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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바이탈-16화 (16/472)

16화. 쇼크 상태

“스탑! 잠깐만요. 그거 뭐예요?”

흥분한 여자를 뒤로하고 태경이 혈관을 집으려 했다. 그러자 그녀는 목소리를 한껏 올리며 역정을 쏟아 냈다.

“그거 손에 든 거 그거 칼이에요? 아닌가? 아무튼 그걸로 찌르려는 건 아니죠?”

구급대원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고는 있었지만 1미터 안팎에서 고성을 지르는 탓에 치료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이봐요. 아저씨 당신 의사는 확실한 거죠? 피나 좀 멈추게 해 봐요.”

“보호자분 지금 환자분이 급한 상황입니다. 치료를 해야 하니까 협조 부탁드립니다.”

“아니, 내 남자친구 다쳐서 걱정하는 것도 하지 말란 소리야? 내가 누구 딸인 줄 알아?”

“어휴, 너무하네. 그만 좀 해요.”

급기야 안전선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트집 잡는 여자를 질타하기 시작했다.

“자기 남친이 다쳤다는데 왜 저러는 거야.”

“그러게 말이에요. 가만히 있을 것이지 치료를 방해하고 있네.”

“아니 이봐요! 내가 지금 치료를 방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해요.”

“듣자 하니 남자친구 같은데 조용히 해야 의사 선생님이 치료에 집중할 거 아니에요.”

“거참 예의는 밥 말아먹었나. 좀 조용히 합시다.”

“아니 당신들이 뭔데 상관이야. 이 사람이 의사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우리 오빠 잘못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거야?”

시민들에게 발끈한 여자가 또다시 말꼬리를 잡으려던 그때였다.

“의사 맞습니다!!”

차에서부터 뛰어오고 있는 이찬희가 복식호흡으로 사자후를 날리며 소리쳤다.

“의사 맞아요. 저기 계신 선생님도 저도 모두 의사 맞습니다. 보호자분 이거 보이죠?”

“……예?”

이찬희는 시선을 끌며 여자가 방해하지 못하게 그녀 앞을 막았다.

“여기 가운에 있는 병원 마크랑 이름 보이죠?”

“아…… 보, 보이네요.”

그사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태경은 매서운 눈빛으로 환자의 동맥을 찾아 손을 내렸다.

그리고 확신에 찬 손길은 마치 독수리가 먹잇감을 낚아채듯이 망설임 없이 손상된 동맥을 찾았다.

“멈췄다!”

“피가 멈췄어요.”

“세상에 의사 선생님이 사람을 살렸네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솜씨에 감탄하며 소리쳤다.

“선생님, 진짜 대단하세요.”

이찬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르다. 이 사람은 달라.’

수술방에서도 손상된 동맥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주변의 소란과 함께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정말 감각적인 솜씨였다.

“다행이다.”

안도하는 태경의 옆으로 이찬희 역시 감탄하며 물었다.

“브라키어 아터리(brachial artery, 상완동맥) 맞죠?”

“맞아. 잘 아네. 오금 부위 근처고 아까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면서 브라키어 아터리라고 생각했지.”

“이제 응급 처치만 하면 되겠네요.”

“근데 이 선생, 환자는 어쩌고…….”

“당연히 환자 상태 정확히 다 체크하고 왔습니다. 그럼 전 부목이랑 약 좀 챙겨 오겠습니다.”

환자에 대해 묻는 태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찬희는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요! 잠시 만요.”

환자에게 필요한 깁스와 약품을 가지러 가는 이찬희를 구급대원에게 제지당했던 여자가 불러 세웠다.

“우리 오빠 괜찮은 거 맞죠?”

“네, 괜찮습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어요.”

“정말이죠? 전 우리 오빠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구급차 오면 병원으로 옮겨져 나머지 치료도 받을 겁니다.”

“휴!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보호자분도 얼른 치료 받으세요.”

“치료요? 잠깐 기절한 것뿐이지 나 괜찮은데.”

치료라는 말에 여자가 의아해하자 이찬희와 구급대원이 차례대로 말을 이었다.

“안 괜찮은데. 여기 이마에서 피 나잖아요.”

“예! 뭐라고요? 피, 피……요!”

