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8화 (18/472)

18화. 의사의 본분

“저기요. 사고 현장 아직도 정리 안 됐습니까?”

사설구급대원은 차창 밖으로 현장에서 내려오는 시민에게 물었다.

“의사 양반 둘이 아주 고생했어요. 덕분에 다친 사람들은 수습된 거 같아요.”

“혹시 구급차는 도착했나요?”

“구급차는 아직인 거 같던데요.”

“그래요?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친 사설구급대원은 119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자꾸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아까 전화 드렸던 사람인데요.”

-국도 사고 현장 쪽이면 거의 도착하실 때 됐어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쇼.”

“뭐래? 구급차 아직인가?”

차 안에 가만히 있던 환자 역시 바깥 상황이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거의 올 때 다 됐다네요.”

“그거야말로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리고 현장 환자들 처치는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아이고 다행이네. 다행이야.”

“그러게요. 같이 오신 의사 선생님 두 분이 큰일 하셨네요.”

“그럼. 선생님들이 사람들 목숨 구한 거지.”

* * *

방금 전, 환자들을 이송할 구급차가 거의 다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은 고민에 빠졌다.

“선생님 어떡할까요?”

그 이유는 응급 처치한 두 환자 때문이었다. 급한 상황은 넘겼지만 이송 중 위급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 한 명은 환자와 같이 가야겠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 환자는 동맥 손상이고 나머지 환자는 비장 손상을 입었다.

혹시 모를 상황 때문이라도 의사가 동행하는 게 환자에게 훨씬 좋은 일이었다.

“이찬희 선생?”

“네, 선생님.”

“이렇게 하지.”

“어떻게요?”

“환자 병원 이송까지 내가 갈게.”

“선생님이요?”

“그래. 이 선생은 원래 일정대로 환자 전원에 동행해.”

이찬희 역시 그 생각에 동의했다.

날것과 같은 야전에서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던 환자를 살려낸 태경이었다.

특히나 지금 같은 환자의 경우 자신보다 태경이 동행하는 게 맞았다.

“전원 가는 동안 환자한테서 눈 떼지 말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콜해.”

“예, 선생님 걱정 마세요.”

“환자와 의사가 있을 땐 우리의 안전보다는 환자의 안전이 더 우선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럼요.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중간 휴게소에서 만나자고.”

“알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렇게 태경은 도착한 구급차에 몸을 실었고 이찬희는 환자와 함께 전원 지역으로 향했다.

* * *

“으아악!!”

“환자분 움직이지 마세요.”

“의사 선생님, 저 너무 아파요.”

“아니, 아까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도대체 언제 봐 주실 거예요?”

“죄송합니다. 지금 순서대로 환자분들 보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여기 수액 바늘 좀 다시 해 줘요.”

고성을 지르는 사람과 의사를 찾는 사람 그리고 예민한 보호자가 뒤섞인 이곳은 지방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이다.

“헉헉!”

3중 추돌 사고 현장에 있던 이기탁 구급대원이 숨을 헐떡이며 응급실을 둘러봤다.

“저기……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뭐 좀 여쭤보겠습니다.”

이쪽저쪽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지나가던 간호사를 정중히 불러 세웠다.

“아, 네. 혹시 응급 환자 들어오나요?”

간호사는 그의 복장을 보고 자연스레 질문을 던졌다.

“아니요. 혹시 조금 전에 구급대원이랑 함께 온 베이지색 재킷 입은 남자 못 보셨나요? 키는…….”

그는 오른손을 자신의 머리 위로 올리며 설명을 덧붙였다.

“한 이 정도 되고 보통 체격인 남자분이요. 그리고 남색 수술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저희 병원은 남색 수술복이 아닌데요.”

“알고 있습니다. 여기 직원분을 말한 게 아니라 아까 응급차랑 같이 온 사람을 찾고 있어서요.”

“글쎄요. 아무래도 응급실이다 보니 일일이 다 기억하기 힘들어서요.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간호사에게 인사한 뒤 응급실을 나온 이기탁 대원은 병원 정문 밖으로 향했다.

“……!”

분주하게 걸어가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그는 한쪽에 있는 택시 승차장으로 향하는 누군가를 불렀다.

“선생님!?”

이기탁 대원이 애타게 부른 사람은 태경이었다.

“잠시 만요. 선생님!!”

있는 힘껏 목청을 높이며 달렸지만 택시에 탄 태경을 따라잡긴 무리였다.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사고 현장에서 정신없던 그는 태경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제대로 인사도 못 했는데…….”

그가 태경을 이토록 찾는 이유는 부상당한 선배 때문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살려 준 태경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선배 살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처럼 저도 현장에서 사람 구하는 대원이 되겠습니다.’

