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냄새 또 냄새
한시가 시급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기구 대신 칼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장득칠, 칼 있냐고?”
“칼?”
“그래. 칼. 커터 칼도 괜찮고 아무 칼이나 빨리 내놔.”
“아니. 칼 없는데.”
“무슨 깡패가 칼도 없어. 하! 씨 안 되는데.”
“오늘 두고 왔어. 아! 김 선생 집에 식칼 있지 않아?”
아뿔싸! 아쉽게도 음식을 전혀 해 먹지 않는 태경의 집에도 식칼은 없었다.
“내가 사 올게. 사 오면 되는 거 아니야? 편의점에서 사 올게.”
사 온다는 말과 동시에 태경의 머릿속에 소주를 샀던 근처 편의점이 떠올랐다.
“밑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알아. 오다가 편의점 봤어.”
“장득칠 씨. 내 말 잘 들어요. 당신 동생 살리고 싶으면 편의점 가서 커터 칼이랑 식염수 사와요. 빨리.”
“x나 빨리 갔다 올게. 김 선생은 덕수나 잘 보고 있어.”
“뭐해, 빨리 가라니까!”
버럭 외치는 태경의 소리와 함께 장득칠은 순식간에 계단을 내려가 쏜살같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 * *
“평소에는 순한 사람이 환자 앞에서는 딴 사람처럼 돌변하네. 저기 있다, 편의점.”
혼잣말을 하며 구두를 신은 채 전력 질주한 장득칠은 편의점에 금세 도착했다.
“어서 오세…….”
“칼! 여기 칼 어디 있습니까? 칼 주세요.”
장득칠은 주인 여자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칼’을 달라고 외쳤다.
“네?”
“칼 달라고. 칼!”
“카…… 카, 칼이요?”
험한 인상은 물론 왼쪽 뺨에 있는 좌상 흔적까지 더한 사람이 칼을 달라 하자 주인 여자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쾅!
“아줌마! 내 말 못 들었어. 칼 달라고. 칼!”
“아오. 놀라래.”
장득칠은 카운터를 주먹으로 치며 재촉했다.
“우, 우리 편의점엔 칼은 안 팔아요.”
“젠장! 그럼 애들이 갖고 노는 칼은 있잖아. 그거라고 줘요. 그리고 식염수도. 빨리!”
“식염수는 오른쪽 뒤에 있는데 애들이 갖고 노는 칼이 뭔지…….”
“여기 있네.”
마침 식염수 옆 문구 코너에 있던 커터 칼이 눈에 보였다. 장득칠은 커다란 손을 들어 눈에 보이는 대로 칼을 움켜잡았다.
“여기 돈. 잔돈은 됐수다.”
“안녕히 가세요.”
마음이 급한 그는 오만 원 한 장을 던지다 시피 카운터에 날리며 옥탑으로 향했다.
“이게 웬 횡제야. 그나저나 저 사람 칼로 사람 해코지하는 건 아니겠지? 어휴! 소금이나 뿌려야겠다.”
* * *
“하아! 김 선생. 여기 사 왔어.”
미친 듯한 속도로 편의점을 다녀온 장득칠은 식염수 세 통과 커터 칼 다섯 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근데 김 선생. 덕수 괜찮은 거지? 죽는 거 아니지?”
“당연하지. 죽긴 누가 죽습니까.”
순간 장득칠은 태경에게서 강한 믿음과 더불어 아우라를 느꼈다.
지금까지 태경을 볼 때마다 피곤에 쩔은 모습이 대다수였다. 물에 젖은 오징어 같은 모습에 뭔 놈의 의사라는 사람이 저런가 싶었었다.
그런데 쓰러진 덕수를 대하는 침착한 모습을 보니 이 사람이 진짜 의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륵-
커터 칼을 꺼낸 태경은 칼날을 밖으로 밀어낸 뒤 김덕수 목에 갖다 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세로로 인씨젼(incision, 절개선)을 넣었다.
“어어! 김 선생 덕수 목에 칼빵 낸 거야? 피 나는데 괜찮은 거지?”
“괜찮아요.”
‘확실히 메스랑 다르다.’
약간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메스와 달리 커터 칼은 가벼웠다. 잘린 절개선을 따라 피가 흘렀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으! 냄새… 일단 환자만 생각하자.’
여전히 독한 포르말린 냄새가 진동했지만 태경은 환자에게 집중했다.
그는 곧장 절개선에 식염수를 뿌렸다. 그리고 슈프라스터널 포사(Suprasternal fossa, 흉골상와)보다는 약간 위로해서 피부와 점막과 근육을 하나하나 제쳐 나간다.
이후 윤상연골(기도를 감싸고 있는 연골)에 가로로 절개선을 넣어야 하는데 어느 환자들은 갑상선을 위로 올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이 김덕수의 경우는 아니었기에 그냥 가로 절개선을 넣기로 했다.
