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Gallbladder cancer
<제네바 선언>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에,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나의 스승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다.
나의 의술을 양심과 품위를 유지하면서 베풀겠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
나의 환자에 관한 모든 비밀을 절대로 지키겠다.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다.
나는 동료를 형제처럼 여기겠다.
나는 종교나 국적이나 인종이나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
나는 생명이 수태된 순간부터 인간의 생명을 최대한 존중하겠다.
어떤 위협이 닥칠지라도 나의 의학 지식을 인륜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가운을 입은 태경이 단상 위에 서서 차분한 목소리로 제네바 선언을 읊었다.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나의 명예를 걸고 위와 같이 서약한다.”
또박또박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제네바 선언을 읽어 내려가던 그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향해 마지막 문장을 힘주어 말했다.
“언젠가 제가 교수가 되면 가장 좋아하는 제네바 선언을 취임식에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김태경 외과 교수 취임식]
태경은 현수막에 적힌 자신의 교수 취임식 문구를 보며 스스로 대견했다.
“오늘 이 자리는 저에게 특별하고 뜻깊은 자리입니다.”
소감을 말하던 그는 힘들었던 지난 시간이 떠올라 잠시 울컥했다. 그토록 바라고 또 바라 왔던 길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도무지 믿겨지질 않았다.
마치 달콤한 술에 취해 꾸는 황홀한 꿈만 같았다. 아니, 이게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기를 빌었다. 그만큼 소중하고 간절하게 염원했기에.
‘침착하자. 침착해…….’
태경은 파르르 떨리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 울컥한 감정을 다스리며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전 앞으로도 생명을 더 없이 소중히 여기며 낮은 자세로 겸손한 교수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모든 객석의 시선이 자신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클라이맥스의 순간,
“김 선생? 김태경!!”
뜬금없이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선생?”
“…….”
애타게 태경의 이름을 부른 이는 마취과 이동훈이었다.
“이 선생님?”
코앞에서 본인의 이름을 부르는 이동훈을 확인한 순간 태경은 자신이 꿈을 꿨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자네, 괜찮아?”
“제가 왜 여기에…….”
주변을 둘러본 태경은 이곳이 이동훈의 사무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야. 일어나지 말고 좀 더 누워 있어.”
그가 몸을 일으켜 앉자 이동훈이 깜짝 놀라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아닙니다.”
“이제 정신이 들어? 김 선생, 자네 쓰러진 건 기억나?”
“아……!”
태경은 이동훈의 말을 듣고서야 수술을 끝내고 손을 씻다 자신이 쓰러졌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김 선생, 괜찮은 거야?”
“네, 괜찮아요. 그보다 김철기 환자는 괜찮죠?”
그는 정신을 차리며 수술한 환자의 상태부터 체크했다.
“하여간 누가 환자 바보 아니랄까 봐. 걱정 마. 잘 깨어났어.”
“다행이네요.”
“김 선생이 수술을 아주 잘해서 그렇지. 수고했어.”
“저만 수고했나요. 선생님도 수고하셨죠.”
“저기…… 있잖아.”
말문을 열다 만 이동훈이 태경을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김 선생, 혹시 그동안 어디 불편한 곳 없었어?”
“네. 딱히 불편한 곳은 없었는데요. 요즘 제대로 쉬질 못해서 잠이 부족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김 선생이 쓰러지고 나서 몇 가지 검사를 좀 했어.”
“검사요?”
‘검사’란 말에 태경은 아무렇지 않은 듯 되물었다.
“그래. 검사를 했는데 CT를 확인해 보니 담낭에 뭔가 있어. 김 선생 평소 소화불량이 있지 않았어?”
“제가 신경성 위염이 있어서 원래 소화불량이 좀 있거든요.”
“진료 받아 본 적 없었어?”
“예전에요. 그냥 신경 쓰는 일이 있으면 명치 쪽에 통증이 있긴 했는데……. 이 선생님, 저 돌이 있나요?”
