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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마법사의 회귀생활-553화 (553/559)

553화. 녹슬지 않게

……옳은 길을 걷겠다.

설령 그 길이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더라도, 그 위험에서 건져 내는 것조차 권리를 누리던 자신의 책임이니.

아스터는 그런 시온의 말을 곰곰이 곱씹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너무 무책임한데?”

“그러한가?”

“응. 말이야 책임이니 뭐니 하는데, 책임을 못 지면 결국 다 같이 죽겠다는 말 아니야?”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그렇지.”

“음.”

둘 사이로 옅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이들은 눈을 끔뻑였다.

특히, 이 일에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첫 번째 검 하멜란의 감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스터가 입을 연 건 내려앉은 침묵이 똬리를 틀기 직전이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겠다.”

“말하라니? 누구한테?”

“누구긴, 댁네 가주지.”

“음?”

시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끝인가?”

시온의 물음에 아스터가 고개를 갸웃했다.

“끝이지 그럼. 또 뭐가 있어?”

“……?”

시온이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

아스터도 갸웃했다.

그렇게 둘의 고개가 꺾인 방향으로 90도쯤 기울 무렵, 시온이 다시 물음을 던졌다.

“무책임하다지 않았나?”

“근데?”

“그런데 끝이라고?”

“뭐, 더 듣고 싶은 말이 있어?”

“아니, 그건 아니다만…….”

아스터는 빤한 시선으로 시온을 바라봤다. 그 입이 열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뭐야. 왜 말을 그냥 끝내냐 하면…… 생각해 본 거지. 소가주가 뭘 했을 때 책임감이 넘쳐 보일까.”

“뭘 해야 넘칠 것 같던가?”

“나야 모르지.”

“……?”

시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스터는 그런 시온의 반응에 볼을 긁적이고는 마저 말을 이었다.

“모르겠다고. 진짜로.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말하면?”

“소가주가 모든 걸 다 책임질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시온은 슬쩍 눈매를 좁혔다. 아스터의 말이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는데, 아스터는 부연했다.

“자 봐 봐. 이러니저러니 해도? 로르텔이 몰락할 즈음이면, 죽기 싫은 놈들은 다 도망가지 않았겠냐 이거야. 안 그래?”

“그건…….”

“에이, 로르텔의 기사들은 충성스럽다느니, 명예롭다느니, 이런 말은 하지 말자고. 기사들은 가족이 없어? 자식 없고, 배우자가 없어? 부모가 없어? 있잖아. 충성심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 앞에서는 흔들릴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

“음.”

시온은 동의를 하는 대신 침묵을 택했다. 아스터의 말이 맞다는 건 알지만, 선뜻 동의를 표하기에는 기사로서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리고 아스터도 그 이상은 시온을 몰아세우지 않았다. 사실, 시온의 인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죽기 싫은 놈들 다 도망가면, 어떤 놈들만 남겠어? 둘 중 하나 아니야?”

하나.

“목숨이 아깝지 않거나.”

둘.

“목숨은 아깝지만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있거나.”

이번에는 시온도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럼, 걔네는 소가주가 남으라 그래서 남은 놈들일까? 아니면, 저들이 자진해서 남은 놈들일까.”

“그야…….”

“본인들 의지로 남은 놈들이겠지. 다 무너져 가는 가문의 소가주가 협박을 한다고 듣겠어? 때려죽이려 해도 누굴 보내서 때려죽여? 다 본인들 선택이라 이 말이야. 그러면……. 그건 누가 책임져 줘야 할까. 나? 아니면…….”

아스터가 자신을 가리켰던 손가락을 돌려 시온을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물음을 던졌다.

“소가주?”

“당연히…….”

“둘 다 아니지.”

“…….”

“‘당연히 나다’라고 대답할 거였으면 반성해야 돼. 그들은 머리가 없대? 자유 의지로 선택한 거 아니야? 다 멍청이들이야? 아니면, 뭐. 소가주가 사기 쳐서 남으라고 했어? 아니잖아. 그치? 사기 치지는 않을 거지? 근데, 뭐가 문제야?”

“……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지 않나. 당연히 내가…….”

거기까지 들었을 때 아스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해 달래? 한번 물어볼까? 하멜란 선배, 소가주가 그렇게 가신들 안위에 전전긍긍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아스터의 질문에 하멜란은 줄곧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스터를 한 차례 바라보고는 시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입이 열린 건 그 직후였다.

당연하게도, 그 답은…….

“아니다.”

……먼저 아스터에게 답을 한 하멜란은 시온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소가주님, 이 늙은이는 그저 소가주님이 당신의 뜻을 온전히 펼치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뜻은 다른 가신들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부드럽지만 완고한 목소리에 시온은 눈매를 좁혔다. 눈동자가 일렁였다. 아직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그런 속내를 알아차린 것일까.

하멜란이 조심스레 물음을 던졌다.

“소가주님, 이 늙은이가 감히 한 말씀 올려도 괜찮겠습니까?”

“…….”

시온은 하멜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게.”

“예. 그럼…….”

하멜란은 시온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예를 취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 눈동자는 잘 벼려 낸 칼의 그것처럼 날카로웠다.

그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멜란…… 로르텔의 첫 번째 검이 작은 주인을 향해 직언을 올렸다.

“소가주님. 저는, 가신들은, 당신의 검이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이 칼을.”

하멜란은 칼을 뽑아 달빛에 그 날을 비췄다. 날카롭고 또 날카로운 칼. 하멜란의 손가락이 칼의 등을 쓸었다. 기묘한 울림이 공간으로 번져 나갔다.

“부러질까 저어되어 뽑지 않았다면, 이처럼 맑은 울음을 토하지 못했겠지요. 이처럼 섬뜩한 예기를 품지 못했겠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감사하오나…….”

