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5화 (5/472)

5화. 교통사고

태경이 절대 친절할 수 없는 악랄한 깡패 새끼들.

“잘 지냈습니까? 김태경 선생님.”

현관을 두드리던 두 남자는 태훈에게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들이었다.

“당신들과 내가 반갑게 인사할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우리 닥터 김 얼굴이 많이 상했네. 요즘 병원 일이 힘든가 봐.”

태경은 순간 저들이 돈 때문에 찾아왔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원금과 이자는 매달 말에 자동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저번 달은 확실히 나갔고 이번 달은 아직 날짜가 남았다.

찾아올 이유가 없었는데 목적 없이 올 작자들이 아니었다.

“우리가 왜 갑자기 찾아왔는지 되게 궁금할 거야. 그치 김 선생?”

“왜 왔냐고?”

태경이 다시 한번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아니, 김 선생? 왜 이렇게 까칠해졌어. 근데 낯빛이 너무 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왜 온 건지나 말하지?”

“중요하게 할 말이 있는데 전화를 지랄 맞게 안 받으니까 별수 있나? 찾아오는 수밖에.”

시한부인 태경은 잔뜩 예민한 상태였다. 순간 짜증이 솟구친 그는 장득칠을 날카롭게 쳐다봤다.

“말할 테니까 그만 째려봐. 요새 형이랑은 연락하고 지내나?”

장득칠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왜 갑자기 닥터 김을 찾아왔겠어. 응?”

“설마 형이…….”

“빙고! 그 설마가 맞아. 김태훈이가 돈을 빌렸어. 그러고 보면 형이 아니라 원수야 그치?”

순간 태경의 표정이 굳어 버렸다.

태훈이 돈을 빌렸다는 건 도박에 다시 손을 댔다는 소리였다.

‘그럴 리가…….’

뭔가 잘못된 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도박장 근처에 얼씬도 안 했고, 새로 시작한 택배일도 착실히 하고 있었다.

이제야 형도 정신이란 걸 차렸구나 싶었다.

그런데 또 도박에 손을 대다니 이럴 순 없었다.

“확실해? 잘못 안 거 아니야?”

“김 선생 내가 한마디만 할게. 도박에 미친 인간들이 왜 무서운 줄 알아? 나중에는 집문서랑 자식 대학 보낼 적금 통장까지 털어서 도박을 한다니까.”

“맞습니다. 마누라까지 담보 잡는 진짜 미친놈도 있었잖아요.”

“도박이 이렇게 무섭다니까.”

장득칠의 말을 듣고 있던 태경은 별안간 어젯밤 태훈이 보낸 메시지가 확 떠올랐다.

-태경아 미안하다. 형이 다 잘못했다. 앞으로 형 노릇도 하고 효도도 하고 잘할게. 동생아 미안하다.

주어가 없는 절절한 사과에 그저 일주일 전 집에서 벌인 말다툼에 대한 일이라 생각했다.

결국 태훈이 보낸 메시지는 돈을 빌린 것에 대한 사과였던 것이다.

“내가 출장 간 사이에 김태훈이가 와서 신입한테 돈을 빌렸더라고.”

“얼만데?”

“얼마 안 빌렸어. 오천.”

오천만 원이 얼마 아니라니 양아치도 저런 양아치 놈들이 없었다.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형이잖아. 형을 죽일 순 없으니 어쩌겠어. 안 그래?”

“…….”

“우리 닥터 김이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죽여.”

“뭐……!”

뜻밖의 소리에 장득칠과 부하는 말문이 막혔다.

“날 죽이라고.”

“김 선생 오늘 밥을 잘못 먹었나 왜 이러실까.”

“장득칠, 당신이 입버릇처럼 그랬지? 돈 안 갚으면 죽여서 장기 팔아서라도 받아 낼 거라고.”

태경은 진심이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남겨진 어머니가 걱정이었다.

저 나쁜 놈들은 분명 장례식장에 찾아가 어머니에게 태훈의 빚을 갚으라고 종용할 게 뻔했다. 평생 힘들게 산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장기 팔라고 한 거야?”

“그래. 내 장기값 얼마나 쳐줄 건데? 얼마나 줄 거냐고!”

태경이 악에 바친 말투로 진지하게 말하자 장득칠이 짜증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맞아. 난 돈 갚을 능력 없는 놈들은 장기를 팔아서라도 받아 낸다는 마인드야. 근데 수지타산이 안 맞는데 왜 장기를 팔겠어.”

“뭐라고?”

“막말로 장기는 한 번 팔면 끝이지만 김 선생은 매달 계속 돈을 갚잖아. 벌써 계산이 나오지 않아?”

그랬다. 돈 장사를 하며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난 장득칠은 의사 수입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돈을 잘 갚는 태경에게 손댈 생각은 없었다.

“하!”

절망적인 마음에 힘이 풀린 태경은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 김 선생이 조금만 더 고생하자. 다음 달부터 원금이자 올라갈 거야.”

