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3중 추돌 사고
“선생님, 사고라도 난 걸까요?”
도미노처럼 멈춰선 차를 본 이찬희가 걱정 섞인 눈빛으로 물었다.
“글쎄…….”
차창 밖을 보자마자 사고가 아닐까 했지만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사고는 아니겠지.”
누구보다 TA(교통사고) 환자들의 끔찍한 경험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이런 곳에서 사고가 나면 위험하겠어요.”
이찬희의 말이 맞았다. 현재 차량이 멈춰선 곳은 사차선 도로. 그것도 신호등이 없는 국도였다.
신호등이 없는 도로에서는 차량이 높은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사고가 더 크게 난다. 그 말인즉 환자의 부상이 심각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어디 도로 공사하는 거겠지. 툭하면 도로들 뜯어 대기 바쁘잖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환자가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여보, 무슨 일이래요?”
하지만 환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창 밖에 시민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교통사고야. 아주 크게 사고 났어.”
“교통사고요?”
“그래, 3중 추돌이래.”
“3중 추돌이요?”
“어떡해. 사람 많이 다쳤겠다.”
“말도 마. 차가 박살 나고 난리도 아니야.”
“어머머머 세상에!”
“사고차 중에 구급차도 보이고 아주 아수라장이야.”
“구급차도요? 어떡해. 여보 119랑 경찰에 신고부터 해요.”
“다행히 경찰차 한 대랑 구급차 한 대는 와 있더라고. 저분들이 구조 요청했겠지.”
“그나저나 다친 사람들 큰 부상은 아니어야 할 텐데.”
“누가 아니래. 운전 조심해야지. 애들 차에 있잖아? 위험하니까 그만 차에 들어가자고.”
“그래요.”
차창 밖 사람들의 대화에 집중하던 태경의 표정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3중 추돌이라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역시나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교통사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3중 추돌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절로 부상자에 대한 생각부터 들었다.
‘구급차 한 대가 3중 추돌 환자를 돌보기에는 무리다. 저 중에 급한 외상 환자라도 있다면 골든타임이 급선무다.’
“선생님?”
이찬희는 눈이 마주친 태경을 불렀다.
“밖에 사고가 크게 난 거 같습니다.”
“나도 들었어. 일단 내가 가 볼게. 이 선생 여기 있어.”
“선생님 3중 추돌입니다. 선생님 혼자서는 손이 부족할 것 같…….”
“그럼 환자는? 우리 지금 환자 전원 중이야.”
“아!”
수술실이 두렵긴 해도 이찬희도 GS(일반외과)다. 그 역시 TA환자의 부상을 잘 알기에 순간적으로 전원 환자를 잠시 잊고 있었다.
“늙은이는 괜찮으니까 두 분 다 얼른 나가 보세요. 큰 사고라면서요.”
“아닙니다. 선생님 전 환자분과 여기 있을 게요.”
“그래. 환자분 잘 살피고 있어.”
탁-
‘냄새!’
사설구급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람에 실려 온 냄새가 그를 반겼다.
사고 현장과의 거리 때문인지 강도는 미약했지만 여러 단계의 냄새들이 섞여 있는 듯했다.
* * *
“사람들이 말이야 운전 좀 잘할 것이지. 저걸 어쩌나 그래.”
“아까 보니까 구급대원도 다친 거 같던데.”
태경은 정차된 차량과 밖에 나온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발길을 재촉했다. 그 옆으로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구급대원 한 명이 사람을 구하다 뒤차에 받혀서 피떡이 됐더라고.”
“딱해라. 이런 거 보면 난 구급대원들 참 불쌍해.”
‘피떡’이란 말을 듣자마자 태경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좀 도와주세요.”
“여기 사람이 많이 다쳤어요!”
현장이 가까울수록 다급함을 토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점차 짙어졌다. 또한 냄새의 강도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던 발걸음이 아스팔트 위에 멈춰서고 태경의 시선 안에 현장이 들어왔다.
“이럴 수가! 도대체 어떻게 사고가 났길래…….”
