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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479화 (479/559)

479화. 불경한 마음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고 했나.

불과 조금 전까지의 동료가 잠재적인 적이 된 상황 속에서, 좌중의 인물들은 누구도 쉬이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아스터의 머리도 제법 복잡스러웠다.

……속세의 이해관계.

그것을 따지자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파헤른.’

당대의 아크 메이지이자 데큘란의 주인.

[이번만큼은 장단을 맞춰 주마.]

비단 파헤른만을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자말의 심판자, 데메이아, 카하자르, 키지스톤…… 파헤른을 제외한 다른 대마법사들까지도.

목을 베라면 목을 베어 주마.

그게 누구든.

즉, 기꺼이 칼이 되어 주겠다는 말이었는데…….

‘……그렇다면.’

솔직히 생각해 보자.

고민할 필요가 있나?

아스터는 좌중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파헤른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 반갑네. 내 이름은 파헤른 폰 데큘란. 자네가 쥐고 있는 얼간이의 백부이자, 데큘란의 수장이라네.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지긋지긋한 악연.

그래, 지긋지긋했다.

놈뿐만 아니라, 데큘란이라는 이름 자체가.

데큘란에게는 그저 많고 많은 정적 중 하나일 수도 있었지만, 아스터에게 데큘란은 하나의 거대한 산이었다.

그 산에는 발이 달려서, 멀리 있다고 해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매일 밤, 쿵쿵쿵.

가까워진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일어나 살펴보면, 산은 여전히 저만치 멀리에 있다.

이제는 그 발걸음 소리가 제법 익숙해졌지만, 이따금 이런 생각도 한다.

저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삶은 어떤 삶일까.

문득, 좀 전 해와 달이 남기고 간 한마디가 뇌리를 스쳤다.

- 너의 끝도 그리 좋지는 않겠구나.

- 차라리 죽음이 편한 삶이리라.

예언이었을까? 아니면 저주?

어느 쪽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끝을 좋지 않게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삶을 고달프게 하는 원흉은 무엇일까.

역천? 아니면 데큘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여기서 둘 중 한 가지는 끝내 버릴 수 있다는 것.

당연히 그 한 가지는 바로…….

‘……파헤른.’

아스터는 마음을 굳혔다.

어찌 보면, 허무하다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살아서 돌아가면 다행이리라 생각하고 걸음 했던 생츄어리인데, 파헤른의 목을 가져갈 수 있다니.

……아니, 감상에 잠기는 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결정은 신속했다.

아크 메이지이자 데큘란의 주인치고 실로 허무한 죽음이겠지만, 그게 뭐? 원래 죽음이란 건 다 그렇다.

죽일 수 있을 때 죽이자.

설령…….

‘……이 선택으로 이 자리의 몇을 더 죽여야 한다 할지라도.’

아니, 전부를 죽여야 한다 할지라도.

[결심이 섰나 보구나.]

아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샤인이 검을 꼬나쥐었다. 파헤른의 목을 치기 위함이었는데, ‘파헤른’이 누군지 찾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았다.

그냥 보였다.

저런 괴물 같은 마법사는 평생 본 적이 없었으니,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하겠지.

하지만.

샤인이 검을 뻗기 직전, 아스터가 앞으로 나섰다.

이 문제는…….

‘……내 손으로.’

쯔응―!

초월에 진입함과 동시에 시간의 흐름이 느려졌다. 파헤른 역시도 낌새를 알아차리고 초월에 진입했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다.

츠즈즈―

눈앞으로 짙푸른 스파크가 넘실거린다.

입자와 입자의 충돌.

그리고 압축.

맑디맑은 물이 깊고 깊어지면 심연이 되듯, 푸르디푸른 마나의 결집체는 시커멓게 물들어갔다.

어두워질수록 깊어지는 것은 살심(殺心).

죽이고자 하는 마음.

……불경한 마음으로 심연을 빚는다.

얼마나 오랜 기다림이었는가.

화르르―!

파헤른 역시 마법을 피워 올렸다. 마도서를 손에 쥐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섬뜩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역천은 모든 순리를 거스르는 불가해의 정점이다.

