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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356화 (356/559)

356화. ……나, 와이번

공간으로 적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대지를 휩쓰는 서늘한 바람에 먼지처럼 흩날리는 눈.

졸도할 것만 같은 분위기 속에서 와이번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붉은 용을 눈에 담았다.

파다닥, 파닥.

작은 날개가 쉼 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이거, 내 친구.]

와이번은 붉은 용을 향해 나아가며 선언하듯 읊조렸다.

붉은 용이 침묵을 깬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친구라?]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의문스럽다는 듯 되묻는 목소리.

와이번은 답하지 않았다.

[갸아아아악!]

위협적인 포효.

하지만 붉은 용은 검은 와이번이 아니었고, 당연하게도 그 포효에 겁을 먹는 일도 없었다.

다만, 거대한 눈동자를 움직여 와이번과 아스터를 번갈아 담을 뿐.

“뒤로 나와.”

[캬악!]

아스터는 와이번의 목덜미를 움켜쥐고는 뒤로 던졌다.

[너! 미개한 인간! 나! 위대한 드래곤!]

“시끄러.”

와이번이 진짜로 드래곤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붉은 용과는 체급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하늘과 땅 차이…… 그러니까, 붉은 용이 진짜 드래곤이라면 와이번은 도마뱀처럼 보이는 수준.

그러니, 어찌할까.

“…….”

아스터의 눈동자가 침잠했다. 기감을 응축시켜 한 점에 집중했다. 당연히, 그 대상은 붉은 용.

들이쉬는 숨결에 마음을 잡고, 내쉬는 숨결에 머리를 비웠―

철썩!

“…….”

뒤통수를 후려치는 탈진 타격에 아스터는 호흡을 잃었다.

와이번의 공세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너! 미개한 인간! 나! 위대한 드래곤!]

뻑! 빡! 퍼억!

어깨에 올라탄 와이번은 앞발로 아스터의 뒤통수를 마구잡이로 두들기고, 주둥이로 머리카락을 물어뜯었다.

“악! 아악!”

[미개한 인간은 뒤로! 위대한 드래곤은 앞으로!]

분노에 찬 와이번의 매서운 공격에 아스터는 속절없이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는데, 공세가 멈춘 것은 아스터가 와이번의 목덜미를 다시 움켜쥔 후였다.

“뭔…… 미쳤어? 상황 파악 못 해?”

[미친 건 너.]

목덜미를 잡혀 대롱거리면서도 와이번은 두 눈을 부릅뜨고 쏘아붙였다.

[저거, 위험. 너, 미개. 나, 위대.]

그러니까, 위대한 드래곤으로서 미개한 인간인 아스터를 지켜 주겠다는 의미였는데, 그 태도가 아스터로서는 기가 찰 따름이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지킨다는 것인지.

“너…… 후우.”

아스터는 무어라 쏘아붙이려다가 그렁그렁한 와이번의 눈동자에 그만 한숨을 푹 내쉬어 버렸다.

멍청해서 용감한 줄 알았더니…….

[나, 위대.]

그렁그렁한 눈동자.

떨리는 호흡.

와이번 역시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 가운데 아로새겨진 감정은…… 한 줄기 죄책감.

와이번을 앞으로 나서게 하는 것은, 자신이 아스터를 이곳까지 인도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죄책감이었다.

아스터는 잠시 그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좀 쉬어.”

변화가 일어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키잉―!

“…….”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밀집되는 마나. 와이번의 대가리를 후려치는 아스터의 주먹이 한 치 앞에서 가로막혔다.

붉은 용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냥 두어라, 역천의 주인아.]

“…….”

[예상치 못한 만남이라 이야기가 새었지만, 네놈은 내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붉은 용은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으로 아스터와 와이번을 한눈에 담았다.

그 눈에는 보이는 것이다.

[연결되어 있구나.]

아스터와 와이번을 묶은 역천의 사슬이. 그리고 그 사슬이 둘을 운명 공동체로 만들었다는 사실까지도.

붉은 용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는, 작은 용을 앞으로 불렀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아이야, 안심하고 앞으로 나오거라.]

[…….]

와이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부리부리한 눈으로 붉은 용을 바라볼 뿐.