마침내 마주한 현장은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사고 난 차 중에는 종잇장 구겨지듯 형태를 잃어버린 차도 있었다.
“윽!”
그리고 휘몰아치듯 강렬한 4단계의 포르말린 냄새가 그의 후각을 강타했다.
‘독하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독한 냄새다.’
김덕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한 농도의 포르말린 냄새였다. 어찌나 독하던지 후각을 타고 들어와 뇌 속까지 얼얼한 기분이었다.
“시민분들 여기서 이러시면 정리가 힘들어집니다. 안전을 위해 차로 돌아가 주세요. 저기요!”
몰려 있는 사람들을 제지하던 경찰 한 명이 현장 안으로 들어서는 태경에게 소리쳤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여기 지금 사고 현장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알면 얼른 나가세요. 사고 현장에 함부로 들어오시면 위험합니다.”
“의사입니다.”
“아니 글쎄 의사……예? 의사 선생님이시라고요?”
“네.”
태경이 걸치고 있던 점퍼를 벗었다. 흰색 가운은 아니었지만, 수술복과 함께 구멍 뚫린 슬리퍼가 영락없는 의사의 복장이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현장으로 들어온 태경은 본능적으로 강한 냄새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환자의 상태가 딱 봐도 좋지 않아 보였다.
“출혈이 심한데 봐도 되겠습니까?”
두 환자 사이를 오가며 고군분투하던 구급대원이 태경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의사입니다.”
의사라는 태경의 말에 구급대원도 내심 안심하는 눈치다. 그들도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이렇게 출혈이 매섭게 된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선생님. 상황이 좀 안 좋습니다.”
수많은 현장을 누빈 대원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지금처럼 출혈이 매서우면 병원에 도착 전에 환자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특히 지금 이 환자분은 사고 난 차량이 많이 찌그러져 어렵게 구조했습니다.”
“환자의 상태를 보니 아마도 차에서 꺼내는 도중에 출혈이 심해진 것 같네요.”
“네, 맞습니다.”
환자의 출혈이 실로 상당했다. 정확히는 왼쪽 팔 중간인 오금 부위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제가 좀 보겠습니다.”
“손 뗍니다.”
태경의 말에 구조대원이 어렵사리 누르고 있던 손을 뗐다.
푸슉-
그러자 피가 다시 용솟음치듯 올라왔다.
‘이대로는 힘들다. 더 이상 거즈로 하는 지혈은 의미가 없겠어.’
지금처럼 박동성으로 피가 나오는 것은 동맥이 손상되었다는 뜻이다. 동맥은 심장에서 나오는 혈압을 그대로 받기 때문에 거즈로 압박해서는 지혈이 거의 불가능하다.
“아터리(artery, 동맥)가 손상됐어요. 식염수랑 혈관 집을 만한 게 있습니까?”
“예!? 혹시 혈관 집으시게요?”
혈관을 잡는다는 소리에 놀란 구급대원이 되물었다.
“구급차에는 멸균된 수술 기구들은 없습니다. 아! 켈리 겸자(가위 모양으로 앞부분에 작은 홈과 손잡이 부분에 고정용 돌기가 있는 수술 도구)는 있어요.”
“그럼 대원님, 겸자랑 멸균 장갑 그리고 요오드 좀 부탁해요.”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구급차에서 물품을 챙겨 온 구급대원이 플라스틱 병을 태경에게 내밀었다.
“선생님. 요오드 대신 헥시딘을 들고 왔습니다.”
“고마워요.”
요오드는 상처 난 곳에 바르는 빨간 약으로 헥시딘과 같이 소독 약품이다. 다만 붉은색의 요오드보다 불투명의 헥시딘이 시야 확보에 용이했다.
탁-
새빨간 피를 잔뜩 흡수한 거즈 덩어리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선생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베테랑인 구급대원이 시뻘건 근육과 뼛조각들이 보이는 환자의 왼쪽 팔에 헥시딘 한 통을 들이 부었다.
그사이 태경은 멸균된 장갑을 착용하고 소독된 켈리 겸자를 집어 들었다.
