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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449화 (448/559)

449화. 오라는 건가?

전투에 돌입하기에 앞서, 아스터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어둠은 엄습해 들어오고 있었으나, 일체의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우두커니 전방을 응시했다.

의아했다.

‘……뭐지?’

9장로의 태도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 돌아가라.

-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함이다.

이런 따위의 제안은 쫄릴 때에나 건네는 것이다. 허세를 부릴 배짱도 없어서 뭣도 못 할 때.

하지만.

- 물러나지 않겠다라.

자신의 대답에 9장로가 보인 반응은 의외의 것이었다.

- 애석하구나.

- 나도.

- 후회치 말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태도. 그것은 전투를 꺼리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의문은 두 가지.

‘뭘 믿는 거지?’

백색 마법진이 있다고는 해도 이쪽은 대마법사만 세 명이다. 마력 구속구를 차고 있어서 우습게 보는 건가?

‘아니, 그렇다 하기에는…….’

그쯤 생각했을 때.

화아아악―!

온 사방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어둠은 물과 같았다.

호흡은 문제가 없었으나, 기묘한 압력이 몸 전체를 짓눌렀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스터는 기감을 펼쳐 주변을 살폈다. 데메이아와 자말의 심판자의 기척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는데…….

‘……애매하네.’

뭐라 해야 할까.

기감이 뻗어 나가지 않았다.

어둠이 기감을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다.

지근거리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

거기까지 파악한 아스터는 곧 두 사람에 대한 생각을 머리에서 지웠다.

‘알아서 잘하겠지, 뭐.’

명색이 대마법사다.

백색 마법진의 영향으로 약화되었다지만 숨겨 둔 한 수는 가지고 있을 터.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보자.

‘……이걸 믿고 있었던 건가?’

이 어둠.

예상은 했지만, 평범하지 않았다.

기감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혹시나 해서 시도해 본 결과 마법도 발현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마법사의 마법이 발현되지 않는다니.

당황하기 충분한 상황이었으나, 아스터는 당황하는 대신 차분히 생각을 이어 나갔다.

어째서냐.

……대가 없는 현상은 없었으니까.

일반적인 마법이라면 모르되, 금지된 마법과 같이 이치를 거스르는 것들은 무조건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대가를 수반한다.

움직이지 않는 9장로가 바로 그 증거였다.

한데, 그건 그렇고.

이제 두 번째 의문.

‘……전투는 왜 피하려 한 거지?’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거리낌도 없다.

한데, 9장로는 전투를 피하려 했다.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함이다’라 했나?

‘정말 그 때문이라고?’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자신과 9장로는 어떠한 은원 관계가 있어서 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스터 역시 살바티움이 자신을 적대하지만 않는다면 굳이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이야 더럽게 얽혔을 뿐이지.

한데…….

‘……확실히 뭐가 있기는 해.’

그걸 알아봐야 했다.

이유?

딱히 없었다.

직감이라 해야 할까.

어쨌든.

“……흠.”

아스터는 거기까지 생각한 후, 저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둠만이 가득하던 공간으로 한 줄기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오라는 건가?”

아스터는 빛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 *

빛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은 비단 아스터뿐만이 아니었다.

‘…….’

데메이아는 저 멀리 보이는 빛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마법을 발현시킬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그 얼굴은 태연하다 못해 무심할 지경이었다.

아는 것이다.

이 공간이 무엇인지.

‘……결계.’

데메이아는 여러 마학에 두루 능통했다.

대마법사이니 당연하다 여길 수도 있지만, 그 지식의 방대함은 결코 ‘대마법사이기에’라며 치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지식 속에는 실존한다 믿기 힘든 여러 마법들이 존재했는데, 이러한 종류의 결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허상 결계(虛像 結界).

그 거짓된 세계 안에서는 현실과는 다른 법칙이 작용한다.

쉽게 예를 들자면, 중력이 있다.

위에서 아래가 아닌, 아래에서 위로.

술자가 그리 지정했다면, 결계 속에서 중력은 위로 향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단순한 예시일 뿐. 거기서 조금 더 복잡하게 가자면, 지금과 같은 현상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규칙.’

이 허상 결계 속에서 적용되는 규칙은 과연 무엇인가.

마법이 ‘마력’으로 발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매개가 달라진 건가? 그도 아니면 다른 규칙을 비틀어서 마법의 발현을 억제한 건가? 뒤틀린 규칙은 그것뿐?

한 걸음 내딛는 짧은 순간에도 수십 가지의 가정들이 뇌리를 스쳤다. 일반인…… 아니, 대마법사들 중에서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사고 속도.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빛에 도달할 즈음 데메이아는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이 허상 결계로 뒤틀린 것은 마법의 발현 조건뿐만이 아니었다.

우선…….

‘공간.’

자신의 공간 지각 능력이 왜곡된 것인지, 아니면 공간 자체가 왜곡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어둠은 생츄어리와는 별개의 공간이라 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그리고 몇 가지가 더 있는 것 같기는 한데.

“…….”

데메이아는 걸음을 멈추고 빛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 우두커니 자리한 빛은 또 다른 공간으로 향하는 ‘문’과 같았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새로운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아무리 허상 결계라 해도 이런 일이 가능하던가?

결계 마법의 최고 권위자인 무스펠룬이라 해도 이런 수준의 허상 결계는 불가능할 터인데.

