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비운의 천재 의사 김태경
신화대학병원 원장실.
“네, 네. 회장님. 아무렴요.”
똑똑-
허공에 대고 머리를 조아리며 통화하던 병원장은 노크 소리와 함께 들어온 외과 과장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보냈다.
“안 그래도 어제 이사장님과 만났습니다. 그런 인재가 저희 병원으로 온다면야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럼요. 걱정 마십쇼.”
전화를 끊은 원장은 부담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과장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 이 교수님 어서 오세요. 제가 사람을 불러 놓고 통화가 길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절 보자고 하신 이유가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참, 교수 채용 말입니다.”
“그거라면 어제 서류 올려 드렸는데요.”
“저도 봤습니다. 이 친구죠?”
원장은 책상 위에 올려 둔 서류를 가져와 내밀었다.
“김태경 선생.”
“네, 맞습니다.”
“이 친구 우리 병원에서 유명하다면서요.”
“쓸데없이 환자에 대한 오지랖이 넓긴 하지만 실력은 좋습니다.”
“실력이 굉장하다는 소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환자들에게 평판도 아주 좋더라고요.”
“환자에 대한 평판이 좋긴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인재가 왜 번번이 교수 채용에 밀려 아직까지 몇 년째 펠로우를 하고 있을까요?”
병원장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 과장은 말끝을 흐렸다.
“그, 그건…….”
“어차피 교수 채용이야 과장님들의 권한인 것을 죄송할 게 있나요? 그건 그렇고 제가 오늘 이렇게 뵙자고 한 건 우리 외과의 실적보고 때문입니다.”
의사는 보통 그 어떤 이념 없이 숭고한 환자의 생명을 위해 헌신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화대 원장은 전혀 아니다.
그에게 환자란 돈벌이며, 오롯이 병원의 이익이 목표인 사람이었다. 이게 메이저 대학병원의 현실이기도 했다.
“아시겠지만 상반기 실적이 오전에 올라왔더라고요.”
뱀 같은 원장의 눈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지만 이 과장은 긴장하지 않았다.
상반기 외과의 실적이 괜찮았기 때문이다.
“외과 실적이 괜찮습니다. 작년 대비 수술 수과가 35%나 늘었네요. 과장님께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들이 같이 노력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장님?”
“예, 원장님.”
“이건 좀 곤란하지 싶은데……. 김태경 선생 말입니다.”
“네?”
“이 친구 상반기는 고사하고 작년 수술 실적이 우리 병원 최하입니다.”
탁-
원장은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태경의 수술 실적보고서를 보란 듯이 이 과장 앞에 던졌다.
“눈이 있으면 좀 보세요.”
태경의 수술 건수는 누구보다 많았지만 실적은 꼴등인 아이러니한 결과였다.
“어떻게 된 게 단 한 번도 로봇 수술을 하지 않았더군요.”
그렇다 원장이 말하는 실적은 비용이 고가인 로봇 수술을 말한 것이었다.
“이 교수님, 김태경 이 친구 진짜 교수 시키실 겁니까?”
“김 선생 꽤 오래 펠로우하며 외과 뒤치다꺼리 다 했습니다.”
이 과장은 복잡한 표정으로 원장의 물음에 답했다.
“운이 없어서 그랬지 실력으로만 본다면 가장 먼저 교수가 됐을 겁니다.”
이 과장은 태경이 기약 없는 폘로우 생활을 하게 된 주범이었지만 양심은 있었다. 실력 좋은 태경을 두둔했다.
“운이 아니라 교수로 만들어 줄 학연, 지연, 의사 부모가 없어서 지금까지 밀린 거겠죠.”
“…….”
정곡을 찔린 이 과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제 말이 틀립니까?”
“죄송합니다. 원장님.”
“그래서 제가 죄송한 마음을 만회할 기회를 드리려고 하는데요. 김태경 내쫓으시죠.”
“네? 아니, 원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밑도 끝도 없이 쫓아내라는 원장의 말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갑자기 쫓아내라니요?”
“이사장님 친구 아들이 우리 병원 외과 교수가 되고 싶답니다.”
하지만 ‘이사장님’이란 말이 떨어진 순간 바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분께서 병원 발전 기금과 별개로 외과 기구와 이 교수님의 개인 연구비 또한 3년간 지원하겠답니다.”
“제 개인 연구비를요?”
“물론이죠. 액수가 아마 어마어마할 겁니다.”
구체적인 돈 이야기가 나오자 이 과장은 원장처럼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굴렸다.
안 그래도 개인 연구비를 어떻게 따내나 싶던 찰나 잘됐다 싶었다.
“이 교수님, 우리 병원은 실력 좋은 의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돈 벌어 주는 인기 의사는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알잖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미디어의 힘만 빌리면 돈 되는 스타 의사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우리는 실력이 아니라 돈줄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이래도 김태경 계속 병원에 둘까요?”
“그럴 리가요. 김태경이 누구인가요?”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이 교수는 그동안 태경에게 남아 있던 미안한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레지던트 당직실.
철컥-
“야! 대박.”
레지던트 한 명이 호들갑을 떨며 당직실 문을 벌컥 열었다.
“빅뉴스! 내가 지금 뭐 하다 왔는지 알아?”
