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Spleen
“그러니까 이 돌멩이가 훈이 엄마 쓸개에서 나온 거라고?”
“그렇다니까. 나 이제 쓸개 없는 여자야.”
며칠 전 담석 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는 한결 밝은 표정으로 문병 온 이웃과 대화 중이었다.
“담석 그거 고통이 산통급이라던데……. 우리 시누가 재작년에 그 수술 했잖아.”
“말도 마. 나 아주 죽다 살아났다니까.”
“밤에 구급차 온 거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그래서 이제는 좀 괜찮은 거야?”
“괜찮아. 수술이 잘됐대. 왜 나 밥만 먹으면 속 더부룩하고 자주 체했잖아.”
“맞아, 훈이 밥만 먹으면 속 불편하다고 그랬지.”
“그게 담석 때문에 소화도 잘 안 되고 그래서 내가 고기만 먹으면 특히 더 심하고 그랬던 거래.”
“그래? 수술하길 잘했다. 그나저나 여긴 뭔 놈의 병원이 환자가 이래 없어.”
조말례 환자의 이웃은 텅 빈 병실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훈이 엄마, 이 병원 괜찮은 거야? 서대병원에서 하지 그랬어.”
“서대병원 아고 말도 하지 마. 처음에 거길 갔는데 자리 없다고 가래.”
“정말? 그렇게 큰 병원이 무슨 자리가 없어.”
“몰라. 응급실에 환자가 미어터진대.”
“거긴 병원도 크고 사람도 많아.”
“근데 우리 훈이 아빠가 그러는데 응급실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도 않았대.”
“하긴, 미경 엄마가 거기 갔는데 교수가 어찌나 까칠하고 도도한지 질문도 못 하고 3분 만에 나왔대.”
“여기 병원이 재정비하느라 휴원 중이었는데 나 응급이라고 받아서 새벽에 바로 수술해 줬다니까.”
“세상에 너무 고맙다.”
“내 말이. 여긴 다들 얼마나 친절한지 몰라. 내 담담 의사 선생님은 아주 설명도 꼼꼼하게 해 주더라니까.”
“좋은 의사 만났네.”
그렇게 지인과 대화를 끝낸 환자는 비타민 음료 한 통을 챙겨 의진을 찾아갔다.
* * *
“선생님, 바쁘세요?”
“환자분 어디 불편하세요?”
차트를 보고 있던 의진은 갑자기 찾아온 환자를 보며 벌떡 일어나 다가갔다.
“아니요. 이제 안 아파요. 다름이 아니라 이거 드리려고요.”
“환자분 드시지 뭘 이런 걸 다 주세요. 괜찮아요.”
“지인들이 문병 오면서 잔뜩 사 와서 혼자 먹지도 못해요.”
환자는 괜찮다며 사양하는 의진의 손길에 책상 위에 음료를 내려놓았다.
“별거 아닌데 같이 나눠 드세요.”
“감사해요.”
“간호사 선생님께 들었어요. 마취 선생님이 근무 날도 아닌데 바로 와 주셔서 수술 가능했다고요.”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참 이제 쇄골은 안 아프세요?”
“천천히 걷고 하니까 가스가 다 빠졌는지 안 아파요.”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김 선생님이 환자분 괜찮은지 확인 부탁했거든요.”
“그러고 보니 아침 회진 때 보고 주치의 선생님이 안 보이시네요.”
“김 선생님 환자 이송 때문에 나가셨어요.”
“그러셨구나. 그런 전 이만 올라가 볼게요. 일보세요.”
“네, 음료수 잘 마실게요.”
“저기, 선생님?”
진료실을 나갔던 환자는 다시 들어와 의진을 불렀다.
“네?”
“제가 뭣 좀 물어보려고요.”
“왜요, 어디 아프세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좀 사적인 질문이라서…….”
환자는 어떻게 말을 꺼낼까 싶은 표정으로 멋쩍게 웃었다.
“나 주치의 선생님 말이에요.”
“김태경 선생님이요?”
“네. 내가 보니까 아직 결혼은 안 하신 것 같고 혹시 여자친구 있나 해서요.”
“예! 여자친구요?”
전혀 예상 못 한 질문에 덩달아 의진의 목소리까지 높아졌다.
