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508화 (508/559)

508화. 지금은 트러블이 맞아

그로부터 며칠.

아스터가 블란도가(家)의 추적대와 조우한 것은 코카르타나 해안 지방, 도시 코타나에 들어서고도 딱 하루가 지날 무렵이었다.

놀랍게도, 블란도가 추적대의 선두는 바로…….

“헨지?”

“예, 접니다.”

헨지는 평소와 같이 인자한 표정으로 아스터를 마주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별장 관리인이 본가로 연락했습니다. 그나저나 여기도 오랜만이군요. 아주 어릴 때 한 번 와 봤는데.”

“아니, 별장 관리인이 연락을 했다고 해도…….”

아스터는 느긋하게 별장으로 들어서는 헨지를 보며 떨떠름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연락을 받았다고 해도 하루 만에 찾아올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주님이 이쪽으로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뻔하잖습니까. 그리고 동료를 파는 건 아스터 군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아하?”

어딘지 뼈 있는 한마디에 아스터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헨지는 그 미소가 마음에 드는지 마주 웃어 보였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순간도 잠시.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얌전히 잡히시겠습니까? 아니면 한바탕해 보시겠습니까?”

“에헤이, 사정 다 알면서 빡빡하게.”

“한바탕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겁니다. 그때는 정말 일이 심각해지겠지만 말이죠.”

“얌전히 잡힐게.”

“좋습니다, 일단 꿇으시죠.”

“……칵!”

헨지는 아스터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구두 앞코로 정강이를 후려갈겼다. 한두 번 까 본 게 아닌지 군더더기 없는 신속한 발차기였는데, 기분 탓일까?

‘왜 제 놈들이 움찔해?’

아스터는 헨지 뒤편에 시립한 추적대원(?)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몸을 부르르 떠는 게, 마치 이 고통을 알고 있는 듯.

……저 추적대원들이 사실은 전투 마법사들이 아니라 ‘마학관 부관주의 결백’을 위해 ‘자진’해서 나선 마학관의 펜대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조금은 먼 훗날이었다. 즉, 동병상련이었던 것.

어쨌든.

별장 현관 한복판, 추적대원들이 나서서 아스터의 양팔과 다리를 묶고 눈을 가리자 그제야 취조가 시작됐다.

“가주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무사하시지.”

“소가주는요?”

“마찬가지고.”

형식적인 취조였다.

블란도 내부에서는 납치니 뭐니 말이 많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건 헨지를 비롯해 가문의 몇몇 수뇌부는 알고 있었으니까.

‘내통자’로 용의 선상에 오른 그가 이 추적대의 책임을 맡을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였다.

때문에, 아스터는 숨길 것도 없이 적당히 답을 하면 됐는데, 딱 한 가지 질문에서는 예외가 있었다.

“흐음, 그거 흥미롭군요. 마도서가 언어를 구사했다라……. 한데, 마도서는 어떻게 됐습니까?”

“……응?”

“뭐가 응입니까? 마도서, 떼어 냈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아, 그게…….”

아스터는 애매하게 웃어 보였다.

마도서.

그게 참 어려운 주제였다.

“일단은? 데미안이 가지고 있는데 말이지?”

“근데요?”

“아마? 직접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

헨지는 얇게 뜬 눈으로 아스터를 바라봤다. 시종일관 여유롭던 얼굴로 위기감이 드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마도서와 관련된 문제였으니까.

가주와 소가주에 관련된 문제가 이 시대 블란도의 문제라 한다면, 마도서는 블란도의 과거와 현재, 더 나아가 미래를 관통하는 문제였다.

헨지는 등 뒤에 시립한 마학관 펜대들…… 아니, 추적대원들을 힐끗 살피며 아스터에게 메시지 마법을 속삭였다.

[뭔 짓거리를 저지른 겁니까.]

[아니, 직접 보라니까…….]

[……가시죠.]

헨지는 아스터의 목덜미를 잡아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별장 사용인이 다가와서 데미안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별장 뒤편의 정원.

헨지는 순간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풍경은 평화로웠다.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 그 한가운데 위치한 티 테이블. 티 테이블 앞으로는 두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그 두 사람은 레오디스와 데미안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리 이상할 게 없었다.

