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3화 (13/472)

13화. 다섯 번째 바이탈

“오랜만이에요. 선배.”

“정의진?”

“너무 놀라는 거 아니에요?”

새로 일하게 된 병원에서 의진을 보게 될 줄이야. 태경은 마치 첫사랑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그럼 아까 수술실에서 있던 마취의가 너야?”

“네. 전 수술실 들어가자마자 바로 알았는데 선배는 모르던데요.”

당연했다. 처음 마취 준비했을 때는 얼굴을 잘 보지 않았다.

게다가 혼자서 수술을 하는 탓에 평소보다 더 집중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환자 외의 다른 것을 쳐다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선배가 우리병원 책임자로 오다니……. 아까 선배 보고 순간 꽤 놀랐어요.”

놀란 건 태경 역시 마찬가지다. 의진은 같은 의대 후배였다.

청순한 얼굴에 활발하고 털털한 반전 매력으로 동기와 후배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의진을 알게 된 건 의료봉사 때 같은 조원을 하면서였다.

아싸인 탓에 친한 동기가 없던 자신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고마운 후배였다.

‘여기서 정의진을 보다니…….’

가끔씩 의대 시절이 떠오르면 한 번씩 생각나던 사람이 의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놀라웠다.

얼마나 놀랐으면 머릿속에 있던 이찬희의 수술실 공포증을 순간 잊고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이에요.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요.”

“그러게 반갑네. 마취 전공했구나? 잘 지냈어?”

“아프리카에 있다가 한국 들어온 지 좀 됐어요.”

“아프리카?”

“네. MSF(국경없는의사회) 있었거든요.”

“대단하네. 고생했겠다.”

“아뇨. 보람 있었어요. 그보다 선배는 괜찮아요?”

“나……?”

“실은 신화대병원에 동기가 있어서 우연히 선배 소식 들었거든요.”

“아, 교수 떨어진 거? 이미 지난 일이기도 하고 지금은 괜찮아. 그나저나 여기서 일하긴 어때?”

“여기 되게 재미있어요.”

태경은 그녀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의사 경력 10년이 넘은 사람이 일하는 게 재미있다니 신기했다.

“급하게 환자 보지 않고 꼼꼼하게 진료 볼 수도 있고. 뭐랄까 여기 있으면 진짜 의사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의진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늘 정신없이 수백 명의 환자를 빠르게 보다 보면 태경은 의사로서 아쉬움이 느껴지곤 했었다.

“듣기로는 병원 사정이 어렵다던데.”

“저희야 월급 받는 입장이니까 아직까지는 괜찮은데 원장님이 걱정이죠.”

“원장님이 왜?”

“평생 모든 돈에 대출까지 받아 내부 단장했는데 환자가 점점 줄고 있으니 보통 일이 아니죠.”

“원장님께 그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네.”

아픈 아내와 암 수술로 회복 중인 본인 그리고 병원 문제까지. 여러 문제가 있는 가운데도 늘 얼굴에 웃음을 달고 있던 김철기 원장이 태경은 대단하다고 느꼈다.

“대형 병원이 들어서니 면접 보러 오는 사람도 별로 없었겠네.”

“한 사람도요. 원장님은 그럴수록 더 믿고 맡길 수 있는 후임자를 찾겠다고 걱정 말라고 하셨고요.”

보통은 사정이 좋지 않은 병원에 일하게 되는 걸 반기지 않는다.

특히나 환자가 없는 병원은 그만큼에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소리니 더할 것이다.

하지만 태경은 내부 사정을 말하지 않는 김철기에게 서운한 감정 따윈 들지 않았다.

오히려 사정이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빚을 갚아 준 그에게 감사했다.

“아무튼 선배가 우리병원에 오다니 마음이 든든하네요.”

“갑자기 책임감이 막중해지는데?”

“그러라고 드린 말씀입니다.”

“그나저나 이찬희 말이야. 수술실 공포증 있다고 하던데.”

“맞아요. 선배 혹시 개복치라고 알아요?”

“잘 놀라는 물고기 아닌가.”

“맞아요. 깜짝깜짝 잘 놀라는 사람보고 개복치라고 하잖아요. 이 선생 수복치에요.”

“수복치?”

“수술실만 들어가면 잘 놀라서요.”

태경은 그제야 김철기 원장이 준 외장 하드에 있던 ‘이찬희는 수복치’라는 말이 이해가 됐다.

“그럼 수술실을 아예 못 들어오는 건가?”

“좀 특이한 게 바짝 긴장을 하긴 해도 미리 정해진 수술은 그럭저럭 소화해요.”

“그런데?”

“오늘처럼 응급으로 갑자기 수술실에 들어오면 실신해요.”

“근데 GS(외과)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GS가 수술실을 무서워한다는 게 참…….”

“황당하시죠?”

황당하다 못해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하!”