“아니, 김 선생님 사람이 너무 좋아서. 키도 훤칠하고 인상 서글서글해 실력 좋고 환자한테 잘하고. 사람은 많아도 좋은 사람 찾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렇죠. 저기 환자분 하시려는 말씀이……”
“그게 우리 큰 조카가 있는데 아직 결혼을 안 했거든요.”
“아, 네. 그러세요.”
“대학교 강사고 좀 있으면 교수도 될 거예요. 애가 참 착해요.”
“훌륭한 조카분이시네요.”
“그래서 내가 두 사람을 엮어 주면 어떨까 해서요.”
“있어요!”
“예!?”
“김, 김 선생님 여자……친구 있습니다.”
의진은 순간 있지도 않은 태경의 여자친구의 존재를 알렸다.
“그래요?”
“……네.”
“어쩐지. 있을 것 같더라.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줘요. 그럼 수고하세요.”
환자가 나가자 진료실 문을 닫은 의진은 스스로 당황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미쳤나 봐. 내가 지금 뭐라고 말한 거야.”
* * *
구급대원을 따라나선 이찬희는 비교적 부상이 경미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뭐야! 기다리라고 하고는 왜 안 와.”
“환자분 제가 봐 드릴게요.”
“어머, 아까 그 선생님이네.”
다친 남자 친구 때문에 소란을 피우던 여자가 그를 반겼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예, 여긴 걱정 말고 가 보세요.”
“됐고, 빨리 내 이마 좀 봐 줘요. 심하게 찢어진 건 아니죠?”
여자는 화장용 손거울로 피가 난 이마를 쳐다보며 걱정했다.
“환자분 제가 볼 수 있게 앉아 보시겠어요?”
“선생님 제가 이마 보형물 넣은 지 얼마 안 돼서 지금 자리 잡히는 중인데 보형물 터진 건 아니겠죠?”
“지금으로 봐선 터진 거 같진 않네요. 피도 살짝 찢어진 정도입니다.”
“그래요? 다행이다.”
“그래도 수술한 병원은 가 보는 게 좋아요. 소독해 드릴 테니까 고개 뒤로 살짝 젖혀 보세요.”
포비돈으로 상처 부위를 소독한 이찬희는 거즈로 이마의 붕대를 감아 출혈 부위를 압박했다.
“어머, 선생님 이게 뭐예요? 나 머리 망가지는데 붕대 다른 식으로 해 주면 안 돼요?”
“네, 안 됩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목이 좀 아픕니다.”
여자의 말에 단호박으로 답한 그는 밀려 있는 다음 환자를 살폈다.
* * *
집중하는 눈빛 위로 태경의 미간이 구겨졌다.
“젠장! 생각보다 심하네.”
예상보다 더 많은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로 인해 복강 내 시야가 막혀 버린 것이다.
“큰일이다.”
한 가지 문제가 또 있었다.
‘어둡다.’
조명도 없을뿐더러 고개를 숙여 환자를 보느라 복강 주변으로 그림자까지 진 상태였다.
조금 전 오금 부위 출혈이 있던 남자 환자보다 더 힘든 케이스였다.
그렇다고 의식을 잃은 환자를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래!”
한 가지 희망이 떠올랐다. 침착하게 생각한 태경의 입술에서 해답이 떨어졌다.
“스플린(Spleen, 비장).”
그 희망은 왼쪽 신장과 횡격막 사이에 있는 장기, 바로 ‘비장’이었다.
환자는 지금 비장의 손상으로 인한 출혈이다. 비장 안의 어느 부위가 출혈 부위인지 모르면 아예 비장으로 가는 동맥을 집어 버리면 된다.
태경은 출혈을 무시하고 대동맥과 비장 사이에 소독한 겸자를 넣었다.
“후”
짧은 숨을 내쉰 그가 장갑을 낀 양손을 얼굴 높이로 들어 올렸다.
‘조명이 있어야 한다.’
태경은 장갑이 오염되지 않게 팔꿈치로 주머니를 건드렸다. 핸드폰으로 조명을 대처할 생각이었다.
아뿔싸!
환자에 집중하다 보니 깜빡한 것이 있었다.
핸드폰을 구급차에 두고 온 것과 어차피 소독한 장갑은 오염 문제로 꺼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저기요?”
도움을 청할 요령으로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구조하고 있는 구급대원들이 있는 곳과는 거리가 좀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진행하기로 한 그때였다.
“……!”
자세를 잡기 위해 옆으로 살짝 이동한 태경의 발끝에 무언가 걸렸다.