법칙 안에 있는 것은 어찌해도 역천을 이길 수 없다.

심연에 역천의 힘이 깃든다.

‘끝내자.’

시선과 시선이 교차하고.

퉁―

심연이 공간을 가른다. 공간의 모든 마나를 빨아들이지는 못했지만, 파헤른의 마법을 깨부수는 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마법을 집어삼켰다.

덧없는 불꽃.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는 그것은 파헤른의 미래와 다르지 않았다. 아마 그 사실을 파헤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데, 왜일까.

‘…….’

불꽃을 삼키고 파헤른에게 도달하기 전까지 찰나의 시간, 아스터는 파헤른의 눈빛에 이질감을 느꼈다.

그것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무언가였다.

대체 왜?

아직 포기하지 못하는 건가?

그런 그때였다.

‘……?’

삐이―

귓가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소리. 뭔가 이상했다. 지금 이 순간 아스터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이건…… 불협화음이다.

심연이 나아가지 못하고 일그러진다.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찌그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이내…….

쿵!

심연이 소멸했을 때.

콰아―앙!

파헤른을 중심으로 폭발이 일었다.

공기의 폭발.

“……흡!”

“……!”

대마법사들이 급히 역장을 피워 올려 폭발을 막아 낸 가운데, 초월에서 빠져나온 아스터는 눈매를 좁혔다.

역천의 힘이 담긴 심연을…… 막아 냈다.

어떻게?

물론, 마도서라 해서 무적은 아니다. 당연히 막아 낼 수 있다. 그리고 한 번 막았다 해서 영원히 막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는 역천도 마찬가지.

하지만, 지금은 그 ‘한 번’이 중요했다.

왜냐.

마도서를 막아 낼 수 있는 건 마검이거나…….

‘……마도서.’

오직 그것뿐이었으니까.

폭발로 흙먼지가 나풀나풀 피어오르는 가운데, 아스터는 다시 한번 초월에 진입하기로 했다.

생각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다시 한번의 심연.

……확실히 죽인다.

하지만, 그때였다.

꿍―!

기분 나쁜 압박감이 엄습했다. 뭐라 해야 할까. 수백, 수천 겹의 족쇄가 온몸을 얽매는 듯했다. 아니, 그것은 족쇄가 아니었다.

마나(Mana)의 실.

‘이건…….’

아스터는 어딘지 모를 익숙함에 눈매를 좁혔다.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왜 안 그럴까.

이미 한 번 당해 본 수법인데.

……과거에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수를 늘린다고 능사가 아니네.

여유로운 목소리.

흩어지는 마법.

당시에는 대기 중의 마나를 응결시켜 마법을 흩어 내는 것이라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 그만 끝내지.

그 한마디에 대기 중의 마나가 얼어붙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얼어붙었다’라는 건 어디까지나 착각일 뿐.

실상은, 무수히 많은 마나의 실로 온몸을 감싼 것이다. 마치 얼음 속에 갇힌 꼴이 되니, 대기 중의 마나가 얼어붙었다 여길 수밖에.

그렇다면, 그게 누구냐.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아에비론.”

나풀거리는 먼지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곧 먼지가 걷히며, 익숙한 얼굴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발에…… 한 손에 쥔 마도서.

“오랜만일세. 탑주.”

데큘란의 첫 번째 좌.

아에비론 폰 프라욱센.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에 한 사람이 더 자리하고 있었으니.

“…….”

아에비론과 함께 나타난 건 바로 홀렌드였다.

* * *

아에비론은 짧은 인사를 남긴 후 주변을 눈에 담았다. 어느새 대마법사들은 공간의 한편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아에비론이 물음을 던졌다.

“여기서부터는 마탑과 데큘란의 행사일 듯한데…… 어쩌겠소?”

형태는 질문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압박에 가까웠다.

굴욕적인 상황일 수도 있었지만…….

“난 빠지지.”

쿠틀란가(家)의 주인, 카하자르는 망설임 없이 입장을 표명했다.

자존심이고 뭐고 현실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세븐 메이지가 두 명…….’

