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화 (2/472)

2화. 수술실의 지휘자

“이 환자 티엠엔스테이지(TMN stage, 암의 진행 단계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기법. Tumor(종양), Node(림프절), Metastasis(전이)의 줄임말) 어떻게 돼?”

손의 물기를 닦은 수건을 멸균 통에 넣으면서 태경이 레지던트에게 물었다.

“네, 선생님. CT상 T2N0M0이며 레프트 콜론(left colon, 하행결장)에 있습니다. 화면에 엔헨스드 씨티(enhanced CT, 조영증강 전산화 단층촬영) 띄어 놓았습니다.”

태경은 간호사가 건네준 수술 가운을 입고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교수님이 하신다고 해서 팔로우 업(follow up, 추적관찰)을 안 했는데 이벤트는 없었지?”

“네, 없었습니다.”

“이거 응급실에서 찍은 건가?”

“네, 선생님.”

“이 환자 어때?”

질문 그대로 환자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은 수술하기 전 환자를 진료하며 교류하는데 급하게 대타로 들어와서 환자에 대해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묻는 거였다. 아는 거라고는 유난히 밝은 얼굴로 인사를 참 잘했던 사람이라는 게 전부였다.

“그게 교수님이 계속 보시던 환자라 저희도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하긴 지금은 이 환자가 어떤 환자인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수술을 잘 마치는 게 중요했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태경은 전신 마취된 환자 옆에 있는 마취과 의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당연하지. 걱정하지 마. 그나저나 오늘 VIP 응급 떠서 이 교수님 환자 갑자기 맡게 된 거라며?”

마취과 의사가 모니터를 쳐다보며 태경에게 물었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까 다들 우르르 몰려갔구나.”

갑자기 응급으로 온 VIP는 이사장 부인이었다. 이사장 못지않게 입김을 가졌기에 눈 밖에 나기 싫은 의사들이 얼굴 도장을 찍으러 몰려간 것이다.

며칠 내로 병원을 정리해야 하는 태경에게는 더 이상 해당 사항이 없는 먼 나라 얘기였다.

“그래도 그 깐깐한 이 교수님이 매번 자네한테 응급수술 맡기는 거 보면 자네를 여간 아끼는 게 아니야.”

평소 태경을 예뻐하며 응원하는 마취과 의사 이동훈. 허허실실 좋은 사람이지만 한 가지 흠이 있었으니 눈치가 없다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꼭 한 박자씩 병원 내 소식에 늦곤 했다.

“의대 교수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특히나 우리처럼 돈 없고 줄 없는 사람들은 하늘에 별 따기가 교수 자리야.”

“선생님 모니터 잘 보고 계시죠?”

수술방 수간호사가 눈치를 주며 물었지만 이동훈은 계속 말을 이었다.

“잘 보고 있지.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맞다! 김 선생은 실력도 좋으니까 이 교수님한테 무조건 납작 엎드려.”

“동훈 쌤 그만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김 선생님께서 알아서 잘하시겠죠.”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 버틴 세월이 얼만데. 아무쪼록…….”

“어휴! 제발 그만 좀 하시라고요.”

결국 참다못한 수간호사가 언성을 높였다.

“김 선생님 교수 임명 안 됐어요.”

“아……!”

수간호사의 말에 이동훈은 난감해했고 순식간에 수술방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미안. 김 선생. 내가 괜히 오바했네.”

“제가 말할 게 아닌데 저도 죄송해요.”

“두 분이 왜요. 저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거짓말이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교수 자리가 물 건너 간 것도 병원에서 잘린 것도 이 순간만큼은 잊기로 했다.

“이제 다들 수술에 집중하죠.”

무엇보다 자신에게 생명을 맡긴 환자의 수술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음악 틀어 주세요.”

한기가 느껴지는 수술방에 파가니니의 Caprice 24가 흘러나왔다. 음악은 태경이 수술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음악이 흐르자 마취과 의사와 3년차 레지던트, 인턴, 간호사 두 명이 각자 맡은 위치에서 환자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태경의 눈빛에 집중력이 차올랐다.

“그럼 수술 시작합시다.”

그가 오른손에 연필을 잡듯이 보비(bobie, 전기소작술)로 피부에 인시젼(incision, 절개)을 넣는다.

노인이라서 다른 곳은 말랐음에도 불구하고 복막에는 지방이 많은 편이다.

