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죽음의 5단계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살다 보면 간혹 두통이 오거나 안 하던 기침을 할 때가 있다.
실상은 가벼운 두통과 기침일 뿐인데 혹시 안 좋은 병에 걸린 건 아닌가 하며 두려워하게 된다.
이렇게 가벼운 증상에도 걱정이 밀려오는데 하물며 죽음을 선고 받았을 때에 느끼는 기분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인간이 죽음을 선고받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5단계로 설명했다.
첫째: 부정(Denial)
둘째: 분노(Anger)
셋째: 협상(Bargaining)
넷째: 우울(Depression)
다섯째: 수용(Acceptance)이다.
갑작스럽게 담낭암을 선고받은 태경은 첫째 단계인 부정의 단계를 지나고 있었다.
“나 방금 들었는데 김태경 선생님 암이라면서?”
“야! 들린다. 조용해! 여기서 꼼짝도 안 하고 계신대.”
인턴 두 명이 이동훈 사무실 앞을 지나며 입을 닫았다.
본인의 눈으로 결과를 확인한 태경은 그 자리에서 두 시간 가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골블래더 캔서야.’
몸 안에 존재하는 모든 피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그와 함께 오직 눈에 존재하는 시신경만이 모니터를 직면할 뿐이었다.
‘아니야. 잘못됐어. 이럴 리가 없잖아.’
그리고 계속해서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검사 결과를 부정하고 또 부정하던 태경은 반쯤 얼이 빠진 표정으로 병원을 나왔다.
* * *
그는 병원 근처 월세가 저렴한 주택가 옥탑방에 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딩동~♪
천근같이 느껴지는 다리를 겨우겨우 떼어 내며 계단을 오르던 중 그의 재킷 주머니에서 알람 소리가 울렸다.
사실 알람 소리는 병원에서부터 계속해서 울렸지만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기에 이제야 그 소리가 태경의 귓가에 들린 것이다.
-이거 참.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할지. 김 선생, 그래도 희망을 끈을 놓지 마.
금수저 출신인 동기의 카톡이었다. 은연중에 태경을 시기하던 그는 처음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그것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미친 새끼…….”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당낭암 말기가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는 의사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니 참 정성스럽고 가증스러운 개소리였다.
-김 선생 나야.
이동훈 선생의 메시지였다.
-술 마시고 싶거나 대화 상대가 필요하면 새벽이든 언제든지 불러. 알았지?
신화대학병원 내에서 태경의 성장을 응원하던 그는 메시지에서조차 걱정하는 게 느껴졌다.
온 병원에 소문이 퍼진 터라 태경을 알고 있는 병원 직원들에게서 위로 메시지가 빗발치고 있었다.
Rrrrrrrrr
카톡-카톡- 카톡-
안 그래도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데 계속해서 울리는 진동과 알림 소리에 짜증난 태경이 휴대폰을 끄려던 그때였다.
-아들, 엄마야. 오늘도 수술하느라 애썼겠다.
어머니의 메시지가 휴대폰을 끄려던 그의 손가락을 멈췄다.
-어디 아픈 곳은 없지? 엄마는 늘 네가 자랑스러워. 환자 고치는 것도 좋지만 네 몸도 챙기면서 일해. 건강이 최고야. 아들, 얼굴 못 본 지 너무 오래됐네. 총각김치 맛있게 담갔어. 쉴 때 꼭 들러. 엄마가 집밥 맛있게 해 줄게.
‘3개월? 아니 4개월인가?’
그러고 보니 어머니를 본지 너무 오래됐다.
좁은 계단에 우두커니 서서 메시지를 읽던 태경은 발길을 돌려 내려갔다.
* * *
태경은 양평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 다세대 주택 앞에 도착했다.
“안 돼! 내가 돈이 어디 있어?”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그는 문 밖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멈춰 섰다.
“네 엄마를 갖다 팔아.”
“아, 엄마,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만 믿어 줘.”
“태훈이 너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야?”
“이번에는 진짜라고. 그동안 내가 착실하게 택배일 하면서 잘 지낸 거 엄마도 잘 알잖아. 엄마가 태경이한테 좀 말해 줘.”
“너 사업한다면서 그 돈으로 또 도박하려고?”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게 벌써 네 번이야. 네 번!”