외과는 응급수술도 많고 특히 수술실은 실과 바늘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런데 외과를 선택한 사람이 수술실 공포증이라니.

“저도 처음에 그랬어요.”

“어떻게 GS라는 녀석이…….”

“그리고 정확히 표현하자면 GS인 듯 GS아닌 GS라고 할까요?”

말장난도 아니고 도대체 저게 무슨 소리인지 해석할 수가 없었다. 한국말인데도 이해할 수 없는 말에 태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GS아닌 GS?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필기를 1등하고 실기는 못 봤대요.”

“뭐……뭐야!”

수술실 공포증에 이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유가 뭐래?”

전문의 실기시험은 진짜 술기를 하는 것과는 달랐기에 실기를 못 봤다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실기 당일 아침에 극도로 긴장해서 실기장 앞에서 쓰러졌대요.”

‘이게 말이 돼? 참 나!’

듣도 보도 못한 사연에 태경은 잠시 할 말을 잃더니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왔다.

“미친놈이네!”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제가 보기엔 이 선생 외과의로서의 자질은 충분하거든요. 본인도 되게 노력하는 거 같은데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때도 있어요.”

“이 선생 본인이 제일 답답하겠네.”

“그러니까요. 여보세요?”

대화를 하던 의진은 주머니에서 격하게 울리는 벨소리에 급히 전화를 받았다.

-야? 정의진! 너 어떻게 된 거야. 생일 초 불다 말고 뛰쳐나갔으면 연락을 줘야지. 걱정하잖아.

“선배. 잠시 만요.”

의진은 잠시 자리를 피해 친구의 전화를 받고 돌아왔다.

“너 오늘 생일이야?”

“12시 지났으니까 오늘 아니고 어젠데요.”

“환자 수술도 잘됐으니까 어서 가 봐.”

“그럼 먼저 가 볼게요.”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의진을 보던 태경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정의진 선생?”

“네?”

“앞으로 잘 부탁해.”

“저도요. 선배. 잘 부탁드려요.”

* * *

의진이 돌아간 후 진료실로 향하던 태경이 걸어가던 방향을 바꿨다. 담석 수술한 조말례 환자의 상태를 보기 위함이었다.

“……!”

그런데 병실을 향해 걸어가던 그가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당연히 베드에 누워 있을 환자가 병실 앞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인 채로.

“선생님? 안 그래도 내려갈 참이었는데. 여보. 선생님 오셨어.”

태경을 본 보호자가 환자를 다독이며 말했다.

“환자분 좀 괜찮으세요? 누워 있지 않고 왜 나와…….”

말을 하던 태경은 별안간 고개를 든 환자를 보고 순간 말을 잊지 못했다.

“선생님. 흑!”

환자는 일그러진 표정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쇄, 쇄……골이 잘려 나가는 거 같아요.”

수액바늘이 꽂힌 손으로 자신의 쇄골을 가리킨 환자의 눈빛은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이 사람이 글쎄 마취가 깬 뒤부터 쇄골이랑 그 주변이 아프다고 난리입니다.”

“정말이에요. 벽돌로 짓누르는 거 같다가도 마치 뾰족한 뭔가가 주변을 찌르는 느낌까지 들어요.”

환자는 자신의 통증을 설명하려 애썼다.

“선생님 혹시 저 수술이 잘못된 거 아닐까요?”

“어허! 이 사람 또 쓸데없는 소리한다. 내가 말했잖아. 선생님께서 당신 수술 잘됐다고 하셨다니까.”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쓸개에 있는 돌멩이만 떼어 내면 되는 거였는데 다른 장기에 병이 있다거나 하는 그런 거 말이에요.”

“훈이 엄마, 당신 무슨 드라마 써?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휴, 당신은 좀 가만있어 봐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드라마를 보다 보니 별소리를 다 하네요.”

조금만 아파도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게 사람이다. 태경은 환자에게 주머니에서 꺼낸 무언가를 보여 줬다.

“어머, 어머! 세상에 이게 뭐예요? 설마 이거 암 덩…….”

“설마 암은 전혀 아니고요. 이게 바로 환자분 쓸개에 있던 돌입니다.”

“이게 제 몸 속에 있던 돌이라고요? 이렇게 큰 게 있었어요?”

“그러게. 엄청 크네.”

2cm정도 되는 담석을 보며 환자와 보호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는 환자분 쓸개 속에 있던 거죠. 이 녀석 때문에 그동안 그렇게 통증이 심했던 겁니다.”

“세상에 멀쩡한 장기에 저런 게 있으니 아플만도 하겠네요.”

“그리고 수술은 아주 깨끗이 잘됐으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 쇄골과 그 주변이 아픈 거죠?”

“가스 때문입니다.”

“가스요?”

그렇다. 환자의 쇄골을 괴롭히고 있던 통증의 원인은 바로 수술 시 사용하는 의료용 가스 때문이었다.

