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1화 (11/472)

11화. 개 같은 소리

“환장하네. 생전 늦는 사람이 아닌데…….”

병원 앞 도로가에 나온 임정숙 간호사는 의진을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전화를 다시 한번 해 볼까?”

손에 꼭 쥐고 있던 휴대폰을 터치하려던 찰나 웬 오토바이 한 대가 빠르게 달려와 멈췄다.

“기사님, 고생하셨어요. 잔돈은 괜찮아요.”

“정 선생님!”

잠옷 차림으로 오토바이에서 내린 의진을 보며 임정숙 간호사가 소리쳤다.

“폭주 뛰다 오신 거예요? 웬 오토바이에요.”

“말도 마세요. 다리에서 차가 퍼져 갖고 퀵 불러서 타고 왔어요. 준비는 다 끝났어요?”

“그럼요. 선생님만 기다리고 계세요.”

“그럼, 지금 수술실에 계신 선생님이 원장님이 꼭 데려오고 싶다던 선생님이란 거죠?”

“네, 맞아요. 인상도 좋으시고 환자 일에 적극적이신 거 같아요.”

“잘됐네요. 참! 응급 환자 정보 좀 알려 주세요.”

의진은 환자의 상태를 물으며 임 간호사와 함께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 * *

“이 선생. 아직이야?”

태경은 이찬희에게 작은 소리로 마취의의 부재를 물었다.

“오실 때가 다 됐는데……. 제가 다시 한번 연락해 보겠습니다.”

“마취 왔습니다.”

때마침 수술복을 갈아입은 의진이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왔다. 잠시 태경을 유심히 보던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차가 말썽이라 시간이 좀 걸렸네요. 인사는 수술 끝나고 제대로 할게요.”

“그래요. 일단 응급 환자이니 만큼 다들 수술에 집중하죠.”

“네, 환자분이 콜레시스타이티스(cholecystitis, 담낭염)라고 하던데 맞죠?”

“맞습니다.”

“그거 통증이 엄청난데 고생 좀 하셨겠네요.”

태경은 일사천리로 마취 도구를 살피며 준비하는 의진을 보며 안심했다. 한눈에 봐도 베테랑 마취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늦은 시간 응급 환자 수술에 경험 많은 마취과 의사와 함께한다는 건 수술의 강도를 떠나 든든한 기분이 든다.

“선생님, 잠시 만요!”

마취 준비를 마친 의진이 태경을 급히 불렀다.

“지금 선생님과 저 그리고 이 선생. 이렇게 셋이서 수술을 한다는 거죠?”

“그래요. 우리 셋이서 합니다.”

“손이 부족한데 괜찮으시겠어요?”

의진은 수술실에 부족한 인원을 두고 물었다.

보통 수술실에는 순환 간호사가 존재한다. 수술 진행 시 세균의 감염 여부 때문에 직접 물품을 만질 수가 없어 순환 간호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수술 시작 전에 물품은 넉넉히 준비해 뒀습니다.”

사실 태경은 수술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인원이 부족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임정숙 간호사가 그 역할을 하면 됐지만 입원 환자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이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선생님. 환자분 도착했습니다.”

임정숙 간호사가 베드에 누운 환자를 수술실에 인계한 후 밖으로 나갔다.

“환자분 마취 시작할게요. 아무 걱정 마시고 한숨 잔다고 생각하세요.”

“네, 선생님들 잘 부탁드려요.”

“자! 환자분 숨을 깊게 들어 마시고 열까지 세어 볼게요.”

“하나, 둘 셋…….”

의진의 능숙한 솜씨 아래 조말례 환자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기관삽관 진행합니다.”

꼼꼼한 의진은 환자의 윗니가 흔들리지 않도록 확인 후 기관삽관을 했다.

그 뒤 청진기를 환자의 명치 부위에 대고 꼬르륵 소리가 나는지 들어 본다. 만약 식도로 들어갔다면 여기서 소리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공호흡이 될 때마다 폐를 청진하여 기관삽관이 완벽히 되었음을 확인한다.

“자! 이제 시작하세요.”

완벽한 마취를 끝낸 의진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포비돈.”

“…….”

태경의 물음의 어시를 담당한 이찬희는 가만히 있었다.

