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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417화 (416/559)

417화. 공국의 이름을 걸고

그로부터 며칠.

……소가주를 내놓아라.

다소 파격적인 서두이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내 마음속 달빛이 흔들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이냐.

‘잘 해결됐어.’

어떤 식으로 해결됐는지를 말하자면, 우선 ‘소가주를 내놓아라’라는 사형의 말뜻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뜻은 이런 거였다.

……소가주를 볼모로 삼겠다.

그러니까, 소가주를 목줄로 쥐고 우르보나를 통제하겠다 이 말이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진짜 될 줄은 몰랐는데.”

난 종전 협상을 최종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사형을 보며 나직한 감탄을 토해 냈다.

내 반응이 기분이 좋았던 것일까.

사형은 차를 내오며 드물게 웃어 보였다.

“믿으라 하지 않았더냐.”

“그러긴 했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우르보나가 선대 가주를 구하겠답시고 소가주를 내줄 줄은 몰랐거든.

“뭐,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볼모’로 소가주를 얻어 낸 것도 아니고.”

그건 그랬다.

‘소가주를 공국으로 보내기로 했지만…… 표면적인 명분은 ‘화합’을 위한 ‘교류 유학’이라 했나?’

물론, 말장난이었다.

볼모는 볼모였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볼모가 아닌 ‘화합을 위한 교류 유학’으로 포장을 한 것이냐…… 그 이유는 간단했다.

‘느낌이 많이 다르니까.’

생각해 보자.

- 공국이 우르보나의 소가주를 볼모로 잡았다!

이런 이야기가 북부로 새어 나가면, 북부의 귀족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못된! 우르보나의 소가주가 너무 불쌍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할까?

아니다.

그보다는…….

‘람부르크 공국이 북부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생각하겠지. 우르보나는 이제 완전히 개털이라고.’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랜 세월 유지되던 이강(二强) 체제가 깨지고, 람부르크 공국의 일강(一强) 체제로 돌입하게 되는 거다.

그러면.

‘……람부르크 공국과 일찍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놈들은 살판나는 거고, 우르보나에 끈을 대고 있던 놈들은 죽을 맛이겠지.’

그럼, 두 세력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고 있던 자들은?

‘다 공국에 붙는 거야.’

그렇게, 북부가 공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겠지.

그리되면 우르보나 쪽에 붙어 있던 놈들이 공국 쪽으로 돌아서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잘못하면, 공국을 중심으로 한 신흥 왕국이 도래할 수도 있는 일!

‘볼모’를 ‘화합을 위한 교류 유학’으로 포장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표면상으로는 이강(二强) 체제를 유지해야, 공국에 모든 힘이 쏠리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

물론, 대공녀의 생각은 아니었다.

‘볼모’를 ‘교류 유학’으로 포장한 것은…… 황실의 중재자.

공국의 독주 체제를 막기 위해 나름대로 묘수를 짜낸 것이다.

물론…….

‘……최악을 피했을 뿐이지만.’

아마, 지금쯤 선대 가주 헤오른을 개새끼, 소새끼 소리 하며 씹어 대고 있을 거다.

그가 계획을 실패하지만 않았어도, 소가주를 내줄 일도 없었을 테니까.

“오토도, 중재자도, 끝까지 소가주를 내주지 않으려 몸을 비트는데…… 썩 볼만하더구나. 하하! 한데, 어찌할까. 선대 가주가 도의를 어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을.”

“그래도 쉽지는 않으셨을 거 같은데?”

“한마디면 충분했다.”

“한마디?”

내 물음에 사형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턱을 살짝 치켜들며 오만하게 입을 연 건 그때였다.

“이리 말했느니라.”

- 황실의 중재는 공평하지 않은 것 같군. 이 일은 황제 폐하께 직접 상소를 올리겠다. 그리고…….

“……우르보나의 항복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

“뭐냐, 그 표정은?”

“아뇨, 아무것도.”

너무 막 나가는 것 같아서 그렇다.

아무리 선대 가주가 똥을 거하게 싸질렀다 해도 그렇지, 황실의 중재를 거부하고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자칫 잘못하면 황권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알아챈 것일까. 사형은 거만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봐라. 항복을 했음에도 함정을 판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종전 이후 얌전히 있으리란 보장이 있더냐?”

