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대화의 규칙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끼리 대화를 하면 흔히들 하는 착각이 있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이유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건 명백한 착각이었다.
‘같은 언어를 쓴다고 의사소통이 되는 건 아니지.’
사람끼리도 그러한데 하물며, 몬스터와의 대화는 어떠할까.
아마 힘들 것이다.
같은 언어를 쓴다 해도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면 언어에 담는 뜻이 달라지는데, 몬스터와 인간은 살아온 환경과 경험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차이가 있었다.
하면, 대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규칙. 대화의 룰을 세우는 것.
“정말…… 괜찮겠나?”
“예? 뭐가요?”
검은 와이번과의 대화를 앞두고 생각을 정리하던 아스터는 아흐나르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흐나르는 근심 섞인 얼굴로 아스터와 아스터를 둘러싼 주변을 눈에 담았다.
“일단, 말한 대로 속박은 해 놨네.”
“예, 보입니다.”
아스터는 검은 와이번을 집어삼킨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바라봤다. 가로, 세로, 높이가 십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직육면체의 얼음 덩어리.
검은 와이번은 그 얼음 덩어리에서 대가리만 덩그러니 튀어나와 있었는데, 제아무리 검은 와이번이라 해도 쉬이 나올 수 없는 속박이었다.
하지만, 아흐나르는 안심할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저 괴물이 풀려난다면.
그렇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물론 말도 안 되는 가정이었다.
자신이 두 눈 버젓이 뜨고 지켜볼 것이고, 이 자리에는 초월에 오른 마법사도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재앙은 방심에서 비롯되는 법이고, 아흐나르는 그렇게 비롯된 재앙을 몇 차례고 목격해 왔다.
그러니, 안심할 수 없는 것.
아흐나르는 이와 같은 우려를 아스터에게 설명했고, 아스터 역시도 이 부분은 동의를 표했다.
“확실히 위험하기는 하죠.”
솔직히, 검은 와이번을 살려 뒀을 때 얻을 이점보다는 놓쳤을 때의 위험이 너무도 컸다.
게다가 살려 뒀을 때 얻을 이점은 불확실한 것이고, 놓쳤을 때의 위험은 확실한 것이었으니.
하지만.
‘……영 께름칙하단 말이지.’
기실, 아스터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탐욕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확인할 게 있어서.
만약, 검은 와이번이 자연 발생 종이라면…… 아라푸르긴 산맥에는 저런 것이 얼마나 더 있는지. 혹, 고대종이 몰려 있는 하메른 대수림의 심처와 같이 아라푸르긴 산맥에도 그런 종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자연 발생종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건데.’
전자든 후자든 확인하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전자라면 아라푸르긴 산맥 개발 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고, 후자라면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금마사와 엮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아흐나르의 걱정은 아스터 역시 십분 공감하는바.
그래서 정한 게 ‘대화의 규칙’이었다.
만에 하나, 검은 와이번을 놓친다 해도 후환이 뒤따르지 않도록.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혹, 위험할 것 같으면 선배께서 처리하셔도 괜찮습니다. 대화 도중, 언제든지요.”
“으음, 알겠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아스터는 보험을 들어 든 후, 눈을 감고 있는 검은 와이번을 눈에 담았다.
그러면…….
이제, 대화의 시작.
쾅!
끼에엑……!
아스터는 검은 와이번의 콧잔등을 세게 후려친 후, 비몽사몽 눈을 끔뻑이는 녀석을 바라봤다.
“‘인간은 위대하다.’ 인정하나?”
대화의 첫 번째 규칙.
상호 존중.
혹여 검은 와이번이 도주한다 하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재앙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었는데…….
[무, 슨…….]
사나운 눈동자를 보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 다시.
뻑!
끼에엑!
아스터는 녀석의 콧잔등을 세게 때린 후 다시 물었다.
“‘인간은 위대하다.’ 인정하나?”
상호 존중이 갖춰지지 않는 이상, 대화는 없다.
