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아나필락시스
아득해지는 의식과 함께 감겼던 태경의 눈꺼풀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맞다. 나 죽었지.’
그는 눈을 재차 깜빡였다.
‘여긴 천국인가…….’
태경은 순간 자신이 어린 아기를 구했기 때문에 천국에 왔나 생각했다. 그리고 점점 또렷해지는 시야로 주변을 살폈다.
‘잠깐!?’
뭔가 좀 이상했다. 천국이라기에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어라! 집이잖아.”
그랬다. 태경은 옥탑 자신의 방에서 눈을 뜬 것이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암을 선고받은 뒤 푸석하고 무기력해진 몸과 사고로 온몸의 뼈가 부서졌던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멀쩡하잖아.”
컨디션도 좋을 뿐더러 거울 앞에는 누가 봐도 혈색 좋은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어? 이건!”
몸을 살펴보던 중 손에 작은 흉터를 발견했다. 이 흉터는 아까 아기를 구할 때 쇳조각에 찔린 그 자리였다. 더군다나 사고로 튕겨 나갔던 열쇠고리도 주머니 안에 그대로였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어이, 김 선생? 안에 있지?”
생생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닥터 김, 나야 장득칠이. 좀 나와 봐.”
철컥!
태경은 어안이 벙벙한 채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어디선가 강렬하고 불쾌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후! 암모니아 냄새.’
곧이어 그 냄새가 장득칠의 일행에게서 나는 냄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야! 우리 김태경 선생…… 아니지. 김태경 선생님 오랜만이야. 잘 지내셨나?”
오랜만이라니. 조금 전 사고가 나기 전에 집으로 찾아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우리 김 선생님 안 본 사이에 신수가 훤해졌네. 그치 덕수야? 이 새끼 또 넋 놓고 있네.”
“죄송합니다, 형님. 오늘 몸이 좀 안 좋네요. 근데 의사 선생님 얼굴이 진짜 좋아지셨습니다.”
장득칠과 함께 온 부하 김덕수가 태경을 빤히 쳐다보며 답했다.
“내 상판대기가 반갑지 않은 거 나도 아는데 그래도 사람을 봤는데 인사는 좀 하자고.”
“여긴 어쩐 일로……!”
태경은 말을 하다말고 급히 입을 닫았다.
‘혹시!’
태경은 순간 사고 나기 전과 비슷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설마하며 장득칠에서 물었다.
“혹시 빚 때문에 온 겁니까?”
“어떻게 알았대?”
“형이 도박에 미쳐서 돈을 또 빌렸으니 그 돈도 갚으라는 말 하려고?”
“뭐래. 아닌데? 뭔 놈의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확신에 찬 듯 언성을 높인 것과 달리 장득칠은 아니라고 답했다. 태경은 다시 한번 되물었다.
“우리 형이 돈을 빌린 게 아니라고요?”
“아, 글쎄. 아니라니까.”
“아까 두 사람 다 우리 집에 오지 않았습니까?”
“내가? 참나. 이건 또 무슨 헛소리래. 덕수야, 우리가 김 선생 집에 온 적 있냐?”
“아니요. 6개월 전에 본 게 마지막일 걸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여하튼 김 선생 그동안 형 대신 빚 갚느라 수고 많았어. 이거나 받아.”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는 태경에게 장득칠이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한 번 봐 봐.”
「2021년 x월 x일부로 김태훈, 김태경 이름으로 빌린 모든 돈을 전부 상환하였음을 증명합니다.」
A4용지는 장득칠의 인감과 함께 돈을 갚았다는 내용의 영수증이었다.
“내가 돈을 다 갚았다고요?”
“그렇다니까.”
그럴 리가. 한두 푼도 아니고 자그마치 억 단위의 빚이었다. 하루아침, 아니 몇 시간 만에 갚을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죽었다 살아나고 빚까지 전부 갚았다니. 내가 꿈을 꾸는 건가.’
태경은 이 모든 일이 꿈인가 싶었다.
“뺨 한 대만 때려 줄 수 있습니까?”
“왜 설마 꿈일까 봐? 시원하게 한 대 때려 줄게. 눈 감아.”
찰싹 소리와 함께 귀싸대기를 맞은 태경은 볼이 다 얼얼했다.
‘우와! 되게 아프네.’