“없죠?”

“그렇지. 신뢰가 깨진 것이다. 심지어 황실의 중재자가 있는 와중에 벌어진 사달이니, 황실의 보증도 의미가 없어졌지.”

“그래서…….”

“그래, 놈들에게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이대로 전쟁이 지속되면 우르보나의 몰락은 예정된 수순이니까. ‘담보’라도 맡길 수밖에.”

“아하.”

난 솔직히 이렇게 생각했다.

‘선대 가주’와 ‘소가주’를 거래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신뢰와 소가주를 맞바꾼 거였어.’

한데, 그건 그렇고.

“괜찮나? 결국 ‘볼모’의 상징성은 못 얻어 냈는데.”

“괜찮다. 어차피 눈치 빠른 귀족들은 모르지 않을 테니까. 실리는 충분히 취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고?”

“……환경은 많은 것에 영향을 주지. 우르보나의 소가주는 공국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울 것이고…… 그 모든 것이 놈의 사고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난 빤히 사형을 바라봤다. 그 얼굴이 꽤나 씁쓸해 보였기 때문인데, 사형은 내 시선을 느꼈는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내가 스승님을 그리 만났다.”

“그 말은…….”

“‘화합을 위한 교류 유학’이라는 말이 꽤나 유서 깊은 핑계라는 이야기이다.”

그 말은…… 사형 본인이 볼모로 교장 선배 밑에서 수학을 했다는 얘기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나는 어딘지 씁쓸해 보이는 사형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하긴, 그런 말은 들은 기억이 있었다.

‘예전에는 아카데미가 볼모를 잡아 두기 위한 구실 좋은 핑계라고 했었나.’

제니온 아카데미야 그 설립 취지가 다르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리 이용됐다고.

어쨌든.

‘그러면…… 일은 잘 끝난 건가.’

일단, 나는 우르보나와의 악연을 청산했다. 사형이 소가주를 손에 쥐었으니, 오토를 통제할 수 있겠지.

그렇다고, 사형이 오직 나를 위해서 소가주를 얻어 낸 건 아니었다. 공국과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기에 취한 행동.

그러면…….

“이제 떠나야겠지. 그래, 언제 떠날 테냐.”

“되도록 빨리.”

해결할 것은 다 해결했다.

푸쉬크 부족 역시, 여행의 피로를 어느 정도 회복했고.

무엇보다 할 일이 있었다.

‘……데큘란.’

파헤른이 생츄어리를 통과하게 되면, 그때부터 데큘란의 위세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그 전에 반(反)데큘란 동맹을 구축하고 대비를 해야 했다.

뭐, 그런다고 데큘란의 성세를 완전히 누그러트릴 수는 없겠지만, 최악은 피해야 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자리를 정리하고 몸을 일으켰다.

유르부케에게 떠날 채비를 갖추라 이르러 갈 참이었는데, 사형이 나를 불러 세운 것은 바로 그때였다.

“혹여…….”

“……?”

“……공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하여라. 네놈이 공국을 도와줬듯, 공국 역시 네놈을 도울 것이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사형제 좋다는 게 다 뭐야? 대가를 바라고 한 게 아니었어. 호의는 호의로 묻어 두자고.”

“그렇…… 그 종이는 뭐냐?”

사형은 내가 슬쩍 내민 종이를 가져갔다. 그리고 그 시선이 종이 위의 활자를 더듬었다.

“……탑을 건축해 본 경험이 있는 유능한 장인…… 톨크 석재 많이, 마학서를 비롯한 기타 잡서, 종류 불문 1,000권…… 그리고 금화를…….”

“흠흠. 호의는 호의로 묻어 두자니까?”

“……이게 다 요구 사항인 것이냐?”

“흠흠.”

내 헛기침에 사형은 눈매를 좁혔다.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나와 종이를 번갈아 응시했다.

그 입이 열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준비……해 보마.”

“에이, 뭘. 그렇게까지…….”

“아니다. 이 몸이…… 이 몸이, 해 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순수한…… 호의로.”

