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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472화 (472/559)

472화. 입 벌려

공간이 일그러지고…….

쾅!

빛이 번쩍였다.

아스터는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초월에 진입해 역장을 피워 올렸다.

콰직, 콰지직―!

하나, 둘, 셋…… 계속해서 파괴되는 역장.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빛은 계속해서 가까워졌다. 어찌나 파괴적인지 역장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길 정도.

빛이 마침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역장을 수십 장 찢어발겼을 즈음이었는데, 아스터는 빛이 찢어발긴 역장의 개수를 뇌리에 그리고는 전방을 눈에 담았다.

‘당한 놈은…….’

없다. 가장 걱정스러웠던 파라푸스마저도 초월에 진입해 빛을 막아 냈다. 막아 낸 것뿐만 아니라, 해와 달을 공격하기 위해 마법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아스터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시간을 잘게 쪼갰다.

잘게, 더 잘게…….

우르보나가(家)의 가주 오토와의 결전 때 그러했던 것처럼, 잘게 쪼개진 시간을 잡아 찢는다.

그렇게 얼마나 찢었을까.

‘……일단은 이 정도만.’

아스터는 한층 더 느려진 시간 속에서 풍경을 눈에 담았다.

풍경은 퍽 기이했다.

정지한 세상.

해와 달…… 심층의 존재는 완전히 정지한 채 우두커니 서 있고, 그를 향해 마법이 쇄도하고 있었다.

마법은 각양각색이었다.

황금빛 모래, 순백의 얼음, 뇌전, 화염…… 하나하나 열거하기에는 너무도 많다. 그만큼, 대마법사들이 진심으로 마법을 쏟아붓고 있는 것인데, 아스터는 그 광경 속에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마법의 속도가 다르다.’

자말의 심판자가 쏘아 보낸 마법의 속도를 10이라고 한다면, 데메이아가 12. 카하자르가 13, 파라푸스와 키지스톤이 7, 8 정도에 그친다.

각기 다른 마법을 쏘아 보낸지라 정확한 비교는 아니었지만, 직감적으로는 그 정도 비율이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인가.

아마…….

‘……연산 속도의 차이.’

그래, 아마 그것일 것이다.

초월에 진입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시간의 흐름이 느려진 게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게 느껴질 정도로 사고의 속도가 빨라진 것뿐.

그러니, 똑같이 초월에 돌입했다 하더라도 그 속도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 보자.

‘파헤른은?’

그런 생각에 파헤른을 찾는데, 내상 때문일까. 파헤른은 파괴의 빛을 막아 내고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쉬웠다.

파헤른의 연산 속도를 대충이나마 엿볼 수 있다면, 추후 파헤른을 상대할 때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아스터는 거기까지 생각한 후 아쉬움을 털어 내고는 다시 해와 달에게 집중했다. 확인할 게 있는 것이다.

보자.

- 나약하고 가엾은 존재들이여.

- 침묵하라.

분명 그리 말했다.

그리고 직후 어마어마한 압력이 몸을 내리눌렀지.

보이는 대로, 현상만을 논하자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현상이었다.

기운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것은 일정 경지에 오른 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뭐라 해야 할까.

‘……그게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뭔가 달랐다.

살기나 위압감, 내지는 마력이나 마나로 짓눌렸다기보다는…….

‘……그냥.’

그냥 짓눌린 기분이라 해야 할까.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도 보라.

콰가가가가가가가각―!

해와 달을 향해 쇄도하는 무수한 마법들이 속절없이 소멸하고 있었다.

마법들을 소멸시키는 것은 바로 순백의 방패였다.

그러니까…….

‘역장이라기보다는, 보호 마법.’

언젠가 들은 기억이 있었다.

‘역장’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보호 마법’이라는 것을 따로 익혔다고.

간단한 술식과 마력 구조에 대한 이해로 만들 수 있는 역장과는 달리, 여타 공격 마법들과 같이 복잡한 술식과 심상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마법이었다고.