가끔, 그러니까 아주 가끔 블란도에서도 보던 광경이었으니까.

하면, 무엇이 문제냐.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낯설 뿐.

“아빠, 이건 참새야.”

“안다.”

“응, 이건 참새야.”

“벌써 여덟 번째 듣는 이야기란다.”

“하지만, 책에서 봤어. 늙은 아버지는 아들이 참새라고 계속 말해 주지 않아서 속상하댔어.”

“이 아빠도 아는 이야기 같구나. 늙은 아버지가 참새를 보고 ‘저게 무어냐’ 거듭 묻는 이야기였지. 아들은 몇 번 대답하다가 화를 참지 못했지. 자신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의 바보 같은 질문에 몇 번이나 답해 줬는지도 잊고서 말이야.”

“맞아.”

“하지만, 아들. 아빠는 저 새가 무슨 새인지 물은 적이 없단다.”

“나도 알아.”

“근데 왜 그럴까.”

“내가 심심해서.”

평소처럼 제삼자는 이해할 수 없는 대화였다. 하지만, 그 표정은 평소와 달랐다.

‘가주님이…….’

웃고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아주 희미하게 올라간 입꼬리였지만, 분명 가주는 웃고 있었다.

옛날처럼 근육만 움직인 흉내가 아니었다.

진짜 웃는 것인데…….

“저건 까치 아냐?”

어느새 안대를 벗은 아스터의 물음에 헨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까치군요.”

“둘 다 미쳤네.”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헨지는 슬쩍 책임을 회피하고는 가주와 소가주 부자를 바라봤다.

과연, 마도서를 제거했다더니. 부작용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모양.

한데…….

‘……마도서는?’

헨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당장 다가가서 물으면 그만이었지만, 헨지는 저 기묘한 풍경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사정 청취는 결국 해야겠지만, 최대한 저 풍경을 깨트리지 않는 선에서 살펴본 후 하고 싶었다.

아무리 헨지라 해도, 가주가 17년 만에 찾은 평온을 깨고 싶지는 않은 것인데…….

“저기 있잖아, 저기.”

“……?”

헨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마도서가 있다는 거지?

헨지는 유심히 풍경을 살폈다.

“아빠, 저건 하늘.”

여전히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는 소가주.

“그렇구나.”

웃고 있는 가주.

그리고 그 앞으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과 다과가 담긴 쟁반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책.’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볼품없는 책 한 권.

두께를 보아 동화책 내지는 경매장 카탈로그쯤 될 거 같은데, 거기까지 파악한 헨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도서가 도대체 어디…….

“……설마?”

헨지는 눈을 얇게 뜨고 ‘볼품없는 책’을 바라봤다.

헨지는, 언젠가, 마도서를 본 적이 있었다.

똑똑히 기억했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앗아가 버리는, 불가해한 존재감을 품고 있는 그 자태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그 이름 앞에 마(魔) 자가 붙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러니,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저게…… 마도서란 말입니까?”

“……응, 보다시피.”

“……정말, 저게요?”

“하하.”

아스터는 대답 대신 웃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스터 본인이 보기에도 마도서가 참으로 볼품이 없었던 것이다.

‘왜 저렇게 됐더라.’

아스터는 잠시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니까, 마도서를 제압했을 때.

……역천은 블란도가의 마도서, 그러니까 ‘셀로스’를 포식했다.

‘셀로스’는 치유의 빛으로 유명한 블란도와는 어울리지 않게, ‘파괴’의 법칙을 담고 있는 마도서였다.

어쩌면, 치유의 빛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셀로스’ 때문일 수도 있었다. ‘파괴’를 통해 ‘회복’을 알아낼 수도 있는 법이니까.

어쨌든, ‘셀로스’의 공능이 뭔지는 역천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식탁 위에 올라갈 야채 따위에 무슨 배경이 있는지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렇게 시작된 게걸스러운 포식.

아스터는 그 포식을 제어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역천은 그간 손실된 힘을 모조리 회복하겠다는 듯 마도서를 먹어치웠고,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아스터의 제어를 벗어나 날뛰려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모양 이 꼴.’

몰랐는데, 역천이 ‘셀로스’의 활자를 먹어치울 때마다 그 장수가 줄어들더라.