이것만 해도 등골이 서늘한 판국에 첫 번째 좌 아에비론의 손에는 ‘마도서’까지 들려 있었다.

그뿐이냐.

“……가주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저 미친개 홀렌드.

겸손의 ‘겸’ 자도 모를 것 같은 사냥개가 점잖은 척하면서 파헤른에게 건네는 저 물건을 보라.

마도서였다.

즉, 이 자리에 세븐 메이지 두 명과 마도서 두 권이 있다는 이야기.

이 상황에서 자존심을 따져?

웃기는 소리.

이런 계산이 미친 것은 카하자르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빠지겠소.”

키지스톤은 한쪽 팔을 지혈하며 뒤로 물러섰다.

부상도 부상이거니와 애초에 그가 낄 자리가 아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빠지고 나니 자연스럽게 시선은 결정을 내리지 않은 자말의 심판자와 데메이아에게 닿았다.

“그대가 자말의 심판자로군. 그래서, 어찌하겠는가? 변방으로 돌아가 짧은 목숨이나마 부지하는 걸 추천하네만.”

아에비론의 비릿한 미소에 자말의 심판자는 슬쩍 시선을 옮겼다. 황금빛 눈동자가 아에비론을 담았다.

그 입이 열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겁쟁이 아에비론이었는가.”

“……허허.”

“이기는 전장만 찾아다니는 장수가 무에 무서울까. 데큘란이라는 껍데기와 대마법사라는 허울을 벗어 던지고 나면 넌 그저 겁 많은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

“정녕 벌주를 택하시겠다?”

“애초에, 그런 걸음이었느니라. 협잡꾼 아래 사냥개는 이해하지 못할 세계라 하면 알겠느냐?”

“허, 허…….”

아에비론은 웃음을 터트렸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웃음이었다.

왜 안 그럴까.

옛 전쟁 시절에도 부르는 이가 드물었던 멸칭을 끄집어내 지껄이니, 속이 뒤집힐 수밖에.

하지만, 분노를 토해 내기 전.

아에비론은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을 바라봤다.

……디나이의 주인 데메이아.

“가주 데메이아는 어쩌시겠소? 디나이와 본가의 관계가 썩 좋은 편은 아니라지만, 구태여 적대시할 이유는 없다 보오만.”

“…….”

데메이아는 대답하는 대신 눈을 반쯤 감은 채 45도 각도 아래를 지그시 내려다봤다. 누가 봐도 아에비론의 말은 듣고 있지 않는 듯 보였다.

그 입이 열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건 비단 데큘란뿐만이 아님을 모르는가.”

“……?”

아에비론은 눈매를 좁혔다.

직후.

까드득, 까드드득―!

지면에서 올라오는 차디찬 수증기. 수증기는 곧 얼음 결정이 되어 뭉치더니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 정체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프로스트 혼(Frost Horn).

데큘란에 세븐 메이지가 있다면 디나이에는 프로스트 혼이 있다. 그리고 지금 모습을 드러낸 이는 프로스트 혼의 수좌.

“……늦어서 죄송합니다. 결계가 워낙 두꺼운 탓에…….”

“이해한다.”

“하면, 여기…….”

수좌는 디나이가(家)에서부터 애지중지 챙겨 온 ‘물건’을 꺼내 데메이아에게 내밀었다.

그 물건의 정체를 예상치 못할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마도서.

“허, 허허…….”

아에비론은 허탈하게 웃음을 흘렸다.

마도서의 힘으로 저 높은 창공에 올라 때를 기다렸건만, 검원주를 놓치고 심지어 프로스트 혼의 수좌까지도 놓쳤다.

마도서의 사용법이 미숙하다는 말은 변명이 되지 못했다.

명백한 실책.

……그렇게, 아에비론이 낭패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디나이가(家).

데큘란가(家).

그리고 마탑.

……아스터는 생각했다.

이 판은 정직하면 뒈진다. 뒤통수 안 때리는 놈이 도태되는 지랄 맞은 판.

‘이게 맞냐?’

여전히 달은 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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