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2화 (12/472)

12화. 범인 검거

“하나, 둘, 셋…….”

카운트를 센 태경은 또다시 손을 쭉 뻗어 겸자와 복강경을 한 번에 집는 데 성공한 뒤 그것을 동시에 port로 밀어 넣었다.

“후!”

하늘색 마스크 안쪽에서 긴장감이 느껴지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에 속하는 당남염 수술이 생각지 못한 상황으로 인해 초 단위로 긴장감을 놓지 못하는 수술이 되어 버렸다.

“선생님, 잘하고 계세요.”

태경을 주시하던 의진은 격려를 보내며 그의 긴장을 풀어 주려 노력했다.

어느새 수술실 안에는 긴장감이 가득 들어찼다.

“집중하자.”

태경은 방금 전 밀어 넣은 복강경으로 담낭을 관찰한 뒤 다른 구멍으로 넣은 겸자를 통해 담낭을 견인해 본다. 이번엔 담낭을 절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구조물인 담낭동맥을 찾을 차례였다.

담낭동맥을 찾기 위해서 간 아래쪽 경계와 양 갈래로 갈라진 담도가 있는 캘롯 트라이앵글(Calot's triangle, 캘로트의 3각)을 찾았다.

‘이런! 손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네.’

태경은 순간 자신의 손이 세 개였으면 했다. 수술을 혼자서 하려니 겸자와 전기칼을 잡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겸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 위해 눈으로 거리를 쟀다.

수술 도구를 올려놓는 테이블은 직사각형의 긴 테이블로 삼면은 낮은 턱이 있고 나머지 한쪽 면은 턱이 없이 평평했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자.’

태경은 겸자의 중간 부분으로 손의 위치를 바꾸며 자신이 바라보는 평평한 쪽을 향해 서서히 손을 뻗었다.

탁-

겸자가 윗부분 테이블에 닿는 소리와 함께 안심한 태경이 조심스럽게 손을 뗀 그때였다.

“어어, 선생님!!”

의진이 다급하게 태경을 불렀다. 겸자가 테이블 밑으로 떨어지려 했기 때문이다.

“겸자!”

무거운 손잡이 부분으로 무게 중심이 쏠려 겸자가 테이블 아래로 향하게 된 것이다.

“겸자 떨어지겠어요. 선생님. 얼른 잡으세요.”

혼비백산한 의진의 외침과 함께 놀란 태경이 본능적으로 겸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발레리노처럼 발끝에 힘을 주고 허리를 늘려 최대한으로 있는 힘껏 손을 뻗은 그의 모든 신경이 온통 겸자를 향했다.

“아니요. 좀 더 오른쪽으로 뻗으세요.”

의진은 마치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는 감독의 간절한 심정으로 태경의 모습을 지켜보며 중계했다.

‘반드시 잡아야 돼.’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초인적이 힘과 집중력이 발휘된다고 한다. 지금 태경이 그랬다.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겸자를 잡기 위해 한마음 한뜻이 되고 있었다.

“……제발!”

그리고 겸자가 테이블 밑으로 떨어진 찰나 젖 먹던 힘까지 쏟은 태경이 한 끗 차이로 겸자를 잡아 안전하게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이스!”

“휴!”

환호하는 의진과 함께 태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다행이에요.”

정말이지 팔 길이가 조금만 더 짧았어도 겸자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 순간 태경은 긴 팔을 갖고 태어나게 해 주신 어머니께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정말 잘 잡으셨어요.”

“수술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태경은 콘테미네이션(contamination, 오염)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수술을 이어 갔다.

담낭으로 들어가는 담낭관과 담낭동맥을 전기칼과 겸자를 이용해 붙어 있는 지방들을 하나씩 벌리면서 노출시킨다.

담낭동맥이 상처를 받지 않고 잘 노출된 것으로 여겨지면 내용물이 새지 않게 클립으로 관의 양쪽을 막고서 그 사이를 절개한다.

“조금만 힘내자.”

끝이 보이는 수술에 태경은 분발하며 힘을 내기 시작했다.

담낭으로 들어가는 담관도 절개한 뒤 간과 담낭 사이를 분리시킨다.