이 자리에서 녀석은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인간은 위대하며,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 * *
상호 존중 외에도 대화의 규칙은 몇 가지가 더 있었다.
이는 아스터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기본적인 것이었는데, ‘왕’의 입장에서는 곤욕스럽기 그지없었다.
예를 들자면, 두 번째 규칙이 그러했다.
두 번째 규칙.
진실성.
“왕? 네 이름이 왕이라고? 어떻게 와이번 이름이 왕일 수가 있지?”
키엑!
대답을 한 번 할 때마다, 주먹이 날아왔다.
그때마다 왕은 덜 자란 와이번처럼 볼품없는 비명을 토해 낼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왕은 처음으로 ‘억울함’이라는 감정을 깨달았다.
분명, 진실만을 말하는데 어째서 때리는 것인지.
대답을 해도 맞고, 안 해도 맞는다.
반항?
반항은 의미가 없었다.
강인한 육체는 차디찬 얼음으로 구속되어 있었고, 어쩐 이유에서인지 주변의 마나는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울음소리를 토해 내면 빈틈을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지만…….
끼엑!
그때마다 족족 날아오는 주먹.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 왕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대답’뿐이었다.
제아무리 흉포한 몬스터라 해도 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진짜 미칠 것 같은 건 세 번째 규칙이었다.
세 번째 규칙.
신뢰.
“신뢰란 굳게 믿고 의지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의지한다’는 마음을 기대어 때로는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상태를 뜻하지. 그런데…… 네놈은 아무리 봐도 신뢰할 수 없다는 말이지. 너는 나를 신뢰할 수 있나? 없지?”
신뢰가 뭐고 의지하는 것이 다 뭐란 말인가.
왕이 살아온 곳은 약육강식의 세계.
먹거나 먹히거나.
동족조차도 먹이 경쟁자로 여기고 살아온 ‘왕’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는데, 사실 왕이 이해하고 말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
아스터가 생각하는 ‘이해’란 머리가 아닌 ‘몸’이 하는 것이었으니까.
퍽! 퍼벅!
역시나, 이어지는 구타.
끼엑!
왕은 정신이 혼미했다.
이게 인간들이 말하는 ‘대화’라는 것인가?
존중이라는 것은 상대를 높이 여겨 귀히 여긴다는 뜻이라더니, 이것이 인간들이 상대를 존중하는 법인가!
진실성은 오직 폭력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인가!
대화가 계속될수록 왕은 점점 새로운 감정을 깨달아 갔다.
굴욕, 치욕, 수치, 낭패, 그 밖의 기타 등등…….
하지만, 그런 왕의 처절한 심정과는 별개로 아스터가 대화에서 얻는 만족감은 적지 않았다.
그 태도가 비협조적인 것과 별개로,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빼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느냐.
우선 첫째.
‘마법을 가르친 놈이 아무도 없다고?’
본래 평범한 와이번으로 태어난 ‘왕’은 어느 날, 붉은 보석을 얻고 특별한 존재로 거듭났다.
왕의 비정상적으로 거대하고 튼튼한 육체나 높은 지성은 모두 그 보석의 힘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마법 역시도 보석의 힘으로 깨우쳤다고.
이로부터 의문 하나가 자연스레 해소됐다.
‘이런 놈은 이놈 하나라는 거네.’
금마사와 엮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둘째.
‘……마법을 쓰는 메커니즘이, 용언이랑 비슷해.’
용언은 오직 의지만으로 마나에 간섭하여 마법에 심상을 담아내는 권능이다. 그 과정에서 숙련이나 심상 구축은 필요치 않았는데 ‘왕’의 마법 발현이 딱 이런 형태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왕’이 드래곤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
뭐라 해야 할까.
용언이 드래곤을 규정하는 가장 큰 요소이기는 하지만, ‘왕’은 어딘가 한 끗이 모자란 느낌이었다.
하지만, 위의 두 가지보다 중요한 건 세 번째였는데…….