“저기 환자분 제가 아까부터 계속 말씀드렸잖아요.”

“어머, 뭐야! 이게 웬 피야!!”

자신의 이마를 만진 손에 묻은 피를 본 여자는 질겁했다.

“나 이마 찢어진 거야? 그런 거예요?”

“환자분 치료해야 하니까 손으로 만지지 마세요.”

“미친! 이마에 보형물 넣은 지 한 달밖에 안 돼서 상처 나면 안 되는데. 어휴 짜증나!”

남자의 생사를 두고 있는 대로 난리를 치던 여자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구급대원을 따라나섰다.

“많이 찢어졌어요? 이게 얼마짜리 이마인데.”

아니 오히려 앞장서며 발길을 재촉했다.

“어쩐지 운전 개떡같이 하더라니. 빨리 가요. 빨리!”

아마도 남자친구의 부상보다 보형물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 * *

이찬희가 빠른 걸음으로 구급차로 들어섰다.

현장에서 사고 난 사람들의 응급 처치를 하느라 예상대로 구급차는 텅 비어 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다.”

차 안의 물품을 허락 없이 가져가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환자가 더 급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빨리 구급차량이 더 와야 할 텐데.”

필요한 물품을 챙긴 이찬희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선생님. 여기 부목이랑 약 챙겨 왔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이찬희가 태경의 곁으로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나타난 구급대원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선생님. 한 분만 저희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그 구급대원은 소란을 피우던 여자를 데려갔던 대원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사고로 차문이 열리지 않아 못 내리는 시민이 있어 가 봐야 합니다. 동료 혼자서는 힘이 부족하여 제가 가 봐야 하는데 경미한 부상을 당한 사람들을 치료해 주실 수 있나 해서요.”

“물론입니다. 이 선생이 가서 좀 도와드려.”

“그럼 환자 처치하시는 것만 도와드리고 바로 갈게요.”

“아니야. 혼자 할 수 있으니까 지금 가서 도와드려.”

“네, 알겠습니다.”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마무리 처치만 남았기에 태경은 이찬희를 구급대원에게 바로 보냈다.

“다 됐다.”

태경은 신속하게 마무리 처치를 끝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계속 나잖아!”

냄새 때문이었다. 포르말린 냄새가 여전히 진동했기 때문이다.

“이 환자의 냄새가 아니다. 그렇다면 더 있다는 얘긴데.”

처치를 끝낸 환자에게서는 더 이상 포르말린 냄새가 나지 않았다.

태경은 아수라장인 이 사고 현장에 또 다른 응급 환자가 있다고 확신했다.

“늦기 전에 찾자.”

그리고 그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려던 그때였다.

“저, 저기……요!!”

다급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태경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시죠?”

“네, 의사입니다.”

젊은 남자 구급대원의 상의와 양손에 피가 흥건했기 때문이다.

그는 피 묻은 손을 파르르 떨며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호소했다.

“저 좀……도와주세요.”

태경은 구급대원을 보며 확신했다. 응급 환자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구급대원을 따라 서둘러 환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예상대로 강한 포르말린 냄새와 함께 응급 환자가 보였다.

“역시.”

태경은 환자를 보자마자 작게 읊조렸다.

방금 전, 구급대원의 손과 상의에 가득한 피를 보자마자 박동성 출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구급대원 유니폼을 입고 있는 여성 환자는 정확히 왼쪽 상복부에서 출혈이 나오고 있었다.

‘같은 박동성이지만 다르다.’

조금 전 보던 환자도 박동성 출혈이지만 두 환자의 양상이 달랐다.

첫 번째 환자의 피가 솟구쳤다면 지금 이 구급대원의 출혈은 끓는 물처럼 꿀렁꿀렁하게 피가 나오고 있었다.

‘구급대원도 다치고 아주 아수라장이야.’

차 밖에서 사람들이 말했던 다친 구급대원이 눈앞의 환자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태경은 무릎을 굽혀 환자 옆에 자리했다.

“선배, 정신……좀 차려 봐요. 선생님, 선배가 정신을 안 차려요.”

구급대원이 거즈로 구멍 난 곳을 메꾸며 지혈하려 했지만, 핏줄기의 힘에는 무력하게만 보였다.