태경은 당연한 듯 이동훈에게 물었다. 담낭(쓸개)은 간 아래쪽에 붙어 있는 작은 주머니로 사람의 몸에서 소화액을 저장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보통 이곳에 담석이라는 돌이 생기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아직 젊은 태경은 자신의 나이를 고려해 담석증이라고 생각했다.
“김 선생.”
이동훈은 미간을 살짝 좁히며 두 손을 맞잡은 채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이 선생님?”
궁금증이 차오른 태경의 질문이 침묵을 갈랐다. 결국 이동훈은 마른침을 삼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김 선생 담낭 안에 있는 게 벽을 침범했는데 그 경계가 지저분해.”
벽, 침범, 경계가 지저분하다는 문장이 태경의 귓가를 넘어 고막에 때려 박혔다.
그 순간 마치 커다란 해머가 그의 머리를 가격하는 것만 같았다.
“설마…….”
일반 사람이 저 문장을 들었다면 무슨 문제인지 정확하게 물었겠지만, 의사인 태경은 더 들을 것도 없이 확신했다.
“골블래더 캔서(Gallbladder cancer, 담낭암)야.”
“……!”
안타까운 표정과 무거운 말투로 병명을 밝히는 이동훈의 말대로 태경은 담낭암이었다.
암 중에서 가장 예후가 안 좋기로 소문난 하나가 바로 담낭암이었다.
소리 없는 총성이라고도 했으며 이미 병명을 자각할 즈음에는 그 시기가 늦었다고 할 만큼 무서운 병이었다.
“저기, 김 선생…….”
이동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지만 태경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담낭암이라고? 내가?’
항상 환자에게 병명을 알려 주던 자신이 환자의 입장이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가장 극한의 상황에 놓인 환자로서 말이다.
“이 선생님.”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을까? 감정 없는 목소리가 이동훈을 불렀다.
“제 CT 좀 볼 수 있을까요?”
“내가 영상의학과에 확인도 했어. 김 선생 충격이 크겠지만 남은 시간은 가족과 함께해.”
아끼는 후배 의사에게 닥친 이 상황이 이동훈조차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하!”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피해 사무실을 나섰다.
* * *
“그것도 담낭암이라며.”
“김 선생님 어떡해요.”
“힘들대요?”
“얼마 안 남았대.”
“어쩜 좋아. 내 친구가 오빠가 김 선생님 의대 동긴데 돈이 없어서 진짜 힘들게 공부했다고 했거든요.”
“실력이며 인성이며 뭐 하나 빠질 거 없는 분이잖아요.”
“막말로 교수 자리 하나 바라보고 개같이 일만 했는데 암이라니……. 어휴! 불쌍해.”
“나도 간호사 생활 15년 차에 의사들 아픈 것도 꽤 봤는데 이렇게 안타까운 경우는 또 처음이네.”
커다란 종합병원에서 태경의 소식은 빛보다 빠르게 퍼져 직원들 입에 오르내렸다.
어느새 그는 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 * *
태경은 천근보다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일으켜 책상으로 향했다. 고작 몇 발자국이면 끝날 거리가 마치 천 리 길같이 느껴졌다.
딸각- 탁-탁- 딸각-
적막한 고요함이 가득한 사무실 안에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만이 크게 울렸다.
“……!”
그리고 모니터 속 CT 결과를 확인한 눈동자에 ‘절망’이라는 단어가 빠르게 번졌다.
수전증 환자보다 더하게 떨리는 손길이 태경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마치 영화 속에 죽음을 앞둔 주인공처럼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평생 식당일을 해 온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오직 의사가 되는 게 목표이자 꿈이었다.
그것도 최고의 외과의가 되어 교수가 되는 목표를.
평생 식당일을 하며 뒷바라지한 어머니와 자신의 꿈을 위해 태경은 악착같이 공부에 매진했다.