“이 선생! 뭐해 포비돈 달라니까.”

“아,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지금 여기 수술실이야. 환자한테 집중해.”

“집중하겠습니다.”

소독약품인 포비돈을 손에 쥔 이찬희는 명치와 서혜 부위까지 경계를 그린 다음 배꼽에서부터 원을 그려 나갔다.

단일 복강경은 기구가 배꼽을 통해 들어가기 때문에 소독에 더 신경 써야 한다. 배꼽 같은 경우 함몰되어 있으므로 세균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꼽 안에 이물질이 있는지 살핀 후 포비돈을 한 번 더 부어서 멸균된 면봉으로 구석구석 닦아 낸다. 소독 과정이 끝나면 멸균된 포로 피부가 잘 보이게 눌러 닦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태경이 나설 차례가 왔다.

‘냄새가 점점 진해진다.’

수술실 특유의 냄새가 있었지만 태경에게는 베드에 누워 있는 환자의 아픈 냄새만 선명할 뿐이었다. 마스크를 써도 환자로부터 일렁이는 분뇨 냄새는 여전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선생님, 테이블 좀 올려 주세요.”

태경의 주문에 의진이 수술 베드 높이를 조절했다.

“네, 지금이 딱 좋아요.”

“복강경 설치하겠습니다.”

베드의 높이가 조절되는 사이 이찬희가 복강경을 설치한다. 많은 선들과 광원 선들이 엉키지 않게 정리하여 거즈로 묶어 고정시킨다.

“보비(전기칼) 연결됐죠?”

“네, 선생님. 연결됐습니다.”

삐이익-

보비가 작동할 때 들리는 특유의 고음이 들려왔다.

태경이 보비로 복강경이 들어갈 수 있게 배꼽 위로 2cm정도 세로 절개를 한다. 절개한 곳으로 복부 근육이 나온다.

이찬희가 포셉으로 근육을 당겨 주고 태경 역시 왼손의 포셉을 잡아 반대쪽으로 당겼다.

그와 동시에 오른손에 쥔 보비로 근육을 지져서 잘라 낸다. 그 뒤 유연한 플라스틱 링 두 개가 있는 single port를 넣는다.

그리고 port의 끝을 잡고서 절개 안쪽으로 길게 집어넣은 뒤 링을 접어 복강 내 안쪽에서 지지하고 다른 링은 밖에서 지지한다.

이렇게 하면 단일 복강경 통로를 확보해 주는 도구가 움직이지 않는다.

“……!”

포트를 설치한 태경의 시선이 이찬희에게 향했다.

‘왜 저러지?’

그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미간을 반복적으로 좁히고 등을 살짝 굽히기도 했으며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기도 했다.

“저, 선생님……?”

태경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이찬희가 먼저 그를 불렀다.

“왜 그래, 이 선생.”

“저 어떡하죠?”

“어떡하다니 뭐가?”

“저기…… 죄,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찬희는 다짜고짜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고 미간을 심히 찡그렸다. 마스크 안쪽에 자리한 그의 입술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죄송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습니다.”

“못 버틴다니. 이 선생 지금 수술 중이야. 알아듣게 얘기해.”

“그게…….”

태경의 말에 답을 하던 이찬희는 급기야 말을 잇지 못하며 연신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선생님! 저 도저히 안 되겠어요. 저…… 나가 봐야 할 거 같아요.”

태경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수술 중에 나간다니. 이 무슨 개 같은 소리란 말인가!!

“죄송합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 선생? 이찬희!?”

태경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이찬희는 불안한 모습으로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

이찬희가 빛의 속도로 수술실을 빠져나가고 태경은 순간적으로 몇 초 동안 멘붕에 빠졌다.

* * *

“하아!”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수술실을 빠져나온 이찬희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이 답답한 듯 손으로 흉부를 치던 그는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었다.

‘머저리 새끼.’

휴게실을 향해 걸어가던 이찬희의 귓가에 이명처럼 익숙한 소리가 울렸다.

‘이런 등신 같은 놈. 사내자식이 왜 이리 나약해! 이러고도 네가 의사야!’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완벽하게 해낼 때까지 수술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올 생각하지 마.’