사장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수십 년에 걸쳐 보호 마법을 갈고닦는 것보다는, 수십 겹의 역장을 덧대는 것이 간편했던 것.

물론, 보호 마법은 보호 마법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거야 알 바는 아니고.’

어쨌든, 해와 달이 사용하는 순백의 방패는 역장이라기보다는 보호 마법에 더 가까웠다.

그렇다고 저게 보호 마법이냐 하면…….

‘……그건 아니겠지.’

신비가 되었지만, 해와 달이 주력으로 사용하는 마법은 고대의 그것에 근간을 두고 있었으니까.

즉, 고대의 보호 마법이라는 건데, 어째서 저것이 이상하냐 하면 다름이 아니었다.

‘안 깨져.’

퉁―

거기까지 생각한 아스터는 잘게 쪼개진 시간에서 빠져나와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주변으로 초월 속 대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마법들이 섬뜩한 속도로 스쳐 지나갔지만 거칠 것 없이 시원한 걸음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생각은 계속했다.

보자.

‘……해와 달에게 도달하기까지, 세 번의 도약.’

1초 남짓한 시간이다.

그 와중 주변을 스치고 지나간 마법은 몇 개이던가.

셀 수 없다.

잘게 쪼개진 시간 속에 들어가 가늠했다면 헤아릴 수 있었겠지만,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관측하니 괴랄한 광경이었다.

한데, 더 괴랄한 것은…….

‘이거지.’

순백의 방패가 그 모든 마법을 견뎌 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와 달이 초월에 진입할 수 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이것도 돼?”

아스터는 대마법사들의 마법이 멎는 틈을 타고 비집고 들어가 주먹을 그러쥐었다. 어깨를 뒤로 젖히며 손바닥을 활짝 펴고, 발을 디뎠다.

파지지직―

손아귀로 몰려드는 스파크.

“겁도 없― 이이이이이이이이.”

아스터는 ‘해’의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초월에 진입했다. 목소리가 길게 늘어져 귓가로 울려 퍼졌다. 그 기묘한 소리가 퍽 불쾌하다 생각하면서도 손아귀에 모여든 마나에 정신을 집중했다.

자말의 심판자가 마법 면역 상태의 ‘손’들을 몰아내는 광경을 보면서 영감을 받은 게 있었다.

수백, 수천 개의 역장을 단숨에 만들어 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무리 단순한 구조의 역장이라 해도, 술식은 필요한 법이니까.

알기 쉽게 말하자면 이런 거다.

‘하’라는 한 글자를 말하는 것은 쉽지만, 이것을 1초에 수백, 수천, 수만 번 말해야 한다면?

……뭐 완전히 같은 논리는 아니지만.

한데, 자말의 심판자는 이 과정을 어찌 처리했느냐.

일단, ‘하’를 1초에 수만 번 직접 말을 한다. 이때 수만 개의 ‘하’는 개별적인 시행이다.

그리고…….

‘이제 수만 번 말한 행위를 통째로 한 묶음 처리하는 거지.’

솔직히 말하자면 말도 안 되는 행위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모른다.

아마, 자말의 심판자 역시도 될 거라 생각하고 한 게 아니라, 하다 보니 발견한 쪽에 가깝겠지.

그러면, 이걸 응용해 보자.

‘폭멸에서 중요한 건 충돌과 압축.’

마나 혹은 마력 입자의 충돌만으로 이루어지면 충돌식이고, 거기에 압축까지 더 들어가면 폭멸이 된다.

그 위력은 어찌 정해지느냐.

‘볼륨? 이건 당연한 거지.’

마나든 마력이든 기운을 많이 쏟아부으면 위력 역시 배가 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몇 개의 흐름을 만들어서 충돌시키느냐, 그리고 압축을 어느 정도나 진행하느냐.’

사실, 아스터가 평소 만들어 내는 폭멸은 그 흐름이 3개 안팎이었다.

급하면 2개.

웬만하면 3개.

신경 좀 쓰면 4개 내지는 5개.

