했기에 믿을 수 있는 사실이었다.

거기까지 들었을 때.

“……아.”

이벨린은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스터와 아흐나르의 관계가 틀어질까 봐 밤새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것이다.

“다행……이네요.”

“그러게. 근데,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지 않나 싶은데.”

“……예?”

이벨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아흐나르 경에 대한 의심이 풀리지 않은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벨린은 곧 그게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스터 군?”

아스터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창밖으로 넓게 펼쳐진 하늘을.

이벨린 역시 아스터를 따라 창밖을 바라봤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구름 낀 하늘과 아라푸르긴 산맥뿐이었다.

“뭐가 있어요?”

조심스러운 물음.

아스터가 픽 웃음을 터트린 건 바로 그때였다.

“이거…… 이상한 놈이 하나 껴 있는 모양인데.”

“예?”

“일단, 넌 가서 바르크 경 찾아.”

“바르크 경은 왜…….”

거기까지 말하던 이벨린은 곧 아스터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아!’하고 탄성을 토해 냈다.

그리고.

“종! 종을 울려야 돼요!”

“그건 내가 울릴 테니까, 넌 바로크 경이나 찾아.”

아스터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개발지의 중앙에 위치한 종이 울음을 토해 낸 것은 그 직후.

댕― 댕― 댕―

울려 퍼지는 종소리 속에서, 아스터는 다시 하늘 위로 시선을 올렸다.

기척이 사라졌다.

“도망간 건가?”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은데.

확실히, 뭔가가 있기는 있었다.

……초월의 마법사의 기감을 속일 무언가가, 저 하늘 위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저 구름 낀 하늘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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