“복강경을 할 때 수술 부위를 잘 보기 위해 복부에 가스를 주입하거든요.”

태경은 통증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설명을 한다고 통증이 당장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환자의 불안감은 떨쳐 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술이 끝나면 환자 몸에서 가스를 빼는데, 일부 남아 있던 가스가 몸을 돌아다니다 빠집니다.”

“그럼 이게 가스가 몸 밖으로 빠지는 것 때문에 그런 건가요?”

“네, 사람마다 가스가 빠지는 부위도 다르고 느끼는 통증도 다릅니다. 못 느끼는 사람도 있고 작은 통증을 느끼는 사람, 또 환자분처럼 통증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죠.”

“가스가 빨리 빠졌으면 좋겠네요.”

“걷는 게 가스 빠지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걷진 마세요.”

“예, 천천히 걸어 다닐게요. 그래도 안 좋은 게 아니라니까 마음은 놓이네요.”

통증은 여전했지만 안 좋은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한 환자와 보호자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저 표정 참 오랜만이네.’

태경이 의사로서 좋아하는 환자들의 표정이다. 환자의 저런 표정을 천천히 마주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환자는 의사라는 존재를 믿고 신뢰한다. 의사의 한 마디에 울고 웃는 게 환자들이다.

태경은 그걸 알기 때문에 병원에서만큼은 환자가 불안감에 걱정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감사해요.”

“아닙니다. 그럼 쉬세요.”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복도를 걸어가던 태경이 멈칫했다.

“맞다! 냄새.”

환자에게서 나던 지독한 분뇨 냄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잠깐, 냄새가 언제부터 사라진 거지?”

원래는 수술이 끝나자마자 냄새 여부를 체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상 못 한 이찬희의 탈주로 수술에 초집중하느라 그때부터 냄새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가만……. 수술이 끝난 순간부터 안 난건가?”

망부석처럼 멈춰 고민하던 태경의 뒤로 조말례 환자가 다가왔다.

“저기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어디 불편하세요?”

빠르게 대답한 태경은 환자를 향해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역시 환자에게서 그 어떤 냄새도 나지 않았다.

“혹시 그 돌멩이 저 주시면 안 될까요? 기념으로 갖고 있으려고요.”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 * *

담석을 건넨 태경은 진료실로 돌아와 지금까지 알아낸 냄새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우선 맡은 냄새를 추려 보자.”

-냄새의 종류-

김덕수 환자 병명: 아나필락시스 /(암모니아 냄새에서 포르말린 냄새로 바뀜.)

조말례 환자 병명: cholecystitis(담낭염, 분뇨 냄새.)

동네 입원 환자들 (대다수 시큼한 냄새와 암모니아 냄새였음.)

트럭에 치여 죽다 살아난 후 태경은 몸 상태를 확인하러 동네 병원에 갔었다.

그 후 아픈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를 확인하기 위해 그 병원 병동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몇 시간 동안 맡은 냄새는 시큼한 냄새와 암모니아 냄새가 전부였다.

그곳에 입원한 환자들의 병명이 모두 같을 순 없을 것이다.

“병명마다 냄새가 다른 건 아니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냄새의 종류는 정해져 있고 아픔의 강도에 따라 냄새가 결정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다음엔 냄새의 단계를 정해 보자.”

-암모니아, 포르말린, 분뇨, 시큼.

“이중에서 제일 약한 순으로 정리한다면 일단은 시큼한 냄새겠지.”

환자의 병명과 냄새의 농도로 단계를 세우면 다음과 같았다.

1단계: 시큼함 (약한 식초냄새)

2단계: 암모니아

3단계: 분뇨

4단계: 포르말린 (골든타임)

1단계와 2단계는 비교적 간단한 병명에서 나는 냄새일 것이다. 그리고 단계가 올라갈수록 환자에게 치명적인 병이라고 생각했다.

“포르말린보다 더한 냄새도 있는 건가? 일단은 4단계 냄새가 나면 중증 환자라는 걸 잊지 말자.”

옥탑방에서 갑자기 쓰러졌던 김덕수의 병명은 아나필락시스다. 항원 항체의 과민 반응을 일으키는 알레르기이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정도로 위험하며 빠른 대응이 중요하다.

김덕수에게서 처음 암모니아 냄새가 났던 건 아마도 심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쇼크로 인해 목숨이 위험할 수준으로 넘어갔을 때 포르말린 냄새로 바뀌었다.

“한 가지 더,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지면 냄새가 변한다는 걸 기억하자.”

태경은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아픔의 냄새를 추가할 생각이다.

이걸 잘 정리해 두면 앞으로 환자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했다.

“이 정도면 다섯 번째 바이탈 수준이군.”

Vital.

환자를 볼 때 필수적으로 보는 네 가지로 혈압, 맥박, 체온, 호흡수를 말한다.

아픈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는 오직 태경만이 느낄 수 있는 다섯 번째 바이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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