최종적으로 남은 ‘셀로스’의 장수는…….

‘……정확히 47페이지.’

본래 1,000페이지 가까운 두께를 자랑하던 걸 생각하면, 이제는 ‘마도서’가 아니라 ‘마도서의 찌꺼기’라 부르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인데…….

“그래도? 그 뭐야, 다행히? 블란도의 가주님은 아주 무사하시답니다?”

“…….”

“마도서도? 일단은? 멀쩡한데? 데미안! 그거 해 봐, 그거!”

“또?”

“빨리!”

“알겠어!”

아스터의 외침에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도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마도서를 들지 않은 손을 들고 하늘을 향해 펼쳐 보였다.

이윽고…….

쿠르, 쿠르르륵―!

하늘로 솟구치는 파괴의 기류.

“됐어?”

“그래, 됐어.”

아스터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보란 듯이 헨지를 보며 웃어 보였다.

“봤지? 멀쩡하지?”

“…….”

헨지는 대꾸하지 않았다.

* *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가주 납치 소동’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내통자로 지목됐던 헨지는 혐의를 벗은 걸 넘어서서 가주를 위해 기꺼이 스스로 위험을 감수한 충신이 되었고, 아스터는 납치범에서 한순간에 블란도의 다시 없을 은인이 되었다.

참고로 얇아진 마도서는 비밀에 부쳐졌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일을 크게 만들면 곤란하니까.’

마도서가 사라지거나, 문제가 생기거나.

어느 쪽이든 외부로 새어 나가면 좋지 않았다.

우르보나가(家)의 꼴을 봐라.

한창 성세를 구가할 때는 북부를 넘어서 중앙에까지 영향을 미치던 가문이 북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아, 이제는 그마저도 안 되지 참.’

역사 학자들의 평으로는, 우르보나가 마도서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애초에 람부르크 공국과 척을 질 일도 없었을 거란다.

왜냐.

‘중앙으로 진출하면 되니까.’

오히려, 마하르파트 대고원의 야만족들을 막아 주는 방파제인 람부르크 공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다질 수도 있었을 거라고.

어쨌든, 마도서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일을 크게 키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얇아진 마도서 대신에? 마탑과 검원이라는 든든한 우방을 얻었으니까, 어쩌면 이득이 아닐까?’

소가주도 초월!

이야, 신난다!

블란도 입장에서는 가주의 목숨도 구하고, 소가주도 각성하고, 마도서도 멀쩡하고, 마탑이랑 검원이라는 우방도 생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일석이조를 넘어선 일석사조, 오조 정도 되는 셈!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블란도행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면 도망칠 이유가 없지 않느냐.”

“도망치는 거 아닌데?”

달조차 뜨지 않은 야심한 밤.

몰래 별장을 나서던 아스터는 샤인의 물음에 무심히 대꾸했다.

“몰래 떠난다고 다 도망이야? 그럼 너도 도망이야?”

“이 몸은 네놈을 따라가는 거니까 도망은 아니지 않느냐.”

“그렇지? 나도 그래.”

샤인은 아스터의 뒤를 따라나서며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뭐가 그렇다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다음 목적지가 어디라고?”

“다음은…….”

아스터는 잠시 생각했다.

한데, 그보다 먼저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첸비를 보러 가자.”

“…….”

아스터는 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데미안?”

“맞아, 난 데미안이지.”

“……언제부터?”

“별장에서 나설 때부터.”

“……어떻게?”

“아빠가 알려 줬어. 친구 도망간다고.”

“……아하.”

아스터는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잘못한 게 없다. 도망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야심한 밤에 길을 나서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간단했다.

데미안이라는 혹을 달고 가지 않기 위해서.

한데…….

‘……아, 이러면 나가린데.’

하나, 이런 아스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데미안은 빵끗 웃어 보였다.

“타임 투 트러블.”

[너, 바보. 트러블, 아니다.]

와이번의 핀잔에 데미안은 픽 웃으며 아스터의 머리에 올라탄 와이번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대꾸했다.

“지금은 트러블이 맞아.”

뉴 프로토타입 데미안 버전4.

진화하는 괴물, 데미안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