이 여사는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태훈 때문에 속이 상했다.
“아니란 사람이 차 안에 도박 책은 왜 갖고 다녀! 어? 너 동생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아니, 엄마는 왜 남의 차를 뒤지고…….”
띠리릭-
“저 왔어요.”
조용히 현관 밖에 서 있던 태경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어머, 태경아? 너 이 시간에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이 여사는 태경을 보자마자 화색을 띠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온 지도 너무 오래됐고, 내일 오픈데 별일 없어서 왔어요.”
“저녁은 밥 먹었어? 얼른 차려 줄게, 기다려.”
“국이랑 밥만 데워 주세요. 형도 왔네?”
사온 과일을 식탁에 올려 둔 태경은 태훈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 내일 쉬는 날이라서……. 바쁘지?”
“뭐, 그렇지. 형은? 택배일 힘들다던데 괜찮아?”
“힘들지.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에요. 그래도 뭐, 아직은 할 만해.”
“다행이네.”
보글보글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된장찌개와 잘 익은 총각김치, 빨간 양념이 돋보이는 무생채와 고추장 불고기까지. 손맛 좋은 이 여사의 정성 가득한 한 상이 차려졌다.
“찬이 없다. 아들.”
“이 정도면 진수성찬인데요. 형은 안 먹어?”
“난 아까 엄마랑 먹었어. 많이 먹어라.”
“잘 먹겠습니다.”
손맛 좋은 이 여사의 음식조차 태경의 목으로 넘어가는 건 모래알 같았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어머니의 밥을 간신히 먹고 난 뒤 세 가족이 오랜만에 거실에 둘러앉았다.
“태경아?”
맥주를 마시던 태훈이 과일 깎는 이 여사 옆에 앉아 있는 태경에게 말했다.
“어, 형 안 돼.”
“뭐?”
“아까 집에 들어오다 문 앞에서 들었어. 형 나한테 돈 빌려 달라고 말하려는 거잖아.”
“태경아, 네가 오해를 한 거 같은데 형 도박하려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이번만…….”
“그만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듣던 태경은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냈다.
“형도 사람이면 정신 좀 차려. 나나 엄마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
싫은 소리는 했었지만 이 정도로 화를 낸 적이 없던 동생이기에 태훈은 적잖이 당황했다.
“형이 지금까지 한 게 뭔데?”
“야, 너 말이 좀 심하다. 너 좋은 병원에서 일한다며? 돈 많이 벌면서 형 돈 좀 빌려주는 게 아깝냐?”
“어. 아까워. 차라리 지나가던 개를 주겠어.”
“뭐, 이 새끼야?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내 말 씹냐?”
답답한 태경은 태훈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어릴 때부터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이 가득했던 형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삐뚤어진 태훈은 친구를 잘못 사귀어 도박에 빠지고 말았다. 도박에 빠지면 답이 없다는 말이 맞았다.
‘태경아, 죽을죄를 졌어. 형이 잘못했어.’
치료받고 교육을 받아도 그때뿐이었다. 도박에 눈이 돌아간 태훈의 빚은 10억이 넘었고, 아버지의 빚을 혼자 갚았던 어머니에게는 차마 사실대로 액수를 말할 수 없었다.
‘제발! 돈 안 갚으면 내 장기 떼어 간댔어. 나 좀 살려 줘.’
‘당신이 김태훈이 동생이라며? 내 말 잘 들어.’
무서운 사채업자들이 찾아오기도 일쑤였다.
‘이 새끼 빚 안 갚으면 이 새끼는 물론이고 너랑 네 엄마까지 죽일 거야. 네가 책임지고 다 갚아.’
가족을 두고 하는 협박 앞에 빚은 고스란히 태경의 몫이 됐다.
사채였기 때문에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었고 하루만 지나도 사채업자들이 집을 찾아와 위협하기 일쑤였다.
그가 월세를 살고 신용불량자를 오르내리며 병원을 개원할 수 없는 이유였다.
다행히 요 몇 년간은 조용했고, 이따금씩 지금처럼 돈을 달라는 말만 했다.
태훈이 이런 것도 하루 이틀 아니고 적당히 달래다 무시하면 편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 * *
“어떻게 생각 좀 해 봤어?”
태훈은 집에 들어온 태경에게 또다시 돈 애기를 꺼냈다.