“그렇지? 사형이 염치를 모르는 파렴치한은 아니지? 사형제끼리 오고 가는 정이 있는 거지?”

“…….”

사형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복잡한 눈동자로 요구 사항을 다시 읽어 내려갈 뿐.

난 그런 사형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혹시.”

“……말하여라.”

“공국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 줄 수 있…….”

“닥치고 꺼져라.”

쩝.

장난이었는데, 쌀쌀맞긴.

* * *

대륙 서쪽 끝.

마르 지방의 마경(魔境).

현존하는 모든 마경 중 가장 거대한 그곳의 중심부에서 기묘한 주문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주문이 거듭될 때마다 마경의 짙은 마기(魔氣)가 출렁였다.

4장로는 그 출렁이는 마기 속에서 한곳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금마사들이 둥글게 포진한 자리. 그 중앙에 위치한 것은 다 무너져 가는 사원이었다.

……심연의 지평.

살바티움은 그리 부르는 사원은 퍽 초라했다.

구조물이라고는 온전한 것 하나 남지 않았고, 기둥조차도 제대로 서 있는 것이 드물었다. 다만, 그 중앙에 위치한 ‘제단’만이 그것이 한때 사원이었음을 증명할 뿐.

하지만, 그 초라한 생김새와는 달리 살바티움에게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왜 안 그럴까.

심연(深淵)저 너머의 세상.

사원은 ‘심연’과 맞닿은 유일한 공간이었다. 살바티움이 그토록 염원하는 ‘존재’가 잠든 그 공간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것이다.

그러니.

“…….”

4장로의 눈동자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일렁이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참으로, 참으로 애석하구나.’

4장로의 눈동자는 슬픔으로 물들었다.

어째서냐.

이곳은 ‘심연’과 맞닿은 곳 유일한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존재’가 드나들기에는 너무도 비좁은 공간이었으니까.

‘비좁다’라는 것은 물리적인 크기를 이르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래, 차원의 균열.그 균열을 키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바티움이 데스트로우를 수집하려 하는 것도, 고대의 유물을 파헤치는 것도, 전부 차원의 균열을 넓힐 힘을 비축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넓혀야 ‘존재’가 나올 정도로 통로가 벌어질지…….

까마득했다.

하지만.

‘……어쩌면, 역천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 순리를 거스르는 그 마도서라면, 균열을 넓힐 수도 있겠지.

4장로가 천 년 가까이, 균열을 넓히기 위해 비축해 온 힘을 사용하기로 결심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역천.’

그것을 얻기 위해서.

역천의 파편을 모아 주겠노라, 데큘란과 약속했다지만 약속을 지킬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데큘란 역시도, 그 사실을 알고 있겠지.

일단, 파편을 모으고…….

‘……승자가 차지할 뿐.’

살바티움과 데큘란의 협업 관계는 그토록 얄팍했다.

한데, 그건 그렇고.

“……아직 먼 것인가.”

4장로는 수척해진 금마사들을 눈에 담았다.

벌써 수십 일째 한시도 멈추지 않고 주문을 외운 그들은 피골이 상접해 있었지만, 4장로는 그들을 걱정하기보다는 반응이 없는 균열을 걱정했다.

천 년간 결사가 모아 온 힘을 아무런 의미 없이 날리게 될까 봐.

‘모처럼, 데큘란의 핏줄도 준비를 해 두었거늘.’

데큘란의 핏줄이라면, ‘존재’를 버티기는 힘들어도, 그 ‘존재’의 ‘하수인’을 담기에는 충분할 터였다.

물론, 그마저도 담을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겠지만.

균열이 더 컸다면 진체를 강림시킬 수 있었겠지만, 그 균열이 작아 ‘의식’만을 강림시킬 수 있는 지금으로서는 데큘란의 순혈은 적지 않은 도움이었다.

“아이야, 너무 겁먹지 말거라.”

“…….”

4장로는 창백하게 질린 살리에를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저 중앙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데, 그때였다.

꾸, 꾸그그극―

출렁이는 마기. 공간이 일렁인다. 제단 위로 알 수 없는 균열이 발생한 것은 그 직후.

“오오…….”

4장로는 그 광경에 탄성을 토해 냈다.

드디어…….

균열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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