옆에 있는 퍼스트 어시스턴트가 잘 자를 수 있게 살을 잡고 당겨 준다.

태경이 보비로 살을 지지면서 벌리니 수술방에는 살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시가 석션(suction)을 절개 부분에 갖다 대서 연기를 빨아들인다.

피부를 다 자르니 근육층이 나왔다. 두꺼운 근육층까지 모두 젖히고 나서 이제 수술 부위가 잘 보이도록 기계를 설치한다.

수술방에서는 굳이 집기들을 달라는 말이 오고가지 않는다. 간호사가 태경에게 설치기계를 건네자 어시와 함께 설치를 했다.

“천공은 없네요.”

수술방에서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레지던트, 인턴과 달리 연차가 높은 수간호사가 침묵을 깼다.

“패혈증 증상이 보여서 복막염이 있고 안이 엉망일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기계로 인해 시야 확보가 끝난 상태에서 이제 암 덩어리를 손으로 만져 가며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우선적으로 할 일이 있었다.

“가스부터 빼 주자고.”

“네, 선생님.”

태경은 암을 찾기 전 가스부터 빼낼 생각이다. 지금 이 환자는 암으로 대장이 막혀서 변이 배에 가득 찬 상태였기 때문이다.

가스를 빼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다. 자칫 가스의 압력으로 대장이 압박을 받아 피가 안 통하게 될 수도 있고 다른 곳에 천공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태경은 신중한 손길로 대장을 만져 봤다. 그리고 암으로부터 먼 곳에 한 곳을 잡고 주삿바늘로 날렵하게 찔렀다.

“……!”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대장을 찌른 순간 어마어마한 악취가 수술방에 가득 차오른다.

‘지독하네…….’

태경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악취도 이런 악취가 없었다. 아무리 맡아도 적응하기 힘든 냄새였다.

수술방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인상이 찡그러진 순간,

“우웩! 웩!”

수술방에서 공기와도 같은 인턴이 처음 접한 악취에 저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레지던트의 날선 눈빛을 본 인턴이 태경을 향해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괜찮아. 처음이면 그럴 수 있어.”

군대 신병보다 더 긴장하는 게 인턴일 것이다. 태경은 자신의 인턴 때를 떠올리며 혼내기보단 격려의 말을 전했다.

수술방에 사람들 모두가 괴롭겠지만 지금 가장 괴로운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환자와 가까이에 있는 태경이었다.

계속되는 악취를 마주하며 태경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같이 빼야겠어.’

이 환자는 절개해서 병소만 따로 빼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예 그냥 암과 변들을 한꺼번에 옆으로 빼내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러한 과정 중에 멸균이 깨질 수 있으므로 장루를 만들어 왼쪽으로 빼낸 이후에 해야 한다.

태경은 대장을 절제하기 위해 주변구조물인 지방과 혈관, 신경을 하나하나 잘라 갔다.

잘린 혈관들 중에 다시 이어 줘야 하는 혈관이 있고, 그렇지 않은 혈관과 신경은 그 끝을 잘 봉합해야 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오직 환자를 집도하는 의사의 몫이다.

이 과정은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하므로 여기서 의사의 실력 차이가 드러난다.

‘내가 다 긴장되네.’

시야 확보를 위해 석션을 하고 있던 인턴이 마른침을 삼키며 속으로 말했다.

태경의 동공이 빠르게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바늘을 쥔 그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오케스트라를 진두지휘하는 지휘자와 같이 태경은 손끝 하나로 환자의 생명을 지휘하고 있었다.

작은 바늘이 좁은 혈관과 신경 사이를 막힘없이 유려하게 움직였다.

‘와!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태경의 손놀림을 처음 접한 인턴이 속으로 감탄사를 남발한 그때였다.

“야, 이 새끼야!”

긴장감이 감돌던 수술방에 갑자기 우레 같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너 뭐야!?”

신경을 잘못 건드릴까 신중에 신중을 기하던 태경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평소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는 수술방에서 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예외였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태경의 손길에 너무 집중한 써드 어시인 인턴이 소장을 당기던 리트렉터(retractor, 장기 등을 잡아당겨서 시약 확보를 해 주는 기구)를 너무 당겼기 때문이다. 기구를 너무 당기면 자칫 소장의 신경이 끊어지게 된다.