통증이 느껴지는 걸 보니 확실히 꿈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김 선생 환자가 대신 빚을 갚아 줬어.”
“환자?”
“그래. 김 선생이 수술을 잘해 줘서 살았다고 하던데.”
장득칠은 입원한 채무자를 만나러 병원에 갔었다고 했다. 온 김에 변동된 이자에 대해 설명하려고 태경을 찾다가 우연히 어떤 노인을 만났다고 했다.
“노인네 이름이 김철…….”
“김철기 환자요?”
“그래 맞아 김철기!”
김철기는 태경이 신화대학병원에서 마지막으로 수술했던 대장암 환자였다. 그는 체구가 작은 노인으로 의사, 간호사 할 것 없이 매너가 좋은 환자였다.
“근데 그분이 왜 제 빚을…….”
“모르겠는데.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이유를 묻는 태경에게 장득칠은 남은 이자에 목돈이 들어오는 거라 바로 승낙했다고 했다.
“연락한다고 했으니까 자세한 건 직접 물어봐.”
그렇게 말한 장득칠은 부하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아무튼 김 선생 그동안 고생했어. 다신 보지 말자고.”
태경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장득칠의 반응을 보니 모른다는 말이 사실 같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우선인 게 있었다.
“병원부터 가자.”
지금 현재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 * *
“철없는 형 때문에 개같이 고생만 했는데 이제야 인생 이 좀 피겠네.”
집으로 들어간 태경을 보며 장득칠은 잠깐이지만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덕수야, 가자.”
“형님. 죄송한데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 될까요?”
“지랄하네. 지금까지 평상에 처앉아 쉬고 있었으면서 뭘 또 쉬어.”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은 김덕수는 눈치를 보며 말했다.
“너 아까 병원에서 주사도 맞았잖아.”
“그게 주사 맞고 나서 속이 안 좋은 것 같고…….”
“염병하네. 그건 네가 짜장면을 세 그릇이나 쳐 먹으니까 체해서 그런 거지. 그러니까 살 좀 빼라.”
“아닙니다. 형님.”
“시끄럽고 얼른 일어나. 이자 떼먹은 놈 잡으러 대전 가야 돼.”
“예, 알겠습…….”
털썩-
잔소리 폭격에 평상에서 일어서던 김덕수는 말을 하다 말고 거짓말처럼 쓰러졌다.
“야! 덕수야? 김덕수!”
꽤 놀란 장득칠은 부하의 이름을 부르다 태경에게 소리쳤다.
“김 선생? 좀 나와 봐. 김태경! 덕수가 쓰러졌어.”
철컥-
집에서 옷을 갈아입던 태경은 고함소리에 트렁크 차림으로 뛰어나왔다.
“윽! 냄새.”
순간 태경은 독한 냄새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김 선생 덕수가…… 덕수가 갑자기 쓰러졌어.”
김덕수에게 다가가자 그 냄새가 더욱 명확히 코를 찔렀다.
처음에는 진한 암모니아 같던 냄새가 지금은 마치 카데바 실습 때 맡던 포르말린 냄새와 비슷했다.
‘왜, 포르말린 냄새가 나지? 미치겠네.’
후각을 파고드는 지독한 냄새에 눈은 따갑고 코는 절로 찡긋할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냄새를 운운할 때가 아니었다.
“119에 신고부터 해요.”
“김 선생, 덕수 이거 왜 이러는 거야? 응?”
“뭐 하고 있어! 신고부터 하라니까!”
“어, 어, 그래. 알았어. 여보세요. 거기 119죠? 여기 초여동 11xx번지…….”
장득칠이 119에 신고하는 사이 태경은 본격적으로 김덕수를 살피기 시작했다.
“김덕수 씨? 내 말 들려요?”
이름을 연신 불렀지만 김덕수는 그 어떤 반응이 없었다.
“이건…….”
그러던 중 접어 올라가 있는 소매 아래 드러난 팔이 태경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두드러기!”
좀 더 소매를 걷어 올려 확인하자 양쪽 팔에 두드러기가 확실하게 보였다. 곧이어 쓰러진 김덕수의 호흡을 확인했다.
“후……. 하아!”
김덕수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상대적으로 짧게 내쉬고 있었다.
‘호흡을 힘들어하고 있어.’