“선생님. 지금 상황이 열악한데 혈관 잡을 수 있으시겠어요?”
“해야죠. 환자를 여기서 죽게 할 순 없잖아요.”
굉장한 집중력을 요하기에 태경은 자신의 숨소리조차를 죽였고, 덩달아 대원도 숨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신중한 손길이 환자를 향하던 그때였다.
“꺄악! 이봐요. 당신들 뭐하는 거야!!”
별안간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한 젊은 여자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등장했다.
“어머!! 어떡해. 저 피 좀 봐.”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소주 냄새가 나는 여자는 살짝 취기까지 있었다.
“환자분 갑자기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내 다리로 돌아다니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그게 아니라 아직 처치 안 끝났어요.”
“처치고 나발이고 난 그런 거 모르겠고.”
목에 깁스를 하고 얼굴에 찰과상을 입은 여자는 뒤따라온 구급대원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기 저 남자가 내 남자친구라고요. 아니 근데 저 사람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네!?”
여자는 환자의 동승자였다. 교통사고는 같은 차에 탄 경우라도 사고에 따라 부상 여부의 차이가 있었다.
‘암모니아 냄새다.’
남자 환자에게서 나는 포르말린 냄새가 강했지만 태경은 여자에게서 2단계 냄새가 나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여자는 나중에 치료하자.’
외관상 느껴지는 것도 그렇고 다행히 여자는 남자에 비해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았다.
“석훈 씨? 내 말 들려? 오빠?”
“환자분 지금 의식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게다가 처치 중에 함부로 돌아다니시면 안 돼요.”
“아! 됐고요. 지금 저 사람 뭔데 우리 오빠 함부로 만지는 거예요.”
“저 사람이 아니라 저분 의사 선생님이세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아니, 그런데 의사가 왜 가운도 안 입고 있어요? 돌팔이 아니에요?”
“환자분 일단 저쪽으로 가서 부상 치료부터 받으세요.”
달래는 구급대원의 말에도 여자의 태도는 시종일관 안하무인이었다.
걱정되는 보호자의 심경을 이해하지만 이럴수록 치료에 방해가 될 뿐이었다.
* * *
“혈압 정상이네요.”
사설구급차에 남은 이찬희는 환자의 혈압과 맥박을 체크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불편하신 곳 있으시면 바로 말씀하세요.”
“걱정 말어. 이 선생 벌써 그 말만 세 번째인 거 알아?”
“아, 제가 그랬나요?”
환자의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이찬희의 정신은 온통 사고 현장에 가 있었다.
더군다나 혼자서 환자를 돌보고 있을 태경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탁-
“이거 보통일이 아닌데요?”
그사이 볼일을 보고 현장 근처를 갔다 온 사설구급대원이 차로 돌아왔다.
“많이 심각한가?”
“아이고 말도 마세요, 어르신. 지금까지 교통사고 현장도 꽤 다녀 봤는데 이 정도 큰 사고는 저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큰일이네. 구급차가 빨리 좀 와야 할 될 텐데…….”
“제가 전화해 봤는데 오는 중이라고 하네요.”
“이 선생?”
환자가 이찬희를 불렀지만 창문 너머 작게 보이는 사고 현장에 정신 팔린 그는 대답이 없었다.
“이찬희 선생님?”
“네. 부르셨어요.”
“가 봐.”
“네?”
“사고 현장으로 가 봐.”
“아닙니다. 환자분 옆에 있어야죠.”
“나 멀쩡해. 중증 환자 아니니까 내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
“어르신은 제가 잘 보고 있을 테니까 어서 가 보세요.”
사설구급대원도 거들며 환자의 말에 힘을 실었다.
“안 그래도 어떤 사람이 김 선생님 치료하는데 방해하는 것 같던데요.”
“방해요? 경찰은요?”
“경찰관이 있는데 둘 다 교통정리 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들었지? 아픈 사람 치료하는 게 의사잖아. 얼른 가 봐.”
“대원님 환자분 좀 잘 봐주세요. 저 갔다 올게요.”
이찬희는 서둘러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