“태경아 너 형 못 믿어? 이번엔 확실하다니까.”
“형, 사람이면 좀 사람답게 살아. 양심 좀 있으란 말이야!”
죽음을 선고받은 태경은 지금 정신 못 차리는 태훈을 상대로 2단계인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뭐야! 이 자식아! 너 그렇게 잘났어? 야, 그래. 넌 좋겠다. 앞으로 돈도 많이 벌고 잘 먹고 잘살아서 하고 싶은 것도…….”
“잘산다고? 내가? 나야말로 살고 싶다고! 형, 나 좀 살려 줘. 제발 나 좀 살려 달라고!!”
태훈을 붙잡고 소리를 지르던 태경은 급기야 눈물을 보이며 호소했다.
‘살고 싶습니다. 제발 저 좀 살려 주세요.’
차마 자신의 병명을 말할 수 없던 태경은 속으로 신께 빌며 3단계인 협상의 상태로 접어들었다.
“태훈아, 태경아 너희 둘다 그만해.”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이 여사는 태경이 병원에서 힘든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형제의 싸움을 중재했다.
탁-
태훈 역시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담배를 물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태경아, 너 병원에서 무슨 일 있었니?”
“엄……마. 흐흑! 엄마!!”
4단계인 우울의 도달한 태경은 이 여사를 붙잡고 닭똥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또 흘렸다.
‘그래, 태경아 받아들이자.’
결국 이 여사를 붙잡고 한참을 울던 태경을 그날 저녁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불 꺼진 방 안에서 마지막 5단계인 수용을 하게 됐다.
* * *
양평에서 돌아온 태경은 일주일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하아!”
오늘이 며칠인지 밤인지 낮인지 분간도 없이 현실을 잊기 위해 그저 꼬박 잠만 잤다.
먹는 거라곤 물과 우유 몇 잔이 전부였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무기력하고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켜 화장실을 나오는데 그간 환자들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환자분 포기하지 마세요.’
‘긍정적인 생각을 자주 하세요.’
‘끝까지 희망을 놓지 마세요.’
정말 개 같은 말이다.
의사의 입장으로 했던 저 말이 얼마나 형식적인 위로인지 죽음을 앞에 두고야 깨달았다.
죽음과 고통에 마주한 마음은 하루에도 수백 번이나 만신창이가 되어, 피폐해진 정신을 갉아먹는다.
‘선생님, 힘들어요. 너무 아파요.’
‘알고 있습니다. 환자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간 환자가 느끼던 고통은 이론과는 천지 차이라는 걸 환자의 입장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얼마나 남았을까?”
날짜 지난 우유를 대충 넘기며 앞으로의 남은 시간을 따져 보던 그때였다.
“한 달? 아니 그보다 짧겠지……!”
현관 너머로 거친 욕설과 함께 남자들의 목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하! 시발.”
“다 왔습니다. 형님.”
“우라질 동네 하여간 계단도 x나게 많고 집은 죄다 언덕에 있냐. 죽겠다.”
“원래 이 동네가 계단이 많잖습니까. 그나저나 집에 없으면 어떡하죠?”
“그럴 리가. 넌 아직도 김태경이를 모르겠냐?”
험한 인상과 기분 나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둘은 익숙한 듯 태경에 대해 떠들었다.
“김태경이가 환자밖에 모르는 의사 놈이야. 쉬는 날에도 병원에서 연락 올까 봐 집에만 있는 양반이라고.”
“그러고 보면 이 양반도 참 인생을 재미없게 살아요. 아픈 사람 보는 게 뭐가 그렇게 좋다고.”
“헛소리 그만하고 문이나 두드려 봐.”
“예. 계십니까?”
덩치 큰 남자가 명령하자 동행한 남자가 현관을 두드렸다.
“김태경 씨, 안에 계십니까?”
“어이 김 선생? 나 왔어.”
낡은 현관 앞에서 남자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경의 얼굴에 불편함이 서렸다.
“장득칠이가 왔다고!”
철컥!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밝힘과 동시에 현관문이 빠르게 열렸다.
“오! 역시 집에 계셨네.”
“당신들이 여긴 왜 왔어?”
태경은 차가운 시선과 날선 말투로 그들에게 물었다.
“왜 왔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