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8화 (8/472)

8화. 김철기 환자

태경은 즉시 비상계단을 통해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동으로 향했다.

“확인해 보자.”

철컥-

“와!”

병동으로 연결된 문을 열자마자 지금까지 맡았던 냄새들이 약하게 후각을 노크했다.

“좋아. 내 생각이 맞는다면 환자들 옆을 지나갔을 때 냄새가 나겠지.”

태경은 입원한 환자들이 오가는 복도 사이를 자연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냄새다.”

처음 환자 옆을 지나자 냄새가 났다.

“이번에도 난다.”

그렇게 세 시간이 넘게 환자를 지나가며 실험해 본 결과, 그들에게서 확실하게 냄새가 나는 걸 알 수 있었다.

냄새의 농도 차이는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시큼한 냄새와 암모니아 냄새가 전부였다.

자칫 목숨이 위급할 수 있던 김덕수에게서 났던 포르말린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이 병동에는 중증 환자나 위급한 환자는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보호자나 의료진 등 환자를 뺀 나머지 사람에게서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확실해.”

이로써 태경이 세운 가설이 확실해졌다.

“아픈 사람에게서만 특정 냄새가 나고 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몸에 있던 암이 사라지고 죽었다 살아난 뒤 신기한 능력이 생긴 것이다. 도저히 이렇게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여보세요?”

-김 선생. 나야.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던 중 마취과 이동훈에게 전화가 왔다.

“이 선생님.”

안 그래도 전화를 할 생각이던 태경은 반갑게 화답했다.

-괜찮아? 김 선생 그렇게 병원에서 나가고 의사고 간호사고 뒤에서 이 교수랑 병원장 엄청 씹었어.

“선생님. 제가 수술 끝나고 쓰러졌었죠?”

-그렇게 일하고도 멀쩡하던 사람이 쓰러져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검사 결과 과로로 나와서 다행이지 뭐.

이동훈은 피로 누적으로 인한 가벼운 실신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태경은 암을 진단받은 부분이 아예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우리 병원 윗대가리들 정치로 썩은 지 오래됐잖아. 난 차라리 김 선생이 교수가 안 된 게 다행이라 생각해.

이동훈운 태경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했다.

-실력 좋은 김 선생이야 어디든 잘 가겠지만 혹시라도 병원 구하기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해. 내가 알아봐 줄게.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동훈과 통화를 마친 태경은 마지막으로 김철기 환자에 대해 생각했다.

‘왜 내 빚을 대신 갚아 준 걸까?’

은인이나 진배없는 사람인데 연락처를 모르니 답답했다. 방금 통화했던 이동훈에게 물어볼까도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실례합니다.”

그렇게 궁금증만 가득한 채 대문을 들어서는 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혹시 여기 사는 김태경 씨라고 아시나요?”

중년의 모범택시 기사가 태경에게 물었다.

“제가 김태경입니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아, 그래요? 전 김철기 어르신의 부탁을 받고 온 기사입니다.”

마침 궁금하던 차에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가 보시면 압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타시죠.”

태경을 태운 택시는 골목을 빠져나갔다.

* * *

“다 왔습니다.”

서울을 빠져나와 한 시간 넘게 달린 기사는 경기도 외곽에 차를 멈췄다.

태경의 시선이 건물 상단에 붙어 있는 간판을 향했다.

“바다요양병원.”

그가 도착한 곳은 언덕 위에 있는 요양병원이었다.

“저기 입구 옆에 팔각정 보이시죠?”

“아, 네.”

“어르신은 거기 계실 겁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사와 인사를 마친 태경은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잔디 위로 나 있는 여러 꽃들과 곳곳에 보이는 아름드리나무들까지.

시설이 잘되어 있는 병원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서 와요. 김태경 선생.”

태경이 팔각정에 도착하자 바로 옆 벤치에 앉아 있던 김철기가 반색하며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먼 길 오느라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보내 주신 차편에 편하게 왔습니다. 그보다 어르신?”

택시 기사가 어르신이라고 해서일까 아니면 그 많은 빚을 갚아 줘서일까. 태경은 저도 모르게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일단 앉지.”

자리에 앉은 김철기는 피로회복제 한 병을 건넸다.

“조용한 시골 동네라 그런지 커피 전문점 하나 없어.”

“아닙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태경은 빈손으로 온 자신이 부끄러웠다.

“수술 후 회진을 돌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수술 후 불편하신 곳은요? 항암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 식사는 잘 드시고…….”

“이거 원. 김 선생?”

갑자기 속사포처럼 쏟아 내는 질문 세례에 김철기가 태경의 무릎을 토닥였다.

“노인네 숨넘어가겠네. 하나씩 물어 봐.”

“죄송합니다.”

