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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522화 (522/559)

522화. 군침이 싹 도는

아스터는 눈을 끔뻑거렸다.

‘와이번이 말을…… 똑바로?’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스터는 그 놀라움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와이번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던 것.

파다다닥―

앙증맞은 날개로 날아오른 와이번은 곧장 거대한 드레이크에게로 다가갔는데, 와이번의 황금빛 눈동자는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와이번 역시도 지금의 상황이 낯설고 새로웠다.

- 너, 죽어가고 있구나.

- 뭐냐, 바라는 게 뭔지 말해라.

어째서 이렇게 말했던 걸까.

이유는 모른다.

다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그래, 마치 보살펴야 할 부하를 본 ‘우두머리’의 그것처럼.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은 드레이크도 마찬가지인 것인가.

드레이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제 비늘 한 조각보다도 작은 와이번의 접근에 옅은 울음을 흘렸다.

그르릉―

사실 와이번은 모르겠지만, 이 고대종 드레이크에게 이런 기분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리운 기분이었다.

오랜 옛날.

트리혼 드레이크가 아직 작은 드레이크에 불과할 때.

그때는 지배자들이 참으로 많았다.

붉고 푸르고, 검고, 하얗고……  때로는 노랗게 빛나는.

저마다 다른 색의 비늘을 가진 지배자들은 그 색만큼이나 성격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래도 공통점이 있었다.

- 아이야,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니.

그들은 드레이크가 울고 있을 때면 언제나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었다.

당연하다는 듯, 언제나 그렇게.

……아스터와 일행들이 드레이크의 영역으로 들어왔을 때, 드레이크는 와이번의 기척을 느끼고 불러들였다.

그리웠던 ‘지배자’를.

막상 두 눈으로 확인한 ‘지배자’는 옛 지배자들에 비해 한없이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앙증맞은 날개로 날아올라 콧잔등 위에 올라섰을 때, 고대종 드레이크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작고 앙증맞을망정, 지배자는 지배자라는 것을.

[한다, 말. 듣는다, 나. 그리고…….]

……이뤄 준다.

와이번이 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기묘한 책임감으로 말을 뱉었을 때, 거대 트리혼 드레이크는 구슬픈 울음을 흘렸다.

동시에, 와이번의 머릿속으로 거대 트리혼 드레이크의 기억이 밀려들었다.

고대종 중에서도 특히 오랜 시간을 살아온 거대 트리혼 드레이크가 옛 지배자들 중 하나에게 배운 것으로, 와이번은 거대 트리혼 드레이크의 기억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겠다, 알.]

와이번은 트리혼 드레이크의 바람을 들어주겠노라 답하고.

그릉―

트리혼 드레이크는 옅은 울음을 흘렸다. 좀 전과는 다른, 구슬프다기보다는 기쁜 울음이었다.

거대 트리혼 드레이크의 몸뚱어리가 마나(Mana)로 화해서 사라지기 시작한 건 그 직후였다.

츠, 츠즈즈―

허공으로 나풀나풀 흩날리는 거대 트리혼 드레이크의 몸뚱어리.

거대 트리혼 드레이크는 거대한 눈을 끔뻑거렸다. 그리고 와이번을 바라보며 다시 옅은 울음을 흘렸다.

파앗―!

공간으로 번지는 빛.

거대 트리혼 드레이크의 심장이 밝게 빛났다.

마치 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심장은 이내 크기를 줄이더니 휘익! 유성처럼 날아가 와이번의 앞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

와이번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대 트리혼 드레이크의 울음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그릉, 그릉.

……괜찮다.

그런 의미다.

[렇다면야, 그.]

와이번은 사양하지 않았다.

[오라!]

와이번이 호기롭게 외치자, 거대 트리혼 드레이크의 심장으로부터 뽑아져 나온 뭔가가 와이번에게 깃들었다.

그것은 본래 트리혼 드레이크의 것이 아니었다.

먼 옛날.

트리혼 드레이크가 아직 어릴 때, 그를 어여삐 여긴 지배자 중 한 명이 그에게 선물해 준 기운.

트리혼 드레이크는 그 기운 덕에 다른 동족보다 거대한 몸뚱어리로, 지혜롭게, 오늘날의 이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트리혼 드레이크 종족의 우두머리로 오랜 세월을 군림해 왔다.

사실, 그리 달갑지는 않은 역할이었다.

몇몇 혈기왕성한 개체들은 우두머리의 자리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자신의 씨를 후대에 널리 퍼트리는 것을 생의 의미로 삼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영특한 트리혼 드레이크에게는 우두머리의 특권보다는 책임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하지만, 이제는 마땅한 지배자가 나타났으니.

그르릉―

……부탁드립니다, 어린 지배자여.

트리혼 드레이크는 자신의 우두머리로서의 책임감을 넘김과 동시에, 그에 대한 감사함의 표시로 오랜 옛날 옛 지배자에게 받았던 힘을 와이번에게 넘겨주었다.

그 힘을 받은 와이번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이윽고.

툭, 투둑,

후두둑―

커지는 몸뚱어리.

떨어지는 비늘.

허물이 조각조각 갈라져 툭, 투둑 떨어져 내리자, 그 안에서 전보다 찬란한 황금빛 비늘을 가진 와이번이 나타나 날개를 펼쳤다.

[햣챠챠!]

그 늠름…… 아니, 앙증맞은 모습에 트리혼 드레이크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쌔액, 쌕.

옅어지는 숨소리.

눈을 감는다.

그렇게, 거대한 눈꺼풀이 완전히 닫혔을 때.

트리혼 드레이크는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 몸뚱어리가 모두 마나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도.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거대했던 트리혼 드레이크의 몸뚱어리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짙게 내려앉은 침묵을 깨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아스터는 한층 늠름해진 와이번을 보며 물음을 던졌다.