가난한 살림에 마음 놓고 학원을 다닐 수도 없었다. 대신 학원가 쓰레기통을 뒤져 문제집을 모은 적이 많았다.
집안은 가난했지만 머리는 타고났다. 그래서 출발은 빨랐다. 검정고시 후 17살에 의대에 합격한 것이다.
대학 시절 음주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로 십자 인대가 파열됐었다. 밀려오는 아픔보다 군대를 면제 받아 의사로서 좀 더 기회가 많겠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다른 과보다 의사 집안 출신과 금수저가 많은 의대에서 태경은 스스로 외톨이를 자처했다.
하필이면 태경이 입학하던 해 대학에서 대규모 행정 비리가 터져 그해만 장학금 제도가 없었다.
그 때문에 학자금 대출은 억대로 쌓여 갔다. 그 때문에 동기들이 흔하게 가는 술집조차 그에겐 사치였다.
대단한 배경도 물려받을 재산도 없었기에 믿을 구석이라곤 자기 자신밖에 없었다. 미친 듯이 공부하는 것은 물론 최고의 외과의가 되기 위해 손기술에 전념했다.
동기들이 시험공부로 수술방에 들어가는 걸 꺼려할 때도 자처해서 들어갔다.
그뿐 아니라 생활비를 아껴 가며 구입한 고기로 수처(Suture, 봉합) 연습에 미친 듯이 매진했다. 그 결과 태경은 양손을 자유자재로 완벽하게 구사하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시간이 남아도 두 번은 안 한다는 전문의 보드(자격증)를 세 개나 땄다.
의사로서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의대 출신인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써전(Surgeon)들이 모인 신화대학병원에 온 건 노력으로 완성된 실력 덕분이었다.
같은 대학 출신이 아니면 문을 넘기 힘들다는 신화대학병원이었다. 실력과 패기 하나 믿고 문을 두드렸다.
‘김태경이라고? 자네 손이 아주 야무지군.’
이미 더블 보드를 따고 레지던트 면접을 보러 온 그를 이 교수가 채용했다.
‘내가 도와줄 테니까 열심히 해 봐.’
‘감사합니다. 죽을힘을 다하겠습니다.’
탁월한 수술 감각을 알아본 이 교수는 태경에게 교수 자리를 제안하며 끌어 주겠다고 했었다.
다른 과에서도 손을 뻗었지만 외과의 이 교수를 믿고 따라갔다. 기회를 준 은혜도 있었고, 외과의로 정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표를 위해 노력했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병원의 남은 동기들은 하나둘 조교수, 부교수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태경은 여전히 펠로우였다.
하지만 아무 연고 없는 태경은 번번이 조교수 자리에서 밀려났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인맥과 돈이 우선이었다.
‘김 선생, 병원에서 그만 나가 줘야겠어. 원장님 뜻이니 어쩌겠나.’
결국 마지막 교수 채용에도 미끄러지고 병원에서 잘렸다.
안 그래도 서러운 마음을 일부러 꾹 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암이라니……. 그것도 손을 쓸 수조차 없는 담낭암이라니.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이 믿을 수 없었다. 온 신경에 바늘이 꽂히는 기분과 함께 몸이 끝없는 절벽으로 푹 꺼지는 느낌에 그저 멍할 뿐이었다.
“이럴 순 없잖아…….”
허망함과 공허함이 번진 얼굴 위로 무거운 입술이 힘없이 벌어졌다.
태경은 자신에게 닥친 이 순간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돈이 없는 어머니를 원망한 적도 없었고, 사고를 치는 형을 증오한 적도 없었다.
“왜 하필 난데.”
남을 미워한 적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병신처럼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았다. 돈도 명예도 실력도 스스로 만들면 된다 생각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암으로 돌아와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전개였다.
“말도 안 돼……. 말이 안 돼. 하!”
평소와 다름없이 최선을 다해 환자의 생명을 살린 오늘, 태경은 죽음을 선고받았다.
그것도 살 가망이 없는 처참한 죽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