“자네가 수술을 잘해 준 덕분에 잘 회복하고 있어. 내 얼굴 좋아 보이지 않나?”

“그러네요. 좋아 보입니다.”

빈말이 아니라. 김철기의 얼굴은 수술 전보다 혈색이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그에게서 순한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걸로 보아 잘 회복되는 중이라 생각했다.

“그나저나 자네 표정을 보니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인데. 왜 자네 빚을 대신 갚아 줬는지 궁금하지?”

당연히 궁금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을 볼 때마다 관심 있는 사람을 대하듯 늘 질문을 했었다.

‘김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밥은 먹고 회진 도는 건가요?’

‘주말인데 집에는 안 갑니까.’

‘가만 보면 선생님은 인턴, 레지던트보다 더 일을 많이 하는 것 같군요.’

태경이 병원에서 오고가며 마주치면 그는 항상 먼저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그렇다고 빚을 대신 갚아 줄 정도의 대단한 친분을 쌓은 건 아니었다.

“궁금합니다. 왜 어르신께서 제 빚을 갚아 주셨는지.”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말하겠네. 내가 병원을 운영하고 있어.”

태경은 그제야 김철기가 다른 환자에 비해 의학 용어에 능숙했던 이유가 이해됐다.

“자네가 병원 좀 맡아 줬으면 하네.”

“네? 병원이요?”

병원을 맡아 달라니. 전혀 예상 못 한 답변이었다.

“내 질문 하나 하겠네. 농부가 맨손으로 돌을 골라 밭을 매고 씨를 뿌려 밤낮없이 돌보며 물을 주고 거름도 줬지. 작물이 상하지 않게 벌레도 잡고 영양분이 뺏기지 않게 잡초도 뽑고 돌본 결과 아주 신선한 작물을 생산하게 된 거야. 정성을 다하는 마음에 사람들도 찾아와 주고 농부는 아주 만족했다네. 그런데 그 농부에게 일이 생겨서 한동안 밭을 돌볼 수가 없게 됐어.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밭을 맡길 수 있는 좋은 관리자를 찾겠습니다.”

“그게 바로 내가 자네의 빚을 대신 갚아 준 이유야. 김 선생이 내 병원을 맡아 줘.”

태경은 갑작스러운 제안에 잠깐 생각에 잠겼다. 당연히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더 이상 교수 자리에 미련은 없었다.

그저 적당한 페이닥터 자리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교수 임명에 연이어 미끄러졌을 때 자신의 병원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생각뿐이었다.

“왜 저입니까?”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과 성실함 그리고 실력.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의사라네. 자네는 이 세 가지를 다 갖췄어.”

“절 오래 보지 않으셨잖아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릴 필요는 없다네.”

김철기는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모든 메이저 병원을 다 돌아다녔다. 적임자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신화대에서 실력과 인성을 모두 갖춘 적임자를 만난 것이다.

항상 일찍 오고 가장 늦게까지 환자 곁에 머물고 누구보다 수술을 많이 하는 의사가 태경이었다.

김철기는 수술을 위해 입원해 있는 동안 이런 태경의 모습을 보고 확신하며 남몰래 뒷조사를 하던 중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도와주게 되었다.

“그런데 수술도 원래 교수님이 하시기로 했었고, 왜 처음부터 절 주치의로 하지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건 내 친구 놈이 예약을 해 줬는데 그 교수가 유명하다며 그렇게 예약이 됐어.”

사실 수술 또한 태경은 몰랐지만 김철기가 수술 전부터 주치의를 바꿔 달라며 강하게 요청한 상태였었다.

“자네한텐 미안하지만 사실 병원에서 쫓겨났을 때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어.”

“…….”

“김 선생, 설마 싫은가?”

“그게 아니라…….”

“싫다면 강요는 안 하겠네. 대신 내가 갚아 준 자네 빚 그거 내일까지 입금해 주게.”

“예!?”

태경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10억을 하루 만에 입금하라니. 이거야 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닌가.

“내일까지요?”

“당연하지. 내가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뭣하러 공짜로 돈을 갚아 줬겠어. 어떻게 할 거야 말 거…….”

“할게요.”

김철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답변이 돌아왔다. 때려 죽여도 24시간 안에 10억을 만들 수 없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방법은 하나였다.

김철기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정말인가?”

“네,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해 보겠습니다.”

“허허허! 설마 나 때문에 억지로 하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그보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얼마든지.”

“병원을 맡기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건강 문제 때문에 그런 건가요?”

“아니, 암 때문이 아니야. 수술도 잘됐고 인근 병원에서 항암 치료도 잘 받아서 회복하고 있어.”

“그럼 왜…….”

태경이 질문을 하던 그때였다.

“여보, 철기 씨?”