태경이 탄 택시를 보며 속으로 다짐한 그는 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 * *

“이 TA(교통사고)환자 3중 추돌이라고 했지?”

중년의 교수가 이기탁 대원의 선배 수술을 집도하고 있었다.

“네, 교수님. 맞습니다.”

어시를 맡고 있는 레지던트가 빠르게 대답했다.

“이송을 담당한 구급대원 말로는 현장에서 사고 당한 사람을 구조하다 복부에 구조물이 박혔다고 했습니다.”

“저런! 구급대원이 다쳐 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더 안 좋아. 자네들은 안 그래?”

“저희도 그렇습니다. 같이 사람 살리는 직종에 있다 보니 더 그런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지. 왼쪽 상복부에 스플린(비장)이라면 출혈이 상당했을 텐데 그나저나……!”

집도 교수는 환자에게 덮어진 거즈들을 치우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도 잘 봐 둬. 사고 현장에 우연히 있던 의사 솜씨라는데 응급 처치가 아주 깔끔해.”

교수가 태경의 처치를 칭찬하자 레지던트와 인턴들이 평소보다 더 집중했다.

“이런 점은 본받아야 한다고.”

평소 칭찬에 인색한 호랑이 교수가 칭찬을 하니 후배 의사들은 웬일인가 싶었다.

“박 선생. 자네 수술실에서 아터리(동맥) 잡아 본 적 있나?”

“있긴 있었습니다. 이 교수님 수술 때 잡아 보라고 하셔서 해 봤는데 솔직히 쉽지 않아서 교수님이 하셨습니다.”

“그래. 당연한 거야. 아터리 잡는 거 그거 만만한 일 아니라고. 자! 다들 여기 봐 봐.”

교수는 겸자로 벌어진 환자의 복강 내를 주목했다.

“지금 상태가 어때?”

“깨끗합니다.”

“그래. 내 말이 그거야. 아주 깨끗해. 그 뜻이 뭐겠어?”

“현장에서 처치한 의사가 출혈을 깨끗하게 잡았다는 뜻입니다.”

“맞아. 그래서 깨끗한 거야.”

얼굴도 모르는 태경을 향한 교수의 칭찬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외부에서 동맥을 잡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니 이 의사는 비장으로 흐르는 혈관을 잡는 좋은 판단을 했다. 사실 아까도 내가 말했지만 손상된 동맥을 직접 찾는다는 건 확률적으로 워낙 힘든……!”

환자의 복강 내로 손을 넣고 말을 잇던 교수의 말이 별안간 뚝 끊겼다.

“교수님?”

갑자기 말을 끊어 버린 교수 때문에 순간 레지던트와 인터들이 긴장했다.

“무슨 일이세요?”

환자와 모니터를 주시하던 마취과 담당의가 교수에게 물었다.

“그게…… 좀 당황스럽네.”

“예? 교수님. 혹시 환자 처치가 잘못됐습니까?”

맞은편에서 어시를 보던 레지던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니, 그 반대야. 이 환자 손상된 동맥이 정확히 잡혀 있어.”

“네!?”

교수의 말이 무슨 뜻인 줄 알고 있는 수술실 의사들은 다들 놀랄 노자의 표정으로 눈을 번뜩였다.

“내 살다 살다 TA환자의 손상된 동맥을 현장에서 잡은 의사는 난생 처음 보네.”

평생 수술실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셀 수 없는 수술을 집도한 교수의 얼굴은 놀라움을 넘어서 황당함까지 느껴졌다.

“어떤 의사인지 얼굴 한번 보고 싶네.”

아무리 경력이 많고 실력 좋은 의사일지라도 사고 현장에서 손상된 동맥을 바로 잡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는 게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지금 이 환자의 수술은 우리가 하고 있지만, 이 환자를 살린 건 우리가 아니야. 현장에 있던 그 의사가 이 환자를 살린 거야.”

* * *

환자 이송을 다녀온 다음 날 태경은 담석 수술 환자의 퇴원으로 병원에 출근했다.

“오늘은 다른 선생님들은 안 보이시네요.”

“쉬는 날이라 오늘은 제가 나왔습니다.”

“선생님도 쉬어야 하는데 괜히 저 때문에 출근하셨네요.”

“당연히 제가 나와야죠. 특별히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신가요?”

“무슨 말씀을요. 전혀 없어요.”

“선생님께서 수술을 잘해 주셔서 집사람이 회복도 빠르고 컨디션도 좋습니다.”