장득칠은 주저앉은 태경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마지막 말을 남긴 뒤 일행과 옥탑을 내려갔다.

“아! 그리고 잠수 탈 생각은 하지 말고. 어머니 집이 양평이지? 김 선생님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 * *

터벅터벅-

태경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느릿한 발걸음으로 동네 편의점으로 향했다. 소주를 사기 위함이었다.

“어서 오세요.”

“소주 세 병만 주세요.”

“뒤편 냉장고에 있어요.”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태경은 술을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픈 몸이고 뭐고 도저히 맨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

술에 흠뻑 취해 잠시나마 이 현실을 잊고 싶었다.

“뭔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 낮부터 술을 사 가시게.”

“얼마죠?”

주인 여자가 수다스럽게 떠들었지만 태경은 대꾸하지 않았다.

“4,200원이요. 아니, 근데 안주는 안 사 가시게?”

“네, 괜찮습니다.”

“깡소주 먹으면 속 버려. 이거 유통기한 오늘까지니까 같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태경은 주인 여자가 넣어 준 작은 김치와 소주가 담긴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생활비라도 마련해 드려야 하는데.’

불과 며칠 전까지만 살아 있던 태경의 눈빛은 동태 눈깔처럼 힘이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바늘구멍조차 보이질 않았다.

‘이 선생님한테 사정해서 돈을 좀……!’

그렇게 축 처진 눈빛으로 땅만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때였다.

“……저기.”

슬리퍼 끝에 무언가 걸린 느낌과 함께 어디선가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땅바닥에 널브러진 장바구니를 본 태경이 고개를 들었다.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웬 임산부가 바닥에 주저앉아 손짓을 하고 있었다.

“임산부!”

태경은 손에 들고 있던 소주 봉지를 바닥에 팽개치고 본능적으로 임산부에게 향했다.

“괜찮으세요?”

불과 방금 전까지 동태 눈깔로 체념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인 의사의 모습이었다.

“죄송하지만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도와줄게요. 어디가 불편한데요.”

“집에 가던 중에 갑자기 핑하고 돌더니 너무 어지러워서요.”

“지금은 괜찮은가요?”

“네, 지금은 좀 괜찮아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내가 일으켜 줄 테니까 천천히 일어나 봐요.”

“부탁 좀 드릴게요.”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힘겨워하던 임산부는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경은 임산부를 부축하며 길가 근처에 있는 작은 평상에 그녀를 앉혔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걸어요.”

“아고 감사합니다. 제가 평소에도 자주 어지러운데 오늘은 괜찮아서 과일을 사러 나왔거든요.”

“평소에도 그랬다면 임신 빈혈이 있을 수 있으니 산부인과 진료를 꼭 받아 보세요.”

“맞아요. 저 임신 빈혈이 있어요. 맞다! 내 정신 좀 봐.”

임산부는 별안간 뭔가가 생각난 듯 미안한 표정을 내비치며 말을 이었다.

“저기 정말 죄송한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제가 연년생 엄만데요 우리 첫째 좀 데려다 주시면 안 될까요?”

임산부의 손끝을 따라간 태경의 시선 끝에 낡은 유모차가 보였다.

“지금 움직이면 또 어지러울 것 같아서요. 죄송해요.”

“앉아 있어요. 도와줄게요.”

임산부가 빈혈로 주저앉을 때 유모차가 경사진 길 때문에 아래로 굴러간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태경은 흐트러진 장바구니를 임산부에게 건넨 뒤 유모차를 가지러 내려갔다.

낡은 유모차 안에는 어린아이가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얼굴을 마주한 태경은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녀석 이 상황에 잠도 잘 자네. 엄마한테 데려다 줄게.”

태경은 유모차 손잡이를 잡고 힘을 주었다. 그런데 유모차가 움직이질 않았다.

“왜 이러지?”

몇 번을 더 힘을 줘도 꿈쩍도 하지 않자 허리를 숙여 바퀴 부분을 확인했다.

“이게 문제구나.”

자세히 보니 깨진 도로 사이에서 튀어나온 작은 쇳조각이 유모차 바퀴를 관통해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유모차가 낡아서 바퀴가 뻣뻣해서 잘 안 굴러갈 거예요. 괜찮으세요?”

“예. 도로 사이에 바퀴가 끼었네요. 일단 아기 먼저 옮겨 드릴까요?”

“정말 죄송한데 우리 애가 아토피가 심해서요. 유모차로 옮겨 주세요.”

아기 얼굴에 울긋불긋 나 있는 피부 발진이 임산부의 말을 대변했다.

“왜 이렇게 안 빠져.”

태경은 바퀴에 튀어나온 쇳조각을 손으로 잡아당겼다. 보기에는 쉽게 빠질 것 같았는데 유모차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하여간 이놈의 동네. 길이라도 좀 고쳐 주지.”

땅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쇳조각을 손으로 당기고 발로 차며 고군분투하던 그때였다.