“볼펜 가진 거 있죠?”
가로로 절개선을 넣은 태경이 이번에는 볼펜을 찾았다.
“볼펜이야 있지.”
옆에서 조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던 장득칠이 빠른 동작으로 일수가방에서 볼펜을 꺼냈다.
“어떤 거 필요해? 모너미?”
“아니. 그거 말고 두꺼운 걸로.”
장득칠이 일반적인 볼펜을 앞으로 내밀자 태경이 여러 색이 들어 있는 굵은 볼펜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이 볼펜?”
“그거 볼펜 심 전부 뺀 뒤 깍지만 줘요.”
볼펜 깍지를 건네받은 태경이 신속한 동작으로 깍지를 절개선에 끼운 찰나,
“푸……우.”
막혔던 김덕수의 숨소리가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신기한 일이 생겼다.
‘냄새! 냄새가 변했어.’
쓰러진 김덕수에게서 나던 냄새가 바뀌었다.
후각을 찌르다 못해 따끔한 느낌마저 들게 했던 포르말린 냄새가 시큼한 냄새로 순화된 것이다.
‘뭐지?’
뭔가 식초 냄새와 비슷했다.
“……선생. 김 선생?”
골똘히 생각하던 태경의 어깨를 감격한 장득칠이 내리치며 불렀다.
“대박! 덕수 숨 쉰다고. 김 선생이 이 새끼 살렸어.”
“내가 살린다고 했잖아요. 김덕수 씨. 잘 버텨 줘서 고마워요.”
태경은 아직 의식이 없는 김덕수를 응원했다.
“시발! 나 이 돼지 새끼 죽는 줄 알고 심장 얼마나 쫄렸다고. 사실 이 녀석 내 고향 동생이거든. 진짜 고마워.”
깡패 장득칠에게서 처음 보는 인간적인 표정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태경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근데 왜 아직 의식이 없어?”
“지금 할 수 있는 응급 처치는 다 했어요. 의식은 병원에 도착해서 알레르기 약과 함께 선생님들이 치료하면 돌아올 거예요.”
“그런 거야? 나 근데 김 선생 다시 봤어. 환자 앞에서는 눈깔이 돌아가는 게 완전 카리스마 쩔대.”
장득칠은 자신의 무용담인 양 신나게 떠들었다.
“아무튼 다시 한번 고마워.”
“덕분입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아까 편의점 가서 커터 칼이랑 식염수 빨리 사 왔잖아요. 그게 큰일 한 겁니다.”
“그래? 하긴 내가 빨리 갔다 오긴 했어. 하하하!”
“저기 근데 아까 무슨 냄새 못 맡았습니까?”
“냄새?”
응급 처치를 끝낸 태경은 ‘냄새’에 대해 물었다.
“김덕수 씨한테 뭔가 강한 냄새 나지 않았어요?”
“아니. 안 났는데. 뭔 갑자기 냄새 타령이야.”
“안 났다고요?”
그럴 리가. 처음 강한 암모니아 냄새도 그렇고 조금 전까지 났던 포르말린 냄새는 워낙 강한 냄새라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은요? 지금도 아무 냄새 안 납니까?”
“안 나는데.”
“시큼한 냄새 안 나요?”
“전혀. 내가 별명이 개코인데 아무 냄새 안 났는데. 그리고 덕수 보기와 다르게 엄청 깔끔해서 하루에 두 번씩 샤워한다니까.”
그렇게 태경이 ‘냄새’로 고민하던 사이 119차량이 도착했다.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빠르게 김덕수를 들것에 실어 구급차로 옮겼다.
“의사시라고요?”
“예. 맞습니다.”
완벽한 응급 처치를 본 구급대원들은 태경이 의사라는 데 의심하지 않았지만, 절차는 확실히 했다.
“성함과 연락처를 알려 주세요.”
“예. 김태경이고 연락처는 010–12340-5678입니다.”
“김 선생 내가 한 번 거하게 쏠게. 다음에 한 번 봐.”
이름과 연락처를 받은 구급대원들은 김덕수와 함께 출발했다.
태경은 조금씩 멀어지는 사이렌 소리와 초록 불을 보며 기분이 묘했다. 아니 정확히 가슴 언저리가 이상했다.
“뭐지 이 기분…….”
지금 이 순간 진짜 환자를 살렸다는 생각이 뇌리를 강타했다.
분명 수술실에서도 똑같이 환자를 살렸었는데, 죽다 살아서 그런 가 그때와는 뭔가 다른 감정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란 거지? 그래. 확인부터 해 보자.”
집으로 들어가 옷을 챙겨 입은 태경은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 * *
“김태경 님 들어오세요.”