[역천의 주인은 건드리지 않으마. 오랜 기다림을 이 손으로 망칠 리가 없지 않느냐.]

거듭된 권유에 와이번은 아스터를 바라봤다. 아스터는 그 시선에 붉은 용을 한차례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 봐.”

[…….]

그제야, 파다닥 날갯짓하며 붉은 용에게 다가서는 와이번.

[더 가까이 오거라.]

[…….]

와이번은 더 힘차게 날갯짓하며 붉은 용의 머리를 향해 올라갔다. 그에 화답하듯 고개를 숙이는 붉은 용.

그렇게, 와이번과 붉은 용의 눈높이가 수평하게 맞춰졌을 때, 붉은 용이 와이번을 향해 물었다.

[아이야, 너의 이름이 궁금하구나.]

[……나, 와이번.]

[아니, 너는 드래곤이다. 비록…… 순리를 거슬러 탄생한 존재이지만, 지금의 너는 드래곤이 맞다.]

붉은 용은 와이번의 탄생 비화까지 알고 있는 듯, 담담하게 와이번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와이번은 고개를 저었다.

[나, 이름. 와이번.]

[……?]

붉은 용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치떴다가, 잠시 와이번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시선은 곧 아스터에게로 향했다.

분노에 찬 눈동자.

[저거, 내 친구.]

[……알겠다.]

붉은 용은 당장이라도 아스터를 씹어먹을 듯 바라보다가 와이번의 목소리에 기세를 거뒀다.

다시 와이번을 바라봤을 때, 마냥 애틋하기만 하던 눈동자에는 착잡함이 서려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애석하게도 붉은 용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아이에게 전해 줄 힘마저 소진하게 될 터.

본래라면 충분한 시간이 있었겠지만…….

‘……역천.’

저 혐오스러운 것이 변수였다.

때문에, 붉은 용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하면, 본론이란 무엇이냐.

……사명의 전달.

그 사명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멸종한 일족을 다시 부흥시키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일족을 부흥시켜 세상의 균형을 바로 잡는 것이다.

다만, 걱정은…….

‘……태생이 역천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인데.’

순리를 거스르는 역천이 균형을 수호하는 일족을 되살려 냈다. 하면, 그 의도는 무엇인가.

필시 어떤 의도가 있을 터였다.

멸종했던 일족이 그 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과 역천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생기는 불안감.

붉은 용은 그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잠시 헤매다가, 이내 상념을 갈무리했다.

‘이조차도…… 흐름이겠지.’

역천은 분명 순리를 어지럽히지만, 그렇게 어그러진 흐름조차도 종래에 이르러서는 순리에 속한다.

어그러짐이 비극을 자아낼지언정, 그 비극이 세계의 비극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 당장 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다시피 사명의 전달.

그리고…….

‘……역천의 사슬을 끊어 내는 것.’

[아이야, 눈을 감아라.]

[……?]

와이번은 의아해하면서도, 잠자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서 그런지 그 몸뚱어리가 균형을 잃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붉은 용은 커다란 앞발을 들어, 와이번이 떨어지지 않게 받치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이야, 네게 일족의 사명을 알려 주겠노라.]

붉은 용의 의지가 마나를 움직였다.

이것은…… 마법의 한계를 넘어선 권능.

오직, 용들의 지배자에게만 허락된 신비였으니.

[……!]

와이번은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거대한 지식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지만, 변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식과 함께 전달되는 권능.

[견디거라.]

당장, 저 어린 것이 모든 지식과 권능을 소화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대부분의 지식과 권능은 무의식 속에 녹아들어 잠들어 버리겠지.

하지만, 때가 되면 잠든 지식과 권능은 다시금 깨어나 힘이 돼 줄 터.

그러니.

[견디거라.]

붉은 용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와이번을 다독였다. 그 목소리에 깃든 것은 한없는 자애였다.

……최후의 드래곤이 최초에게 의지를 전달하는 순간이었다.

* * *

그렇게, 와이번이 밀려드는 지식과 권능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가운데.

붉은 용은 시선을 돌려 아스터를 눈에 담았다.

지식과 권능은 넘겨주었다. 지식 안에 든 사명은 앞으로 어린 용이 살아가는 데에 하나의 지침이 되겠지.