“아, 새끼야 불 꺼.”
피곤에 찌들어 잠들어 있던 동료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지금 자고 있을 때가 아니야.”
“미친놈아. 나 정확히 20시간 근무 끝나고 10분 전에 들어 왔거든.”
“알지. 근데 내가 대박 소식 물어 왔잖아.”
“아, 꺼져! 지금 잠보다 중요한 게 없거든. 됐으니까 불 끄고…….”
“김태경 선생님 쫓겨난대.”
“뭐!?”
날카롭게 반응하던 동료는 태경의 소식에 깜짝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김 선생님 오늘이나 내일 교수 임명 발표잖아. 이번에는 진짜라며?”
“진짜였었지.”
“뭐라는 거야. 알아듣게 얘기해.”
“그게 이사장 친구가 국회의원인데, 그 아들이 온댄다.”
“와! 미친 답도 없다. 이사장 친구에 국회의원 아들을 어떻게 이겨?”
“내 말이.”
“아무리 천재 소리 듣고 트리플 보드를 가지고 있으면 뭐하냐?”
“아까운 시간 펠로우로 다 보내고 노예처럼 부려먹다 결국 돈 없고 백 없어 팽당한 거잖아.”
“근데 솔직히 이건 김 선생님도 문제 있다고 본다.”
동료와 함께 안타까워하던 레지던트는 별안간 태경을 탓했다.
“김 선생님 문제라니?”
“아니 그렇잖아. 뭐 하러 여태 붙어 있어.”
“거야 당연히 교수 하려고 병원에 남은 거잖아.”
“돈 없고 백 없는 집 애들이 의대 교수가 쉽냐? 나라면 그 실력에 벌써 나가서 병원 차리고 돈 긁어모았어.”
“사람이 좋아서 그래. 오죽하면 사비까지 직접 털겠냐.”
여러 사정으로 제 코가 석 자인 태경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돈이 없는 환자의 병원비를 대신 내준 적이 여럿 있었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칭찬이 자자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병원 내에서는 유난 떤다는 소리도 적잖이 들려왔다.
“무슨 자선 사업가야. 집도 어렵다는 소리도 있던데……그냥 존x 미련한 거야.”
“야, 너 말 조심해.”
“아, 몰라. 김 선생님도 나가리 됐다니까 답답해서 그래. 하여간 보면 윗대가리들이 항상 문제야.”
“입 조심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너랑 나밖에 없는데 듣긴 누가 들어.”
Rrrrrrrrrrr
신나게 떠들던 두 사람 사이로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야, 너 콜 왔나 보다.”
“어? 내 전화 아닌데?”
“네, 전화 받았습니다.”
각자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던 두 사람 사이로 별안간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수술요? 다른 선생님께 콜 해 보셨어요?”
두 사람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구석 이층 침대로 향했다.
“VIP 떠서 얼굴 도장 찍으러…… 그래요?”
정수리까지 덮여 있던 이불을 제치며 퀭한 얼굴의 남자가 일어났다. 그 남자의 정체는 레지던트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태경이었다.
“그러면 얼굴 도장 찍을 필요 없는 제가 해야죠. 네, 지금 갈게요.”
레지던트 당직실에서 일어나는 태경을 본 두 사람은 한겨울 고드름처럼 얼어붙었다.
“선, 선생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주제넘었습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자신들 앞을 지나가는 태경을 향해 고개를 숙여 사과를 전했다.
“뭐가, 죄송해. 다 사실인데. 내가 미련해서 이렇게 된 건데 뭐. 너희도 나처럼 되지 마라.”
철컥-
“x같네.”
문 닫는 소리와 함께 낮은 욕설이 들려왔다. $수술실이 아닌 곳에서 처음으로 튀어 나온 욕이었다.
뒷말을 한 후배들에게 한 욕이 아니었다. 그동안 개처럼 일한 병원에서 쫓겨나다시피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밀려왔다. 짜증과 함께 조금 전 후배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돈 없고 백 없는 애들이 의대 교수가 쉽냐?’
알고 있다. 내세울 건 실력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실력만 갖고 메이저 대학병원 교수가 되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과 교수님들에게 개가 되어 악착같이 충성했다.
인턴 때나 했던 담배 심부름은 기본이요 취하면 집에까지 모시고 가는 대리기사 노릇도 했었다.
‘나라면 그 실력에 벌써 나가서 병원 차리고 돈 긁어모았어.’
병원을 차리라니. 배부른 소리다.
신용불량자에 갚아야 할 빚이 까마득한 태경에겐 어림없는 소리였다.
“이사장 친구에 국회의원 아들이라……. 완전 무적이잖아.”
답답한 태경은 체념하듯 혼잣말을 쏟았다.
사실 몇 분전, 태경은 과장인 이 교수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장문의 글이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미안하네, 김 선생. 나도 애써 봤지만 이사장님 뜻이라 어쩔 수 없네. 자네가 병원을 나가 줘야겠어. 그동안 수고했네.
메이저 대학병원에서 교수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뛰어난 실력도 훌륭한 인성도 아니었다.
지연과 혈연 그리고 돈인 것이다. 한때 천재 소리까지 듣던 태경이 무기한 펠로우 신세가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
묵직한 한숨을 가르는 무거운 발걸음이 수술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