“환자 테이블 데스 만들고 싶어?”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넌 수술방에 환자를 살리기 위해 들어온 거야.”

그건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다.

한 사람의 생명이 의사들의 손에 달렸기 때문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인턴들이 실수를 할 경우에는 지금 태경처럼 화를 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태경의 모습의 인턴은 바짝 정신을 차렸다.

“똑바로 정신 차려! 알았어?”

“죄송합니다. 정신 차리겠습니다.”

호된 호통에 인턴은 다시 집중해서 리트렉터를 잡고 수술은 계속 이어졌다.

태경은 직장을 최대한 몸 중심부터 가까운 쪽으로 절개를 한 후에 거즈로 감쌌다. 혹시나 멸균이 깨질까 봐 몇 겹의 거즈로 변의 균이 나오지 않게 꼭꼭 감쌌다.

“들고 있어.”

“네, 선생님.”

인턴에게 직장을 들고 있으라고 한 태경은 콜로스토미(colostomy, 장을 자르는 것)를 위해 2cm 정도의 절개를 한다. 그리고 환자 왼쪽에 절개를 넣은 후에 장을 빼내고 복벽을 봉합한다.

꺼낸 대장을 완전히 아래로 향한 채 혹시나 멸균이 깨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암 덩어리와 변 덩어리들을 동시에 절개를 한다.

그 뒤 배 위를 지긋이 압박하면서 대장 내 감압이 온전히 되도록 한다.

“진짜 고약한 냄새야.”

아까보다 더한 악취가 진동하자 모니터에 집중하던 마취과 의사가 참다못해 말했다.

“다 끝났습니다. 선생님.”

얼굴을 심하게 찡그린 마취과 의사를 향해 한 마디를 던진 태경이 남은 변들을 석션하고 나서 장루를 완벽히 봉합한 뒤 수술을 끝마쳤다.

“수고하셨습니다.”

태경은 어시들에게 인사를 받으며 수술실로 나왔다.

오늘 또 한 명의 환자를 살렸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오늘처럼 자신의 뜻대로 수술이 잘 풀린 날은 기분이 더욱 좋았다.

아무리 힘이 들고 지치더라도 역시 의사가 자신의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로 위로받다니’

우스갯소리 같지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덕에 찹찹했던 마음이 그나마 괜찮아졌다.

“하여간 수술은 실장난이라더니 김 선생 테크닉은 알아줘야 해.”

수술실에서 나온 마취과 이동훈이 엄지를 추켜세운 뒤 손을 씻으며 태경을 칭찬했다.

“저기 그리고 아깐 미안하게 됐어. 알겠지만 내가 좀 둔해.”

이동훈은 수술방에서 했던 자신의 발언이 마음에 걸린 듯 사과를 전했다.

“하여간. 요놈의 주둥이 관리를 잘해야지. 아무튼 정말 미안.”

“무슨 사과를 또 하세요. 정말 괜찮습니다.”

“그래. 뭐 다음에도 기회가 있잖아. 눈 딱 감고 한 번만 더 기다려 보자구.”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요.”

“왜?”

이동훈은 ‘병원 옮기려고?’라는 당연한 뒷말을 생각조차 못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태경은 자타공인 신화대병원 지박령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저 잘렸습니다.”

“어!”

세상에 잘렸다는 말을 저렇게 웃으며 할 말인가. 이동훈은 지뢰를 밟은 것처럼 얼어 버렸다.

“내가 오늘 일진이 안 좋나 계속 말실수를 하네. 김 선생 이거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다음에 위로주나 한잔 사 주세요.”

“그래. 한잔이 뭐야 내가 거하게 쏠게. 김 선생 실력 좋으니까 앞으로 잘 될 거야.”

“네, 감사합니다.”

민망해진 이동훈은 분위기를 바꾸려 화제를 급히 돌렸다.

“그나저나 우리 김 선생은 웬만하면 수술할 때 긴장 안 하지?”

“무슨 소리세요. 저도!”

밝은 표정으로 손을 씻으며 말을 하던 태경은 살짝 띵한 느낌에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

요 며칠 무리를 한 탓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어 가던 순간,

“수우술 하 ㄸ…….”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쓰러졌다. 그것도 아주 맥없이 순식간에 까무러쳤다.

“김 선생? 김 선생!”

당황한 이동훈이 그를 깨우며 소리쳤지만 태경은 꿈쩍하지 않았다.

“정신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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