양 갈래로 머리를 곱게 땋은 백발의 늙은 여인이 포대기에 아기를 안은 채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여보 우리 민기 웃는 것 좀 봐요. 당신 닮아 눈썹도 진하고 우리 민기 잘생겼죠?”

그녀는 김철기가 아기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조심스러운 손길로 포대기를 살짝 열었다. 놀랍게도 그 손길이 닿은 포대기 안에는 아기 인형이 들어 있었다.

“그럼. 당신 닮아서 눈은 또 얼마나 예쁜데. 우리 아들이 아주 미남이지.”

“당신 눈에도 그렇죠? 어머, 손님이 계셨네요. 민기 보느라 깜빡 했어요. 안녕하세요.”

“이쪽은 내 와이프 이옥빈. 그리고 이쪽은 김태경이라고…….”

“알아요. 당신처럼 의사 선생님이시죠?”

이옥빈은 여전히 아기 인형을 꼭 안은 채 태경에게 인사를 전했다.

얼굴과 손에 주름이 가득했지만 그녀의 말투는 영락없는 젊은 새댁의 말투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 상황을 빠르게 이해한 태경은 자연스럽고 친절하게 그녀의 인사에 화답했다.

“김철기 선생님 후배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근데 당신 이 친구가 의사인지 어떻게 알았어?”

“손이요. 당신 손을 하도 봤더니 의사 분들 손은 대번에 알 수 있어요.”

남편과 태경의 손을 번갈아 쳐다보던 이옥빈이 말을 이었다.

“선생님도 매듭 연습 많이 하셨나 봐요. 우리 그이랑 흉터가 비슷하네요. 좋은 손을 가지셨어요.”

“감사합니다.”

“내 정신 좀 봐. 손님이 오셨는데 차도 안 내왔네요. 커피 괜찮으세요?”

“아니요. 사모님. 괜찮습…….”

“여보 커피 두 잔만 해 줘.”

김철기는 손사래를 치는 태경의 손길을 내리며 아내에게 커피를 부탁했다.

“네, 말씀들 나누고 계세요. 민기야. 아빠 커피 만들러 가자.”

이옥빈은 아기 인형을 품에 꼭 안은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자네도 눈치챘겠지만 아내가 치매야. 나한테 이유를 물었지? 저 사람이 바로 이유일세.”

아내의 모습을 애처롭게 쳐다보던 김철기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는 병원에 매여 사는 나를 누구보다 이해하며 응원했어.”

두 사람은 결혼한 지 7년 만에 귀한 아기를 얻었다.

하지만 6개월 뒤 아기는 심장마비로 하늘나라고 떠났고 이옥빈은 충격으로 우울증을 앓았다. 응급 환자의 콜을 받은 김철기가 집을 나간 지 한 시간 만에 생긴 일이었다.

그 뒤 거듭된 유산으로 몸도 마음도 지친 그녀는 30년 전 이혼을 요구하며 집을 떠났다.

“우리 아들이 죽어 갈 때 당신은 뭐했냐고. 서럽게 울면서 말하는데 할 말이 없더군. 날 보며 괴로워하는 아내를 보내 줄 수밖에 없었어.”

“두 분께서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 뒤 김철기는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환자에게 쏟으며 살았다. 그리고 두 달 전 요양병원에서 연락을 받았다.

중중 치매를 앓고 이름까지 잊어버린 아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건 남편의 이름과 전화번호였다.

그녀 역시 남편을 그리워하고 있던 것이다.

“아내 분을 여전히 사랑하시나 봐요.”

“늙은이 주책이라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난 여전히 저 사람을 보면 가슴이 뛴다네. 내 첫사랑이 거든.”

‘그래도 몸이 아픈 곳이 없으신 거 같아 다행이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태경은 이옥빈에게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던 것을 기억하며 안도했다.

“자! 무거운 이야기는 이쯤하고 이거나 받아.”

“이게 뭔가요?”

“자네한테 주는 선물.”

“선물이요?”

김철기가 건넨 작은 상자에는 깔끔하게 인쇄된 명함 뭉치가 들어 있었다.

명함의 주인은 태경이었다.

‘우리 야간병원 원장 김태경…….’

이상했다. 그냥 종이일 뿐인데 자신의 이름이 박힌 명함을 받으니 가슴 속이 뜨거웠다. 의사로서 처음 갖는 명함이었다.

“동네 작은 병원이니까 부담 갖지 마. 모든 권한을 자네한테 위임할 테니까 자네 병원이라 생각하고 어디 마음껏 실력 발휘해 봐.”

“네, 어르신. 출근은 언제부터 할까요?”

“내일은 어떤가?”

“예!? 내일은 너무 빠른데요.”

“농담이야. 다음 주부터 하게. 잘 부탁하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태경은 자신에게 생긴 능력을 환자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다짐했다.

‘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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