들숨은 힘겹게 들이마시었으며 날숨은 상대적으로 빠르지만 이 역시 매우 곤란해 보였다.
태경은 목에 있는 동맥에 손가락을 갔다 대고서 맥박을 체크했다.
‘빈맥이다.’
김덕수의 맥박은 리듬감을 보이며 일정하게 뛰는 맥박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이건 측정해 볼 필요도 없이 빈맥(1분에 100회 이상 뛰는 것.)이다.
“장득칠 씨?”
“어. 119에 신고했어.”
“아까 덕수 씨가 주사 맞고 속이 안 좋았다고 했죠?”
태경은 조금 전 대문 밖에서 들리던 김덕수의 말을 기억하며 물었다.
“맞아. 덕수가 아침에 감기 기운 있는 거 같다고 병원 갔다 왔다고 했거든. 근데 그 뒤로 속이 계속 안 좋다고 했어.”
두드러기와 빈맥 그리고 주사를 맞고 속이 계속 안 좋았다는 것 까지. 김덕수의 상태를 종합해 본 결과 그의 증상을 알 수 있었다.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다.’
아나필락시스란 급성알레르기 반응이다. 일반적으로 항원에 노출되고 나서 수 초에서 수 시간 이내에 피부 혹은 점막변화, 호흡부전, 저혈압, 저관류의 지속적 위장관 증상 등이 보인다. 자칫 잘못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여보세요. 환자요? 아니 난 그냥 있고 옆에 있는 사람이 살펴보고 있는데요.”
그사이 장득칠은 119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정확히 환자 상태를 모르면서 그냥 살피는 건 자칫 위험할 수 있어요. 특히 머리는 함부로 건들면 안 됩니다.
“그래요? 저기…… 김 선생 환자 함부로 만지지 말라는데? 김 선생?”
장득칠이 계속해서 태경을 불렀지만 그는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야단났네.”
태경의 미간에 내천 자가 그려졌다.
‘부기가 올라오고 있다.’
혈압이 덜어지는 지 맥박이 약해지고 손발이 붓기 시작했다.
“하…… 아…….”
우려한 대로 후두의 부종으로 인해 호흡이 힘들어지는 것이 보였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
“어어! 김 선생? 안 돼!”
태경이 쓰러진 김덕수의 고개를 최대한 뒤로 젖혔다. 그러자 그걸 보고 있던 장득칠이 버럭 소리를 높였다.
“머리 함부로 건들지 말래.”
아끼는 동생이 쓰러져 정신이 없던 장득칠은 순간 태경이 의사라는 걸 깜빡했다.
“나 의사야!”
이번엔 태경이 소리쳤다. 그리고 자신 있는 말투로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
“맞다. 김 선생 의사지. 내가 정신이 없어서. 여보세요. 지금 의사랑 같이 있으니까 빨리들 와요.”
쓰러진 사람을 함부로 만지는 행동은 옳은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덕수는 외상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전문 의료인이 살펴보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 아니었다.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태경이 불빛을 입안 쪽으로 비췄다. 예상대로 후두개(혀뿌리 아래 뒤쪽에 있어, 후두 입구의 앞 벽을 이루어 위쪽으로 돌출한 부위로서 음식물이 후두로 잘못 들어가는 것을 막음.)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대론 위험해.’
이렇게 계속적으로 부종이 지속되면 김덕수는 죽을 수도 있다.
일단 가장 중요한 처치인 에피네프린(epinephrine, 교감신경을 항진하여 부종을 억제하고 혈압을 상승시키는 최선의 약물)은 고사하고 기도 확보부터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젠장. 기구가 없는데.’
기도삽관을 위해선 그에 따른 기구가 필요한 것이다. 병원도 아니고 낡은 옥탑 바닥에 기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지금 기도삽관을 할 수 없으니 트라키오스토미(Tracheostomy, 기도확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관 삽관이 불가능할 때 하는 수술)로 기도를 확보해야 한다.
119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환자를 죽일 순 없었다.
“칼 있어?”
빠르게 판단을 마친 태경이 칼이 있는지 물었다.
“……뭐, 뭐가 있냐고?”
순간 제 귀를 의심한 장득칠이 황당해하며 물었다.
한시가 시급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기구 대신 칼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장득칠, 칼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