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392화 (391/559)

392화. 사형, 이해해 줄 거죠?

침묵이 내려앉은 공간.

옅은 조명만이 어둠을 밝힌 가운데, 아스터는 가만히 앉아 맞은편의 두 사람을 바라봤다.

아스타로트와 레라지에.

‘……샤인의 권속.’

난데없이 나타난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읍소했다. 제발 로드를 구해 달라고.

울음을 그친 두 사람은 불안과 혼란이 가시지 않는 듯 시선을 잘게 떨었는데, 아스터는 그런 둘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물음을 던졌다.

샤인을 구해 달라는 건…….

“그러니까, 샤인이 위험해 처했다, 그 말인가?”

“……예.”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샤인이 어떤 인물인가. ‘킹 슬레이어’라는 위명은 둘째 치더라도, 그녀는 아스터가 알고 있는 한 가장 강한 기사였다.

로르텔의 주인 무하드와의 우열은 쉬이 가릴 수 없겠지만, 뱀파이어 로드로서의 권능과 초월을 생각한다면 아스터조차도 그 밑바닥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한데, 샤인이 위험에 처했다니?

“그게…….”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레라지에 대신, 아스타로트가 나서서 설명했다. 아스타로트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로드께서는…… 육체와 정신의 합일을 위해 대고원의 전장을 선택하셨습니다.”

제2 흑백 지대에서 떠나온 지 2년여.

샤인은 아스타로트와 레라지에를 데리고 대고원의 전장을 전전했다.

처음에는 썩 만족했다.

대고원의 전사들은 거칠고 강인했으며, 제국의 기사들과는 달리 정제되지 않은 야성을 소유했다.

하지만.

“……로드께서는 합일을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대고원의 전사들로는 부족하다 여기셨죠.”

“그래서.”

“그래서…….”

아스타로트는 몇 달 전, 로드가 떠나가던 그 날을 떠올렸다.

- 결국, 오우칸밖에 없는 것인가.

그리 말하며 명하시기를.

- 너희는 이곳에 남거라. 내가 돌아올 때까지, 수련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 하셨지만,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로드의 명인지라 아스타로트와 레라지에는 기다렸다. 로드께서 합일을 이루시고 돌아오실 때까지.

한데.

“……소문이 들렸습니다. 붉은 머리칼의 여기사가 ‘아마르’에 도전했다고.”

“아마르?”

아스터가 고개를 갸웃하자, 아스타로트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마르는…… 대고원의 전사들이 ‘위대한 전사’가 되기 위해 치르는 의식입니다.”

백 일, 백 명.

도전자는 백 일이라는 시간 동안, 백 명의 전사들과 혈투를 치러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백 일의 혈투를 모두 치르고 살아남았을 때,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다. ‘칼리만’이라는 위대한 전사의 칭호를.

이는 대고원에서 가장 유서 깊은 의식 중 하나로, 그 법칙은 외부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스타로트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잘게 떨리는 손을 맞잡았다. 아스터가 물음을 던진 건 그때였다.

“그런데?”

“그런데……라뇨?”

“샤인이 아마르에 도전했다. 거기까지는 알겠는데…….”

아스터는 말끝을 흐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백 일 동안 백 명?’

대고원의 전사들이 강인하다는 건 아스터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샤인에 비하자면, 글쎄. 굳이 걱정을 해야 한다면 샤인이 아니라 백 명의 전사들을 걱정해야 옳지 않을까?

그런 아스터의 속내를 눈치챈 아스타로트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르, 백 명의 전사. 아니, 백 명이 아니라 천 명의 전사가 덤빈다 해도 로드를 어쩌지 못할 거라는 사실은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한데…….”

아스타로트는 퀭한 눈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손가락 사이로 비친 세상은 그의 심정처럼 불안하고 흐릿했다.

그래, 바로 이게 문제였다.

‘……불안.’

“불안합니다.”

뱀파이어 일족으로서 그 영혼은 로드에게 종속되어 있다. 로드와 생사를 함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족은 본능적으로 로드의 위험을 알아챈다.

아스타로트와 레라지에가 아스터를 찾아온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로드가…… 위험합니다.”

이는 예지가 아니라, 엄연히 닥친 현실이다. 당장 로드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인 것이다. 불안은 위태로운 로드의 생명력을 알리는 경고.

거기까지 들은 아스터는 아스타로트를 바라봤다.