‘충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흐름이 최소 2개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위력은 어디에서 보충하느냐.

간단했다.

‘압축.’

흐름을 만드는 것은 복잡하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압축은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일일이 계산하고 조율할 필요 없이 그냥…….

‘꾸겨 넣으면 되니까.’

경지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양의 마력을 더 강하게 압축시킬 수 있다. 그 과정에서는 어떠한 이해도, 조율도 필요 없다.

하면, 생각해 보자.

자말의 심판자가 수백, 수천 개의 역장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한 묶음으로 만든 것처럼…….

‘……수십, 수백 개의 흐름을 만들고 그것을 한 묶음으로 인식하면?’

그리고 그 묶음을 거듭 겹치고 압축시킨다면?

이론만 생각한다면…….

‘최고 아냐?’

등골이 오싹했다.

기분 좋은 소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분 좋은 것은 이거였다.

쓸 마법이 있고…….

‘……갈길 대상이 있다.’

좋지 아니한가.

‘안 그래?’

아스터는 서클을 회전시켰다. 손아귀로 몰려드는 마나(Mana).

솔직히 말하자면 대기 중의 마나는 고갈 직전이었다.

그럴 수밖에.

대마법사들이 한둘도 아니고…… 다들 초월에 진입해서 영차영차 마법을 갈기고 있는 판국인데.

마나가 풍부한 생츄어리라서 그나마 이 정도가 가능한 거지, 다른 곳이었다면 대마법사들은 전부 다 마나가 고갈 나서 주먹다짐만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한데, 가만…….

‘……주먹다짐?’

아스터는 생각했다.

주먹으로 싸우면, 이 중에서 가장 강한 건 누구일까.

‘나 아냐?’

해와 달은 노인이고, 자말의 심판자와 파라푸스 역시 노인이다. 그나마 카하자르의 체격이 탄탄하기는 한데, 어디까지나 탄탄한 수준일 뿐.

파헤른과 데메이아는 타고난 골격이 괜찮은 거고, 키지스톤은 말 그대로 비실이 마법사의 전형.

‘이거 잘하면…….’

기강 한번 씨게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대기 중의 마나를 고갈시키는 것으로 해와 달을 무력화시킬 수 있느냐는 것인데.

‘한번 해 보지, 뭐.’

아스터는 흐름을 덧댔다.

하나, 둘…… 마나의 입자가 부딪치며 충격파가 일렁였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흐름을 세분화했다.

그렇게, 열 개.

‘그럼 이제…….’

아스터는 열 개의 흐름을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그 묶음을 거듭해서 덧댔다.

그렇게, 열 묶음을 겹쳤을 때.

‘이게 또 하나.’

다시 새로운 묶음을 만들고는 덧대 나갔다.

그렇게, 몇 번이나 계속했을까.

어느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그극, 그그그그그극―!

흐름이 일정 개수에 도달하자 폭멸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아스터가 압축을 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압축.

한데,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파앙―!

정체불명의 인력(引力)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인력이 뻗어 나간다는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초월 속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대마법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면, 주변을 장악한 인력이 무엇을 하느냐.

마나를 빨아들인다.

소용돌이처럼…….

휘오오오오오―!

공간의 마나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폭멸…… 아니, 폭멸이었던 무언가.

아스터의 손아귀에 일렁이는 그것은 이미 폭멸이 아니었다. 그것은 푸른 섬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심연(深淵)에 가까운 것이었으니.

이쯤 되니, 사소한 건 아무렴 어떠냐 싶었다.

‘알 수 없는 압력이고 순백의 방패고…….’

일단, 한번 날려 보자.

아스터는 사방의 마나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심연을 움켜쥔 채 해와 달을 바라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천의 기운 한 스푼.’

퉁.

아스터는 잘게 쪼개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빠져나온 후, 해와 달의 면상에 심연을 후려갈겼다.

“입 벌려.”

심연 들어가니까.

더불어 사는 세상, 삶을 아름답게 하는 따뜻한 인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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