동네 2차 병원을 찾은 태경은 간호사의 부름에 진료실로 향했다.
“초음파도 그렇고 CT촬영도 그렇고 아주 깨끗합니다. 내장지방도 없고 건강하시네요.”
“예? 깨끗하다고요?”
“아주 깨끗합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의사는 모니터를 꼼꼼히 살핀 뒤 태경에게 말했다.
“저, 선생님 죄송하지만 지금 보신 결과가 제 것 맞습니까? 혹시 다른 사람과 바뀐 건 아니죠?”
“예?”
다른 사람의 결과와 바뀐 게 아니냐니. 태경은 본인이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하고 싶었기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어이없는 질문에 의사는 큰 소리로 웃었다.
“가끔 드라마에 그런 내용이 나오기도 하지만 실제 병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환자에게 오진을 하면 큰일이니까요.”
맞는 말이다. 태경 역시 예전에 어느 환자에게 똑같이 답한 적이 있었다.
“명치의 통증이 느껴진다고 한걸 보니 혹시 담석증을 의심하고 오신 게 아닐까 합니다. 요즘은 인터넷이 잘되어 있다 보니 환자들이 병원 오기 전에 본인의 증상을 찾아보고 겁먹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선생님. 제가 의심한 건 담석증이 아니라 담낭암이었습니다.”
“당남암이요?”
의사는 태경의 말을 듣자마자 황당한 표정으로 모니터 화면을 맞은편으로 돌렸다.
“보통 명치 쪽에 통증을 느끼면 담석증을 의심하지 담낭암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의심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게다가 제 몸에 몇 시간 전까지 종양이 담낭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앞의 의사가 믿을 리 만무했다.
“여기 화면 보이시죠?”
의사는 볼펜 끝으로 화면을 정확히 가리키며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 이 부분이 바로 환자분께서 걱정 하셨던 담낭이란 부분입니다. 대게 담석증이나 암이 생기면 이곳…….”
친절한 의사의 설명을 굳이 듣지 않아도 모니터 화면을 본 태경은 알 수 있었다.
‘없다. 아무 것도 없어.’
자신의 몸속에 암이 사라졌다는 것을. 아니 마주한 CT와 초음파 결과는 처음부터 암이 없던 것처럼 깨끗함 그 자체였다.
그 어떤 의사가 보더라도 아주 건강한 사람의 결과지였다.
드르륵-
“가끔 몸이 조금만 아파도 신경이 예민해지는 분들이 있긴 합니다.”
진료가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는 태경을 보며 의사가 말을 이었다.
“그럴 땐 인터넷을 보기보단 병원을 오는 게 확실한 방법이죠. 그리고 김태경 씨는 지금 건강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네, 진료 감사합니다.”
* * *
“앞에 창구에서 수납하시고 가시면 돼요. 고길동 씨?”
“네, 접니다.”
“고길동 씨 진료실 들어오세요.”
진료실에서 나온 태경이 간호사가 부른 고길동이란 사람 옆을 지나갔다.
“……!”
그런데 태경의 고개가 자석처럼 그 사람을 향해 돌아갔다.
“냄새!”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처음 김덕수에서 낫던 암모니아 냄새랑 똑같았다.
분명한 건 간호사와 의사에게서는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러세요?”
진료실은 뚫어져라 쳐다보는 태경에게 간호사가 물었다.
“지금 진료실 들어간 환자분 말입니다.”
“저 환자분이요?”
“네, 환자분한테 암모니아 냄새 나지 않았습니까?”
“예? 암모니아 냄새요?”
“그 뭐랄까 진하게 숙성된 오줌 냄새요. 지린내라고도 하죠.”
“예!? 지린내요?”
변태인가? 아님 돌아이?
간호사는 멀쩡하게 생긴 얼굴로 진지하게 저딴 질문을 하는 태경을 위아래로 훑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진료 끝나셨으면 계산하시고 가시죠. 그리고 저 환자분한테서는 아무 냄새도 안 납니다.”
“그런가요. 수고하세요.”
뭔가 이상함을 느낀 태경은 일단 창구에서 계산을 하기로 했다.
“수납되셨고요. 영수증 필요하세요?”
“괜찮습니다. 수고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어서 오세요. 저희 병원 처음 오셨나요?”
“아니요. 내원한 적 있어요.”
“그럼 성함 좀 알려 주세요.”
그렇게 계산을 끝내고 돌아서는데 마주친 접수하는 사람에게서 또다시 냄새가 났다.
‘또 냄새가 난다.’
이본엔 김덕수의 응급 처치가 끝나고 상태가 안정됐을 때 났던 시큼한 냄새였다.
“이거 혹시!”
이쯤 되니 머릿속에 하나의 가설이 떠오르면서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 아픈 사람에게만 냄새가 나는 거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