머릿속에 울리는 날선 목소리에 이찬희의 표정은 급격히 안 좋아졌다.

“생각하지 말자. 그만 좀 생각하자.”

머리가 핑 돌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이찬희는 쓰러질 것 같은 전조 증상을 느끼며 재빨리 복도 바닥에 누웠다.

* * *

“수술 중에 나간다고? 미친 거 아니야.”

수술실에서 또 다른 손 역할을 하는 어시가 수술 도중에 나가 버렸다. 조금의 과장을 더해 손이 하나 없어진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 이찬희 선생 아마 못 들어올 거예요. 황당하시겠지만 일단 수술 진행하셔야죠.”

의진의 말이 맞았다.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이유를 따질 새가 아니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 했다. 당장은 환자의 수술이 우선이었다.

‘침착해! 할 수 있어.’

태경은 주변을 둘러보며 속으로 자신을 다독였다.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며 움직이려던 그때였다.

“선생님, 제가 들어가서 도와드릴게요.”

의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물론 마취의사는 모니터를 체크하며 환자 상황을 주시하는 게 주 업무였다.

하지만 지금은 태경을 도와주는 게 우선이라 판단했다. 환자 마취는 안전하게 잘됐고 보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취는 걱정 안 해도 되니까 옆에서 보조를…….”

“안 돼요!”

의진이 자리를 이동하려 하자 태경이 큰소리로 외쳤다.

“선생님이 절 도와주면 물품 전달이 힘들어집니다.”

“아!”

의진은 태경의 말을 대번에 이해했다. 자신이 어시를 하면 순환 간호사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어시를 하면 멸균 장갑을 끼어야 하는데 마취과 의사는 그 장갑을 착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멸균 장갑을 끼면 오염 문제 때문에 물품을 만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혼자 합니다.”

객기가 아니었다.

‘쉽진 않지만 충분히 할 수 있다.’

찰나의 시간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린 결과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요.”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기도 했지만, 의진은 수술 밑으로 드러난 태경의 자신 있는 눈빛을 믿기로 했다.

“그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태경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변했다. 뿐만 아니라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집중력이 그의 몸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우선 테이블을 가까이 두자.’

태경은 일단 혼자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수술 도구가 놓여 있는 테이블을 옆으로 가져오기로 했다.

“……!”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어시인 이찬희가 복강경의 시선을 볼 수 있도록 설치된 모니터가 태경의 오른쪽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로 옆에 있는 모니터를 밀어 보려 했지만 위태롭게 한 번 흔들릴 뿐 꿈쩍을 하지 않았다.

‘젠장!’

괜히 환자 위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에 빠르게 포기하기로 했다.

‘모니터는 건드리지 말자.’

테이블을 옆으로 가져올 수 없으니 필요한 도구를 직접 집기로 했다. 할 수 없이 태경은 환자의 몸 위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아크로바틱을 하는 사람처럼 있는 힘껏 최대한 손을 뻗은 그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전기 소작기를 집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

그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던 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술을 하면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 중 하나가 콘테미네이션(contamination, 오염)이었다.

태경은 오염 때문에 모니터 뒤로 이동을 해서 진행해 보려 했지만 석션 줄이 버티고 있어 지나갈 수 없었다.

“선생님?”

결국 태경은 의진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제가 도구를 집거나 할 때 혹시 오염이 되는지 잘 봐 주세요.”

도구를 잡을 때 안전하게 잡을 수 있도록 의진에게 길잡이를 부탁한 것이다. 집중하다 보면 순간 시야가 집중한 곳에 쏠려 좁아진다.

더군다나 이동 동선에 제약이 생긴 지금 상황에서는 전체적으로 살피기가 쉽지 않다.

“시야 때문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반면 의진은 태경보다 시야가 넓어 전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도구를 잡을 때 안전하게 잡을 수 있도록 그에게 길잡이를 부탁한 것이다.

“제가 확실히 봐 드릴 테니까 저만 믿으세요.”

의진의 대답을 들은 태경이 다른 도구를 잡으려던 그때였다.

‘이런. 높이가 좀 다르잖아.’

아까는 의식하지 못했던 베드와 수술 도구가 놓여 있는 테이블의 높이가 달랐다.

“하나, 둘,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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