“다행이네요. 이건 병원에서 나가는 약이고요, 처방전 약은 건너편 약국에서 처방받으시면 됩니다.”

태경은 퇴원 후 환자가 지켜야 할 주의 사항도 꼼꼼하게 챙겼다.

“그리고 당분간은 설사를 할 수도 있으니 간이 너무 센 음식과 기름기 많은 고기는 당분간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여기 식단표도 함께 넣었으니 참고하세요.”

“선생님 덕분에 건강해져서 퇴원하네요. 감사해요.”

“아닙니다. 그럼 외래 진료 때 뵙겠습니다.”

“잠깐만요. 선생님 혹시 여자…….”

“이 사람이 진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랬지.”

태경이 마음에 들었던 환자가 아쉬움에 질문을 하려 했지만 보호자에게 저지당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왜 입을 막고 그래요.”

“이 사람아 주책 좀 그만 부려. 임자 있다는 사람한테 실례라고.”

“물어만 보는 거잖아요.”

“시끄럽고 재킷이나 걸쳐. 감기 걸려.”

“날 좋은데 감기는 무슨. 됐어요.”

처음 병원을 찾을 때 고통스러웠던 모습과 달리 환자는 밝은 표정으로 병원을 나섰다.

* * *

환자가 퇴원하고 뒷정리를 마친 태경은 정문으로 향했다.

“진료 가능한가요?”

잠금 장치를 확인하고 문단속을 하는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그럼요. 가능합니다.”

잽싸게 걸어 잠근 문을 열고 뒤를 돌아본 태경은 꽤나 놀란 기색이었다.

“……!”

“반가워, 김 선생.”

태경을 부른 사람은 김철기였다.

“나도 자네가 있을 줄은 몰랐어.”

그는 부인의 손을 꼭 잡고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공기 좋은 곳에 있다 보니 나도 이 사람도 잘 지내고 있어.”

“사모님도 안녕하셨죠?”

“제가 선생님을 뵌 적이 있던가요?”

“예전에 한 번 뵙습니다.”

“어머, 죄송해요. 육아 때문에 정신이 없나 봐요.”

치매인 김철기 부인은 여전히 아기 인형을 애지중지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별말씀을요. 괜찮습니다. 원장님 커피 드릴까요?”

“괜찮아. 그리고 원장은 무슨. 이 병원 원장은 자네지 내가 아니야.”

“아닙니다. 근데 어쩐 일로…….”

“서울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이 사람이 병원을 보고싶다길래 데려왔어.”

“연락을 주시지 그러셨어요.”

“연락은 무슨. 그러는 자네는 이틀 뒤부터 진료인데 쉬는 날 뭐 하러 나왔어?”

“응급 수술한 환자가 오늘 퇴원이라 나왔습니다.”

“응급 수술이라면 그 콜레시스타이티스 환자?”

“네, 맞습니다.”

김철기는 태경이 보내 주는 업무 메일 때문에 환자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자네 메일 보내는 거 말이야 내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안 보내도 돼.”

“불편하세요?”

“불편은. 나야 병원 돌아가는 사정도 알고 좋지. 바쁠 텐데 뭐하려고 그런 수고를 해.”

“정말 바쁜 날은 생략할 테니 걱정 마세요. 원장님?”

“표정을 보니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할 말 있으면 해. 자네 설마 그만둔다는 말하려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병원 사정이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병원 사정?”

“환자가 많이 줄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되묻는 김철기 반응이 태경을 당황케 만들었다.

“저도 그렇고 직원들도 그렇고 원장님이 힘드실까 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허허. 이거 참. 이봐, 김 선생. 자네한테 환자를 데려오라고 했나?”

“아니요.”

“그럼 돈을 벌어 오라고 했나?”

“아닙니다.”

“그런데 뭐가 걱정인가. 난 김 선생한테 병원을 맡긴 거지 돈을 벌어 오라든가 환자를 데려오라고 한 적은 없어.”

김철기는 지금까지 병원 재정에 대해 그 어떤 말도 꺼낸 적이 없었다.

“자네와 직원들이 걱정할 거는 내 주머니 사정이 아니라 어떡하면 환자를 잘 치료할지와 고통을 덜어 줄까에 대한 거야.”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의사의 본분은 오직 환자였기 때문이다.

“환자는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는 거야. 그거에 너무 연연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병원은 어떤가? 이만하면 아담하고 괜찮지?”

“전혀요. 도대체 어딜 봐서 동네 작은 병원인가 싶습니다.”

태경은 유쾌하게 대화를 이어 갔지만 속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환자가 우선이라는 건 태경 역시 의사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항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액수의 빚을 대신 갚아 준 김철기의 사정을 아예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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