“김미경 환자 의식을 잃은 얼마나 됐죠?”

피로 물든 유니폼 위로 환자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태경은 흥건한 피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복강 내에 시선을 꽂으며 물었다.

“얼마 안 됐습니다.”

환자는 이미 쇼크 상태로 의식이 온전하지 않았다.

“자세히 말해 주세요.”

“제가 사고……아니.”

“대원님, 괜찮아요.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천천히 말해 봐요.”

“후! 그게 그러니까…….”

횡설수설하던 구급대원은 천천히 설명을 덧붙였다.

정신이 온전했던 환자는 배에 박힌 구조물을 빼다가 출혈이 시작됐고 그 뒤 의식이 희미해졌다고 했다.

“선생님, 우리 선배 괜찮겠죠? 사실 제가 오늘이 출근한 지 일주일 됐습니다. 원래 제가 구조하고 있던 환자였어요. 그런데…….”

자신 때문에 선배가 다쳤다는 대원은 이제 막 사회 첫발을 디딘 신입이었다.

“현장이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이렇게 큰 사고가 처음이라 당황하니까 선배가 다른 환자 보라고 하면서 본인이 보다가…… 절 도와주다가 차에 치였어요. 나 때문에 사고 당한…….”

그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하소연을 쏟아 내기 시작 했다.

“선배 진짜 좋은 사람이거든요. 우리 관내에서 표창장도 받고 시민분들도 많이 살리고 후배들도 잘 챙기고…….”

“저기요?”

태경이 신입 대원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내 탓이에요.”

그는 피 묻은 손을 파르르 떨며 의식을 잃은 선배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혼잣말을 할 뿐이었다.

“나 때문에 괜히 선배가 나 때문에…….”

“야!!”

보다 못한 태경이 신입 대원의 명찰을 확인한 뒤 버럭 소리를 쳤다.

“이기탁!! 정신 안 차려!”

그리고 바닥에 있던 헥시딘 한통을 그의 손에 안기며 말을 이었다.

“이기탁 대원, 선배 안 살릴 거야?”

“아, 아니요. 선배 살 수 있습니까?”

“살려야지.”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그리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그렇지만 저 때문에…….”

“당신 선배는 환자를 구하다 다친 거지 당신 때문에 다친 게 아니야. 그러니까 자책하지 말고 선배 살리고 싶으면 그거나 부어. 얼른!!”

“아, 네……네.”

다그치는 소리에 이기탁 대원은 손에 있던 헥시딘을 환자의 복강과 그 주변에 들이부었다.

태경 역시 옆에 있던 헥시딘 통을 들어 같은 곳에 들이부어 소독했다.

“그래도 필요한 건 잘 가져왔네요. 이제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이기탁 대원은 다친 사람 살피러 가 봐요.”

“아닙니다.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미안한 말인데 이기탁 대원 지금 여기 있으면 선배 걱정하느라 아무것도 못해요.”

“그래도…….”

“안 그래도 다른 구급차 도착 전이라 손이 많이 부족해요.”

선배를 걱정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으나 냉정히 말해 그가 곁에 있다고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태경은 멸균 장갑을 착용하며 일부러 냉정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이기탁 씨 구급대원이잖아요. 사람 안 구할 겁니까?”

“아니요. 구하죠, 구합니다. 구할 거예요.”

“잘 생각했어요. 선배는 나한테 맡기고 얼른 가요.”

“네, 선생님. 그럼 선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태경이 신입 대원을 보낸 이유가 있었다.

환자의 원활한 치료나 그가 느끼는 심적 부담을 위해 곁에 없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멘탈이 좀 잡힌 것 같아 다행이네. 일단 거즈부터 치우자.”

장갑을 낀 손이 환자의 복강으로 속히 내려갔다. 태경은 출혈을 막기 위해 구멍 난 복강을 덮은 거즈 덩어리를 걷어 냈다.

“이런!”

그리고 그 순간 거즈에 막혀 있던 피가 다시 끓는 물처럼 뿜어져 나왔다.

집중하는 눈빛 위로 태경의 미간이 구겨졌다.

“젠장! 생각보다 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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