“랜턴?”
궁하면 통한다더니. 바로 의료용 랜턴이었다. 보아하니 쓰러진 환자 대원의 것인 것 같았다.
“다행이다.”
긴장하던 태경의 얼굴 위로 작게 화색이 돌았다.
작은 랜턴이 이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비록 랜턴이 땅바닥에 있었지만 그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장갑이 오염되면 끝이다.”
손에 낀 장갑이 마지막 멸균 장갑이었다.
태경은 손을 허공으로 쳐들고 앉은 상태로 무릎을 세워 오른발로 랜턴을 고정했다.
그 상태로 허리를 바짝 굽혀 얼굴을 땅바닥에 있는 랜턴 위로 처박았다.
그런 뒤 혀를 쭉 내밀어 랜턴 버튼에 힘을 가했다.
“으!”
말랑말랑한 실리콘 버튼이 눌러질 듯 눌러지지 않았다.
‘더!’
익숙하지 않은 자세 때문에 척추가 뻐근하게 당겨 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살면서 이렇게 혀에 힘을 줘 본 적은 처음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첫 키스를 할 때보다 더 혀에 집중하며 힘을 줬다.
딸칵-
‘됐다.’
그렇게 두 번 더 혀를 움직인 끝에 랜턴의 불이 켜졌다.
“카악! 퉤!”
태경은 곧장 허리를 펴고 환자를 등진 채, 고개를 돌린 뒤 손을 뒤로하고 입안에 고인 침을 뱉었다.
그리고 이기탁 구급대원이 갖고 왔던 사용하고 남은 새 거즈를 지체 없이 입에 물었다.
탁!
입에 거즈를 문채 고개를 숙여 그 상태로 랜턴을 위, 아래 앞니로 꽉 물었다.
거즈를 문 이유는 행여 침이 환자에게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냄새가 더 짙어졌다. 서두르자.’
준비를 마친 태경은 꿀렁이는 핏줄기를 무시하고 환자의 복강 내로 켈리 겸자를 쥔 손을 쑥 밀어 넣었다.
‘박동성을 찾자.’
태경은 혈관처럼 박동성이 느껴지는 곳을 찾기 위해 손끝의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제발…….’
의식을 잃고 출혈하는 환자 때문에 마음은 급했지만 그의 손은 신중했다.
침착하게 다른 장기들이 손상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아니야. 여기도 아니다.’
그리고 비장 사이로 침착하게 손끝을 움직이던 그때였다.
‘……!’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이는 박동성 흐름이 느껴졌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태경은 자신의 판단을 믿을 뿐이었다.
‘여기다.’
그는 선택에 흔들림 없이 서둘러 박동성이 느껴지는 동맥을 집기 위해 켈리 겸자를 오므렸다.
드르륵-
겸자 손잡이 부분에 있는 돌기가 정확히 맞물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매섭게 흐르던 출혈이 눈에 띄게 감소하더니 이내 멈췄다.
‘피가 멈췄다.’
출혈이 멎은 걸 확인한 태경은 남은 거즈에 헥사메딘을 전부 부어 환자의 복강을 덮었다. 그러고 나서 물고 있던 랜턴과 거즈를 함께 뱉었다.
“퉤! 카악 퉤!”
그가 얼마나 랜턴을 세게 물었던지 플라스틱 랜턴에 살짝 이빨 자국이 생겼다.
또한 랜턴을 문 채로 침을 삼키기가 쉽지 않아 입안에 있던 거즈는 침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후우……!”
태경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심각했던 그의 표정이 드디어 밝아졌다.
“환자분 잘 버텼어요.”
사람 살리는 데 집중하던 태경은 그제야 진동하던 포르말린 냄새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됐다.
“조금만 참아요.”
“서, 선생님!?”
누군가가 응급 처치를 끝내고 환자를 응원하는 태경을 불렀다.
“선, 선배……우리 선배…….”
환자를 부탁하고 갔던 이기탁 대원이었다.
“걱정 많이 했죠?”
“선생님 우리 선배 괜찮은 거죠? 그렇죠?”
태경은 활짝 웃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이기탁 대원은 그의 환한 표정을 확인하고 그제야 선배에게 시선을 옮겼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다친 복강 내로 무섭게 나오던 출현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이기탁 대원은 허리를 90도로 굽혀 몇 번이나 진심으로 인사를 전했다.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