이제 남은 것은 붉은 보석…… 드래곤 하트에 담긴 힘을 무사히 전달하는 것인데, 그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역천.’

바로 그 사슬을 끊어 내는 것.

역천의 주인과 어린 용의 운명 공동체를 끊어 내, 어린 용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사하는 것이다.

사실, 붉은 용으로서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래곤 하트에 담긴 힘은 그가 생각한…… 어린 용이 스스로 바로 서기 위한 최소한의 힘이었으니까.

한데.

‘사슬을 끊어 내고 나면 얼마나 남을지, 모르겠구나. 아니…… 끊을 수나 있을는지.’

역천은 온전하지 않았다.

반쪽도 되지 못하는 상태.

그 덕에 사슬의 결속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가능성을 쉬이 점칠 수 없었다.

역천의 힘은 그 자체로 순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얼마 되지 않는 힘이라도, 육신이 없는…… 권능으로 간신히 존재를 유지하는 붉은 용으로서는 버겁기 그지없는 것.

그러니…… 도움이 필요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후 붉은 용은 아스터를 눈에 담았다.

[역천의 주인아.]

“말해.”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탐욕스러운 인간이…… 역천을 품고 있는 자가 어린 용을 위해 수고를 무릅쓸 것인지.

손아귀에 쥐고 있는 드래곤을 풀어 줄 것인지.

그간, 붉은 용이 보아 온 인간들을 생각하면 가능성은 희박했다.

탐욕도 탐욕이거니와…… 하기에 따라서 ‘수고’가 아닌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를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 이거, 내 친구.

붉은 용은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다.

- 뒤로 나와.

- 캬악!

어린 용의 앞으로 나서던 그 눈빛을.

[이 아이와 너를 잇는 사슬을 너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

아스터는 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곧 긍정이었으니까.

또한……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스러운 상황이었다.

드래곤과 역천, 그리고 와이번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너무도 갑작스러웠으니까.

붉은 용은 그런 아스터를 지그시 눈에 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만약,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찌하겠느냐.]

“방법이…… 있다고?”

아스터의 물음에 붉은 용은 긍정을 표했다.

[어렵지만, 분명 방법이 있다. 하나, 역천의 주인인 네가 도움을 줘야 가능한 일이지. 그러니, 묻고 싶구나. 네가 어린 용을 위해…….]

휘잉―

서늘한 바람이 둘 사이를 갈랐다. 붉은 용의 말이 이어진 것은 그 직후였다

[……역천의 뜻에 반기를 들어 줄 수 있는지.]

“…….”

[운이 좋으면 작은 수고로 그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할 수도 있는 일이다.]

아스터는 눈매를 좁혔다.

화인(火印)이 뜨겁게 달아오른 것은 그 순간이었다.

시큰―

“…….”

마치, 허튼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듯이.

아스터는 점차 전신으로 번져 가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참으로 지독한 고통이었다.

초월에 이른 정신으로도 비명을 참는 것이 고작일 정도.

[…….]

붉은 용은 그런 아스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옅게나마 품었던 기대를 접었다.

역천의 주인은 도움을 거절하리라.

역천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니까.

사실…… 말이 좋아 역천의 ‘주인’이라 칭하는 것이지, 그 본질은 결국 ‘노예’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초월적인 힘을 구걸하며 역천의 뜻을 따르는 노예인 것이다.

[되었다. 방해만 하지 말…….]

“……지랄.”

[……?]

붉은 용은 갑작스러운 욕설에 눈매를 좁혔다.

끝내 훼방을 놓겠다는 것인가? 낭패감이 짙어지는 가운데, 아스터의 입이 열린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방법이나 말해. 뭘 하면 되는지.”

[그 말은…… 도와주겠다는 건가?]

아스터는 답하지 않았다. 아니, 답할 수 없었다. 가슴팍을 움켜쥐고, 고통을 삼키는 데에 급급할 뿐.

하지만.

“…….”

가까스로 치켜든 고개.

그 눈빛이 말한다.

……기꺼이,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도움을 주겠노라고.

그 눈빛은…… 붉은 용이 몇 차례 보아 왔던 ‘노예’들과는 확연히, 확연히 다른 무언가였다.

[……고맙구나.]

붉은 용은 고개를 숙였다.

……최초가 될 용이 자유를 찾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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