“뭐래?”

사실 묻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아스터는 지금의 목적을 잊지 않았다. 이 여정은 어쨌거나 첸비를 구하기 위한 것.

결국 중요한 건 이거였다.

“첸비, 살았대?”

[……른다, 모.]

“몰라?”

[한다, 설명.]

와이번은 차분히, 좀 전 거대 트리혼 드레이크로부터 건네받은 기억을 되짚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거대 트리혼 드레이크는 본래 한참 전에 죽었어야 하는 생명체였다.

[몇 년 전인지, 몇십 년인지, 몇백 년인지는 모른다. 그냥, 2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오래전에 죽었어야 했다고.]

“2호?”

[삼았다, 쟤. 내 부하 2호.]

최단기 퇴임인가.

“……어쨌든, 그래서.”

[2호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미련이 무엇이냐.

와이번은 거기까지 말한 후 파다다다닥 날아올라서 저 동굴 안쪽으로 향했다.

동굴 안쪽에는 거대한 알껍데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새끼?”

[손자의 손자인지, 아니면 그 손자인지, 2호도 잘 모른다. 2호는 오래 살았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핏줄인 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부하 2호가 자신의 먼 후손의 알을 발견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오랜 세월 전,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후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나왔던 대수림 외곽.

그곳에서 부하 2호는 자신의 후손의 것으로 추정되는 트리혼 드레이크들의 무덤을 발견했다.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우두머리로 살면서 오랜 세월, 그리고 스스로를 더 이상 우두머리로 자처할 수 없게 될 정도로 종족이 멸종에 들어선 이후로도.

2호는 동족의, 그리고 후손의 죽음을 무수히 많이 지켜보았다.

사냥감이 되어서, 혹은 사냥을 하다가, 때로는 서로 영역을 두고 다툼을 벌이다가, 간혹 짝짓기 상대를 차지하기 위해서.

죽음의 이유는 다양했다.

처음에는 그 광경이 슬펐지만, 2호는 알게 되었다.

죽음이란, 결국 자연의 현상 중 하나라는 것을.

그러니, 자신과 같은 냄새가 짙게 나는 후손들의 무덤을 발견했다 해도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화창한 여름날, 돌연 퍼붓는 소나기처럼, 일상적이지는 않지만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발견한 것이다. 뼈 무덤 사이에 놓인 ‘알’을.]

“……알이 멀쩡했어?”

[멀쩡했다.]

“어떻…… 아니, 아니다. 계속 말해 봐.”

보살피는 이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알이 어떻게 멀쩡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었지만, 종족적 특성 덕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왜냐. 와이번에게 묻는다 해도 놈도 잘 알지 못할 테니까.

와이번은 그런 아스터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알을 발견한 후.

[2호는 알을 부화시키기로 했다.]

2호가 알을 부화시키기로 한 것은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적어도 2호는 그렇게 느꼈다.

그날 이후.

2호는 알이 있던 자리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알을 품었다.

알을 품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지만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흘렀다.]

2호의 기준으로도 긴 시간이 지났다.

[알이 깨어났다.]

2호의 감상으로는 참으로 귀여웠단다.

그래서 2호는 다시 죽음을 미뤘다.

본래 트리혼 드레이크는 날 때부터 포식자로, 능히 홀로 살아남을 수 있는 개체였지만, 2호는 아이가 성체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순조로웠다.

외곽에서 트리혼 드레이크를 위협할 만한 개체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깨어났다, 재앙.]

“재앙이라면…….”

[이건 얼마 전이다.]

얼마 전이라면 짚이는 바가 있었다.

바로 데스트로우.

[2호는 재앙을 피해서 외곽으로 도망쳤다. 후손과 함께. 그리고 여기에 차린 거다, 보금자리.]

“알은?”

[둥지다. 새끼, 아직 성체 아니다. 알에서 자야 편하다.]

성체는 굴을 파고 들어가서 살고, 새끼는 성체가 판 굴에 알로 둥지를 만들고 산다.

둥지를 옮기면서 알껍데기를 옮기는 건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옮겨서 생활하는데.

[얼마 전부터, 침입자가 있었다.]

“침입자라면, 첸비?”

[아니다. 그건 먹이다. 침입자 아니다. 침입자가 되려면 아주 무서워야 된다.]

“아, 응.”

그건 그렇다.

저 거대 드레이크에게 있어서 첸비는 ‘침입자’라고 할 만한 존재도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침입자란 무엇인가.

[2호의 설명에 의하면…… 바깥에서 온 괴물.]

“바깥?”

[이 바깥은 숲의 바깥이 아니다. 뭐라 해야 할까. 세상의 바깥이다.]

“……?”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세상의 바깥이라니.

[모른다, 2호도. 어쨌든, 침입자는 ‘바깥의 괴물’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다. 그리고 그 꼭두각시가 후손을 노리고 있다.]

“그 말은…….”

[우리는 구해야 한다. 후손이 꼭두각시에게 사냥당하기 전에.]

……내가 왜?

말이 턱 끝까지 치솟았지만, 아스터는 충동을 내리눌렀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첸비는? 먹힌 거래?”

[……아니다. 후손은 첸비를 재미난 장난감쯤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가지고 놀고 있다고 했다.]

“그……래?”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까.

‘……다행이겠지.’

일단은 살아 있는 거니까.

한데, 그나저나.

“첸비 구하기는 가능하고.”

[가능하다. 후손도 내 쫄따구.]

첸비를 괴롭히지 말라 그러면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침입자인데.

[도와줘라. 후손, 내 쫄따구. 제공한다, 노동력. 아라푸르긴의 명물 탈것, 트리혼 드레이크. 멋지지 않나?]

아스터로서는 군침이 싹 도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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