‘샤인이 위험하다라…….’

사실, 아스터는 둘과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뱀파이어 일족의 본능? 그것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아스터가 생각하기에 샤인의 생명이 위험한 것은 오히려 희소식에 가까웠다.

……영혼과 육체의 합일.

그것을 이루기 위한 걸음이 아니었던가.

하면, 위태로운 것이 당연했다.

2년여의 투쟁 속에서도 이루지 못했던 합일을 이루기 위한 길이니, 험난함은 오히려 샤인이 옳게 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하필 오우칸이란 말이지.’

오우칸, 그 이름은 대고원과 인연이 옅은 아스터도 익히 들어 본 것이었다.

수백 년 만에 나타난 대고원의 통일자. 위대한 우두머리 ‘게야르 드리만’의 칭호를 받은 자.

사실, 대고원의 통일자라느니 게야르 드리만이라느니 하는 칭호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면, 무엇이 중요하냐.

‘놈이 지닌 힘.’

그래, 바로 그것인데…….

“탑주님, 부탁드립니다.”

“부디…… 부디 로드를 구해 주세요.”

아스터는 애원하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 입이 열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사실 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가자.”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게야르 드리만, 오우칸의 힘은 위험했다. 어쩌면, 샤인조차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아스터는 대고원행을 결정했다.

동료를 생각하는 숭고한 마음. 그 선택은 아스터의 가슴에 긍지로 남기 충분한 업적이 아닐 수 없었으니.

‘노예를 위하여.’

반짝, 달은 빛나지 않았다.

밤임에도 불구하고.

* * *

다음 날, 곧장 아스터는 대공녀에게 대고원행을 알렸다.

“대고원이라…… 험난한 여정이 되겠구나.”

대공녀는 아스터의 결정에 우려를 표하고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증표를 건네주었다.

“이건…….”

“공국의 귀빈임을 알리는 증표다.”

“이걸 왜?”

아스터는 고개를 갸웃했다. 대고원의 야만족들에게 볼일이 있어서 가는데, 공국의 귀빈임을 알리는 증표가 무에 필요할까.

하나 의문도 잠시.

아스터는 눈을 번뜩였다.

“혹시 오우칸과 내통을 하고 있었던…….”

“대고원의 분위기는 험악…….”

말이 겹친 두 사람은 서로를 가만히 바라봤다.

먼저 입을 연 건 대공녀였다.

“오우칸과 무어라?”

“아뇨, 아무것도 아닌데요.”

“……내통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 같은데?”

“글쎄요. 저는 모르겠는데요?”

아스터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멍청하고 순진한 눈빛으로 눈을 끔뻑였다. 대공녀는 그 눈빛에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살래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워라. 오우칸과 내통이라니? 내가 네놈에게 이 증표를 건넨 이유는 두 가지다.”

“두 가지씩이나?”

“그래.”

첫째.

“지금 북부의 분위기는 험악하다. 야만족뿐만 아니라 정벌군도 그리 안전하지는 않아. 외부인이라면 야만족이고 제국인이고 가리지 않고 잡아들일 거다.”

“그 말은…….”

“혹, 마찰이 생기거든 성격대로 뒤집어 놓지 말고 그 증표를 보여 주거라. 그리하면, 웬만한 문제는 넘어갈 수 있을 테니.”

아스터가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강자라는 것은 알지만, 상대는 제국이었다. 그 어떤 개인도 제국을 적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해관계가 겹치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움?”

“그래, 홀로 동료를 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제국의 손을 빌려야겠지. 그때는 그 증표를 사용해라.”

이게 무슨 말이냐.

유사시에는 공국의 이름을 빌려주겠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제국군의 힘을 빌리는 것까지도 용인해 주겠다는 이야기.

물론, 아스터가 공을 세웠을 때는 공국 역시 그 공을 나눠 갖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그 책임 역시도 함께 나눠 갖겠다는 의미였다.

즉, 대공녀로서도 적지 않은 부담을 지는 셈.

“……사형.”

아스터는 감동 어린 눈동자로 대공녀를 바라봤다. 증표라는 물질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냥, 왠지 모르게 대공녀가 존경스러워서.

대공녀는 그런 사제(?)의 눈빛에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내게 힘이 있었다면, 두 눈을 찔렀을 것 같구나.”

“농담도 참.”