빵- 빵-

“이봐요!!”

빵-

“거기 비키라고요!”

엄청난 경적 소리와 함께 화물 트럭이 태경과 유모차를 향해 내리 달려오고 있었다.

“차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어! 얼른 비켜요!”

“어머!! 아가야!”

“빨리 비켜!”

“아저씨, 우리 아기 좀 살려 주세요!”

트럭 운전수는 차량 브레이크가 이상하다며 차창을 열고 고함을 질렀고, 임산부는 아연실색하며 일어서다 빈혈로 다시 주저앉아 소리쳤다.

“우리 애 살려 주세요!”

“으아앙!”

“하! 젠장.”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잠에서 깬 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태경은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쇳조각을 양손으로 쥐며 몸에 남은 모든 기력을 쥐어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빠져라.”

쇳조각을 붙잡은 손에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마음이 다급한 태경은 혼잣말을 하며 빌기 시작했다.

“아기라도…….”

어차피 죽음을 눈앞에 둔 목숨이었지만 막상 돌진하는 차량을 마주하니 무서웠다. 그래도 아기를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제발! 아기만이라도 살려 주세요.”

그 순간 죽을힘을 다해 당기던 쇳조각이 빠지고 태경은 빛의 속도로 일어나 유모차를 길가로 밀었다.

그리고 유모차가 도로를 벗어나자마자 태경은 화물 트럭과 정면충돌했다.

쾅-

큰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태경을 들이받은 트럭은 길가 빈 상가와 충돌한 후 간신히 차를 멈출 수 있었다.

“내……내가 사, 사람을 치다니…….”

차에서 내린 그는 처참한 태경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바닥에 주저앉았고, 사고 소리를 들은 주민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여기 사고 났어요! 트럭이 저 사람을 치었나 봐요.”

“저러다 사람 죽겠어요. 119에 신고부터 해요.”

“아오! 저 사람 어떡해.”

태경의 주위로 모인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며 119에 신고를 했다.

“119죠? 여기 사람이 차에 치었어요. 사람이 죽어 간다고요. 빨리 좀 와 주세요.”

“아가야!”

아기를 얼싸안은 임산부의 모습이 태경의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아기를 살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기 살았구나. 으!’

부러진 뼈와 세포 사이로 상상을 초월한 통증과 고통이 밀려왔다. 곧이어 머리에서 흘러내린 빨간 피가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끝이구나. 정말 이대로 끝인 건가……. 우리 이 여사 많이 놀라겠네.’

태경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 곧 죽는다는 것을.

“컥. 커헉!”

울컥 핏물이 입에서 넘쳐 나오고 점점 초점이 흐릿해져 갔다.

“이봐요! 정신 잃지 마세요.”

“정신 차려야 해요.”

“곧 119 올 겁니다.”

사람들이 목청을 높여 소리쳤지만 태경의 귓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직 의사로서 꿈도 다 못 펼쳤는데.’

처음으로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왜 그렇게 ‘교수’ 자리에 등신같이 집착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죽는 건가.’

뚝뚝 흘러내리는 핏물과 흐릿해지는 초점 사이로 익숙한 물건이 태경의 시선에 닿았다.

‘저……저건.’

바닥에 맞닿은 시선이 힘겹게 집 열쇠고리에 닿았다. 조금 전 트럭과 충돌한 후 주머니에 있던 것이 밖으로 쏟아진 것이었다.

열쇠고리에 달려 있는 빛바랜 십자가 조각이 태경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의대 입학 때 진정으로 환자를 위하는 의사가 되라며 이 여사가 직접 만들어 준 조각이었다.

‘우리 이 여사 나 때문에 새벽에도 기도하러 나갔는데…….’

“컥!”

연달아 핏물이 입에서 쏟아져 내리고 눈꺼풀도 점점 내려왔지만 태경의 시선은 십자가를 향했다.

‘위에 계신 분……정말……정말 계신지 모르겠지만 저 좀 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죽고 싶지 않았다. 이미 죽어 가는 이 순간에조차 죽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미친 듯이 살고 싶었다.

‘교수 그게 뭐라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의사로서 출발은 순수했다. 돈도 없는 놈이 왜 성형외과나 피부과를 선택하지 않았냐고 수근 거릴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외과 의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인 시간도 없고 쉴 새 없이 터지는 응급콜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돈보다는 사람의 목숨이 중요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살려만 주신다면……건강했던 몸으로 살려만 주신다면…….’

태경은 빌고 또 빌었다. 건강한 몸으로 다시 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욕심도 내지 않겠다고.

‘환자를 위해서 살겠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의학적 지식은 오롯이 아픈 이들을 위해 살겠노라고. 그러니 부디 날 살려 달라고. 간절히 죽어 가며 빌었다.

‘약속……할게요. 그러니 제발…….’

만약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교수도 그 무엇도 아닌 그땐 사람을 살리는 진짜 의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던 태경은 서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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