그 뒤 태경은 주머니를 접어서 port를 집어넣은 다음 겸자들로 그 입구를 다시 벌렸다. 그리고 아까 올려놓은 겸자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테이블에서 다시 가져왔다.

“네놈이 말썽을 부렸구나.”

태경은 환자에게 통증을 선사한 문제의 담낭을 잘라서 분리하여 주머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다음 입구를 겸자들로 당겨 막은 뒤 주머니 채로 port 밖으로 꺼냈다.

다시 복강경으로 담낭이 있었던 간의 경계를 살핀 뒤, 식염수를 간에 분사한 후 석션(suction) 한다.

마지막 설치한 single port를 빼내고 근육과 피부를 수쳐(suture, 봉합) 하고 수술을 끝낸다.

“하! 끝났다.”

태경은 당낭염 수술로는 느낄 수 없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대단한 집중력이다.’

의진은 태경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그야말로 혼자서 원맨쇼를 하는 1인 수술에 단 한 번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2cm는 넘겠는데…….”

태경은 주머니에서 담낭을 꺼내 안에 들은 돌을 확인했다. 2cm 하나와 1cm 크기 네 개. 총 다섯 개의 돌이 환자를 극한의 통증으로 내몰았던 주범이었다.

“돌 크기가 상당하네요. 선생님 정말 수고하셨어요. 옆에서 얼마나 쫄렸는지 몰라요.”

“수술 중에 나 때문에 선생님도 놀랐을 텐데 수고했어요.”

“안 그래도 제가 수술방에서 오늘처럼 똥줄 타 본 게 처음이었다니까요.”

“선생님. 환자 대기실에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급히 가 볼 데가 있어서요.”

무사히 수술을 끝냈다는 안도감을 보이던 태경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네, 환자는 제가 대기실에 옮겨 놓을게요. 근데 어디 가시려고요?”

“범인 검거해야죠.”

“범인이요?”

“수술 중 환자 버리고 도망간 범인이요.”

“설마 이찬희 선생이요?”

“그럼 부탁해요.”

“저기, 선생님!?”

태경은 의진이 부르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수술실을 급히 나섰다.

“신화대 가서 성격 다 죽었다고 하더니 수술실 카리스마랑 환자 일이라면 욱하는 건 여전하네.”

* * *

“선생님. 우리 집사람 괜찮은가요?”

태경은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던 보호자를 만났다.

“수술은 아주 잘 끝났습니다. 담낭에 있던 담석도 다 제거했고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환자분은 마취 깨면 입원실로 옮겨질 겁니다.”

“다 늦은 시간에 받아 주는 병원도 없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보호자는 태경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보호자 앞에서 친절하게 응대하던 그는 웃음기 싹 가신 얼굴로 이찬희를 찾아 나섰다.

* * *

‘선생님! 저 도저히 안 되겠어요. 저…… 나가 봐야 할 거 같아요.’

숙직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던 이찬희는 조금 전 자신의 했던 말을 떠올렸다.

“수술 중에 뛰쳐나오다니.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시겠지?”

이찬희는 땅이 꺼질 듯 묵직한 한숨을 연신 내뱉으며 자신을 타박했다.

“미친놈이다. 진짜 나는 미친놈이야.”

인턴 시절부터 태경의 활약상을 익히 알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억을 줘도 두 번은 안 따는 보드를 자격증처럼 모은 사람.

수술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기에 동기들 중에서는 태경의 수술실을 들어간 게 자랑일 정도였다.

게다가 환자를 대하는 스킬까지 배울 점이 많은 태경을 의사로서 동경했다.

그래서 이찬희는 태경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누구보다 기쁘고 고대했다.

“하! 어떡하나.”

그런데 그렇게 존경하는 선생님과의 첫 수술에서 도망을 쳤으니 물을 엎지르다 못해 증발까지 시켜 버린 꼴이었다.

“미치겠다.”

쾅-

순간 숙직실 문이 부서질 듯 열리고 태경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찬희.”

마치 성난 사냥개가 돌진하는 모습 같았다. 그 모습에 이찬희는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뒷걸음질을 쳤다.