아스터는 멋쩍게 웃어 보였지만 대공녀는 농담이 아니었다.

어쨌든.

두 사람은 그렇게 작별의 인사를 나눈 후 훗날을 기약했다.

“언젠가 또 보자꾸나. 꼭 찾아오도록 하여라.”

“물론이죠, 사형.”

아직 아스터에게는 받지 못한 공국의 작위와 땅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라도 반드시 공국을 들러야 했다.

그렇게, 진지를 나서서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자 먼저 나와 있던 아스타로트와 레라지에가 다가왔다.

“……탑주님.”

“기분은.”

“여전히…….”

아스타로트와 레라지에는 가시지 않는 불안감에 쓰게 웃어 보였다. 아스터는 그런 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진정 좀 해.”

일족의 본능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마냥 감정에 몸을 맡겨서는 곤란했다.

하지만, 영 진정하지 못하는 둘의 모습에 아스터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호흡법은, 배웠나?”

“……예.”

“그러면, 호흡법 좀 하면서 마음을 좀 추스르자고. 출발은 그때 하지.”

“하지만…….”

아스타로트와 레라지에는 반발했으나, 아스터는 단호했다.

“지금 같아서는 될 일도 안 돼. 알아? 마음을 진정시키든가, 여기 남든가. 둘 중 하나만 하자.”

비록 본능에 의한 반응일지라도 샤인을 생각하는 마음은 갸륵했다. 하지만, 갸륵한 건 갸륵한 거고 잠재적인 위험 요소를 안고 갈 생각는 추호도 없었다.

결국, 아스타로트와 레라지에는 뜻을 꺾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스터는 호흡법에 돌입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구하러 가는 건 좋은데 말이지.’

사실, 오우칸의 이름으로 모인 마하르파트의 이민족들의 군대는 아스터로서도 만만히 여길 수 없는 존재였다.

전사들은 하나같이 숙련된 무투가이자 뛰어난 주술사이기도 했으니까.

‘……까다로워.’

그리고 듣기로는 초월의 강자들과 겨룰 수 있는 존재들이 몇 있다고.

이런 상황에 정면으로 쳐들어가는 것은 명가(名家)의 아가리로 기어들어 가는 것보다도 위험하다.

‘방법이 필요한데…….’

아스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스타로트와 레라지에가 호흡법을 마치고 대고원을 향해 나아갈 때까지도 계속됐다.

‘나도 아마르에 도전해?’

아니, 아마 힘들 거다.

아무리 비전이 다르다고는 하나, 초원의 전사들이 마법사와 기사의 차이를 모르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제국인이라면 한결같이 혐오하지만, 그중에서도 마법사는 자연의 이치를 어지러트린다며 특히 혐오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냥 몰래 숨어 들어가?’

……퍽이나.

만에 하나 걸렸다가는 샤인을 구하기는커녕, 대고원의 전사들에게서 살아남기도 바쁠 거다.

“방법, 방법이 있을 텐데 말이야.”

계속되는 고민.

그리고 마침내, 용용이가 대고원의 어느 벌판 위에 그들을 내려 줬을 때.

“……그거다.”

아스터는 떠올렸다.

……자연스럽게, 오우칸이 있는 본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하지만, 그 방법을 시행하기 전에 아스터는 저 먼 하늘…… 대공녀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슬프게 웃어 보였다.

“사형, 이해해 줄 거죠?”

구름 너머, 대공녀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 그래, 좋을 대로 하여라.

아스터는 그 대답에 해맑게 미소지었다.

“감사합니다, 사형.”

그 모습에 아스타로트와 레라지에는 침묵했다. 와이번 역시 드물게 흠칫 놀라며 뒷걸음쳤다. 용용이는 그런 와이번을 제 날개 품에 감춰 줬다.

……그렇게, 며칠 후.

마하르파트 초입.

접전지.

푸쉬크 부족의 진지로 한 명의 손님이 찾아들었다.

푸쉬크의 ‘드리만’…… 그러니까, 부족장은 난데없는 밤손님에 흠칫 놀랐는데, 그 밤손님이 건넨 제안은 그 방문보다도 놀라운 것이었다.

“공국은…… 그대들과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생각하오.”

그리 말하며 밤손님이 꺼내 보인 것은…….

―반짝.

대공녀가 아스터에게 맡긴 증표였다.

아직, 대공녀의 손때가 채 지워지지도 않은, 서류였다면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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