[…….]
아스터는 무기력하게 고개를 떨군 채 나를 바라보는 ‘왕’을 눈에 담았다.
지독하게 맞았음에도 여전히 사나운 눈동자.
“존중 안 해?”
[존중이…… 굴복과 복종을 뜻하지는 않는다.]
“굴복이랑 복종은 또 어디서 들었대.”
[…….]
대답 대신 두 눈을 부라리는 왕.
아스터가 알게 된 세 번째 정보는 바로 이것이었다.
‘……부려 먹기가 쉽지 않겠는데.’
기를 좀 꺾어 놔야 구슬려 볼 생각이라도 할 텐데, ‘왕’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물론, ‘좀 더 깊은 대화’를 하면 불가능하지는 않…….
‘……흠.’
솔직히 말하자면, 쉬이 장담할 수 없었다.
‘좀 더 깊은 대화’가 수반되면 그 누구의 입이라도 열 수 있다 자부하는 아스터였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저 ‘왕’의 눈빛은 드물게 보아 온 ‘예외’에 해당하는 눈빛.
[인정한다.]
아스터는 상념을 갈무리하고 왕을 바라봤다.
“뭘 인정해?”
[인간은 위대하다. 존중받을 만하다. ‘왕’은 인간을 식량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님을 인정한다.]
“흠. 계속 말해 봐.”
[너는 ‘왕’에게 존중하라 했다. 그리고 ‘왕’은 인간을 존중한다. 그렇다면, 너도 ‘왕’을 존중해라.]
“그 말은…….”
[자유. 네가 ‘왕’을 존중한다면, 자유를 돌려줘라.]
“……허.”
아스터는 기가 차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왕’이 지껄이는 말은 틀린 게 없었으니까.
그뿐이냐?
‘왕’은 그 말투는 어눌할지언정 협상의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네가 ‘왕’을 풀어 준다면 ‘왕’은 너에게 도움을 준다. ‘왕’은 안다. 인간들, 산에 오르기 힘들다. 하지만, ‘왕’이 지켜줄 수 있다. 네가 ‘왕’을 신뢰한다면, 이 도움을 믿어야 한다.]
아라푸르긴 산맥 근처에 자리 잡은 인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아스터가 바라는 것을 유추해 제시한다.
덩달아, 아스터가 했던 말을 녹여 내 말에 힘을 싣기까지.
“으음.”
아흐나르는 그 모습에 침음성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의 말을 구사하는 것도 기괴한데, 웬만한 인간을 뛰어넘는 지성으로 협상을 내건다.
‘왕’이 한 말이 논리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본능적으로 혐오가 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또한…….
‘……위험하구나. 너무 위험해.’
혐오를 배제한 순수한 감상이었다.
그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끓어오르는 살심(殺心).
“선배.”
“……말하게.”
아흐나르는 아스터의 부름에 살심을 억누르며 시선을 옮겼다.
저런데도, 정말 살려 둘 것이냐고.
마치 그렇게 묻는 듯한 눈빛이었는데, 아스터는 그 눈빛에도 고개를 저으며 왕을 눈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있었다.
……존중, 신뢰.
좋다.
하지만, 과연 저 말이 진실한 것일까?
확인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나만 물어보자.”
[좋다.]
아스터는 또렷한 눈동자로 ‘왕’을 바라봤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깊어지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너, 아까 뭐 노렸냐?”
[……아까라면?]
“너처럼 똑똑한 놈이, 눈 돌아서 노린 게 뭐냐고. 꼬라지 보니까 배고파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적당히 똑똑했으면, 그냥 ‘아, 배가 고팠나 보다. 그래서 숙소를 노렸나 보다.’ 했겠지만, ‘왕’은 적당히 똑똑한 수준이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명확히 파악한 후 기척을 숨겼고, 주도면밀하게 흐름을 바라볼 줄 아는 인내심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놈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개발지를 향해 돌진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자, 대답해 봐.”
진실을 확인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