하멜란이 검을 갈무리했다. 시온을 직시한 채.

그리고 나직이 부탁을 올렸다.

“부디, 녹슬지 않게 해 주십시오.”

* * *

그렇게, 얼마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독한 캠프파이어가 타오르는 소리만 나직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하멜란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하멜란은 그 말을 끝으로 한 걸음 물러나 눈을 감았다.

시온은 그런 하멜란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그러기를 얼마간.

그 입이 열렸다.

“아직은, 너무도 여린 것인가.”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공간으로 번져 나가는 그 목소리가 너무도 쓸쓸해서.

아니, 비단 쓸쓸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쓸쓸하기만 했다면 위로의 말이라도 건넸겠지만, 시온의 문제는 위로 따위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해결도, 극복도, 오직 저 스스로 해야만 하는 그런 종류의 문제.

……하지만, 애석하다 해야 할까.

시온의 침묵은, 그러니까 고독을 씹는 시간은 그리 길어질 수 없었다.

“그럼 끝난 건가?”

“데미…… 음, 드레이크스.”

“왜?”

“조용…… 아니, 음. 그래, 아니다.”

첸비는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아니, 정확히 말해서 못하는 ‘척’하는 데미안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긴, 가뜩이나 두꺼운 낯짝인데 가면까지 뒤집어썼으니 무슨 말인들 못 할까.

오히려 여태껏 침묵을 지킨 것도 용하던 참이다.

어쨌든, 분위기를 깬 건 깬 거고, 기왕 깼으니.

“음…… 어쨌든 끝난 걸까요?”

첸비는 낯짝에 철판을 깔고 시온에게 물었다. 시온은 살짝 떨리는 눈동자로 첸비를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끝…… 음, 그래. 끝났다네.”

왠지 모르게 어질어질하다.

빨리 쉬고 싶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지친 상태였는데, 그때 아스터가 슬쩍 손을 들어 올렸다.

“음, 근데 그래서 어쨌든 옳은 길을 걸을 거라는 거지?”

“……여태 뭘 들었나.”

“아니, 다시 확실히 하자는 거지. 어쨌든, 그러면 그건 가주한테 말하기로 하는 거고?”

“……그렇네.”

“그러면, 가주한테 말하고 나서는 마탑에 연락 한번 줘. 앞으로 어떻게 할지 얘기를 좀 나눠 보자고.”

“……그래.”

“좋아. 그럼 나름대로 깔끔하네.”

“그런가.”

힘없는 시온의 물음에 아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 정도면 깔끔해.”

생각해 봐라.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솔직히 말하자면, 시온을 납치해서 억지로 무하드를 끄집어 내리고 가주의 위(位)에 앉히는 경우도 각오했었다.

그리고 여정 도중에는…….

‘……그 많은 추종자들을 어찌해야 하나 싶기도 했고.’

첫 번째 검과 만났을 때는…….

‘……결국 피를 봐야 하나 싶기도 했지.’

그뿐이냐.

가주와 대화를 나눌 때까지도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다.

그러니까, 결국 로르텔과 마탑이 이해관계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이야기가 평행선을 내달릴 때. 결국 로르텔이 데큘란과 손을 잡게 되었을 때.

그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아무리 아스터라 해도 편치 않은 고민이었다.

한데, 지금을 봐라.

‘깔끔하잖아.’

누가 죽었나.

아무도.

……물론, 홀렌드는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았을 것 같기는 한데, 뭐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로르텔과의 관계도 원만하다.

다만 예상치 못한 변수는…….

‘……저놈들인데.’

아스터는 가늘게 뜬 눈으로 아돌프와 파천을 바라봤다.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할 정도로 정보를 노출한 것은 아니지만, 저 둘도 바보가 아닌 이상 뭔가 일이 요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적어도 로르텔과 데큘란이 또다시 엮였다는 것과, 그 사이에 마탑과 검원이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알았겠지.

그렇다면, 아스터의 의문은 이거였다.

‘저 둘이라는 변수가…….’

앞으로의 상황에 득이 될 것인지, 실이 될 것인지.

아스터는 가만히 아돌프를 바라보다가 마음을 굳혔다.

‘그래, 이런 건 솔직한 게 최고지.’

“이봐, 돌란페 소가주? 혹시 데큘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난 나보다 약한 놈의 질문 따위에는 답하지 않…… 컥!”

아스터의 주먹이 아돌프의 면상에 틀어박혔다.

“어떻게 생각해?”

“……로르텔의 가신이 검이라면, 돌란페의 가신은 주먹이라네. 자네는 아직 내 주먹을 꺾지 못했…….”

“소가주님, 주먹 부러지기 싫으면 그냥 대답하십시오.”

“흠.”

파천의 말에 아돌프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다시 움직임을 시작했을 때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스러웠으니.

“데큘란은 상종 못 할 쓰레기들이지. 뱀보다 더 뱀 같은 자들. 마법사들 중에서도 가장 마법사 같은 자들이야.”

아스터는 그 대답에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끝에 좀 이상한 말이 섞여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이만하면 퍽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대화가 좀 통할 것 같기도 한데?”

“…….”

아돌프는 아스터를 빤히 바라보다가 파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을 받은 파천은 고개를 살래 저었다.

“뭔들 생각으로만 하쇼. 저 새끼도 X나 세니까.”

“음, 그런가.”

아돌프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답했다.

“의형제를 맺는 건 어떻겠나?”

아스터가 빵끗 웃었다.

“내가 형?”

“……음.”

아돌프는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돌란페가(家)에서는 센 놈이 최고.

꼭 주먹이 셀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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