“너 뭐야. 너 뭔데 여기서 쉬고 자빠져 있어?”

“죄, 죄송합니다.”

“뭐하는 놈이냐고. 의사라는 놈이 수술실을 뛰쳐나가?”

“…….”

“그것도 환자가 마취를 한 채로 버젓이 베드에 누워 있는데 어!?”

“……죄송합니다.”

“죄송? 내가 지금 너한테 사과 받자고 이러는 거 같아?”

“아닙니다.”

“이찬희 선생 의사 아니야?”

“…….”

“다시 한번 묻는다. 이찬희 너 의사 아니야?”

“의사……맞습니다.”

“의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를 버리고 가면 안 돼.”

그 어떤 반박조차 할 수 없는 당연한 말이었다.

취객이 얼굴에 침을 뱉어도 발길질을 하고 쌍욕을 해도.

심지어 손찌검을 당할지라도 의사는 환자를 외면하면 안 된다.

환자를 고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이찬희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잘못했습니다.”

이찬희는 화가 난 태경에게 고개를 푹 숙인 채 다시 한번 사과했다.

“왜 나간 거야. 이유나 좀 들어 보자.”

“그게…….”

“말 안 할 거야?”

“바소바갈 사인코피(Vasovagal Syncope, 미주신경성실신) 때문에 그랬습니다.”

“바소바갈 사인코피 때문에 나갔다고?”

“네. 긴장 때문에.”

태경은 조금 의아했다. 미주신경성실신은 매년 인턴 한 명쯤은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이제 막 수련을 시작한 새내기 인턴들이 현장에서 극도로 긴장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찬희는 인턴이 아니었다.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선생님. 제가 실은…….”

태경이 질문하려던 찰나 머뭇하던 이찬희가 입을 열었다.

“수술실 공포증이 있습니다.”

“……!”

이찬희의 말을 들은 태경의 얼굴 위로 벙찐 표정이 그려졌다. 곧이어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 선생?”

“네, 선생님.”

“고개 들어 봐.”

고개를 든 이찬희를 주의 깊게 보던 태경은 갑자기 숙직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손에 무엇인가 들고 금세 되돌아왔다.

“누워.”

“예?”

“뭐가 예야. 말귀 못 알아들어? 거기 누우라고.”

단호한 말투에 이찬희는 눈치를 보며 침대에 누웠다.

“주먹 줘.”

태경은 주먹을 쥔 이찬희 왼쪽 팔에 능숙하게 정맥 주사를 찔렀다.

‘N/S(normal saline, 생리식염수)잖아. 실신했다고 해서 놔 준 건가?’

이찬희는 태경이 자신에게 수액을 넣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보통 실신한 경우 누워서 수액을 맞으면 빠르게 회복이 된다.

“저, 선생님.”

슬쩍 태경의 눈치를 살피던 이찬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입 닫아라.”

“…….”

“너 이거 다 맞을 때까지 꼼짝 말고 누워 있어.”

수액이 들어가는 걸 확인한 태경은 쾅 소리와 함께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나 완전히 찍힌 거 같은데…… 돌겠네. 나도 내가 한심스럽다 진짜.”

* * *

“참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으려던 손길이 황당함에 갈피를 잃어버렸다.

‘수술실 공포증이 있습니다.’

GS(외과의)에게 수술실 공포증이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린가.

“어이가 없네.”

의사도 사람이다. 그렇기에 수술이 두려울 수 있고 피가 무서울 수도 있다. 의대생 시절 해부학 실습을 하다 보면 구토를 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다.

결국 그들은 나중에 환자의 상처를 직접 보거나 수술을 하지 않는 과를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외과의라면 말이 좀 다르다. 외과의와 수술실은 바늘과 실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하! 어떡해야 하냐.”

이찬희에게 사정을 들어 봐야 알겠지만 어찌됐건 태경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응급 수술에 이 선생 일까지. 출근 전부터 아주 정신이 없죠?”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태경이 고개를 들었다.

“아까 수술실에선 인사를 못 드렸네요.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마취 담당입니다.”

의진의 얼굴을 제대로 본 태경은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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