금지된 마법이기에 가능한 일인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 멈춰 있어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무엇보다…….

‘…….’

데메이아는 빛에 손을 비춰 보였다. 어둠은 피부로 스며들고 있었다. 검은 잉크가 흰 양피지를 적시듯, 천천히.

마력을 일으켜 몰아내 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당장은 괜찮다.

……당장은.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어떻게 될까.

흑마력이라 해도 치명적인 것은 마기와 다르지 않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마기보다 더 치명적이다.

때문에, 데메이아는 빛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빛 속으로 들어갔을 때.

퉁―!

기묘한 탈력감이 전신을 휩쓸었다. 동시에 세상으로 빛이 번져 나갔다.

“이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광경은 생츄어리였다.

하지만, 뭐라 해야 할까.

어딘지 달랐다.

복도를 바쁘게 오가는 허밋들. 그들은 살바티움의 침입을 모르는 듯 평화롭기만 했는데, 데메이아에게 어느 허밋이 다가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허밋 비사브, 서두르시오.”

“……날 부르는 건가?”

말을 걸어온 허밋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반문했다.

“그대가 아니면 또 누가 있단 말이오. 서두르시오, 허밋 비사브. 귀한 손님이 오고 계십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는 허밋.

데메이아는 가만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자신을 내려다봤다.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허밋의 옷을 입은 은둔자.

‘허밋 비사브……?’

분명 그렇게 불렀던 것 같은데.

비사브가 된 데메이아는 멀어지는 허밋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 * *

어둠에 물든 공간 속.

9장로는 빛 속으로 들어간 세 명의 대마법사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과연…….’

대마법사는 대마법사라는 건가? 어둠에 담긴 흑마력만으로 어찌하기에는 너무도 강인한 존재들이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허상 결계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대마법사들이 아닌 생츄어리였다.

어째서 생츄어리가 그를 놀라게 할 수 있느냐.

그것을 이해하자면, 9장로의 마법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했다.

9장로는 스스로의 마법을 이렇게 부른다.

리콜(Recall)

장소에 깃든 과거를 재현시키는 마법.

원리는 간단했다.

꽃이 머문 곳에 향기가 맴도는 것처럼, 사람이 머문 곳에는 감정이 맴돈다.

대체로 그렇게 남은 감정은 금방 사라지지만, 어떤 감정들은 너무도 강력해 공간에 배어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공간에 밴 감정은 기억이 된다.

9장로는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또한, 9장로가 선택한 감정은 당연하게도 부정적인 것이었다.

……절망, 혹은 좌절.

하면, 생각해 보자.

‘생츄어리의 허밋들이 절망 혹은 좌절을 느낄 만한 사태라면―’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거기에 9장로의 악의적인 사념이 깃들게 되면?

본래라면 대마법사 한 명을 잡아 놓는 것이 고작이었을 허상 결계였지만, 백색 마법진으로 대마법사들의 힘이 상당 부분 억제된 지금.

9장로는 세 명의 대마법사를 가둔 후 공간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결과.

‘……데메이아.’

디나이의 가주 데메이아가 떨어진 ‘기억’은 점철된 절망.

‘……자말의 심판자.’

그가 떨어진 ‘기억’은 맥없는 좌절이었다.

서로 다른 기억에 떨어진 두 사람은 한 명의 허밋…… 해당 기억 대에서 가장 강렬한 절망을, 강렬한 좌절을 맛본 자가 되어 기억을 거닐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탑주인데…….

“……?”

아스터를 살피려던 9장로는 드물게 의문을 표했다.

정상적으로 리콜이 진행된 두 사람과는 달리, 탑주…… 그러니까, 아스터의 상태는 어딘지 이상했다.

[뭐야, 이게.]

탑주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당혹스러운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앞선 둘과는 달리 자신의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뿐이냐.

탑주가 떨어진 ‘기억’은 생츄어리의 기억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생츄어리 이전.’

그러니까, 생츄어리가 세워지기도 전의 기억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리콜은 강력한 감정의 흔적을 매개로 기억을 불러온다.

‘설마 리콜이 잘못된 건……?’

9장로는 화들짝 놀라 상황을 살펴봤는데, 리콜에는 문제가 없었다.

탑주가 배정된 기억, 거기에 깃든 감정은 다른 두 사람의 그것에 비해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사무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한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생츄어리가 생기기 전이라니?’

이런 적이 있었나?

리콜이라 해서 만능은 아니다. 9장로의 역량에 달린 마법이니만큼 무한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재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의 개입이 있는 게 분명한데…….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탑주가 떨어진 ‘기억’ 속에 드디어 사람이 나타났다.

나타난 사람은 총 둘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두 노마법사.

[……허?]

[음……?]

구름 아래에서 튀어 오른 두 명의 마법사는 탑주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선객이 있는 줄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아스터 역시 둘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음, 허……?]

아스터는 옅은 탄식을 토해 냈다.

환영이다.

그건 분명한데…….

‘……뭐지?’

가슴팍의 화인(火印)이 울음을 토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파편.’

파편이 근처에 있다.

당장 역천이 가리키고 있는 대상은 저 두 늙은이.

아스터가 당혹감을 금치 못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파편이 있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야?’

말했다시피, 역천은 저 두 늙은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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